[내막] 미, 주한미군사령관에 '전략지시 3호' 준비 중 사건내막

  D&D Focus 2009년 11월호

 

이미 실행 중인 전략적 유연성에

 ‘확장 억제력’은 말장난에 불과


최근의 한미동맹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 정부의 발표 내용을 뒤집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꾸로 읽어야 진실이 보인다는 얘기다. 유난히 시끄러웠던 4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는 시작 전부터 ‘남북 정상회담설’을 미국이 퍼뜨리면서 화제가 되었고, 회의 종료 후에도 주한미군의 아프간 차출,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굵직한 현안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내막을 헤집어 본다.



 

 

미 합참의장이 드러낸 속내


SCM과 군사위원회(MSM) 회의 참석 차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은 10월 22일에 주한미군 장병과의 간담회에서 “아시아 국가에 배치된 많은 미군 장병이 가족과 함께 장기 주둔함에 따라 앞으로 몇 년 내에 주한미군 병력을 중동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중동으로 미군이 배치되는 중간 발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멀린 의장의 발언은 “아프가니스탄에 2만1천여 명의 미군이 증강될 것이라고 하는데 한국에 근무하는 장병들도 가느냐”는 한 병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단순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선을 넘어서는 역할변경에 대한 중차대한 언급이다. 이를 보도한 「연합뉴스」는 “군 일각에서는 경위야 어찌 됐건 미국이 멀린 의장의 입을 빌려 전 세계 미군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 정책에 주한미군도 포함됨을 분명히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연합뉴스는 “멀린 의장의 발언에서 주한미군이 추진해온 근무기간 연장(1년→3년)의도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제시했다.

이렇게 주한미군을 미국의 의도에 맞게 한반도 방위 이외의 목적으로 자유롭게 전용할 수 있다는 군 운용개념을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미 2002년부터 이 개념을 주장해 왔고 2006년에 한국정부와 이를 합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본지는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주한미군 관계자들은 어떤 인식인가”인가를 집중 취재했다. 대다수의 군 전문가들은 “한국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이미 실행 중이고 전작권이 전환되는 2012년이면 그 변환은 완료된다”는 인식이다. 그러므로 멀린 합참의장이 비록 우발적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주한미군의 한반도 이외 지역의 차출은 당연히 고려 대상”이며 “반드시 그런 방향으로 변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략지시 3호’에 따른 변환의 시나리오

 

이미 국내에서 수차 논의된 대로 주한미군의 성격변환은 한미 동맹 60년사에 가장 획기적인 변화임에는 분명하다. 냉전시대 한․미 동맹을 지탱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초월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주한미군 내부에서는 「중앙일보」가 6일 보도한 내용이 논란거리다. 이 신문은 “지난해 말 서울에서 하와이로 옮기기로 결정됐던 미8군사령부의 이전계획이 바뀌어 한국에 계속 주둔하는 방안이 최근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언뜻 보면 미국이 전작권의 전환 이후에도 현 지상군 병력을 계속 유지하고 없어지기로 했던 사령부가 계속 존치되는 등 전통적 한․미 동맹이 상당부분 복원되는 것처럼 기사는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도에 대해 주한미군 측은 “한마디로 넌센스”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8군사령부가 하와이로 이전하는 것은 잠시 풍미했던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이고, 미국은 과거나 현재도 변함없이 현 미8군사령부를 전작권 전환 이후를 대비한 한국사령부(KORCOM)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애초 이 구상에 의해 주한미군 변환을 추진해 온 만큼 “8군 사령부가 떠난다”나 “그 계획이 U턴하여 다시 잔류하기로 결정됐다”는 보도는 무의미한데 “왜 이런 보도가 신문에서 부각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 신문의 “미8군사령부를 주축으로 한 전방전투지휘소(OCK-K)를 창설한다”는 보도 역시 “자칫하면 미군이 전방에 전진배치되어 주둔한다”는 식으로 읽혀서는 곤란하고 “그런 의미라면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앞으로 한반도 전구작전의 주도성을 갖는 한국군이 단독작전을 하고 미군은 이를 지원한다는 종래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중앙일보가 마치 새로 조성될 평택기지가 “미군의 허브기지”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허브 기지라면 괌이나 일본의 오끼나와 정도이고 평택은 그 아래 단계의 중요성을 갖는 ‘전진기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주한미군 측은 중앙일보 보도가 나온 직후 이를 정정하는 보도자료를 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정통한 연합사의 한 관계자는 주한미군의 변환에 대한 앞으로의 동향을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2012년 전작권이 전환되는데 즈음하여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자연히 완결된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에 주둔하게 될 한국사령부 지휘관의 임무를 명기한 ‘전략지시 3호’를 발동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와 지역적 역할, 타 지역 분쟁에 개입을 구체적으로 명기하게 될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전략지시’의 목적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를 표현할 가능성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략지시 제1호는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시에, 제2호는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시에 하달된 바 있다. 

  


‘주권의 위기’가 온다


1954년 한미 양국 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에는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에 의해 그동안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무력공격의 위협에 처했을 경우 이를 방위하는 군”이라는 의미로 좁게 해석해 온 것이 그간의 분위기였다. 따라서 한반도 이외의 타 분쟁지역에 개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놀랍게도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한 측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이 문제가 한미 간에 가장 긴밀하게 논의된 때는 2003년 10월에 개최된 FOTA 4차 회의였다. 당시 우리 측은 준비 자료에서 “주한미군이 지역 안정에 대한 기여증대를 지지하고 환영한다, 다만 현 단계에서 그러한 변화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공론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으므로 당분간 정보 비공개를 유지한다”고 국방부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디이어 열린 회의에서 당시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은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기본입장이다. 유사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인 앤드 아웃’하는 문제는 연합사령관 권한사항이고 그 과정에서 한국 합참의장과 협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차 실장의 크게 흡족해 한 당시 미 국방부 롤리스 부차관보는 한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모두 합의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서 ‘지역안정’으로 한미 동맹의 목표를 바꾸는 것으로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조약은 그대로 놔두고 별도의 외교 각서를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차영구 정책실장과 외교부 위성락 북미국장은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꺼려하면 조약의 개정보다는 ‘비밀 외교각서’ 형태로 이 문제를 처리하기를 원했다. 그 해 10월에 이 주장에 따라 한국의 외교부와 미국의 국무부가 ‘교환공문(Exchange of Note)' 형태로 초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10월에 우리 외교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되 그 조건으로 ▲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 유지한다 ▲ 주한미군 역할변경으로 우려되는 한국의 안전을 고려한다 ▲ 주한미군 입출입시 한국과 사전협의한다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석 달 후인 2004년 1월에 미 측의 초안이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한국의 안전을 고려한다는 항목이 아예 삭제되었고 ‘사전협의’도 ‘단순협의’로 완화되었다. 즉 미국은 한국정부와 협의절차를 통한 사실상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한국 안전에 대한 고려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2006년에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라이스 국무장관이 만나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한다”고 대체적인 원칙만 합의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참여정부 당시 매우 심각한 의제였으나 지금은 한미 간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우선 우리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상당부분 양해한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전작권 전환이 구체적인 가시권으로 접어든 지금 상황은 “미국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 알아서 자체 판단으로 미군을 운용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것이 한국정부의 통제나 협의를 거치지 않고 주한미군 사령관의 임무를 ‘전략지시’에 담아 알아서 시행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군은 한국에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전략지시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외국 군대의 주둔과 그 임무는 헌법적 차원의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미 간에 아무런 조약이나 합의문을 만들어 놓지 않고 미국의 내부 절차인 ‘전략지시’에 이를 전부 맡겨 놓는다면 이는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일체 침묵하고 있는 우리 정부 태도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는 주한미군의 성격 문제를 두고 한미 간에 옥신각신하는 논란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었는데, 지금은 주한미군이 어떻게 성격이 변하더라도 아예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말로 이렇게 이 문제를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QDR에서 나올 변환의 키워드, “투사력”


한편 이번 SCM에서 양국 간에 확인된 ‘확장 억제’ 문제 역시 주한미군을 변환하는데 명분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제껏 미국이 핵우산에서 재래식 무기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억제력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하는 이유는 한국민의 안보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인데, 안보에 대한 불안은 주한미군의 급격한 감축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점에서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토대로 한 대규모 감군의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확장 억제력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지금껏 미국이 확장억제력을 주장할 때마다 마치 전통적인 동맹이 복원되고 있다는 뜻으로 보도한 그간의 언론 논조와는 사뭇 다른 기조다.

미국 파견 근무 후 국내에 복귀한 한 대령은 미국의 군사력 변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내년 초에 발간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4주기 국방태세 검토(QDR)의 핵심 개념은 ’투사력(Projection)' 중심의 군사력 변환이다. 투사력이란 전 세계 어디라도 군을 전진배치 할 필요가 없이 본토에서 필요시에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기조로 QDR의 전반적인 논리가 구성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해외기지에 미군의 주둔은 급격히 감소하는 논리적 기반이 마련된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에게도 유사시에 신속한 군사력 투입을 보장할 수 있게 되는데, 투사력과 주한미군 감축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면 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미군이 감축된다든지, 아니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다든지 하는 문제는 이제 조금씩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최근 미국은 괌에 우리 돈으로 22조원을 투입하여 대규모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여기에 투입될 미군 부대는 총 1만7000명 규모로 편제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실제 병력은 7000명 밖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편제상으로 잡혀 있는 병력은 타지역에 근무하는 병력이 이중 직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예컨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장교가 주한미군 직위도 갖고 괌에 있는 부대의 직위도 갖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한국과 괌에 순환근무를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이중 직위’에 의해 두 가지 직무를 동시에 수행하게 되면 한국에서 미군을 빼내간다는 논란도 피하면서 사실상 유연성을 구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호적만 주한미군 부대에 올려놓고 근무는 분쟁지역에서 수행해도 된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 핵심전력 운용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예전에는 주한미군 전력이 한 번 한국에서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얼마든지 빼 가면서 “언젠가 한국에 돌아온다”는 말만 하면 그만이다.

   


‘합동부대 제조공장’ JFCOM의 숨은 그림


전략적 유연성이란 단순히 미군의 신속이동 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군의 근본적 변혁이자 재창조를 기반으로 한 실로 원대한 개념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이 개념이 구체화될 경우 한미 동맹에는 예기치 않은 두 개의 태풍이 불어 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첫 번째는 기존의 한반도 전쟁계획인 5027의 완전한 폐기와 더불어 유사시 미 증원군이 최소한으로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작전계획의 수립이다. 이미 이러한 가능성은 2007년에 미 합동전력사령부(JFCOM)을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비록 이 사령부 인원은 7~8천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한국 국방예산의 2배에 달하는 약 560억불에 달하는 예산을 사용하고 미 본토 주둔 병력의 80%를 통제하는 명실상부한 ‘합동부대 제조공장’이다. 럼스펠드 장관 당시부터 이미 미 군사변환을 이끄는 조직은 바로 합동전력사령부라는 것이 여러 번 천명된 바 있다. 이 부대의 막강한 파워에 비하면 미 합참의 존재마저도 초라하게 보인다.

이 사령부에서 2007년에 미 합참에 비밀 보고서를 제출했다. 바로 한반도 전쟁계획 5027에 대한 검토 결과 보고서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래식 군사교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주한미군 사령부는 변혁을 거부하는 수구파의 본산이자 냉전형 재래식 군의 전형이며 하루속히 혁신되어야 할 미군의 짐이라고 판단했다. 혁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합동전력사는 미국․호주․일본을 잇는 현대화 된 남방 3각 군사네트워크에 한국이 포함되지도 않았고 주한미군은 별개의 군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해 했다. 합동성이 전혀 구현되지 않은 재래식 전쟁계획인 5027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당신들이 갖고 있는 전쟁계획은 쓰레기다.”

이 결론에 대해 미 합참과 주한미군사령부는 반발했다. 본토의 혁신파들이 야전군의 실상을 모른 채 무리하게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며 야전의 지상군 장군들은 대거 반발한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4성 장군 직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 육군의 이해관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적어도 2005년 이후로 주한미군에 대한 본토의 견제가 노골화되면서 전략적 유연성에 의한 미군 변환은 실행국면으로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변혁의 새로운 물결에 대해 한국군은 매우 둔감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새로운 전쟁 계획은 “한반도에 재래식 전면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소규모 병력으로 운용이 가능한 작전계획 5026, 5028로 한반도 전쟁의  주안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심대한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는 유사시 미 증원전력의 한국에 대한 파병 절차도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유사시에 한미 군 통수기구의 지침에 따라 군사위원회(MC)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증원군을 파견하기로 하면 미국 합참이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협조를 받아 한반도에 파병할 전투부대를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군 관계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이 절차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경에는 합동전력사가 지정한 각 군의 전력이 새로이 합동부대로 재편되어 합동전력사의 통제에 의해 한국에 증원군을 파병하는 것으로 절차가 바뀐다. 이 과정에서 미 합참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러한 절차를 담은 부시 대통령의 비밀 훈령이 2007년에 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국 군 합참의장이 각자의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참여하는 군사위원회(MC)가 실병을 운용하는데 제한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면 미 증원전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공언하는 ‘확장억제’와 달리 미 증원군의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 단초는 지난해부터 한국군이 주도가 되어 실시하고 있는 프리덤 가디언 연습에서 이미 드러났다.

작년 8월, 한국군이 주도가 되어 실시된 을지 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주한미군에 소속된 한국인 군무원은 그 양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개념적으로 알고 있던 미국의 지원전력은 연습에 전혀 연계되지도 않고 오지도 않았으며, 그럴 계획도 없었다. 괌에 배치된 글로벌호크를 투입해야 할 군사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미국은 ‘작전반경 밖’이라며 투입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계획상으로는 미군의 지원전력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한국 지원이 실행되지 않자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다. 지원전력이 대부분 허수에 불과하다는 사을 알게 된 우리군의 수뇌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관계자에 의하면 지상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8군의 자체계획은 적용되었으나 유사시 증원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미 지상군은 상당부분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에게 프리덤가디언 훈련의 명목은 함께 싸운다는 의미 보다는 “한국군을 훈련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연습 운영방침은 이미 전작권 전환이 결정되었을 당시인 벨 사령관 때부터 이미 정착되었다고 한다. 해체될 운명의 식물사령부인 연합사에서 미군은 뒷짐만 지고 한국군 훈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주도․미국지원’이라는 미래 전작권 전환 이후의 실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일 수도 있다.



전쟁 목적이 다른 군대의 불화 가능성


한편 전략적 유연성과 별도로 한․미 간에 공동작전의 어려움은 정치적 이유로 더욱 가중될 수 있다. 그 가능성도 역시 올해 프리덤 가디언 군사연습에서 가능성이 나타났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사령관은 김태영 합참의장을 비롯한 우리 군 지휘부에 “도대체 언제 데프콘1을 선포할 거냐”며 전면전쟁 단계로 돌입하지 않는 한국군을 재촉하고 나섰다. ‘데프콘1’은 전쟁 임박 단계를 가정한 ‘데프콘2’를 넘어선 본격적인 전면전의 상황을 지칭한다. 국가의 최고 비상사태다. 이 단계에 돌입하면 더 이상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오직 국가 총력전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다.

우리 군 수뇌부는 데프콘을 선포하기에 앞서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의 위기관리 수단은 없는가”를 한 번 더 고민한다. 아무리 군부라고 하지만 전면전을 불사하는 결심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이 나면 그 승패와 관계없이 50년 이상 그 후유증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국가적 불행이 초래된다. 물론 전쟁을 결심하는 단위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전쟁지도본부다. 그러나 국가 위기관리에 책임이 있는 우리 군의 최고 수뇌부도 그 역사적 책무 때문에 국가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데는 지극히 신중해지게 마련이다.

월터 샤프가 한국군을 재촉할 무렵에는 연습 각본상으로는 이미 남북한 간의 국지적 충돌로 23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주한미군은 유사시를 대비한 연습에서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인력을 대기시켜 놓았고 예산도 투입한 마당에 한국군이 전면전 단계로 진입을 주저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월터 샤프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도대체 한국 국민이 얼마나 사망해야 데프콘1을 선포하려는가?”

대부분의 군 장성들은 자신이 예하부대 지휘관일 때는 언제든 북한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전사의 정신으로 무장한다. 그러나 군령의 최고급 위치에 오르게 되면 그 생각은 바뀐다.

“반드시 전쟁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수단은 없는가.”

한국 안보의 근원적 문제를 담은 전략적 고민이 을지연습 기간에 여러 차례 토의되면서 우리 군 수뇌부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시험을 받았다. 결국 주한미군 측에서 청와대가 피격 당하는 사건을 가정하자 그제 서야 김태영 당시 합참의장은 데프콘1을 선포했다. 이로써 남은 을지연습은 전면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한국군은 항상 전쟁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또한 과연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점에 대해 미국은 한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비슷한 문제점은 또 있었다. 샤프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지휘부는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 시에 북한에 미군이 진입하여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한다는 소위 ‘작전계획 5029’를 연습하는 기간으로 을지연습을 활용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미 군부 간에는 이견이 발생했다.

우리 측은 작전계획 5029를 실행하더라도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북한 핵무기 통제를 위한 미국의 군사행동이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북한 핵을 통제한다는 의도로 북한 체제가 혼란에 빠졌을 때 미국이 섣불리 군사행동을 한다면 이것도 역시 북한군의 반발을 초래하여 전쟁을 불러오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빈대 잡자고 초가 삼 칸 불태우는’ 겪이다.

북한의 조잡한 수준의 핵무기가 당장 미국 본토까지 위험에 빠뜨릴 만큼 급박한 위협인가도 의문이지만, 북한의 핵무기를 조기에 통제한다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결심할 만큼 중요한 문제냐는 의문도 든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속 시원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한국 군부가 속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해에 우리는 미군의 작전계획 5029를 전면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전략동맹’을 협의하는 순간 미군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의 자유’를 거의 전부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미군이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자들은 그저 정해진 각본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로봇 같다. 가끔은 미국이라는 존재에 대해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

작전에 정통한 합참의 한 중견장교는 “유사시에 미군은 단 6시간 만에 전쟁을 결심하고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능력과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한미 간에 “전쟁억제를 위한 더욱 확고한 통제 및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즉 전쟁의 목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있어 미래의 한미 동맹이 과연 원만한 정치적 합의를 달성할 수 있는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대두될 것이 확실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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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