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 손엔 핵무기, 한 손엔 농기구…‘김정은 시대’의 북한군 남북군사력

 

한겨레신문  2004. 1. 11자

 

[토요판] 군사 / ‘김정은 시대’의 북한군

 

▶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출범 3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2011년 12월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뒤 북한군은 많은 변화를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대교체였습니다. 군사력 면에서도 북한군은 ‘1호 전투근무태세’, ‘전략 로켓군’, ‘우리식 전면전 준비’ 등 무언가 현대화된 군사전략과 시스템을 뽐내고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북한군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였다는 소식이 최근 북한을 탈출한 인사들로부터 전해진다. 북한군은 군단마다 우리 군악대와 유사한 협주단 또는 선전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이 조직을 없애고, 그 절감된 비용을 군단의 전투력 강화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느낀 협주단 구성원들은 각종 건설사업 현장으로 달려가 삽질을 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노동으로 성과를 보여주어야만 조직이 무사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군사 조직을 유지하는 데도 일종의 경쟁논리가 작동함을 보여준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군은 부대 운영비 집행 시스템을 예전의 현금 집행 방식이 아닌 카드 결제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공금 유용이나 횡령의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부대 운영의 투명성은 높아졌다. 이런 카드 결제 방식은 사실 우리 군도 도입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군이 ‘성역’이라는 인식은 북에서도 해체되고 있다.

‘동시전장화’와 ‘판갈이’라는 새로운 전쟁전략

 

작년 3월 초에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여 남북한의 긴장이 몹시 고조된 일이 있다. 이런 선언이 있으면 으레 북한이 지상에서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그 주말에 언론은 우리 군 장성들이 평소와 같이 주말에 골프를 쳤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무렵 언론에 발표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난 직후 북한은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처음에는 수백명, 며칠 후에는 수천명 단위로 무장병력을 투입했다. 우리 군은 이를 새로운 위협이나 도발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평소처럼 골프를 쳤다. 그 이유가 뭘까?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북한군이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농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화전을 일구고 밭을 가는 농사짓는 군인들은 수천명이 목격되어도 위협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렇듯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은 전쟁이 날 것처럼 일촉즉발이지만 현장의 군인들은 서로 무언의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처럼 보인다.

전투보다는 밥벌이에 더 민감한 북한군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분명히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군은 서방 세계의 전략을 학습한 것처럼 제법 세련된 정치군사 행동을 보여준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외에도 ‘1호 전투근무태세’, ‘전략 로켓군’, ‘우리식 전면전 준비’ 등 무언가 현대화된 군사전략과 시스템을 형형색색으로 선보이면서 군사강국임을 뽐내는 것 같다. 언제 개발했는지도 모르는 신형 무기와 신형 군사력도 신출귀몰하게 나타난다. 우리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성능 부실 논란을 빚는 중어뢰를 북한이 무슨 방법으로 개발해서 천안함을 격침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인지, 그 과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게다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신형 전차와 장갑차가 이미 수백대 실전에 배치되었다는데 이건 우리도 엄두를 못 내는 괄목할 만한 변화다. 또한 일순간에 2만명의 특수부대를 해상을 통해 수도권에 침투시킨다는 공기부양정을, 서해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여 배치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우리도 돈이 없어 2만여명밖에 보유하지 못한 특수부대를 북한은 20만명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위성항법장치(GPS) 교란과 무인공격기로 남한을 정밀타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평택까지 타격하는 신형 장사정 무기는 또 어떠한가? 수천명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 수준과 최대 규모의 사이버 심리전, 해커부대는 미국도 위협이라고 말하고 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갑자기 이전에 없었던 군국주의 국가가 새로 생겨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모두가 김정은 시대 출범을 전후하여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난 군사력이다. 지난해 3월에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한 “3일 전쟁 계획”, 그리고 그 직후 김정은이 서해 군부대 시찰에서 “우리식 전면전 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한 것 등, 북한은 새로운 전쟁전략을 완성했다고 스스로 공언하고 있다. 그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는 6·25전쟁 당시 대전에서 인민군이 지체했다가 부산을 점령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여 이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한꺼번에 전쟁을 한다는 ‘동시전장화 전략’이다. 둘째 역시 과거 전쟁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속전속결 전략’이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판갈이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 구현을 위해 북한은 휴전선 인근에 밀집한 전방 제대뿐만 아니라 남한 후방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 특수부대 침투 등 제반 수단까지 구비하였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전방부대 개편이다. 과거 후방에 있던 기계화부대와 경보병부대를 전방 제대로 통합하여 제1제대와 제2제대로 단순화한 것이다.

그들의 심리전은 200% 성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된 군사력이 요 몇 년 사이에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준비해 온 전략이고, 다만 김정은 시대에는 그런 전략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한 점이 다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신형 군사력을 속속 공개하면서 우리에게 이를 “믿어 달라”는 식의 행보를 보여 왔다. 이것을 ‘위협의 신뢰성 게임’이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의 위협을 상대방이 믿도록 함으로써 군사적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북한 내부의 권력통치에서 요구된다는 점이다. 1997년에 황장엽이 망명 당시에 통째로 들고나온 김정일의 연설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미 1990년대 초에 김일성은 전쟁을 막는 외교에 치중하고 김정일은 대남 군사적 우위를 달성하는 군사 분야의 전략과 전술 개발로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작고한 황장엽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초에 김정일이 “승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전쟁 전략을 준비했다”며 이를 “주석님께도 잘 말해 달라”고 자신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바로 한반도 동시전장화와 속전속결 전략이다. 김정은 시대에는 이걸 비로소 자신이 완성했다고 함으로써 대내적으로 군사지도자로서 위상을 재확립하려는 국내정치로부터의 요구이다.

둘째는 미국과 남한이 이런 북한의 전쟁의지를 믿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자신들의 특급 비밀에 해당될 만한 군사기밀을 공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3년 전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미국의 헤커 박사에게 공개한 일이 대표적이다. 최근 김정은 제1비서는 군부대 방문 소식을 소상하게 전하면서 군사력의 면면이 남쪽 언론에 공개되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남한의 보수 언론과 국방 당국은 이를 믿어줌으로써 보답했다. 작년에 조보근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이 국회에서 “북한과 일대일로 싸우면 우리가 진다”고 했다. 이 무렵 우리 국방부는 지난 20년 가까이 간직해왔던 하나의 믿음을 버렸다. 북한이 경제난으로 대규모 전면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소규모 국지전으로 도발한다는 믿음이다. 다시 “북한은 대규모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것이 최대 안보위협”이라고 북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를 수정한 것이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 당시 한국을 방문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안보전략센터의 짐 월시 박사는 이 점을 주목했다. 그는 남한 내 핵무장론자들의 토론을 보고 크게 놀라 “만일 남파간첩이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본다면 자신들의 상부에 ‘우리 심리전이 200% 성공했다’고 보고할 것 같다”고 말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북한의 일련의 군사행동은 ‘한반도 전역에서의 혁명’이라는 포기하기 어려운 이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막상 구체적인 면면을 뜯어보면 날로 노쇠해져 가는 북한 재래식 전력의 실태와 밥벌이에 급급한 북한군의 다른 면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 준비보다 이권에 민감한 권력

 

그러면 김정은 시대의 군이 과거와 다른 점은 뭔가? 우선 세대교체의 가속화다. 2011년 12월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에 추대되고, 2012년 4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북한은 군의 주요 간부들을 젊은 3세대로 교체했다. 최룡해 차수(1950년생)가 군의 최고 간부인 총정치국장이 됨으로써 그보다 나이가 많은 군 간부들은 전원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군복을 벗었다. 정창현 국민대 교수에 따르면,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뒤 200여명의 60대 장성급이 전역했다. 인민무력부장인 70대 후반의 김영춘 차수가 물러나고 김정각 대장, 김격식 대장을 거쳐 현재는 50대의 1군단장 출신 장정남 상장이 임명됐다. 총참모장에는 70대의 리영호 차수가 물러난 다음 현영철 대장, 김격식 대장을 거쳐 작전국장이었던 50대의 리영길이 승진했다. 총참모부 작전국장에도 70대의 김명국이 물러난 뒤 최부일, 리영길을 거쳐 60대 초반의 군단장 출신 변인선이 임명됐다. 총정치국,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등 북한군의 핵심 부서 책임자가 모두 50~60대 초반으로 세대교체된 셈이다. 일선 군단장도 대다수 교체됐다. 사단장들은 40대로 교체됐다. 총정치국의 핵심 부서인 조직국도 지난해 하반기에 손철주 부국장(상장)이 물러나고 김수길 중장이 부국장으로 새로 임명됐고, 총정치국 선전국도 한동근 상장에서 렴철성 중장으로 부국장이 교체됐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함께 북한군의 전략과 전술도 핵무기와 미사일 중심으로 군사교리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선군호·폭풍호 등 신형 전차, KN-06 미사일,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실전배치했다. 정 교수는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결과 미국의 양적 우세, 군사기술적 우세가 이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핵에는 핵으로, 정밀타격에는 전자전으로 맞서는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이와 더불어 작년 3월에 미사일지도국을 전략로켓군사령부(사령관 김락겸 중장)로 확대 개편한 것이 눈에 띈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미사일 중심으로 군 전략을 새로 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배치와 관련해서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강화에 대응해 휴전선 인근에 군 역량을 전진배치하고 공격형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서해 5도와 대치하는 4군단의 전력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군부대가 운영하던 무역회사(외화벌이 기관) 등을 내각 산하로 이관하는 한편, 군이 갖고 있던 어업권(군 산하 수산사업소)은 인정해 군이 자체적으로 후방사업(군의 의식주 담당)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장성택 사건의 도화선이 된 남포수산사업소 총격전도 당 행정부로 넘어갔던 수산사업소를 군대로 다시 이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군이 자체적으로 군인들의 의식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후방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수산 부문을 추켜세우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군이 수산업 발전의 선두에 설 것을 강조했고, 지난해 12월26일에는 건군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 회의’를 개최해 군인들에게 많은 수산물을 공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군대는 전투에 전념해야 하는데 역시 밥벌이가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권력 내부의 피바람을 몰고 올 만한 사안은 역시 전쟁 준비보다는 누가 이권을 차지하느냐의 문제였다. 여기에 이르면 그동안 곧바로 남한을 침공하려는 북한군과는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게다가 군에 대한 당의 통제, 즉 ‘북한식 문민통제’도 두드러진다. 역시 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나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군(일꾼) 협의회’ 등 공식회의를 통해 군의 전략, 대응방침 등을 논의, 결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집단적 협의와 공식 당 기구를 통한 논의가 정착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로 인한 군의 위상 강화와 비대화라는 폐단을 개선해 군에 대한 당의 영도·지도를 강화하는 중이다. 당 조직지도부의 김경옥 제1부부장, 황병서 부부장 등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것도 군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혁명’이라는 국가 이상적인 면과 당의 지도와 경제 우선이라는 현실에서의 요구 사이의 거리가 아직은 요원한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실속을 추구하는, 생활하는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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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