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 서신파동, 국방개혁 표류 내막 사건내막

월간 <신동아>  2009년 12월호

 

 

 

‘율곡비리’ 이후 최대 규모 군수비리 조사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93년의 ‘율곡비리’ 파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되고 있는 최근의 군수비리 수사는 가히 전방위적인 양상이다. 작년부터 진행되어 온 군수비리에 대한 사정의 칼바람은 다소 의외의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촛불시위가 거의 막바지로 치닫던 작년 7월경의 청와대. 주요 기관장을 심하게 질책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똑바로 하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임 총장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임 총장의 얼굴을 향해 가더니 턱을 쳤다. 이 때 당황한 임 총장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군수비리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재차 “똑바로 하라”고 말했다. “촛불의 배후를 발본색원하라”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명확히 전달되면서 분위기는 “극도로 살벌했다”는 것이 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다.

그 직후 지난 정권의 방산산업을 통해 조성된 비밀자금을 찾으려는 공안당국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F-15K 도입관련 에이전트 회사에 대한 국세청을 앞세운 수사에서도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고 기대를 걸던 조풍언 씨 조사에서도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대검찰청의 이인규 중수부장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할 상황에 대비해 하루에 양말 네 켤레를 싸들고 출근을 하면서도 찾아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보잉사 협력업체는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이 당시 수사를 받은 한 회사 관계자의 증언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다른 서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보잉사와 거래내역이 담긴 서류만 찾았다. 아마도 보잉사를 통해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한 흔적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유독 보잉사 관련 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이유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많은 무기도입 사업을 수주한 회사가 보잉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진다. 한국군이 도입하고 있는 F-15K 전투기, 조기경보기와 같은 가장 규모가 큰 국방사업이 보잉사 제품을 직구매하는 사업들이다. 이런 인식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국방위원들은 집중적으로 F-15K 전투기 도입의혹을 제기했다. 한 여당 보좌관은 “국정감사 직전에 당 대표로부터 ‘F-15K 도입의혹을 잘 파헤쳐보라’며 기초 자료를 건네받았다”고 필자에게 증언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F-15K 도입에 대해 제기하는 의혹은 최초 4조원대로 예상되었던 사업규모가  5조원을 넘긴 배경이다. 한물 간 전투기 도입에 1조원을 추가 지출 한 것은 보잉사를 통해 과거 정권이 수천억원의 리베이트를 수주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이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사용되었거나, 현재 관리되고 있다는 의혹이다. 이 내용을 담은 「F-15K 전투기사업에 대한 의혹」이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을 통해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5조원의 전투기 사업 중 1조원이면 20%다. 이것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발언으로 알려져 시중의 화제가 된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깍아도 된다”는 말의 배경이 된다. 대통령의 이 말은 지난 8월 이상희 국방장관의 항명성 편지가 작성되기 이전인 7월 말에 ‘장관 보고 없이’ 청와대에 다녀온 장수만 차관을 통해 국방부에도 알려졌고 국방부 현역들에게서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리베이트 20% 발언’이 이상희 장관의 편지 작성에 하나의 동기를 제공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에서 시작된 군수비리 수사는 올해 6월에 정점에 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과거 보잉사․조풍언 씨 커넥션의 선상에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한 업체를 덮쳐 상당수 군사기밀을 발견하고 가격을 부풀린 사실을 찾는 개가를 올렸다. 그 외에도 수사는 일파만파로 확산되어 국내 굴지의 대형 방산 업체인 S사, L사, D사, 그리고 민간 안보연구소까지 확산되었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끝내 원하던 비자금이 발견되지 않자 지난정부 시절의 대형 국방사업 전반에 까지 그 칼날이 계속 확산 중이다. 최근에는 해군 사업을 주로 한 S 업체로부터 약 660억원의 해외 비자금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오래 전에 진행된 일이라 공소시효를 넘긴데다가 법적용도 쉽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유럽의 S 항공업체의 사주를 받고 군 기밀문서를 넘겨 준 예비역 공군 장군이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해군의 납품비리 사건은 이미 해군 법무장교들과 지휘부에까지 확산되어 해군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군수비리 수사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공개된 사건 외에도 수사 선상에 있는 군수비리 의혹으로는, ▲ 군 정보기관 단파 자동방탐장비 제안요청서 3급 비밀 유출 ▲ 군 정보기관 이전사업인 충성사업 비밀공사 설계도면 유출 ▲ KHP, KMH 관련 대외비 자료 유출 ▲ 국군 통신부대 사업 담당자의 뇌물 수수 ▲ 러시아제 무기도입 관련 문건 유출 ▲ 터키산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문건유출 및 가격 조작 ▲ 해군 무인정찰기(UAV) 도입 관련 가격 조작 ▲ 조기경보기(AWACS) 도입 과정에서의 비자금 조성 의혹 ▲ 육군 야간 표적지시기 및 대대급 교전용 훈련장비 납품 비리 등이다. 물론 수사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지난 정권의 통치 비자금 존재 여부’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공안기관의 조사는 ‘청와대의 강한 의중’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어림 잡아보아도 조사 대상 업체만 50여개가 넘고 조사대상자만 현역군인과 공무원, 민간인을 합치면 수백 명은 족히 된다. 오죽하면 수사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는 “사건이 하도 많아 조사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할 지경이다.

  

 

먼지 털이 식 수사에 비자금은 안 나오고.....


그러나 소소한 비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사정기관이 비리가 없으면 세무조사로 거액의 세금을 물리거나 시시껄렁한 군사비밀을 트집 잡아 처벌할 듯 나오자 업계는 폭발 직전이다. “언제는 방산을 신성장동력화 하자더니 뒤로는 죽이기냐”라는 항변이다. “중심 잃은 마녀사냥”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여기에다가 이 대통령의 “리베이트 20%” 발언은 업계로 하여금 “청와대는 절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필자에게 “검찰 조사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뇌물 받은 사람 한 명만 불면 다른 것은 봐주겠다고 협상이 들어오더라”며 “검찰이 계속 정치논리로 업체를 압박하면 이 사실을 폭로할 수밖에 없다”며 일전을 벼른다. 필자가 이 업체 관계자에게 “검찰이 그렇게 말한 증거가 있냐”고 묻자 그는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일부 업체의 이러한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 그로나 청와대가 황당무계한 ‘리베이트 20%’라는 기준에 맞추어 정치논리로 군수비리에 착수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는 이상 업계의 이런 불만을 흘려 넘기기도 어렵다. 이런 식의 정치논리에 의한 수사는 선의의 피해자를 다수 발생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방산제품 해외 수출시 기술료를 징수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라든지, 부실한 업체의 해외 수출지원과 무리한 ‘퍼주기 식’ 수출계약 강요 등 반시장적인 행태와 맞물리면서 군수비리 수사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더군다나 1년이 넘는 수사 기간 동안에 아직까지 지난 정부의 통치자금이라고 할 만한 거액의 비자금이 발견된 바 없다는 것도 그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군수비리가 정치논리가 아니라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 그룹과 관련된 방산비리에 대해서는 왜 이제까지 봐주기 식으로 넘어 갔었는지에 대해서도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 말 구속영장이 발부된 방위산업체 로우테크놀러지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 동서, 처제, 장남 등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이상한 방위산업’을 진행해 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의혹이 불거진 이 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최근에 와서야 본격화되었다. 이 업체가 개발했다는 육군의 교육용 훈련장비와 개량형 야간표적지시기는 미국에서 도입한 것임에도 국내에 개발한 것처럼 속여 몇 배위 폭리를 취하고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이 업체가 특허 낸 장비에 대해 주한미군 관계자는 재미있는 말을 한다.

“적에게 탐지되는 표적 지시기다.”

원래 표적 지시기는 적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하는 것인데, 이 장비의 경우에는 지시기에서 발사된 빔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 업체가 특허를 도용하고 폭리를 취한 부당 이익은 220억원에 달한다. 그동안 검찰이 숱하게 뒤진 군수비리 중에서 단일 사업으로는 이 정도 비리에 버금가는 사업을 찾기 힘들다. 적어도 정치논리가 아니라면 이러한 수사 행태는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 군의 무기도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고 해도 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청와대 내에서 국방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참모들이 국방개혁의 전반에 대해 올바른 조언을 하고 체계적으로 국방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식으로 뛰어드는 모양새처럼 보여 진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최근의 군수비리 수사는 지난 8월 말, 이상희 장관의 항명성 편지에서 드러난 “국방개혁에 대한 청와대와 국방부의 갈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는 단순히 군의 무기도입 뿐만 아니라 군 전력의 소요기획, 예산편성 및 집행 등 전 과정에 모두 불신을 표명하며 이 전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개혁안을 요구하고 있다. 11월 10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껏 내가 국방예산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여러 차례 지시했는데,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고 보고된 적도 없다. 재차 지시하니 제대로 만들어서 보고하라.”

그런데 아 말을 들은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필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 한다. “아직까지 정확히 무엇을 개혁하자는 것인지 그 핵심을 전달 받은 바 없고, 여러 가지 말들이 한꺼 번에 나와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항변이다.



지침이 너무 많아서.....


이 관계자는 그 이유가 국방 운영의 효율화에 대한 청와대 지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방개혁의 핵심이 예산인지, 소요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조직개편이나 인력 감축인지, 종잡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각기 다른 부서에서 제각기 자신이 국방개혁을 컨트롤 하겠다고 나서면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는 하소연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를 자문하는 한 교수가 전하는 청와대 한 내부사정은 이러하다.

안보수석실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이상희 국방장관의 8월말 항명성 편지 사건이 터질 무렵 ‘국방 소요기획의 과학화’를 핵심개념으로 한 국방운영 효율화 방향을 제시하려는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고 말한다. 김 비서관의 인식은 우리 군의 전력의 근간인 무기체계소요를 육․해․공군 각 군이 경쟁적으로 제기하면서 상호 중복되고 그 규모가 부풀려지는 등 낭비적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는데서 출발했다. 원래 군의 무기체계는 합참에서 범군 차원의 작전의 합동성을 구현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기획 문서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각 군이 합리적인 규모의 무기 소요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 각 군이 자존심을 걸고 경쟁적으로 반영시켜 놓은 무기소요를 합참이 조정하고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국 목소리 큰 군에 끌려 다니는 식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특정 위협에 대한 대비에 있어서도 육․해․공군의 가용한 대응수단을 체계적으로 정렬하지 못하고 나열식으로 종합하면서 백화점식 무기도입에 몰입하는 현 국방부에 대해 청와대는 절대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 무기소요검증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해부터 청와대로부터 심심치 않게 나왔던 주장이다. 작년 11월에는 합참에 소요검증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출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하달된 바도 있다. 그러나 합참은 거듭되는 청와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는 중기국방계획에 대한 별도의 검증절차는 불필요하다”며 이에 반대해 왔다. 결국 합참은 청와대의 압력에 밀려 ‘소요검증 위원회 설치에 대한 3가지 방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그 실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방개혁 검토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마무리 되지 못한 상태에서 2010년도 국방예산 책정을 앞두고 청와대 외교안보실은 다시금 예산 효율화를 위한 소요기획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이상희 국방장관의 편지 파동으로 인해 무산되어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상희 장관은 편지 중 청와대의 심기를 가장 거슬리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국방비 증가율은 정부의 안보관을 반영하는 상징적 지표입니다. 흔히들 진보·좌파정부라 불리는 지난 정부에서도 평균 8.9%의 국방비 증가를 보장한 바 있는데 (국방예산 증가율이 저하될 경우) 자칫 과거정부에 비해 현 정부가 오히려 국방을 등한시 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장병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국방예산 증가율의 감소는 곧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이 단선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여 지는 인식에 청와대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칫 이념논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여 그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의 편지는 정치논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는 선동적인 문서였고, 더 이상의 국방개혁 논의마저 봉쇄하는 ‘독설의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편지 한 장에 밀려 국방소요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마저 “안보를 소홀히 하는 정부가 국방비를 칼질한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증폭되자 청와대는 군 소요기획을 합리화하려는 가시적 행동을 망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정을 설명해 준 한 관계자는 “장관 서신파동으로 국방 소요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가 무산된데 대해 외교안보실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군 소요의 과학화에 착안하여 국방예산을 효율화한다는 것은 ‘입구전략’인 것처럼 보여 진다. 우리 군의 전력소요에 대한 분석평가와 검증 기능을 과학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군 전력의 합리성을 제고하고, 그 결과 국방예산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의미에서의 입구전략이다. 그런데 대외전략실의 흐름과 별도로 청와대가 국방예산 자체를 문제 삼는 ‘출구전략’도 있었다.



‘리베이트 20%’ 발언의 배후


바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다. 지난 10월 13일 미래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곽 위원장은 “국방 운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 높여서 국방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곽 위원장의 발언은 군 전력과 무기체계 분야보다는 군 조직과 인력의 낭비요인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런 개혁의 당위성을 집약하여 그는 ‘국방경영의 효율화’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외교안보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주장이나 실상은 복잡하다. 

미래기획위원회에 국방부와 합참의 관계자들이 불려 다니기 시작한 때는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었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작년에 국방예산의 합리성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파고 든 부서는 외교안보실 보다 미래기획위원회였다”라고 말한다. 특히 국방부가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면서 2개의 기동군단에 대한 설치 문제를 제기하자 미래기획위원회 관계자는 “이런 것을 만들면 위협 대비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량적으로 제시하라”며 “우리가 예산 달라는 대로 줄 것 같으냐”고 국방부 안을 공격했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정부 주요 정책분야의 미래를 기획한다는 의미에서 포괄적으로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론의 눈총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유독 국방예산에 대한 이 위원회의 집착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아마도 국방이 정부 예산 중에서 덩치가 크다는 이유도 작용하였겠지만, 그보다도 이 위원회는 정부 예산 중 성장, 복지, 교육, 국방과 같은 큰 틀의 재원배분 구조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 이것이 이 위원회가 ‘미래 기획’을 하는 핵심 업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선진화된 국가의 미래상을 구현하려면 각 분야의 최적의 재원배분 구조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보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그러다 보니 국방예산의 팽창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거꾸로 국방운영에 대해 접근하다보니 정책의 최종 산물인 예산에서 접근되는 ‘출구전략’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위원회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단장 직위에 장영철 전 기획예산처 대변인이 임명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 단장은 국방부 기획예산관 출신이다. 국방예산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그의 산하에 외교안보국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국방개혁에 대한 외부 자문을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위원회를 자문한 한 인사는 “미래기획위원회가 국방개혁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예산을 통제함으로써 국방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창출된다”는 인식이라고 설명한다.

국방예산 항명성 편지 소동의 배후에는 미래기획위원회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곽승준 위원장은 장수만 국방 차관과 ‘4+1 회동’으로 알려진 비공식 실세 차관회의의 같은 멤버였다. 또한 위원회의 장영철 단장과 장수만 차관은 같은 경제부처 출신이다. 이상한 일은 7월 중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국방계획에 의해 7월 초에 국방부는 기획재정부에 올해보다 7.9%증가한 총 30조7000억원을 내년도 국방비로 요구했는데, 이때부터 청와대 분위기가 이제껏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는 내년도 정부 전 부․처가 요구한 예산요구안을 다 합쳐도 올해보다 4.9% 늘어난 것에 불과한데 유독 국방부만 이렇게 높은 증가율의 예산을 신청한데 몹시 불쾌했다는 반응이다. 이런 기류는 7월 중순에 각 부처의 예산요구 상황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불거졌다. 반면 국방부는 매년 7%대의 국방비 증액을 가정으로 한 2020년까지의 장기국방비 599조원을 담은 국방개혁 기본계획이 대통령 ‘재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 정도 예산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국방부의 예산 요구에 청와대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이 낌새를 알아차린 장수만 차관은 국방부 기획조정실을 통해 국방예산 자료를 수집한 후 ‘장관에게 보고 없이’ 국방부가 요구한 증가율 7.9%를 반 토막 낸 3.8% 예산증가율에 해당되는 국방예산안을 갖고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과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방위력개선비 20%는 깍아도 된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청와대에서 돌아 온 장수만 차관을 통해 국방부 일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무기도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에는 미래기획위원회의 역할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 청와대 안팎의 관측이다. 필자가 만난 세 명의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모두 대통령의 리베이트 발언을 나오게 한 당사자로 곽 위원장을 지목했다.

국방예산 파문은 미래기획위원회의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단계로 구체화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10월 중순에 곽 위원장은 국방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김태영 국방장관과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전달했다. 국방부는 곽 위원장이 군의 인사, 정책, 방산에 대한 종합 개혁 플랜이라고 할 수 있는 보고서를 전달하자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또 하나의 복병, 기획관리비서관


입구전략과 출구전략이 동시에 움직이면 개혁은 더 어려워진다. 둘 중 하나를 우선시하고 나머지 하나는 보완적인 수단으로 활용함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에도 불구하고 미래기획위원회와 외교안보실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고 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단지 각기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는 인상이다.

최근 김태영 국방장관을 고민에 빠뜨리게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국방장관을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온 것이다. 정 비서관은 통일부와 외교부에 이어 마지막으로 국방장관을 개별 면담하려 했다. 문제는 국방부가 바로 이에 응하지 못한데 있다. 우선 김 장관은 기획관리비서관이 뭘 하는 자리인지도 몰랐다.

국정원과 경찰, 기무사 요원이 포진한 기획관리비서실은 지난 정부의 국정상황실의 핵심 기능을 거의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핵심부서다. ‘국정 상황 관리’라는 포괄적 임무 속에는 부처 업무에 개입할 수 있는 막강한 파워가 숨어있다. 정 비서관은 한국 능률협회 컨설던트를 역임한 경제․금융 통이다. 역시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방 분야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최근 국방부는 보병 출신이 맡고 있던 이 비서실의 행정관이 기무 출신으로 교체된데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실세 기무사의 막강한 역할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연이은 군수비리 수사와 관련하여 사정기관 요원들이 모여 있는 민정비서실과 기획관리 비서실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정 비서관이 김 장관을 만나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각종 방산 비리와 정치권의 개입 의혹들이 이 비서실로 보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민정수석실과는 기능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의문이다.

이제껏 청와대가 국방개혁에 대해 말해 온 내용을 종합하면 국방 선진화를 ‘일류 국방경영’과 ‘효율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이 발견된다. 경제논리에 밝은 청와대가 한 목소리로 이런 주장을 함으로써 그 긍정적인 효과는 적지 않다. 모처럼 형성된 국방개혁의 긍정적 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과연 국방개혁의 컨트롤 타워는 누구냐”는 것이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이 각기 국방개혁의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며 장․차관과 접촉하고 제각기 국방개혁안을 부처에 전달하게 되면 혼선이 초래됨은 불가피하다. 지난 정부의 NSC 사무처가 폐지된 폐해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제껏 국방개혁이 큰 틀의 국방기획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부적인 각론으로 치고 들어가는 구조였다면, 현 정부에서는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의 국방비전이 보이지 않고 각론에서만 효율화 논의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박 대통령 시절에는 육군이 ‘80 위원회’를 통해 장기 국방기획을 했고, 이런 전통은 80년대 후반의 ‘818 위원회’, 90년대 초반의 ‘21세기 국방연구위원회’,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방개혁 2020’과 같은 거시적 국방기획으로 계승되어 왔다. 이러한 기획들은 우리에게 있어 전쟁 억제력이란 무엇인가, 선진군의 미래상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미래 안보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예측, 그리고 국가역량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강령 차원의 대통령의 범 국방 지침이 없다. 대통령 안보지침과 국방부의 국방기본정책서, 장기전략기획, 국방개혁 기본계획, 중기국방계획, 국방예산서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잘린 문어발처럼 제각기 꿈틀거리고 있다.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좌충우돌 식 효율화 논의에서 초래된 예산낭비는 오히려 예산절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예고 없이 국방예산을 삭감하니까 국방사업들의 내년 예산 중 업체에 지불해야 할 연부액이 하향 조정되고, 그 결과 정부가 물어야 할 이자비용과 위약금은 이제껏 국방예산을 절감한 액수를 훨씬 초과하게 된다. ‘방산의 성장동력화’도 공염불이다. 약 20여년에 걸쳐 이어져 온 국방선진화의 논리와 체계를 단지 ‘지난 정부가 입안한 것이므로 몽땅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 이는 지나친 자만이고 독선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비전의 공해’다.

‘경제에 기여하는 군’이라는 맥락에서 ‘경제군’만 만들라고 하면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만 않다. 그러나 저탄소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녹색군’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계룡대는 자전거 타기 운동에 열심이다. 외교안보수석실은 작년에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군’을 만들라고 해서 국방부는 이를 국방개혁의 기조로 ‘세계 속에 당당한 군’을 도입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다. 갑자기 올해에는 “북한체제가 5년을 버티기 힘들다”며 국정원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대외전략비서실이 급변사태 준비를 총괄하면서 국방부도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급변사태 대비를 위한 별도의 전력소요를 포함시켰다. 한반도 평화 유지도 힘겨운데 세계평화까지 책임지고, 환경도 살려야 하고, 미래의 신성장동력도 만들고, 북한 안정화까지 도모하는 군이 되다보니까 한반도를 방위하는 국군이 아니라 ‘우주를 지키는 지구 방위대’ 같다. 군이 아예 구름 위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너절한 기능들이 군 임무와 기능에 수시로 추가되다 보니까 군의 기능이 너무 많아졌음을 의식해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국군의 날에 우리 군은 “다기능 고효율군”이라고 선포했다. 그런데 이 다기능군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는 군인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걸 말한 청와대는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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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