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연재 제1화 남재준 편 - 군 검찰 압수수색에 육본 필사적 저항 군 인사

“대통령과 군 지도자 중간에 누구도 간섭 마라”…남재준 육참총장, 노 정권에 강력 반발
기사입력시간 [1264호] 2014.01.08 (수)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2003년 4월 노무현 정권의 첫 번째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남재준 대장은 참여정부에서 군을 이끌 대표 주자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과 정권 실세의 전폭적인 지원, 여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그는 완벽함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총장처럼 보였다. 계룡대 앞뜰의 라일락이 향기를 뿜어내던 4월. 남재준 참모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육군본부(육본) 간부들을 대강당에 소집해 ‘군인의 길’에 대한 강연을 했다. 육군 장교단의 ‘정신 혁명’을 외치는 2시간 동안의 폭풍 강연에 간부들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열광했다.

너무 인기가 치솟은 게 문제였다. 세간의 시선이 남 총장에게 쏠리던 중 한 일간지가 ‘노무현은 남재준에게 배워라’라는 칼럼을 실었다. 가판에 게재된 이 칼럼에 육본은 발칵 뒤집혔다. 육본이 총동원돼 해당 언론사를 압박해 간신히 제목만 바꾸는 데 성공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사 지도자의 인기가 치솟게 되면, 그것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다. 정치권력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할 군인의 권위가 커지면 이에 대해 숙명적으로 위협을 느끼게 돼 있다. 당시 육본은 자신들의 왕국이 영토를 너무 확장했다는 사실에 당혹해했고, 일말의 불안감을 가졌다. 그 불안은 이듬해 사상 초유의 육본 인사 비리 의혹 수사로 구체화된다.

2013년 12월23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국회에서 열리는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3년 4월. 이번에는 국정원장 남재준이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계룡대를 방문해 3군 본부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했다. 총장 시절과 같이 ‘군인의 길’을 민간인 남재준의 신분으로 웅변하는 동안 배석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은 10년 전의 그 긴장감을 기억했다. 이 강연이 있고 나서 남 원장은 한국 정치에 파란을 몰고 올 ‘종북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공교롭게도 그 상대는 10년 전 자신을 총장으로 임명한 참여정부였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민주당을 압박하면서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과 진보 단체에 대한 전선이 대폭 확대됐다.

“<양양가> 안 불러” 해명 불구 논란 계속

역시 10년 전처럼 또 남재준 열풍이 불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가 저물어가던 지난 연말의 언론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기사가 폭주했다. 청렴하고 결백한 군인, 명예와 희생의 정신, 단호하며 냉혹한 전사의 풍모를 묘사하는 무수한 일화가 쏟아져 나오고 디테일이 추가됐다. 그중 압권은 2013년 12월21일 국정원장 공관에서의 송년 만찬이었다. “2015년에는 자유 민주 체제로 통일이 될 것”이라며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고 한 남 원장의 결기 어린 발언이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이날 남 원장이 간부들과 함께 자신의 애창곡인 독립군 군가 <양양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인생에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 / 이씨 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 /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 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 그리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의식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2003년 4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보직 및 진급 신고식에서 남재준 육참총장의 삼정도에 수취를 달아주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어둠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과도하게 언론에 노출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직 남재준이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각종 블로그와 사회관계망(SNS)에서 남 원장에 대한 추억, 헌사, 평가가 줄을 잇는 ‘남재준 현상’ 조짐도 보인다. 영웅을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 무언가를 숭배할 남성적 권위를 찾는 대중심리가 남 원장에게 쏠리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그러나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불안이 내포되어 있다.

2013년 12월31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남 원장은 자신의 송년회 회식 발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와전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양양가>를 부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영웅이 되는 데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바로 그 모습은 총장 시절 그대로였다.

말 한마디, 노래 한 자락까지 기사화되는 남 원장의 파격 행보에 대해 당사자인 남 원장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남 원장에게 직접 하면, 그의 답변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다. 북한이 곧 쳐들어와 남한을 사흘 만에 공산화하고 우리는 잔혹한 공산 치하에서 살게 되는 그런 파국을 실제적 가능성으로 믿는다. 여기에서 남 원장이 미국의 초대 국방장관인 제임스 포레스털과 닮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는 안보에 실패할 수 있다”는 비관적 국가관, “적이 곧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헌신성까지 모두 닮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중부의 난’(고려 시대 무신의 난)으로까지 회자될 정도로 당시 청와대와 군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노무현 정권과 남재준 총장 간의 갈등 양상은 군 검찰단이 인사 비리 혐의로 육본을 압수수색한 2004년 말 긴장감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당시 남재준 총장은 집무실에 들른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국군 통수라는 것이 무엇인가? 대통령과 군사 지도자 중간에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당시 검찰의 인사 비리 수사와 청와대 일부 인사의 군 인사 개입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측 핵심 인사들은 이런 남 총장이 못내 불만스러웠다. “대통령이 직접 군 운영에 대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침을 줄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군 인사에 대해 전문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국방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인사 지침을 협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총장이 국방부나 청와대와 인사를 잘 협의해서 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이 사람은 까다로운가?”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남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군대 지휘관은 부하에게 “사지로 들어가라”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부하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달린 문제를 결정하는 지휘관이 자기 소신대로 인사를 할 수 없다면 부하가 과연 명령에 복종하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생각이지만 혹시라도 이런 생각이 “반드시 내 사람을 중용한다”는 결과로 구체화될 때, 인사에서 소외된 대다수 장교로부터 지탄을 받는 큰 함정에 빠질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장교 인사 청탁을 배제한다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당시 남 총장의 지침을 받은 윤일영 인사참모부장이, 야전의 의견이 전달될 수 있는 언로까지 차단하면서 아예 전화도 끊어버리고 문까지 걸어 잠그는 것을 두고 일선 지휘관들의 분통이 터져 나왔다. 예전에 인사참모부장의 역할은 연초부터 야전을 순회하면서 인사에 대한 주요 지휘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없어졌다. 여기에다 법에도 없는 임의 조직인 인사운영위원회를 만든 것을 두고 “총장이 야전을 소외시키고 제 사람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남 총장이 자기 사람만 챙긴다는 의혹이 불거진 계기는 그해 10월 소장 진급에서 탈락한 육사 31기생 중 한 명이 총장실로 찾아와 전역지원서를 내던지며 총장의 인사에 정면으로 반발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 용산 삼각지의 장교 숙소에 “남 총장이 자기 사람만 챙긴다”는 비방을 담은 괴문서가 뿌려졌다.

당시 육본은 아래로부터의 도전과 더불어 상급자인 윤광웅 국방장관과도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윤 장관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대통령 지시로 군 장성 진급 심사를 다시 하라”는 지침을 받고 장군 진급 심사 종료 직후에 김승렬 차관보를 육군에 급파해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다시 개입해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지시를 철회하도록 해 급파되었던 김 차관보가 서울로 발길을 되돌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남 총장은 이런 일련의 사태를 청와대와 국방부가 육군을 와해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이 사건 이후 육본 장교들이 사석에서 해군 출신이었던 국방장관을 지칭하면서 아예 직함이나 존칭을 빼고 “윤광웅”이라는 이름만 부르기도 했다. 상급 기관의 인사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 부각되면서 남 총장에 대한 야전에서의 불만이나 반발 여론은 자연스럽게 희석되었다.

김종환 전 합참의장(왼쪽.ⓒ 시사저널 이종현)과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 ⓒ 시사저널 이종현
이상희 “밑에서 한 일이라 모른다고?” 비난

2004년 11월 군 검찰단의 육본 압수수색에서 실무자들은 수사관들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서류 캐비닛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그 속에는 인사에 대한 남 총장의 친필 지침이 들어 있었다. 수사가 확산되자 야전의 사단장급 지휘관들 사이에서 인사 사태에 대한 육군 수뇌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연판장까지 돌았다. 한편 괴문서와 인사 반발 여파로 진행된 국방부 검찰단의 인사 비리 수사에서 비록 남 총장 본인은 기소되지 않았지만 주요 인사 실무자들이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음으로써 육군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진급 대상 장교 중 일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기무사의 신원 자료가 검증 없이 활용돼 인사의 공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 불거졌던 남재준 총장의 인사 논란은 정권이 물러간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MB) 정권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던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해 3월 ‘국가안보전략연구’에서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라는 제목의 논평을 게재했다. 2004년 당시 육군 인사에 대한 절차의 위법성 문제가 불거진 사건을 지목하며 “당시 육군의 최고 책임자는 밑에서 한 일이라 자신은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한다. 사실상 남재준 총장에 대한 직격탄이다. 남 총장과 육사 동기생이면서 당시 합참의장이던 김종환 대장은 아예 면전에서 동기생인 남 총장을 모욕한 적도 있다. 장군 진급 인사가 발표된 2004년 말 국방부 복도에서 마주친 남 총장에게 김 의장은 노골적으로 “나는 이런 따위의 진급 심사를 절대 인정 못한다”며 막말을 퍼부었다.

더 심한 비난도 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당시 국군 정보사령관이었던 한철용 예비역 소장은 지난해 7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제2 연평해전 당시에 북한의 도발 정보를 누락한 당사자로 남재준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목하고 “기회주의적인 장군”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출세 가도를 달린 사람이 바로 남재준 대장이 아니고 누구냐는 투다. 윤광웅 전 장관 역시 자신이 남 총장을 제거하려 한 핵심 인물로 지목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무척 괴로워하며 “절대 진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육본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던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필자에게 “당시 남재준 총장에게 면죄부를 준 곳은 다름 아닌 우리(민정수석실)였다”며 “참여정부는 남 총장에게 빚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직각 보행만 하는 ‘생도 3학년’ 별명

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렇듯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사람을 챙기는 데 집착한 그를 두고 “마치 생사를 같이할 일종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실제 박근혜정부에서 첫 국정원장에 임명된 남재준 원장은 부임 직후 군 출신 등용과 관련해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MB 정권에서 임명돼 3개월째 일하고 있던 국정원장 국방보좌관(육사 42기)인 ㄱ준장을 군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의 과거 총장 시절 수석 부관을 역임했고 이제는 군복을 벗을 처지인 ㄴ대령(육사 37기)을 대신 기용했다. 국정원의 파격적인 인사 교체에 대해 육본은 “인사 관행에 어긋난다”고 항의했으나, 국정원은 “당신들이 ㄴ대령을 진급시키지 않으려면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일축했다. 이 파문이 잦아들 무렵 남 원장은 자신의 오랜 측근인 군 통신장교 출신을 국정원 3차장에 기용하는 또 한 번의 파격을 감행했다. 여기에다 남 원장은 국정원 내부 살림을 담당하는 총무국장 자리까지 해병대 출신의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한편 총장 시절 비서실 출신인 ㄷ 예비역 대령(육사 38기)도 국정원에 입성했다. 자기 사람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 예전의 행태 그대로다.

남재준 원장이 보여주는 지사적이고 혁명가적인 면모가 5·16 군사 쿠데타 전야의 박정희 육군 소장이나 10·26 전야의 김재규와 흡사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무언가 큰일을 낼 것 같은 긴장감을 순식간에 전염시키는 것, 그게 바로 혁명가적 군인의 면모라는 것이다. 별명이 ‘생도 3학년’인 남 원장은 직각 보행을 하던 생도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 바라보는 세상도 여전히 직각인 것처럼 보인다. 사각형의 세상에서 공산주의냐, 아니냐는 가로와 세로를 구분하는 명확한 꼭짓점인 셈이다. 그것이 횡적으로는 ‘종북 세력 척결’이라는 전선을 형성하고, 종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집요한 심리전으로 나타난다. 이 사각형이 바로 ‘남재준의 전쟁터’라고 할 것이다.

지금껏 국정원이 왜 북한 김정은의 “3년 내 무력 통일” 발언, 모란봉 예술단 단원 처형과 리설주에 대한 구설 확산, 장성택 숙청에 대한 신속한 정보 수집 등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심리전을 수행해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여기에다 최근 정보 당국은 북한이 기존의 국지적인 도발에 안주하지 않고 핵무기로 남한을 협박하면서 3일 만에 남한을 공산화하는 전면전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는 정세 인식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국정원장 국방보좌관인 한 예비역 장성이 이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국정원은 영문으로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다.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정책 결정자들이 활용하도록 지원(Service)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 정보가 수집되면 국정원이 이를 직접 활용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국정원이 스스로 정보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타 기관에 줄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지난 연말 장성택 숙청 정보를 바로 그렇게 국정원이 독점했다. 이렇게 정보를 직접 활용하면서 국정원의 전사적·영웅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그것이 다시 국정원 개혁 논의를 일정 정도 차단하는 반사이익까지 거두려는 정치 과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폐단을 의식했는지 지난 연말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측은 “앞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설 조직을 설치해 청와대 주도로 위기관리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정원의 독자 노선에 견제구를 날리면서 다시 외교·안보 시스템을 대통령 중심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숙명의 라이벌인 남재준과 김장수의 정면 대결이 노무현 정권에 이어 현 정권에서도 이어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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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