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국방부 국회 연락단 철수 내막 사건내막

 

 D&D Focus 2008년 12월호


국회 국방위원회와 국방부 장관실의

자존심을 건 대회전


 


주요 등장인물

 이상희 국방부 장관

 군 안팎에서는 독선적이라는 평이나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사진1)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

 아쌀하고 화끈함. 보통 때는 온화하나 한 번 화가 나면 거침이 없음(사진2)

 

 김장수 한나라당 국방위원, 전 국방부 장관

 국회와 국방부의 화합을 위해 항상 동분서주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음(사진3)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국정 쇄신을 위해 내년 초 개각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음(사진4)

 

유승민 한나라당 국방위 간사

 신문을 보고 나서야 국방 현안을 접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함(사진5)

 

 국방위원장 모 보좌관

 연락단장에게 인간적 연민을 갖고 있는 온정주의가 장점이자 단점(사진6)

 

 박찬주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김용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국회를 무시하는 대표적인 국방부 간부들로 국회 국방위 보좌관들이 알고 있음

 

 

 


 실망


 국회의사당 주변의 은행잎이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던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티 없이 맑은 창공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낙엽을 실어와 의사당 왼편 4층의 한 창문을 두드렸다. 난데없는 낙엽 소리는 국방위원장실 보좌관의 눈길을 창문 쪽으로 잡아끌었다. 벌써 8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군 장교들이 승진도 하고 영전하는 것을 지켜보아왔지만 국회의원 보좌관이란 자리는 언제나 제자리였다. 특별히 승진할 일도 없고 영전할 일도 없는 그런 자리. 창밖을 응시하던 보좌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 국방부 국정감사 당시 김학송 위원장은 군 간부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에서 국회 연락단장인 J대령을 몹시 칭찬했다. 연락단장이라는 자리는 국회 시각에서 보면 국방위원장의 군사보좌관이나 다름없다. 군 발전을 위해 업무에 헌신하는 훌륭한 장교라는 평과 함께 김 위원장은 이번 인사에서 J대령을 진급시켜 달라고 국방부 고위층을 상대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다른 국회의원들이 맞장구를 쳤다.

 김 위원장의 J대령에 대한 응원은 상관이 부하에게 보여주는 어떤 의무감 또는 책임감과 유사했다. 이전의 국방위원장들도 인사 때면 국회 연락단장을 응원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 이런 관행이 통했는지 연락단장이 반드시 진급된다는 룰은 없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국회가 연락단장의 진급을 지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대다수의 의원들과 보좌관들은 국회 연락단장이 진급이 잘 되어야 국회의 위상과 권위가 높아진다고 믿는다. 연락단장은 현역 군인이면서도 정치의 한 복판에 근무하면서 정치와 국방의 교량역할을 수행한다. 그의 업무는 야전의 군인의 인식과 감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정치적 식견과 테크닉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보면 연락단장은 합법적으로 인정된 정치장교라고 할만 했다.    

 연락단장을 지원하는 말이 김 위원장의 입에서 나올 때는 천사의 말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국방부 고위층의 귀로 들어갈 때는 악마의 주술처럼 변해버렸다. 유달리 정치권에 반감이 많은 야전 분위기의 국방부는 국방위원장의 말을 압력으로 받아들였다. 

 ‘J대령 이××가 정치권에 줄을 대 인사 청탁을 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국방부 고위층 중에 국회 연락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데 너무 열심히 전념한 나머지 그런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국방위원장실의 팩시밀리가 드디어 장군 진급자 명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던 보좌관이 황급히 자리로 돌아와 명단을 살펴보았다. 그 어디에도 J대령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모멸


 도대체 국회 국방위원장이자 여당 3선 중진의원이 야당 초선의원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었다. 지난번 언론에 국방부가 소말리아에 함정을 파견한다는 기사가 보도된데 이어 자이툰 부대 철군 소식도 실렸다. 신문을 보고 위원장실에서 합참에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합참 관계자의 퉁명스러운 대꾸.

 “신문에 다 나온 것이니 신문이나 보라.”

 그 다음에 언론에 한미 양국이 작전계획 5029(북한 급변사태대비계획)을 보완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에 합참의 대꾸.

 “작전사항은 설명해줄 수 없다.”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국방부가 군사보호구역 상당수를 해제한다는 소식을 들은 국회는 최소한 언론에 발표되기 이전에 국방위원회에 사전 통보라도 해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러한 요구를 묵살했었다. 지역구에 군 기지가 있는 국방위원들은 문의전화에 시달렸으나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군 기지가 있는 진해 지역구의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지역구 군사보호구역 어디가 얼마나 해제되는지 언론에 발표가 난 이후에도 파악하지 못해 쩔쩔 맸다.

 국방부가 계속 국회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대한 불만이 여야 국회의원들 사이에 쌓여 갔다. 물론 국회가 국방부에 설명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순수하게 정책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개인의 이해관계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의 내부 사정이고 국방부는 일단 국회의 요구사항에 어떤 식으로든 응해야했다. 그러나 무시했다.

 이제껏 국방개혁 2020 수정문제, 국방 획득체계 개선문제와 같은 중요한 국방정책에 대해서도 국방부와 여당 간에 당․정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질 대로 커져있었다.

 “건드리면 폭발 한다”

 항상 싸늘한 냉기가 국방위원회 회의장을 감돌고 있었다. 올해 추위는 국방위에 가장 빨리 찾아왔다. 국방위원장실 참모들은 위원장을 보좌하면서 이렇게 무력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여의도와 삼각지 사이에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김학송 국방위원장도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러다가 국방위가 ‘식물 위원회’가 되는 것 아닌가? 국정감사 때도 국방부의 고압적인 태도에 국방위원들이 위축될까봐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국방부의 기를 꺽어 놓기도 했다. 의원들 질의가 끝나면 위원장이 의원들 질의의 핵심을 국방부에 다시 확인시켰다.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때까지!

 그러다보면 회의 진행하면서 시간도 많이 걸렸고 말도 많이 해야 했다. 위원장이 팔 걷어붙이고 나오자 의원들은 김 위원장을 신뢰했다. 

 그리고 이번에 J대령의 진급 탈락은 위원장에게 만만치 않는 아픔이었다.



 결의


 국방부 산하기관과 각 군에 이상희 국방장관의 지시사항이 하달됐다. 국방부 통제를 받지 않는 자료를 국회에 절대로 유출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설혹 국방부 의견과 상반된 해․공군, 방위사업청의 입장이 절대 국회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장관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국정감사를 받기도 전에 이미 계룡대는 보안감사로 인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계엄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국회에 대면설명을 할 경우 국회에서 말한 내용을 낱낱이 적어내야 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에도 보안감사는 계속된다는 예고가 모든 실무부서에 전달되어 있었다. 모든 입을 봉하고 국방부 입장대로 정해진 말만 하도록 짜여 진 상황에서 기무부대 요원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서치라이트처럼 계룡대 전역을 훑고 지나갔다.

 국방의 최고위층과 핵심세력들이 각 군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각군과 산하기관에서 국방부와 다른 입장의 논리나 정보가 새어 나올까봐 민감해했다. 정치권 접촉금지, 언론 접촉금지, 국방부 통제를 받지 않는 자료유출 금지, 국회 대면보고 전후 철저보고, 그리고 국정감사 전 보안감사, 끝나고 난 뒤에도 보안감사, 피로감은 계속 쌓여만 갔다.

 국방부가 이렇게 하는 데는 피치 못할 이유는 있었다. 언젠가부터 군대가 군대답지 못한 풍조로 흘러왔었다. 군인이 총을 쏠 줄 모르고 간부가 구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대로는 전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사고예방에만 전전긍긍하는 자격 없는 지휘관들의 아마추어리즘, 겉만 요란한 구호성 지휘, 이 모든 것을 청산하고 군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했다.

 군대가 이렇게 된 데는 일차적으로 전선을 바라보지 않고 정치권력을 바라본 일부 군사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군인을 줄 세우고 싶어 하는 정치권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의 본질을 망각하고 존엄한 군의 지휘권을 교란하였으며, 현란한 정치논리로 군을 오염시켜왔다. 역대 장관을 비롯한 군사지도자들은 이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들은 정치권에 영혼이라도 내어 팔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국방과 정치의 분리!

 앞으로 정치권에 줄 대면서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장교는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이상주의적 군사논리에 현혹되어 먼 미래의 허황된 꿈만 쫓으면서 북한의 현존위협에 제대로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는 일부 장교들의 헛소리도 필요 없다. 그리고 이런 사이비 군사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정치권에도 당당히 맞서리라. 왜?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장관의 뜻이 이렇듯 명확한데 일개 대령이 국방위원장을 통해 자신의 진급에 압력을 행사했다?

 너 이리와. 이×× 동작 봐라.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겠네.



 보복


 “아니 이거 착오 아닙니까?”

 11월 4일. 우연히 연락단장이 교체된다는 소식을 들은 국방위원장 측 인사는 몹시 놀랐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국방부가 J대령을 세 번이나 불러들여 죽이 되도록 짓밟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방위원장이 인사 청탁을 했다고 J대령에게 그 책임의 화살이 날라 간 것이다.

 ‘사람 하나 잡겠구나.’

 군단 작전참모 출신의 또 다른 J 준장진급예정자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국방위 보좌관들은 새로운 연락단장 내정자가 이 장관의 측근이라는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은 즉시 김학송 위원장에게 보고되었다. 김 위원장은 단호했다.

 “새로 오는 연락단장은 국방위원장실에 출입금지 조치하라”

 김 위원장이 화가 난 이유는 단순했다. 장관이 J대령을 진급시키지 않은 것은 비록 아픔이 있더라도 장관의 인사권 행사로 보고 존중한다. 그런데 최소한 국방부 누구라도 본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 한통이라도 할 줄 알았다. 국방부는 그 정도 정치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연락단장을 교체한다고 했다. 이 조치는 김학송 위원장에게 충격이었다. 저렇게 J대령이 국회를 나간다면 필경 국방 수뇌부의 미움을 받아 온전치 못하리라. 무언가 경종을 울릴 국회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했다.

 김 위원장은 연락단 설치의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1963년 설치되어 45년 간 운용되어 온 연락단은 설치근거도 없고 국방부 직제에도 반영되어 있지 않은 비편제 임의조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1월 5일. 김용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연락단장 교체에 대한 경위를 국방위원장 측 인사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위원장실은 이를 납득하지 못했다.

 “국회에 아무런 양해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인사를 하고 통보하면 어떻게 합니까?”

 국방부가 왜 국회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지 납득 못하겠다는 김용기 인사복지실장의 비아냥거리는 말이 나왔다.

 “정 그렇게 J대령을 비호한다면 데려다가 쓰시던지”

 우리는 이미 버린 자식이니 당신이 거두어가 키우려면 키우라는 식이었다. 이 부분이 바로 국방위 보좌관들이 국방부에 대해 가장 분개하는 대목이다. 안하무인 겪인 김 실장은 거침이 없었다. 이 때 국방위 보좌관들은 J대령에 대한 국방부의 보복이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섬뜩한 그 무엇을 묵직하게 느껴졌다.

 11월 6일. 김종천 국방부 차관이 국방위원장실 분위기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급히 김 위원장을 찾아왔다. 김용기 실장과는 달리 한결 태도가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꼴도 보기 싫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이제까지 사건 경위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보고했다.

 국방위원회 한 관계자는 연락단을 국회에서 내보내는 수순이 당연하다고 보면서도 아무래도 그 파장이 걱정스러웠다. 그가 김 위원장을 찾아갔다.

 “연락단을 철수시키면 언론에서 이 문제를 왜곡되게 보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의치 않겠다.”

 놀란 장 보좌관이 재차 물었다.

 “여당과 국방부가 갈등이 있다고 알려질 경우 역풍이 불수도 있습니다.”

 “역풍? 나를 미행하던지, 감청하던지 자기들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나는 앞으로 국방부에 부탁 전화 한통 할 일이 없다.”

 11월 7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이상희 장관에게 “14일까지 연락단 사무실을 비우라”고 공문을 발송했다.

  

 

 갈등


 갑자기 낮이 짧아진 느낌이 드는 만추의 국회.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으로는 떨어지는 낙엽들이 제법 어울렸다. 국회 사무처가 국방부 연락단 철수 공문을 발송한 11월 7일 오후 5시쯤 김장수 의원이 황급하게 김학송 위원장을 찾아왔다.

 국회 등원이후 수행비서관을 통해 이런 저런 동향보고를 받아오던 김장수 의원은 이날도 본회의 도중 수행비서관이 입수해온 국회 연락단 철수 공문을 본 후 놀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지만, 상황 파악과 문제 해결이 급선무였다.

 김 의원이 먼저 말했다.

 “위원장님, 장관이 미우신 겁니까, 아니면 국방부가 미우신 겁니까?”

 김 위원장이 반문했다.

 “내가 국방부에 무슨 사적인 감정으로 이러는 것 아닙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위원장님, 만일 장관이 미우신 거라면 조용히 대화부터 하시고 국방부와 군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갑자기 연락단을 내보내겠다고 하시면 국방부가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건 국방부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김 의원은 더 이상 개입하지 마세요.”

 국방위원장실을 나오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 느끼며 고민하는 김장수 의원을 수행비서관과 J대령이 묵묵히 뒤따르면서 국회 의원회관으로 함께 걸어갔다. 평소부터 국회와 국방부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양자간의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되던 것을 느끼던 김 의원은 현 상황에서 본인 혼자라도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서기로 결심했다.

 11월 10일 저녁. 김장수 의원은 수행비서관을 데리고 김형오 국회의장부터 먼저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예정된 만찬 행사가 있다며 김 의장은 면담에 응하지 않고 국회를 떠났다. 다음으로 김 의원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을 찾아갔다. 김 의원이 말을 꺼내자마자 박 총장이 먼저 못을 박았다.

 “국방부 연락단 문제라면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다 끝난 일입니다.”

 “사무총장님, 그러지 마시고 한 말씀만 들어주십시오. 정말 연락단을 내보내시려거든 시간이라도 더 주십시오. 공문 발송한 오늘이 금요일이고 내일부터 주말인데 겨우 일주일 시간 주시고 당장 다음 주 금요일까지 사무실을 비우라는 것은 가혹합니다. 철수하더라도 연락단 사람들이 옮겨 갈 보직이라도 받을 수 있게 철수 시한이라도 연말까지만 미루어주시도록 조치를 해주세요.”

 그러자 박 총장은 화를 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됩니다. 국회 연락단이라는 조직은 국방부만 있다지요? 법적 근거도 없지요? 그런 조직이 왜 필요합니까? 지금이 무슨 군사정부 시절도 아니고 국정원도 철수시킨 연락단 조직을 국방부만...”

 “사무총장님, 그게 아니라...”

 “됐습니다. 이미 다 결정되서 공문 발송한 일입니다. 더 이상 거론하지 맙시다.”

 김장수 의원의 나 홀로 ‘연락단 구하기’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김장수 의원을 도와주지 않았다. 반대로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국방위 의원과 보좌관들은 김 위원장의 단호한 조치를 지지했다. 그 뿐이 아니라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임박한 국회 국방예산심사와 법안처리에 있어서도 국방부에 일체의 인간적인 배려 없이 원칙대로 대응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희 장관과 김학송 위원장이 원하는 대로 국방과 정치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원하는 ‘합의이혼’이다.


  

 음해


 국회로부터 공문을 접수하고 난 다음날인 11월 8일은 토요일이었다. 당장 국회 예산심사와 법안처리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국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국방부는 오후 3시30분에 차관 주재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는 그동안 일련의 사건이 국회의 부당한 인사 압력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명확히 했다. 역시 국방부는 책임을 국회에 전가하려는 분위기였다. 국회가 연락단을 내보내겠다고 하면 나간다. 단 이후 연락단 처리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국회에서 철수한 연락단을 국방부에 두는 방안. 둘째, 각 군이 필요하면 연락단 유사기능을 만들어 운용하는 방안. 셋째, 국방부 기획조정관실 민정협력과가 연락단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회의를 전후하여 연락단 사건에 대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당연히 국방부 분위기는 국회를 성토하는 것 일색이었다. J대령 말고 또 다른 청탁사례도 있다, 국방위원장이 각군 총장들에게 골프채를 선물하는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국방위원장이 국정감사 때 군의 특정 인물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것은 장관의 지휘권을 침해하는 월권이다 등등, 갖가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국방부 간부 입을 통해 출입기자실로 흘러들어가자 당장 국회를 비꼬는 기사들이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1월 9일은 국회 국방위원들과 각군 참모총장들의 골프 회동이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장관 부재중에 국방위원장이 주재하는 골프회동은 왠지 어색했다. 이날 모두 9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각군 총장들에게 연락단 사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회동이 마무리될 무렵 의원들을 상대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인사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 사건을 면밀히 관찰한 KBS 국방부 출입기자는 11월 12일에 연락단 철수예정 사실을 특종으로 보도하기로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동안 국방분야에서 특종이 나오지 않던 판에 오랜 만에 몸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날 <내일신문>이 먼저 보도를 하자 달콤한 기대는 무너졌다. 이날 KBS 통일안보팀장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12일, 모든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했다. 예산심사를 앞두고 국회와 국방부 관계가 급랭전선으로 돌입했다는 논조였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박스 기사들은 국방위원들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두 기사의 요지는 국방부가 국회의 부당한 인사 청탁 개입을 거부하자 국회 국방부 연락단을 철수하는 보복성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국방위원들은 이것을 국방부의 언론플레이로 보고 더 분노했다.

 11월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위 야당 간사인 안규백 의원은 상임위장에서 국방부 장관에게 언론플레이의 장본인을 밝히라고 질타했고 다른 의원들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 국방부의 대국회 무시 행위를 성토했다.

 급기야 여당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마저 목청을 높였다.

 “국방부만 유독 그랬습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뭐 그런 것도 느꼈다고 하니까. 국정감사가 끝나고 국회에서 이렇게 분위기가 나빠진 정부부처가 국방부 말고 또 있는가? 이렇게 분위기가 나빠진 데는 국방장관의 책임이 없는가?”

 이상희 장관이 답변했다.

 “저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국방위 상황은 그날 저녁 ‘MBC 9시 뉴스테스크’를 통해서 전국에 방송되었다.



 소신


 국회에서 연락단 사무실의 모든 통신회선이 철수하고 사무실이 폐쇄된 11월 14일. 이상희 국방장관은 아침에 열리는 국방전략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장관은 국방부와 국회의 관계가 갑과 을과 같은 종속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국방부와 산하기관의 전 직원은 국회에 대해 비굴하거나 수동적으로 임할 필요가 없다. 오직 당당하고 소신 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만일 국회에 당당하지 못하면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장관은 이 내용을 담은 “대 국회 업무 수행자세” 지시문에서 당당과 소신이라는 표현을 6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했다. 문서로 하달된 지시사항에 당당과 소신은 굵은 볼트체로 처리되어 있었다.

 국방부나 기무사는 이미 청와대에 국회가 인사에 불만을 갖고 연락단을 철수시킨 것으로 보고를 올린 상태였다. 이제는 싸움터가 청와대로 옮겨졌다. 국방부가 청와대에 왜곡된 보고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국방위원회 보좌관들은 각자 인맥을 동원하여 청와대 요로에 국방부가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핵심은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의 오만과 독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했다.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 이상희 장관이 매주 참석하는 이 회의는 외교안보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안보수석, 그리고 비서관들이 다 들어온다. 예전에도 이 회의에서 이상희 장관은 “국회 때문에 못해 먹겠다”며 몇 번 불평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안보수석실 실무자들은 국회 국방위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장관의 말을 전해주고 진상을 파악하려 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국회 국방위는 이상희 장관이 ‘우리를 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방위 보좌관들은 김학송 위원장이 장관에게 가장 불쾌해하는 일이 바로 청와대에서의 국방위 모독발언이라고 말한다.   

 여러 경로를 통해 국방부 분위기를 관찰해 온 국방위 보좌관들은 이제 이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번 군의 정기 진급인사에서 유난히 잡음이 많다는 것. 그리고 뒤이어 11월 5일 발표된 군의 정기 보직인사에서 장관의 측근이 전면 배치되고 있다는 징후였다. 국회에는 모든 인사의 청탁을 배격하고 전문성과 능력 중심으로 인사를 한다는 이상희 장관이 과연 사심을 버리고 공정한 인사를 하는지 끝까지 구명해 보자는 분위기였다.

 소신과 당당?

 그래 얼마나 소신 있고 당당한 인사인지 따져보자. 누구는 장관하고 근무인연이 있다며? 누구는 장관이 특별히 심어놓은 사람이라며?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었다. 다가올 국방예산 심사에서도 빨간 불이 켜졌다. 국방위원회가 인사문제에 대한 불만이 아니더라도 이 장관이 너무 육군 전력에 집중한다는데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미 진급인사가 발표되기 전부터 나오던 말이었다.

 11월 20일. 이상희 국방장관은 김학송 국방위원장을 찾아가 2시간 동안 밀담을 나눴다. 다음날 예정된 국방위의 예산심사 상임위원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국방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 이상희 장관은 김학송 위원장과 모종의 화해를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들어갈 때는 서먹서먹했으나 나올 때는 두 사람의 얼굴이 모두 밝았다. 갈등이 화해 모드로 바뀌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사태는 점점 더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11월 21일 국회 국방위의 예산심사 상임위. 국방부를 상대로 한 혹독한 군기잡기가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표적은 군의 차기 ‘흑표’ 전차 도입사업이었다.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2011년부터 흑표 전차를 도입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144억원의 착수금을 책정했으나, 국방위는 21일 전체회의를 통해 44억원을 감액한 100억원만 편성키로 의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착수금 전액을 삭감, 사실상 흑표 사업의 착수 시점을 늦춰야 한다는 수정안이 나오면서 표결까지 이뤄졌다.

  흑표 사업에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예산안 의결권을 가진 국회로서 신중히 접근하는 게 당연하지만 국방위와 국방부간 저간의 갈등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국방부가 각종 현안과 관련해 국회의 협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군사 기밀'을 내세워 현안 설명조차 꺼려온 데 따른 불만이 의원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국방부가 오는 24일 `국방개혁 2020' 조정안을 발표키로 한 것과 관련, ‘공청회가 있는지도 몰랐다.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데 이런 식으로 하지 마라‘고 질타했다.“



 파국


 21일 국회의 국방부에 대한 ‘군기 잡기’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었다. 설령 인사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간 국방부가 국방 중기계획이나 국방개혁 수정문제에 있어 여당에게도 충분한 설명을 한 적이 없고 독주해온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에 군 출신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김성회 의원은 “심정적으로 (흑표 사업의 내년 착수에) 반대하고 싶었다. 국방부처럼 국회를 무시하는 부처가 없다”며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국방부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화풀이 하듯 군기를 잡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 무언가 국방부와 국회 사이에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 더 나아가 대화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 또한 이 간격을 메워줄 인간관계가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다.

 지금까지 국방부와 국회가 격돌하는 배경에는 정치와 국방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구조와 규범, 그리고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국회가 국방업무에 관여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문민통제의 한 축이다. 특히 군사력 운용에 대한 문제는 유니폼을 입은 군인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도 중차대한 국가적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국방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국방부는 오직 대통령에게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군은 ‘통수체계’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일본군이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고 오직 천황에게만 속함으로써 문민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군국주의 문화에서부터 내려오는 잘못된 악습이다. 통수체계라는 말 자체가 구 일본제국이 1928년에 만든 극비문서인 ‘통수강령’에서 유래된 용어다. 과거 우리 군의 창군 과정에서 일본군의 조직과 문화를 답습하면서 이제 ‘통수체계’란 말은 국민과 국방을 괴리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우리의 지상군이 일본군의 문화적 유전자를 이어받아 국민으로부터 군을 일탈시키고 오만과 독선으로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가 단순히 국방부 장관의 답변 태도, 불성실한 자료제공, 무성의한 협조를 문제 삼으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는 문민통제의 패러다임으로 가야할 때다. 국회는 보다 체계적이고 구속력 있게 군을 통제함으로써 문민통제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통수체계의 좁은 틀에 갇혀 있는 군을 국민적 공론의 장으로 해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방은 정상적인 국가경영으로부터 고립된 하나의 섬으로 남아 연연세세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명실공히 국민이 참여하고 공론의 장에서 그 성과가 검증되는 국방체제를 구현함이 국회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현재의 파국은 어디까지 갈까?

 지금 청와대는 각 부처 장관들에 대한 평가에 착수했다. 평가 결과를 근거로 내년 개각에 참고하겠다는 의지다. 이런 가운데 이상희 국방장관은 개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동아일보> 보도 중 일부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국회를 무시하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내년 개각 때 경질 1순위’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 국방위 관계자는 ‘국방위에서 통과된 예산들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상당수 감액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장관이 의원들의 지적에도 태도가 별로 바뀌지 않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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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