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 투서사건과 별들의 ‘진급 전쟁’ 사건내막

 

 상품권, 양주, 갈비세트

 

7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헌병 병과는 규모 면에서 군대의 최대 ‘기관세력’이다. 군의 엄정한 기강을 확립하고 범죄 수사와 예방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이 헌병 조직이 최근 투서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의 ‘투서 사건’이라는 표현은 이 사건의 경우에 맞지 않다. 제보된 비리 내용이 허위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내부 고발’, 또는 ‘공익 제보’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작년 11월 초에 육군 중앙수사단(단장 승장래 준장)에 제보된 내용은 전 수방사 헌병대장을 역임한 당시 L대령이 ▲ 약 300만원의 연말 격려비 횡령 ▲ 매월 400만원의 증식비, 비품구매비의 가짜 영수증 처리 ▲ 매월 수사비 약 100만원 유용 ▲ 매월 헌병 오토바이 정비비 약 40만원 유용 등 방법으로 공금을 빼돌린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이렇게 빼돌린 약1억2000만원의 현금은 상품권, 양주, 갈비세트를 구입하여 유력자에게 진급로비를 하는데 쓰였거나, ‘서초포럼’ 소속의 예비역 장군들에게 향응을 접대하는 등의 사적인 용도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D&D의 취재결과 군은 최초 제보가 있은 작년 11월초에 제보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증하지 않았고 11월 중순부터 익명의 제보자를 색출하는데 헌병 수사기능을 대거 동원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승 단장은 L 대령이 극렬하게 제보내용을 부인하면서 “진급의 경쟁자에 의한 모함”이라고 주장하는데 따라 L 대령의 진급 경쟁자를 대상으로 투서자를 색출하기 위한 전담 TF를 만들었다. 여기에 참여한 수사관들에게는 실제 제보 내용은 전달하지 않고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의 겉봉투만 전달하면서 “색출하라”고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TF는 헌병의 진급이 유력시되는 대령들에게 휴대폰 통화내역 제출을 요구하는 등 행적을 조사하자 상당수가 통화내역 제출을 거부하는 등,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 L 대령의 진급 경쟁자 전원을 조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


TF가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을 허비하던 12월 중순에 L 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중수단장으로 영전했고, 승 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하여 국방부 조사단장으로 영전했다. 그러자 12월에 재차 김관진 국방장관 앞으로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에서는 제보내용을 무시하는 승 단장에 대해 ‘비리의 공모자’라는 비판까지 덧붙여졌다. 편지를 받은 국방장관실의 군사보좌관인 Y 준장은 제보 내용을 검증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김관진 장관에게 “무기명 음해성 투서”라고 보고했다. 인사철에 기승을 부리는 진급 경쟁자에 대한 음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기강 확립 차원에서 투서자를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제보자를 찾아내는 수사는 1월말까지 진행되어 경기도 모 사단의 헌병대장인 H 중령으로 밝혀졌다. H 중령은 자신의 육사 후배인 헌병 P 소령으로부터 L 대령이 “현금을 마련하라”며 헌병대 소속 몇 개 과에 ‘할당액’을 지시한데 따라 이를 마련하느라 예산을 과도하게 계상하고 허위로 서류를 작성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당시 수방사 헌병대에는 인사, 총무, 수사를 담당하는 과들이 있었는데, 과장들에게 현금으로 일정 금액을 할당하여 마련하도록 지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마음의 갈등을 느끼고 있던 P 소령에게 H 중령은 “자신이 나서겠다”며 직접 ‘비리척결을 위해 총대를 맨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H 중령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보병 대령의 말이다.

“그 친구(H 중령)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분이 넘치는 성격이다. 그래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태도에 군 수뇌부도 골치 꽤나 아팠을 거다.”

조사 결과 H 중령 등은 “입증할 수 있는 1억2000만원만 적시했으며, 증거인멸로 입증이 곤란한 부분이 더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음해성 투서’가 아니라 ‘대형 비리’로 전환될 성격의 문제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L 준장만 조용히 내보내는 것으로 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비리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하급자로부터 투서를 받은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명분이었다.

육군 헌병의 병과장이 진급과 동시에 구설수에 휘말리고 전역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헌병 병과 전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제보내용은 외부는 물론 헌병 병과 내부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오직 장관실과 조사본부 고위층 극소수만이 갖고 있는 특급 기밀이었다. 당연히 영문을 모르는 채 헌병장교들이 동요했다. 이러한 잡음이 발생한데 대해 김상기 육군 총장은 차제에 이 사건을 헌병 개혁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육군 총장의 속내


김 총장은 헌병 자체의 힘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월에 박종성 인사사령관으로 하여금 헌병 개혁의 임무를 부여했다. 여기에서 김 총장의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치 않고 개혁의 방향도 모호한 것이었다. 헌병의 고위 장교들을 소집한 정신교육과 워크숍이 수시로 개최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헌병 장교들에게는 무엇을 개혁하라는 것인지, 내용 자체가 애매했다. 헌병 워크숍에서 승장래 조사단장을 비롯한 헌병 수뇌부는 “무기명 투서를 자행하는 군기문란 행위를 근절하고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혁의 방향을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총장은 L 준장의 후임으로 헌병이 아닌 보병 출신 장군을 육군 중수단장에 임명했다. 

고위 장성의 인사비리 의혹이 무엇인지 여부를 떠나 군에 최근 인사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이상 현상이다. 군복을 벗은 L 준장의 경우 아무리 자신의 진급 운동을 위해 현금이 필요하더라도 왜 그렇게 많은 액수를 한꺼번에 횡령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어야 한다. 일선의 헌병 실무자들의 열악한 복지와 실비부족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파격적인 횡령액이기 때문이다.

2007년의 대선조직인 ‘서초포럼’은 현 정권의 군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줄기세포’라고 할만 했다. 군 주요직위에 진출을 하려는 예비역과 현역들이 이 조직을 주목하면서 각종 진급 로비와 청탁이 몰려든다는 사실은 군 안팎에서 꽤나 무게가 실리는 소문이다. L 준장의 형인 예비역 중령이 서초포럼에서 활동하였다는 언론보도도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서초포럼은 “이 모 예비역 중령은 서초포럼의 정식 회원이 아니다”라는 애매한 해명을 하고 있다. 제보에서는 L 준장이 서초포럼 예비역 장성들을 상대로 수시로 향응을 접대하여 예비역 장성들이 “헌병이 무슨 돈이 있어 이렇게 자주 접대를 하냐”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래없는 예비역 정치세력화


잘못된 예비역 문화가 잘못된 군 인사 구조로 연결되는 경로는 어쩌면 현 정부의 최대 불행일지도 모른다. 예비역들이 특정 정권과 밀월관계를 가지면서 강한 보수의 정치논리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의 군 인사에도 정치논리가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과거 정부의 요직에 있던 핵심인재를 대거 도태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정부에 협력한 정도에 따라 A급, B급, C급으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각기 인사의 불이익을 주는 풍조가 국방부 주도로 이루어졌다. 한 국방부 소식통은 그러한 살생부가 최근까지 존재했음을 시인하며 “그 명단이 21명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현재 육․해․공 삼군 참모총장이 전원 영남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군의 주요보직과 기관장의 상당수가 특정지역 출신으로 편중된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는 지표다. 어쩌면 L 준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고위 장교들이 이러한 현실을 잘 아는 한 청와대든 예비역이든 “줄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성으로 움직이게 마련이고, 여기에서 비리가 싹트는 음지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 오늘의 군 인사다. 일부 언론이 H 중령의 고향이 호남이라는 사실을 은연 중 부각시키며 지역갈등으로 몰아가려는 태도 역시 가벼이 볼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한편 국방부는 최근 언론에서 투서사건에 대한 엄정한 조사 여론이 일자 헌병 출신 승 단장 

어느새 우리 군이 몇 번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권력형 군대’가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히틀러가 괴링을 비롯한 측근들의 권력지향의 행태에 매몰되면서 독일군 총참모부가 궤멸된 2차 대전 말기의 양상에 비견되는 현상이다. 당시 독일군의 우수인재들은 게슈타포의 음해성 정보조작과 비리, 정치논리에 의해 궤멸되었고, 모스크바 침공을 계기로 궤멸되었다. 권력형 군대의 비참한 종말이다.

 

* 이 기사는 27일 발매되는 D&D Focus 5월호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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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