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제 명품무기, 그 끝은 한국군 무장해제 무기의 세계

<한겨레신문> 201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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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강의에서 가끔 나오는 우화가 있다. 인구와 산업, 영토와 자원, 소득과 환경이 똑같은 두 개의 섬이 있다. 그런데 한 섬에 어느 해 여름에 모기떼가 창궐했다. 그러자 모기약, 모기향, 모기장, 방충망, 뇌염예방백신 생산과 같은 모기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그 여파로 고용이 늘고 경제가 성장하여 모기가 창궐한 섬이 그렇지 않은 섬보다 더 강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강해진 섬의 주민들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제학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가끔 토론하는 우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모기가 없던 섬에도 뒤늦게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모기산업은 다른 섬이 더 앞서가 있기 때문에 뒤늦게 모기를 만나 곤란에 처한 이 섬은 모기관련 제품을 수입하는 정책을 결정한다. 심지어 이미 모기산업이 선진화되어 있는 섬에서 좋은 조건으로 모기관련 제품을 곧바로 공급해주겠다는데 구태여 많은 돈을 들여 모기산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게다가 선진국은 일단 모기약을 처음에는 무상으로 공급해 주기도 하고 모기약을 직접 들고 와서 뿌려주기까지 한다. 모기산업 선진국의 제품이 적기에 공급된 덕분에 이 섬은 가까스로 모기를 퇴치하고 위기를 넘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모기산업 선진국 섬은 모기산업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노하우는 이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기산업 제품은 갈수록 고급화되고 비싸진다. 이러한 의존관계가 한 번 정착되자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종속관계가 더 명확해지고, 위기가 지나간 이후 매년 많은 돈이 선진국으로 유출된다. 적어도 모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관계는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이어 진다.

여기서 모기는 전쟁, 모기산업은 군수․방위산업, 모기약은 무기로 바꿔서 읽어 보라. 1929년의 대공항 직후 미국은 8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산업시설의 50%가 가동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경제상황은 산업시설을 전쟁 용도로 동원하고 대규모 실업자를 병력을 충원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2차 대전 중인 1941년 5월에 미국의 국방부는 ‘군수물자 증산 계획’을 발표하여 6만 대의 비행기, 4만5000대의 탱크, 2만문의 대포, 1800만 톤의 선박을 생산하여 연합군 측에 제공하기로 한다. 이에 따라 2차 대전 종료 시까지 약 500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6000억 달러)의 군수물자가 연합군에 제공되었는데, 그 규모가 연합군 내에서 워낙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유럽은 미국에 작전 지휘권을 비롯한 군사정책의 주도적 위치를 양보하게 된다. 20세기 초까지 엇비슷했던 산업규모와 인구, 영토가 엇비슷했던 유럽은 이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2년 연설에서 무기의 대량생산은 ▲전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방법 ▲미국이 연합국 내에서 지도적 역할을 보장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며 군사경제로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전쟁을 통해 미국은 대공항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완전고용의 경제를 실현하였는데, 전후 미국은 세계 군수산업의 72%, 세계 공업생산의 53%, 금 보유의 71%를 차지하는 패권국으로 도약한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20세기에도 변함없는 군사적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분석관을 역임한 로버트 D. 호메츠는 그의 저서 <자유의 대가>에서 미국의 20세기 군사적 성공요인을 ▲국채발행 능력 ▲건전한 재정(세수) ▲대규모 무기생산 능력이라고 단언한다.

군사적으로 패권의 지위에 오른 미국은 전 세계에 대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더 첨단화된 무기개발에 몰입한다. 패권 유지의 원천은 첨단 군사력이라고 믿기 때문에 더욱더 강하고 정밀하고 치명적이며 값비싼 무기를 추종한다. 지난 70년 간 이러한 무기의 진화과정은 실제 전쟁에 사용될 것 같지도 않은 최첨단 초고가 무기를 탄생시키고 있다. 미국의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의 노먼 어거스틴은 “앞으로 첨단무기의 가격과 운용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 결과 너무 비싸서 구매하기가 곤란한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며 이를 ‘구조적 무장해제(structural disarmament)'라고 불렀다. 이 상황에 도달하면 미 공군은 거의 전투기를 구매할 수 없다. 2011년 미 국방부 획득관리조사국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30년간 미 정부가 구매하기로 한 F-35 2443대가 예정대로 도입될 경우 구매비를 제외한 운영비가 1조1132억달러로 예측되었다. 현재 미 1년 치 국방비를 50% 초과하는 규모다.

그런데 바로 그 상황이 한국에서 지금 나타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사업이라는 공군의 차기전투기사업(F-X)에서 정부는 2012년에 60대를 구매하는 데 총 8조300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하고 그 착수금 4000억원을 반영했다. 그러나 최근 전투기 가격을 협상 중인 방위사업청은 대상기종으로 유력시되는 미국의 스텔스전투기 F-35를 도입할 경우 사업비는 15조원으로 상승하며, 다소 저렴한 F-15의 경우에도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사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판단은 다르다. 방위사업청의 사업비 산정에는 신형 전투기 도입에 따른 시설과 정비기반 구축 예산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 예컨대 덩치가 큰 신형 전투기가 도입되면 이제껏 사용해 온 구형 F-4, F-5 전투기 격납고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며, 활주로 역시 보강해야 하고 정비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특히 스텔스기의 경우 3번 출격하고 난 후 스텔스 도료를 다시 칠해야 하기 때문에 넓은 격납고와 시설을 필요로 하는데, 기획재정부는 이럴 경우 사업비에 다시 2조원이 추가되어 F-35의 경우 총비용은 17조원에 육박한다는 입장이다. 이 정도면 2013년 국방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며 공군의 5년 간 무기도입 예산을 전부 투입해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30년 간 운영비가 도입예산의 2~3배, 즉 30~90조원을 책정해야 한다. 마치 강남의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비싼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들어가 살지도 못할 판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줄 돈 없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공군이 차기전투기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면 현재 400대 수준의 공군 전투기는 2018년에 200대 수준으로 줄어든다. 바로 어거스틴 회장이 말한 구조적 무장해제다.

이 외에도 이명박 정부 말기에 미국과 도입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던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1세트 도입은 최초 사업에 착수했던 2005년 당시보다 3배가 오른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 자료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대형공격헬기의 경우 유력기종인 아파치 롱보우(AH-64D의 경우 총36대를 구매하는데 1조8000억원을 반영하였으나 미국이 대만, 사우디 등에 제시한 가격을 기준으로 재산정하면 3조원이 상회할 것이 확실시 된다. 해상작전헬기의 경우 8대를 구매하는데 정부는 5300억원의 사업비를 예상하고 예산에 반영하였으나 미국의 유력 대상기종인 MR-60R의 경우도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의 자료에 의하면 1조원에 육박한다. 다만 최근 미 측은 해상작전헬기의 경우 전향적인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신형 대공미사일인 개량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와 이스라엘로부터 들여오는 대공방어체계인 아이언돔 등 각종 무기도입도 비슷한 문제로 줄줄이 도입이 연기되거나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 아이언돔의 경우 도입하더라도 한 발에 통상 30만원 정도인 북한 장사정 로켓 포탄을 막기 위해 우리는 7000만원짜리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야 한다. 북한은 시간당 1만발 이상을 서울로 발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언돔 포대 하나만 갖추는 비용만 560억원이다. 이런 개념으로 포탄을 방어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수반된다.

1조8000억원을 투입하여 2013년에 착수될 것으로 예상되던 공군의 공중급유기 사업은 예산서 작성 당시에 삭제되어 아예 사업 추진이 불가능해 졌다. 북한 핵 시설을 타격한다는 공군 전투기에 장착하여 운용해야 할 공대지 미사일 도입도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착수금 150여억원이 전액 삭감되어 향후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 졌다. 대상 무기인 미국의 재즘 미사일이 한발 당 37억원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백 발을 도입하는 예산을 배정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간 이명박 정부가 북한 핵 미사일을 억지한다는 ‘적극적 억제전략’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 공군의 F-15K로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20억원에 달하는 공군이 공대지미사일(SLAM-ER)의 보유량이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평시 상황에서 귀한 자원을 함부로 동원하여 공격대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에서 “반드시 계약하겠다”던 무기도입은 한 건도 성사되지 못했다. 현행 국가재정법과 관련 시행령에서는 애초 예상했던 사업비가 추진 과정에서 20% 이상 상승할 경우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박근혜 정부에서 무기구매의 판을 다시 짜야할 판이다.

만약 이런 첨단무기를 우여곡절 끝에 도입하게 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통상 항공기의 경우 개발비가 10%라면 도입비는 30%, 그리고 운영비는 60%로 추정한다. F-35를 재정 당국의 예상대로 1대당 2억불에 도입한다면 그 운영비는 30년 간 4억불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 중 상당부분이 다시 정비비 및 업그레이드 명목으로 미국으로 빠져 나간다. 작년에 미 국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자료는 최근 5년 간 미국이 한국에 판매한 무기로 벌어들인 돈보다 정비비로 벌어들인 돈이 5배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공군 수준으로는 첨단 전투기를 운영할 길이 없다. 이렇게 되면 현재 공군은 사실상 그 기반이 붕괴되어 공군본부가 아닌 항공작전사령부 수준으로 격하되는 결과나 다름없게 된다. 구조적 무장해제의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파국에서 탈피하려면 군은 세계 최고 성능의 값비싼 무기를 사겠다는 과욕을 버리고 중저가의 재래식 무기체계나 국산화로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신형 무기도입을 위한 사활적 경쟁에 몰입하는 육․해․공군이 절대로 요구수준을 낮추지 않는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최근 신형 무기도입에 사활을 건 각 군 본부의 수뇌부들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에 가서 읍소라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청와대에 드러누울 작정이다.

그렇다면 굳이 소량의 최첨단 무기에 군이 목을 맬 이유가 있을까? 2차대전 당시에 독일 공군의 메셔슈미트(BF109)는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전투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기 때문에 독일은 총 33,000대가 생산하여 실전에 배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 2세대 전쟁은 대량생산과 대량살육이 공존하는 유례없는 극단의 폭력을 완성시켰다. 2차대전을 통해 군사 패권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그 대규모 군사에서의 잉여 능력을 한국전쟁에서 소비했다. 당시 전쟁비용 670억 달러는 현재가치로 691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태평양지역 전투에서 투하했던 양보다 더 많은 63만5천톤에 달하는 폭탄을 한반도에 투하했는데, 그 중 네이팜탄이 3만2,557톤에 달한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수물자의 대량 투입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은 세계의 병참기지이자 전쟁을 하는 기계였다. 이렇게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은 한국전쟁은 그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높은 비율의 민간인 사망자를 발생시킨 대량 기계전쟁이었다. 사망자 중 민간인 비율은 1차대전 41.2%(682만명), 2차대전 65.2%(4750만명)인데 반해 한국전쟁은 85%인 3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20세기 전쟁에서 이와 같이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대량살육이 재래식 무기에 의해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진행된 전쟁은 한국전쟁만한 사례가 없다. 이는 교전국 인구대비 사망률에서도 1차대전 1.69%, 2차대전 3.71%를 넘어서는 11%에 달하는 비극성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을 끝으로 대량전쟁이 소멸하고 이후 미소 간에 ‘공포의 핵 균형’에 의한 장기간의 평화시기가 이어졌다. 소규모 전쟁에서 희생을 줄이면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대량살상이 아닌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효과 중심으로 전쟁 양상 변화된 것이다. 그 결과 군수산업도 재래식 무기의 대량생산에서 치명적 공격력을 보유한 정밀 타격 무기로 그 주안점이 전환되었는데, 전쟁에서 정밀유도무기 사용비율을 보면 재래식 전쟁과 구별되는 가장 획기적인 전쟁 양상의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1차 걸프전(1991년)에서는 7~8%, 코소보공습(1999년)에서는 35%, 아프간공격(2001년)에서는 56%, 2차 걸프전(2003년)에서는 68%로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욱더 첨단을 지향한다. 이러한 첨단 전쟁의 시대가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전쟁과 다른 점은 전쟁의 희생자가 적고 단기간 내에 전쟁이 종결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수준의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무기 개발과 획득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이로 인해 첨단 무기개발을 향한 군비경쟁은 더욱더 가속화된다. 군비경쟁이 자연스러운 추세로 국제정치에서 작동할 때 첨단 병기는 실제 전장에서 전투원의 생명가치를 보호한다는 필요와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증식된다.

1968년에 베트콩의 구정 대공세로 많은 미군이 사상되었다. 미군 수뇌부가 베트남에 긴급히 투입되었는데 이들이 간 야전 병원에서 한 병사가 죽어가면서 “하늘을 나는 전차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미군 수뇌부가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나는 전차를 만들 것인가”로 대책회의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베트남전에서 활약한 휴이(UH-1H) 헬리콥터다. 이 헬기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헬기는 단순한 수송용이지 공격무기로 활용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야전의 필요에 의해 혁신적 무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듯이 무기에 대한 소요는 야전에서 나오는 것이고 전투원의 생명가치를 보호한다는 본질적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첨단무기 경쟁은 이와 무관하게 첨단 그 자체만 목적으로 한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최첨단 무인항공기와 스텔스기를 출동시켰으나 정작 일선의 전투원들의 무장은 예전에 비해 거의 나아진 게 없었다. 저항군이 30미터 거리에서 방탄복 사이를 조준해서 쏘면 미군 병사는 맥을 못췄다. 그런데도 무기체계는 오직 첨단으로만 치달았다. 이러한 역설은 지금 한국군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서 최첨단 군사무기 도입을 천명하는 보수정권에서도 정작 일선의 전투원들이 필요로 하는 개인장구와 전투장비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심지어 지상군의 경우 월남전에서나 보았을 법한 제2세대 무기체계와 육성에 의존하는 소부대 지휘, 도보이동 등 첨단무기와는 한참 동떨어진 정지된 시간에 놓여있다. 한국군의 싸우는 방법과 무기체계의 발전은 미국의 첨단무기를 표준으로 한 모방과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50년대에 미군이 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던 장비와 물자의 원조를 바탕으로 한국군의 기본 무장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었다. 항공전력으로는 전쟁 시기에 미군으로부터 머스탱(F-51D), 최초의 제트기인 F-86 세이버 등이 있다. 지상군 역시 미군이 쓰던 M1 계열의 개런드, 카빈 소총과 M-55/M-45D 12.7미리 경포, 캐리버 50(MG50), 8인치 곡사포, 57미리 대전차포, 바츄카포로 알려진 60미리포(M9/M9A1), 57미리 무반동총 등을 인수하였으며, 미군이 쓰던 M48 전차를 개량하여 사용한다. 미국의 원조로 이루어 진 물자, 장비의 군사지원은 1961년까지 16억 달러에 달하며, 경제원조 31억 달러까지 포함한 총 47억 달러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민총생산 금액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여기에 미군을 표준으로 한 각종 군대의 편성과 싸우는 방법, 인식체계가 확립된다.

이렇듯 한국군 현대화의 초창기에 미국 의존적인 체제는 이후 60여 년간 한국군 군사력 증강의 모든 방향을 결정했다. 예컨대 1960년대 한국군의 야포생산이 60미리가 주종이 된 이유는 그것이 한반도 전장에 적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군이 제공하는 재고포탄이 주로 60미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에 한국형전차(K-1)의 주포가 105미리였는데 미군이 냉전 이후 120미리 포탄을 해외수출 금지목록에서 해제하자 우리 전차도 주포를 120미리로 개량하게 된다. 묵시록과 같은 국가 종말의 전쟁 이미지에 시달리던 한국군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직 미국의 원조만을 바라보던 한국군 현대화는 역설적으로 미국에 의해 견제받기도 했다. 1954년의 한미합의의사록은 한국군 10개 예비사단의 추가 신설과 79척의 군함과 약 100대의 제트전투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국제연합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둔다”는 조항을 명기하고 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북진통일을 단념시키는 조건으로 한국군 현대화에 미국이 동의한 셈이다. 한국군 현대화의 새로운 계기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1966년 2월 월남 정부가 한국에 증파를 요청하자 한국 정부는 증파에 앞서 미국에 한국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선행조치를 요구하였고, 이에 미국이 14개 조항에 걸친 ▲한국방위태세의 강화 ▲국군 전반의 실질적 장비현대화 등을 약속하는 브라운각서를 우리에게 보내왔다. 이후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2만7000정의 M16A1을 소총을 미국에서 공여 받았고 1974년부터는 면허생산을 시작하여 무려 60만 정에 가까운 M16 소총이 생산되었다. 한국군이 최첨단 미군과 동일한 화력을 제공받는다는 브라운 각서의 정신에 의해서였다.

베트남전에 주력하던 미국은 주한미군 일부를 감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한국에 신형 전력을 배치함으로써 전력의 공백을 해소하며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한다. 1965년에 한국에 배치된 나이크-호크 지대공 미사일과 추가 배치된 전차(M48), 헬기 등 일부 전력증강이 있었는데, 이 전력들은 1970년대에 한국으로 이양된다. ‘원조 받는 나라’로서 한국의 이미지는 1974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 발표에 대응하여 추진한 자주국방 계획을 통해 비로소 자립적 이미지로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고, 미 증원군을 보장하기 위한 부대창설, 배치, 전력증강, 전방지역 요새화 등을 토대로 한국군의 방어작전체계를 구축하는 자주국방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방위세법 입안과 군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을 통해 국내총생산 대비 6%, 정부재정 대비 30%를 국방예산 투입하고 해외우수과학인력 초빙과 정책지원을 통해 국방연구개발,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핵 및 미사일 개발시도를 통해 독자적 방위역량확충을 구상하고 시행한다. “싸우면서 건설하는 총력안보태세”로 대북 체제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율곡사업은 74년 제1차사업이 추진된 이래 2011년까지 총121조원의 무기도입, 즉 방위력개선사업으로 오늘가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 한국군이 한국전쟁, 월남전을 초월한 제3세대 군사력으로 전환의 전기를 마련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국내 방위산업은 기본병기를 국산화한다는 기치 하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는데, 한국형전차(K-1), 한국형장갑차(K-200), 자주포(K-55)와 각종 소화기류, 탄약 등을 핵심으로 한 방위산업이 활성화 된다. 정작 국내 방위산업의 기반이 약화되고 다시 미국무기 구매로 돌아선 때는 1980년 신군부 등장 이후였다. 괄목할 경제성장의 여력을 비축한 새로운 군사정권은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던지고 미국에 의존도를 심화하는 무기의 해외도입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1993년 문민정부에서 감사원의 율곡비리 특별감사가 있기까지 약 13년간 해외 무기도입은 정권 실세가 장악한 성역 중의 성역이었다. 그러나 율곡비리 감사를 통해 해외 무기거래의 검은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무기도입 사례로는 한국형전투기(KFP), 해상초계기(P-3C), 지대공미사일(미스트랄), 수송기(CN-235), 잠수함 등 육해공군 해외도입 무기 전반에 걸쳐 있다.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은 무기도입 댓가로 돈을 챙긴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장관,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을 구속 기소하고 해외에 있던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기소중지하였다. 검찰은 뇌물을 제공한 무기중개상 정의승을 뇌물공여혐의로 구속하고, 뇌물공여혐의를 받은 현대정공의 정용구 회장, 삼성항공의 윤춘현 상무를 불구속 입건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 무기도입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과 뇌물이 있었고, 각종 이면계약을 통한 부당 수수료 착복 등 천태만상의 권력형 비리가 드러났다. 율곡비리를 감사한 문민정부 역시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백두정찰기 도입과정에서 로비가 드러난 린다 김 사건을 비롯하여 전자전장비, 수송기 도입과정에서 잡음과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무기의 대량주문이 축소되고 국방비가 감축되는 세계적 추세는 미국의 방위산업에도 위기로 다가왔다. 이에 과거 무상원조와 차관으로 유지되던 한국과의 동맹도 이제는 무기 수출을 통한 미국 내 방위산업체 보호하는 중요한 국가이익의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기점은 1995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연례안보보고서에서 표방한 ‘경제안보’ 개념으로서, “향후 대외 안보정책에서 미국의 상업적 이익을 적극 고려한다”는 기조를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이후 미국은 대한반도 정책에서 있어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요인(비확산)은 축소되고 촉진하는 요인(상업적 이익)은 확대되어 온 과정이다. 제5세대급 첨단무기 도입이 소나기식으로 추진되는 지금은 미 군수기업의 상업적 이익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주요 안보위기에서 한국에 대한 무기판매라는 국익을 구현하는 기회를 포착하였는데, 1994년의 불바다 위기는 미국제 아파치 헬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항공기 적외선 감시 장비에 대한 구매압력을 행사하는 기회로 활용되었다. 2010년의 천안함, 연평도 안보위기 역시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무기의 판매를 촉진하는 토양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외친 이명박 정부에서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여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외무기도입을 서두르게 되었고, 국내 방위산업은 극도로 위축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지난 60여년 간 제2세대 무기체계로부터 시작된 한국군 무기도입은 이제 5세대급 무기도입까지 예견하고 있다. 한국군의 무기체계는 현재 전군에 약 700종에 달하며 연간 한국의 군수조달에 참여하는 국내외 기업만 4000여개에 이르고, 군수품의 종류도 70만종을 상회한다. 군수조달은 국내에서 가장 복잡하고 규모가 큰 거대한 생태계이며, 이 순간에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방위산업은 계속 위축되면서 미국의 상업적 이익을 뒷받침하는 하부구조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오직 첨단을 지향하는 거침없는 질주에 정작 안보는 증진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국부 유출이 예견되는 딜레마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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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