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사업과 전자전, 그리고 청와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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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사업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에 이명박 대통령이 “최고성능의 무기로 북한의 비대칭무기에 대응하라”는 지침에 따라 긴급히 추진된 특명사업이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애이타킴스 미사일, 다련장포 구룡에다가 GPS 항법장치를 장착하여 북의 장사정포와 해안포를 정밀 타격하는 장비를 도입(L1, L2))하는 사업과 지상기지국의 GPS 신호 발신을 하는 일명 의사위성시스템(GBNS) 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업추진 과정에서 소요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 군 안팎에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청와대가 극비로 사업을 추진한 직후부터 국방부와 합참의 다수 전문가들은 “그렇게 쉽게 북한 장사정포를 제압할 수 있다면 지금껏 왜 안했겠느냐”며 이 사업에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국방부와 합참의 장성들도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업”이라며 청와대가 사업을 추진하는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군에 소요 검토를 맡기면 1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대통령 특명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라는 입장이라는 점을 밝히며 국방과학연구소(ADD)를 개발사업의 주체로 설정하고 사업을 밀어붙였다. 사업이 처음 지시된 때는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 사흘만인 2010년 11월 26일이었다. 

그러다가 기어이 일이 터졌다. 감사원이 번개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한 것. 감사원은 이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로부터 폭넓은 조언을 받고 미 국방부에 문의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쳐 이 사업을 감사했다. 감사결과 감사원은 작년 5~6월에 번개사업을 ‘부실사업’으로 판정하고 7월에 감사원 담당 국장과 과장이 국방부장관과 방위사업청장을 직접 방문하여 사업의 부실 요인을 개선하라고 통보하였다. 이 사업에는 성능이 우수한 군용 GPS가 아닌 민간 상용의 GPS를 적용하였기 때문에 정확도도 떨어지고 북한의 전자전에도 취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감사원 의견대로라면 이 사업은 ‘하나마나’다. 특히 감사원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미국이 군용 GPS를 한국에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상용 GPS를 적용하게 되었다“는 해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미 측은 군용 GPS를 판매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을 미국에 직접 확인하여 밝혀냈다. 이에 국과연은 재차 “군용 GPS는 즉시 도입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고 미 정부의 수출허가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며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감사원은 “1~2년이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화까지 3년이 소요되는 번개사업에 적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국과연의 주장을 일축했다. 

우리나라 무기체계의 70~80%는 민간 상용 GPS를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상용 GPS는 우선 부정확하다. 오차 범위가 10m 이상으로 정밀타격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기반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GPS를 장착하여 북을 정밀타격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운용개념도 이상했다. 군용 GPS를 장착한 미국의 항공기 정밀폭탄인 JDAM도 공산오차가 5m 이상인데 부정확한 상용 GPS를 장착한 재래식 포병 무기가 그보다 더 정확한 3m 안팎의 정밀도로 수분 이내에 어떻게 북의 장사정포를 제압한다는 것인지, 개념 자체가 무모해 보였다. 이 세상에 이런 무기가 과연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학송, 안규백 의원 등은 “이런 엉터리 사업을 할 바에야 항공기의 정밀폭탄을 증강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가 상용 GPS는 화력전을 지휘통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각동기화에 문제가 있고, 북이 방해전파를 발사하면 통신 전송기와 수신기에도 이상을 발생시킨다. 쉽게 말하면 북이 전자전을 수행하면 자석의 N극과 S극이 뒤바뀌는 것과 같이 각종 지휘통신에 혼란이 발생하여, 표적획득, 통신, 미사일 유도 등 모든 것이 마비된다. 상용 GPS는 출력이 낮은 민간위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서푼짜리 재밍 장비에도 꼼짝하지 못한다.

가장 위협적인 시나리오는 전자전과 사이버전(해킹)이 결합되어 불시에 북이 우리 군의 무기체계를 무력화하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한국군의 신경과 혈관이 전면적으로 마비된 가운데 미국에 도와달라고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군은 최근에 “북의 전자전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합참 차원의 전구 단위의 전자전 전담 부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각 군의 작전사급 단위에서도 전자전을 수행하는 전담인력과 부서 같은 것도 없다. 오직 개별 전술단위에서 자신의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전자전 장비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군은 북이 GPS 방해전파를 발사해도 방해전파 발신의 위치를 추적하지도 못한다. 삼각 측량으로 전파 발신의 위치를 추적하는 손쉬운 방법과 저렴한 장비들이 있지만 군은 이런 문제에 신경도 쓰지 않았고 대비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연평해전이 끝나고 육군 포병학교에서 군용 GPS를 도입한 의사위성 시스템을 갖추자고 건의해도 합참은 “필요 없다”며 이를 무시했다. 조 단위의 첨단무기를 사는데 몰입하여 정작 야전 전력을 운용할 수 있는 필수장비마저 삭감했고, “미국이 지원해 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전자전에 대한 대비는 하지 않았다. 합참의 고위 장성들도 전자전이 뭔지, 주파수가 어떤 것인지, 재밍이라는 하이브리드 전쟁이 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 사업으로 북한의 해안포와 장사정포를 제압할 수 있다는 아마추어적 판단은 임기 내 근사한 국방사업을 완결하려는 청와대의 업적주의와 접목되면서 갈수록 파행으로 치달았다. 군사 분야에 전문성이 결여된 청와대가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 갈팡질팡하면서 위기관리에 무능력을 드러냈다는 점은 이제 와서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연평도 사건 당시에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사 교전규칙을 개정하라”, “서북도서를 요새화하라”는 비현실적인 지시를 남발하였으나 오늘에 와서 보면 시행조차 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지침이었음이 대부분 입증되었다. 마찬가지로 청와대가 번개사업을 추진한 직후인 재작년 12월에 국방부와 합참이 사업을 승인하는 요식행위를 거쳤다. 그러나 개념도 모호한 부실사업에 국방예산을 투입하면 다른 국방사업은 줄줄이 피해를 볼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군 전문가들의 비판 여론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논란이 지속되던 작년 9월에 국가정보원은 감사원의 자문에 응한 P교수를 포함한 민간인 3명에 대해 비밀리에 내사하기 시작했고, 감사원의 담당과장을 보안 조사하여 징계를 받도록 감사원을 압박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 과장은 다른 부서로 전보되었고, 감사원의 지적사항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의 과장이 인사조치 된 명분도 해괴했다. 7월에 감사원 국장과 과장이 김관진 국방장관을 만나 문제점을 설명하자 김 장관이 “내가 참고할 수 있도록 감사 보고서를 한 부 놓고 가라”고 당부했다. 이에 보고서를 한 부 국방장관에게 준 것이 ‘군사기밀 유출’이자 보안규정 위반이라는 것이 감사원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누가 보더라도 인사조치의 명분으로 궁색한 이유였다. 이에 “정보기관이 너무 강경하게 이 문제에 개입하니 감사원 주무과장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보직을 옮기도록 조치한 것”이라는 해명도 있다.

감사원 자문에 응한 P 교수는 방위사업청 기술기획과장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군의 주파수 대책의 부실과 전자전의 문제점을 합참에 제기하여 미운털이 박힌 인물이다. 전차나 대포에 돈을 쓰면 새로운 부대도 창설되고 보직도 늘어나지만 전자전에 돈을 쓰게 되면 조직팽창이라는 전리품이 없다. 주로 유형무기 증강에 몰입하는 한국 합참과 전력부서들은 무형전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직의 이익에 봉사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한국군 장교들은 전장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없다”는 동맹국이나 우방국의 비판을 자주 듣는다.

감사를 진행하던 주무과장이 제거되자 한 때 감사원은 “명백한 감사 방해 행위이자 부조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인식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따라 조 단위 부실덩어리가 ‘청와대 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권에 영혼을 팔아넘긴 연구 관료들과 합작으로 강행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대통령 특명사업’은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율곡사업 추진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사업추진 방식이다.

여기에서 분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사건이라는 안보위기는 정권 핵심부와 일부 연구 관료와 이에 기생하는 업자들에게는 ‘비지니스 거리’였다. 부실사업이라도 대통령의 권위와 안보위기에 편승만 한다면 절차도 생략할 수 있고 비판여론이 사라질 것이니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국과연의 번개사업 책임자와 GPS 장비를 납품하는 업체 사장과의 ‘개인적 관계’까지 수상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작 수사해야 할 대상은 감사원의 자문에 응한 민간 전문가들이 아니라 바로 국과연 일부 직원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라는 여론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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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