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악마화하면 진짜 악마가 된다 국제안보

한겨레신문  2013.12.1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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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활한 모사꾼 괴링이 히틀러 총통의 관저에 들어온 때는 1938년 1월25일 저녁이었다. 게슈타포가 조사한 한 사건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조사 보고서에는 한스 슈미트라는 한 사기꾼의 진술이 나와 있었다. “베를린의 한 거리에서 젊은 남성과 동성애에 빠져 있는 육군 장교를 목격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폰 프리츠 육군 총사령관이었다”는 내용이다. 추문을 단죄한다며 괴링이 직접 재판장이 되어 프리츠 장군을 숙청했다. 그 다음 차례는 전쟁성 장관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원수였다. 오랫동안 홀아비였던 블롬베르크는 그해 1월에 재혼을 하였는데, 그 여성이 매춘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괴링은 이를 이유로 독일 육군의 최고위 장교를 파면시킨다. 군부 숙청은 히틀러에게 비판적이던 16명의 장성을 예편시키고, 44명을 좌천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어 히틀러는 라디오 연설에서 “앞으로는 내가 전군의 지휘권을 직접 행사한다”고 긴급령을 공표한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지 5년 만에 독일군의 최고 사령관이 된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국방군 최고사령부를 통해 히틀러가 군을 직접 지휘하자 감히 최고사령관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군인은 아무도 없었다. 빼어난 군사 천재들이 즐비한 200년 전통의 독일 총참모부는 이렇게 괴멸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다. 군사적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합리적 판단을 건의하는 참모집단이 있었다면 전쟁은 그처럼 무모하지도, 참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과 귀가 먼 히틀러의 독단은 계속 이어져 1941년 러시아 원정에서 30만 기갑부대가 궤멸했고 마침내 독일은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가장 위험한 독재는 아무도 독재자에게 직언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오직 1인자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정책결정이 경직화해 마침내 자기 스스로 붕괴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숙청의 피바람과 함께 공포의 시간이 이어지는 북한에서 예전의 군 인사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인민무력부장이나 군 총참모장도 허세에 불과한 상징적 지위로 전락해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김정은에게 전략적 혜안과 합리적 판단을 보완해줄 수 있을까? 히틀러도 5년이 걸린 최고사령관직 행사를 김정은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김정일 위원장 사후에 즉시 물려받아 ‘최고사령관 작전명령’을 하달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물론 유럽의 패권자가 된 히틀러의 독일과 달리 지금 김정은은 아무리 야심이 강하다고 해도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현상변경자가 될 수 없다. 바로 옆에서 중국이라는 더 큰 세력이 버티고 있고, 무엇보다 북한은 현상변경을 도모할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결정의 경직성이 계속 심화되다 보면, 그것이 대외정책에서의 호전성·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해 볼 만하다. 합리적 행위자로서 북한이 안정적으로 내부를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훼손되고, 통 크게 전쟁분위기로 가는 그런 모험을 시도할 가능성 말이다.

 

김정은의 도발에도 대비해야 하지만 우리는 김정은을 악마화하는 감정적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정확히 김정은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 정부나 언론이 김정은을 악마화하면 그는 정말로 악마가 된다. 우리는 그를 위기의 벼랑 끝이 아니라 그 옆의 완만한 언덕으로 안내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히틀러의 광기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데는 1차대전 이후 승전국이 베르사유 조약을 앞세워 독일을 가혹하게 압박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실수를 김정은에게 되풀이해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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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