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 평화칼럼 - 우리 안의 ‘아라파트헤이트’ 편집장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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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년에 71살의 나이에 감옥에서 나와 새로 인생을 시작한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백발이 성성한 이 노인은 28년간 달고 있었던 죄수번호 ‘46664’를 마침내 떼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의장을 맡은데 이어 1994년 4월 27일 자유총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입니다. 그는 대통령은 취임하고 난 이후에도 그 자신을 박해했던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흑백이 공존하는 사회, 적대와 증오를 녹이는 평화공동체를 향한 불굴의 노력은 그가 93세의 나이로 타계한 최근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요하네스버그 FNB 축구경기장에서 역대 최대인 세계 약 100여개국의 수반과 정상급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 거인을 떠나보내는 추모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종교지도자와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는 적대관계의 지도자들까지 모두다 한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종교와 이념, 적대감을 초월하여 평화와 화해를 위한 범지구촌평의회가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만델라가 떠나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는 이날 추모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악수를 하면서 불거졌습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둘의 악수를 1938년 히틀러를 방문하고 돌아와 평화를 확보했다고 의회에 선언한 네빌 챔벌린 전 영국 총리에 비유하며 격렬히 비난했습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의 라울에게 독재정권을 유지할 선전거리만 제공했다”며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사망한 만델라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가슴을 치며 개탄할 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과 손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만델라의 정신은 짓밟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바마에 대한 이런 식의 비난은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입니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도 메케인 의원처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챔벌린 수상이 히틀러를 만나 농락당한 1938년의 뮌헨회담에 비유해왔습니다. 독재자와 만나는 유화정책은 그 자체로 죄악이라는 단순논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적대와 차별을 지속하는 흑백 분리정책, 즉 아라파트헤이트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러한 분리와 적대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과 양심, 불굴의 용기에 대한 경외심을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인간은 나약하고 공포에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나약함을 보완해주는 집단이나 조직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경우 국가는 개인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신성한 권위가 되어버립니다. 오염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바로 국가나 군대, 또는 종교이기 때문에 나약한 개인은 집단의 권위에 귀속되어 버립니다. 우리 사회의 종북 프레임과 국가주의는 바로 그러한 분리적 사고의 변종이자, 부정적 인간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의 아라파트헤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비관적으로 인식하면 그 믿음대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부정적인 면에서 나약해질 때마다 그 두려움을 넘어 인간 정신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면 바로 그곳에서 평화와 화해의 길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경이로운 체험을 하라는 것이 바로 넬슨 만델라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위대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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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