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으로 확대된 청와대 안보기구, 그 천태만상 국방개혁

 

D&D Focus 2010년 8월호 


‘문민 국방 장관론’ 부상시키는 청와대 실세들

청와대 모여드는 별들

 

청와대에 별이 41개


다음은 청와대에 설치되어 운영 중인 안보관련 기구들이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위원장 이상우, 장관급),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우, 장관급), 대통령 안보특보(이희원 예비역 대장, 장관급), 외교안보수석(김성한, 차관급), 국방비서관(김병기 육군 소장), 대외전략비서관(김태효), 위기관리센터장(김진형 해군 준장).

이상 7개 직위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안보관련 조직이다. 장관급이 2명, 차관급이 1명, 현역 장성이 2명, 비서관이 1명이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이렇게 안보 타이틀을 가진 청와대의 고위직이 양산된 적은 없다. 청와대의 장관급 직위라야 안보 분야 외에는 대통령실장(임태희), 정책실장(백용호) 2명이 전부다. 청와대 장관급 직위 4명 중 2명이 안보분야에 몰려 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가 안보를 중시한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혁신적으로 개선한다는 청와대의 비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대통령을 자문하는 안보기구로는 가장 상위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있고, 2009년 상반기부터 외교안보자문단이 통일고문회의와 같이 운영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안보관련 위원회나 보고 라인이 많아서 기능이 상당히 중복될 것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기구는 많은데 반해 상당수가 중복된 인물들이라는 현상이 발견된다. 예컨대 이상우 위원장은 국가안보총괄회의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통일고문회의 위원 등 3개 직위를 맡고 있다. 총괄점검회의의 멤버 중 김성한 교수와 안광찬 예비역 소장의 경우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총괄점검회의의 홍두승 교수의 경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 이희원 안보특보의 경우는 총괄점검회의의 간사 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동일 인물이 상이한 위원회를 겸임하면서 사실상 여기저기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 참여하는 예비역 장군의 경우 4성 장군이 3명(박세환, 이성출, 이희원), 3성 장군이 5명(김종태, 박정성, 윤 연, 배창식, 김인식), 2성 장군이 2명(안광찬, 박상묵)으로 별이 무려 31개다. 

그러나 이 외에도 또 다른 군 조직이 있다. 현재 경호처에는 예비역 4성 장군인 김인종 처장을 비롯하여 그 직속으로 군사관리관이라는 직함으로 육군 준장이 보직되어 있고 그 외에도 장교들이 포진해있다. 

이렇게 보면 총괄점검회의와 국방비서실, 위기관리상황센터, 경호처의 전현직 장성들은 모두 합하면 14명, 별이 41개다. 야전의 군 사령부 몇 개를 합쳐야 나올 숫자다. 합참의 별 숫자와도 맞먹는다. 영관급 장교가 배치된 부서로는 안보수석실, 국방비서실, 대외전략비서실, 기획관리비서실, 민정비서실, 안보특보실, 위기관리센터, 경호처가 있고 또 지근거리에는 청와대 경비단에 상당수의 장교들이 배치되어 있다. 어림잡아도 30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 많은 별들이 소행성으로 떠돌다가 천안함을 계기로 일제히 청와대로 날아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천안함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청와대는 국가안보 역량을 대거 끌어들이는 거대한 중력과 같다.    

장성이 보직되지 않아 국방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부서가 의외로 국방 분야에 깊숙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기획관리비서실의 경우는 작년에 보병 출신 영관급 장교가 배치되어 있다가 기무사 영관장교로 교체되었다. 민정비서실과 같이 국방에 대한 사정업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국방개혁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부서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은 최근 영포회 논란에 연루되면서 사표를 냈다. 김태영 현 국방장관은 부임된 지 얼마나 안 되는 작년 10월경에 정인철 전 비서관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고 선뜻 응하지 못하며 망설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 비서관이 외교부, 통일부 장관을 만난데 이어 국방장관까지 개별적으로 접촉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서였다. 김 장관은 부임 당시 “기획관리비서관이라는 자리가 무엇 하는 자리인지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복잡․방대한 기구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청와대에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몰려가고 있는 현상이 국방업무에 군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는 정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반대로 국방부에는 군 출신이 아닌 민간 출신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장수만 국방차관, 홍규덕 국방개혁실장, 정재원 국방품질원장, 박창규 국방과학연구소장 등 문민 출신이 대거 약진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와서 과거의 전통적 국방관련 의사결정 구조에 여러 정권실세 라인들이 수시로 개입하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군비체계와 군사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유니폼을 입은 군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며 문민의 새로운 사고와 철학으로 개조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폐쇄적인 국방운영의 장벽을 부수고 정치권력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방운영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현 정부가 가장 괄목할 만 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미래의 국방개혁보다 당면한 북한의 현존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가 더욱 절박해지면서 다시금 군 출신의 경험과 직관이 대통령의 국군통수에 활용되어야 할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것이 청와대의 안보기능 확대와 함께 군 출신의 청와대 진입을 촉진한 배경이 된다.

문민의 국방부 직위로의 약진과 군 출신의 청와대 직위로의 진출은 상반된 두 흐름이다. 결국 청와대 내에서도 문민의 시각에서 서 있는 이상우 위원장과 군 출신을 대표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희원 안보특별보좌관 등 군 출신들 간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대한민국 안보의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있어 상이한 직관과 경험, 그리고 사상과 철학이 다른 문민과 군부 사이의 긴장감이다.      

출신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의견을 조화시키면서 통합된 안보역량을 구축하려면 청와대 안보기능은 체계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이 방대하면 없던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천안함 사건은 청와대 안보조직 간에 치열한 논쟁과 갈등을 유발한 중대 사건이었고 그 여파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군부와 문민 출신의 갈등이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군 내부의 육군과 해․공군 간에 경쟁이라는 양상이 추가된다. 청와대에 안보기구가 비대화된 이유는 문민은 문민대로, 군 출신은 군 출신대로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대통령에 전달하려는 ‘언로 확보 경쟁’이 치열하며, 이것이 새로운 안보관련 직위를 만들고자 하는 요구로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청와대 안보기능의 일하는 방식이 방만하고 단기적 사안에 치중하며, 대통령을 장악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3월 26일로부터 함미가 인양된 4월 15일 사이에 청와대에는 천안함 사건의 대응방향을 두고 치열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 사건이 나고 최초 청와대는 북한이 연루되었다는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연루되었다는 심증만으로 섣불리 대응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 위기가 초래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천안함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주변국 외교까지 고려한 신중한 접근법이었다. 주로 안보수석실이 이런 사고로 기우는 것 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만 했다. 그러나 언론에 청와대 관계자 멘트로 “북한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이 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단정적 표현이 일부 등장하는가 하면 사건원인과 북한을 분리시키는 언급이 연일 보도되자 갈등의 조짐은 더욱 커졌다. 특히 3월 30일자 중앙일보 보도는 압권이다. 이날 신문은 청와대 참모가 ‘북한 기뢰로 인한 천안함 침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서 ‘왜 북한으로 몰아가려 하느냐’며 ‘나중에 사실이 아니면 어쩔 거냐’ 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안보수석실의 일련의 행태를 보며 군 출신 인사들은 안보수석실 주요 직위자들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청와대에서 안보관계장관회의가 개최되고 나고서도 안보수석실과 국방부, 합참이 아무런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은데 대해 비판적 분위기였다. 경찰은 천안함 사건 직후인 11시50분부로 인천과 서울, 경기, 강원지방청에 ‘을호 비상’을 발령했고 인천해양경찰청은 ‘갑호 비상’을 발령했다. 당시 경찰청의 비상발령에 대해 모강인 경찰청 차장은 “초계함 침수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과 관련된 사건일 가능성이 있는데다 청와대에서 안보관계장관회의까지 소집돼 비상을 걸었다”는 것이 비상령을 발동한 이유라고 사건 다음날인 27일에 말했다. 갑호 비상은 경찰인력이 교대 없이 100% 비상사태에 투입되는 계엄 직전의 상황이다. 을호 비상은 50%만 투입된다. 을호 비상을 내리기에 앞서 경찰은 26일 오후 11시22분부로 전국 지방청에 경계를 강화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런데 합참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었다. 합참은 그 다음날인 27일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합참 작전본부장 전결로 ‘군 대비태세’ 공문만 하달한 것이다. 사태 초기에 군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해야 할 사항인데도 예비군이 동원되고 주요 지점에 검문소가 설치되는 등 추가적인 부담이 따른다는 이유로 이를 선포하지 않았다. 여기에다가 합참은 “파공이 형성되어 초계함이 침수 중이다”라는 보고를 받고 위기조치반을 소집하지 않았다. 천안함이 좌초되었거나 낡은 기뢰로 폭발했을 가능성에 사실상 무게를 두고 ‘교전’이 아닌 ‘사고’, ‘작전’이 아닌 ‘구조’의 양상으로 지휘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사건 초기에 “북한의 공격 징후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그 책임을 ‘경계에 실패’하고 ‘보고를 누락’한 해군으로 돌렸다. 그러나 사건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군이 가장 먼저 대응을 하고 경찰은 뒤따라와야 하는 상황인데도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사건이 발생한 당일 날 대만의 마잉주 총통은 해외 출장 중임에도 본국으로 화상통화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고 대만 군에 비상사태를 발령했다. 한반도 해역에서 교전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긴급히 대처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대만보다 못한 군 대처”라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이상한 군의 대비태세에 대해 청와대 일부 군 출신 인사는 안보수석실에 대해 “제대로 상황관리를 못한다”는 불만을 갖게 되었고 “청와대 내에 군사적 식견과 전문성이 보완되어야 한다”며 청와대 안보기능의 재편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주장이 예비역 장군을 청와대에 포진시킬 강력한 이유가 되었고 결국 안보특보 신설로 이어지게 된다. 김성한 안보수석은 보충역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했고 김태효 비서관은 병역면제자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장도 병역면제자인 것을 감안하면 군사문제에 정통한 예비역 장성을 대통령 지근거리에 배치해야 한다는 절박성은 더욱 고조된 것으로 보여 진다. 동시에 합참을 비롯한 군 대응에 강력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었다. 이는 결국 5월에 감사원이 군을 고강도로 감사하는 데로 이어진다.



전군지휘관 회의의 내막


4월에 침몰한 천안함의 선미가 인양된데 이어 선수마저 인양되어 절단면이 드러나자 북한이 공격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보수석실은 당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이 연루되었다는 잠정적 결론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했다. 결정적 증거물이 나오거나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섣불리 국가 위기상황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안보수석실 정서라면 “북한이 아니라면 누가 공격했겠느냐”며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는 보수층 보다는 “북한이 공격했을 리가 없다”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장에 더 기대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미묘한 정서적 차이는 5월 4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방부에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때까지 이어진다. 안보수석실은 이 회의 자체를 반대했다. “북한이 천안함 공격에 연루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물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북한을 지목하여 규탄 메시지를 보낼 수 없고, 따라서 알맹이 없는 대통령 주재 회의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사건 초기부터 예단을 금기시하며 엄격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하고자 하는 안보수석실의 분위기가 투영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청와대 기획․정무 관계자들은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회의를 강행했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층의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도 추가 되었다. 안보수석실이 국가 위기관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밀리는 양상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5월 4일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거나 규탄하는 메시지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의 허술한 지휘체계와 늑장보고를 강도 높게 질타하며 몇 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첫 번째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설치하여 운영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의 안보특별보좌관을 신설하고 세 번째는 청와대 위기상황실을 위기관리센터로 격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총괄점검회의를 운영하는 안은 안보수석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고 안보특보 설치는 경호처와 정무․기획부서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 초기 비둘기파였던 안보수석실은 총괄점검회의로, 매파였던 안보특보로 각기 세력을 확장한 셈이다. 그 결과 총괄점검회의 위원장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의 스승이자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인 이상우 씨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안보특보로 임명되는 예비역 장성이 누구냐는 문제였다.

첫 번째로 물망에 오른 인사는 군 정보기관장 출신인 김 모 예비역 중장이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 몇몇 찬반여론에 휩싸이더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5일 경 외교안보자문단의 일원인 안광찬 예비역 소장을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격상된 위기관리센터를 관장하면서 대통령에게 안보현안을 직보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와 함께 대통령 신임을 받은 안 장관이 가장 적임자라는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된 결과였다. 이를 파악한 이동관 홍보수석은 기자들의 “안보특보는 누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안광찬 장군이 유력하다”고 답변했고 이것이 5월 6일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안 장군의 특보 임명에 반대하는 청와대 안팎의 여론을 등에 업고 조직적인 방해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기자에게 “청와대 내 일부 인사와 경북 상주 인맥이 안 장관을 제외시키기 위해 움직였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현재 주중대사로 베이징에 있는 류우익 대사와 그와 인척 지간인 김 모 예비역 중장이 가담했다”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 핵심관계자의 주장은 최근 영포회 논란으로 촉발된 권력 내부의 진흙탕 싸움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권력 내 특정인맥의 국정농단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최근 여권 일각의 정서다. ‘권력의 사유화’ 발언으로 화제가 된 정두언 의원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거듭되는 기자의 취재여부에도 불구하고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류우익 대사와 김 모 중장, 그리고 안 장관 대신 임명된 현재 이희원 특보, 이상우 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이 전원 경북 상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5월 13일 이 특보가 임명되자 안 장군의 부임을 기대했던 청와대 안보수석실은 “안보특보는 안보정책 의사결정 라인 밖에 있다”며 견제를 시도했다. 더불어 “안보특보실의 업무는 간단하다, 현재 인원이 모자란 안보수석실이 수행하기 어려운 업무, 예컨대 위기관리센터 관장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안보 정책결정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뉘앙스를 풍기는 주장은 5월에 월간 「신동아」를 통해 보도되었다.

이러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안광찬 장군에 대한 신임은 여전하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일화. 5월 13일 오전에 이 대통령은 총괄점검회의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를 향하던 안광찬 위원이 민방위훈련 때문에 반포대교 근처에서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청와대 의전 관계자는 안 위원에게는 나중에 임명장을 전달하기로 하고 행사를 정시에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이를 제지했다. “임명장 수여는 안광찬 위원이 오면 할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참석자들 모두가 놀랐다. 결국 행사는 대통령이 15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 안 위원이 들어오자 그 때 시작되었다.



‘문민 장관론’ 급부상

 

여러 복잡한 시선을 의식했는지 현재 이희원 특보 측은 “오직 순수하게 군 발전에만 기여한다는 일념으로 업무에 전념하며 안보수석실과 어떠한 의견대립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예민한 사항인 “군 인사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행위도 일절 하지 않으며, 안보 특보 자리를 발판 삼아 부처로 진출하려는 사심도 없다”며 순수하게 대통령 보좌업무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실제로 이 특보가 부임한 지 두 달 동안 청와대 안보수석실과 별다른 갈등의 흔적은 없다. 또한 원만한 성품의 이 특보가 안보수석실이 놓치고 있는 군과 예비역의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업무에 조용히 임하면서 소통의 적임자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경북 상주 인맥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역 인맥 챙기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안보수석실 관계자 역시 “특보실과 갈등관계는 전혀 아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실제로 이 특보가 임명되고 나서 정치적 행보가 두드러진 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원만하게 소통하고 화합하는 리더십을 가진 이 특보가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청와대와 군부의 교량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평가다. 갈등의 소지를 예방하는 긍정적 역할에 기대하는 여론의 지지도 받고 있다. 

이렇듯 대통령 주변에서 군사적인 전문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는 동안 뜻밖에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5월 4일 전군지휘관회의를 기점으로 ‘문민 국방장관 추대론’이 강력히 부상하였고 최근에는 더욱더 이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을 처리하는 군의 지휘체계를 강력히 질타하면서 청와대 기획․정무, 안보수석실 소속 비서관실에서 “유니폼 입은 군인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확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6월 10일 감사원의 천안함 감사 결과 발표는 그 기폭제였다.

문민 장관론은 최근에 청와대를 나간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이 주도적으로 확산시켰음이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특히 정 비서관과 비서실 소속 행정관들은 류우익 주중 대사를 0순위로 거론하며 여권 핵심부에도 이러한 주장을 거침없이 개진하였고, 청와대 내에서도 그 여론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류 대사의 국방장관 부임 가능성은 회의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선 정권 실세가 중국 대사직을 돌연 사퇴하면 중국이 우리 정부에 오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중관계를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시각이다. 이와 같은 의견은 앞서 ‘상주 출신’ 인맥을 비판한 여권 핵심관계자로부터도 동일하게 나온다. 집권 초 국정난맥의 책임자이자 또 다른 권력 내부의 파당정치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정권 창출 공신들로 하여금 국정을 장악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한편 안보수석실 관계자들도 또 다른 의미의 문민 장관론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 대상이 류우익 대사가 아니라 다른 제3의 인물인 것으로 보여 진다. 안보수석실 핵심관계자는 “여러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며 사실상 문민 장관론이 검토되고 있음을 넌지시 시인했다.

‘전시작전권 특사’로 미국과 긴밀한 협의라인을 구축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전작권 전환 연기라는 성과를 거둔 여세를 몰아 국방개혁 전체를 재설계하는 수준으로 목표를 상향조정한 것으로 보여 진다. 국가안보의 위협 우선순위를 이제껏 군부가 신봉해 온 재래식 전면전 대비에서 핵과 미사일과 같은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비로 전환하고 전략적 단위에서 미국과 일체화된 군사전략을 구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래식 육군 위주 전력에 국방재원이 투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구상에 적극 부응하며 문민 주도로 국방체계를 현대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군의 합동성을 도모하기 위해 육군을 견제해야 한다는 해․공군의 목소리까지 가세하면서 이상우․김태효 구상은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이럴 경우 안보수석실이 응원하는 문민 장관 후보로는 이상우 위원장이 단박에 떠오른다. 최근 이 위원장은 총괄점검회의를 통해 이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전면적인 군 체계 개혁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해 ‘선제적 억제전략’을 구사하고, 육군을 여단 단위로 대폭 경량화하면서 전방에 전방사령부를 창설한다는 등, 한마디로 군이 대비하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을 근원적으로 변혁하려는 단계에까지 그 구상이 이르고 있다. 김태효 비서관과 거의 같은 맥락의 논리를 개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상우 위원장 - 김태효 비서관 - 장수만 국방차관 - 홍규덕 국방개혁실장으로 이어지는 국방 의사결정의 문민 라인은 한국에서 국방개혁을 견인하는 새로운 문민세력으로서 그 존재가치와 역할을 높이려 한다. 일견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 시절과 아주 유사한 ‘한국의 네오콘’ 출현이다.

문민 국방장관론은 지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척결 이후 국방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몰고 올 역사적 과업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와 국방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야심차고 대담한 시도이기도 하다. 더불어 민간의 역량으로 군을 선진화한다는 전례가 만들어질 때 우리 국방의 정치․사회적 좌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 사안이고, 그 여파로 군의 상부구조와 지휘체계, 군사제도까지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견인차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비효율과 폐쇄적 국방운영으로 군 발전이 지체되어 온 수십 년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과연 청와대가 군부의 저항을 돌파하면서 이와 같은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사관과 철학, 그리고 대담성과 결단력이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편 새로 임명된 임태희 대통령실장 역시 국방개혁에 상당한 관심을 표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민 국방장관 지지자로 분류된다. 그는 작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으로서 국방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작년 4월 1일 블로거 초청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소속 상임위가)국방위인데, 주위 사람들이 왜 국방위를 하느냐는 더러 질문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공공분야 가운데 개혁을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필요한 곳이 바로 국방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저보고 맘대로 찍어서 한번 해 봐라 라고 한다면 민간인 출신으로서 국방장관을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 전반적인 여론은 이러한 급격한 군 문민화와 변혁에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우선 군 변혁은 많은 투자를 요구하는데 반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당분간 증액이 어려운 실정이고, 자칫 문민 장관을 임명하여 대통령과 군부의 거리가 멀어지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반론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부담을 감당하기엔 시기적으로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김태영 국방장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결국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는 현 정부는 국방개혁에 대한 논의와 검토 수준에서 그 역사적 임무는 종료되고 모든 부담은 차기정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과연 이러한 안보논쟁의 귀추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 후반기의 안보정책은 그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다.

때마침 최근 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일부 군 출신 위원들을 중심으로 “총괄점검회의가 군 전력구조까지 검토하는 월권이다, 국방부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어 결국 총괄점검회의는 군 전력구조는 국방개혁 검토과제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군 중시론을 외치는 군 출신 인사들의 작은 승리(?)로 보여 진다.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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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