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 평화칼럼- 치타에게 쫓기는 영양의 철학 편집장의 노트

 

매트 리들리라는 저명한 생물학자가 있었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1990년대 초의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리들리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동물들의 생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치타에게 쫓기는 영양 떼를 관찰하면서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저서『붉은 여왕』에서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영양은 치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치타가 공격해 올 때에는 영양은 치타보다 더 빨리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영양의 행태를 보면 치타보다 빨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인 다른 영양보다 더 빨리 도망치려고 애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동료보다 빨리 뜀으로써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영양을 관찰하면서 매들리는 인간과 동물을 불문하고 관통하는 ‘내부경쟁’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동물은 실제 천적으로부터 죽는 비율이 10%도 안 된다. 90%는 내부 종족 간의 다툼 때문이다. 암컷을 차지하고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자기들끼리의 전쟁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에 맞서기 위해 국가를 조직하고 군대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용되는 명분일 따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경쟁자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전의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 내부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특정 군부가 일정한 위상을 점하기 위해 안보 논리가 이용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 중국과의 이어도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영토도 아니고, 물속에 암초에 불과한 이 작은 방위덩어리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을 6대 도입하여 이어도 기동군단을 만든다고 합니다. 공군은 이어도 작전을 위해 공중급유기 4대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해병대는 제주도 해병사령부를 만든다고 합니다. 공군은 제주도에 군 전용 비행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점령할 수 있는 물 속 암초 하나에 국가는 수십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할 판입니다. 이렇게 다 제주도로 달려가면 휴전선은 누가 지킵니까?

왜 이렇게 할까요? 바로 우리의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내부경쟁 때문입니다. 이어도 방어라는 하나의 안보 대상이 생겨나자 각 군이 서로 예산과 조직을 늘리려는 내부경쟁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수십조원을 쏟아부어 작은 암초 덩어리 하나를 지킨다 한들, 안보의 무엇이 달리집니까? 또한 설령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공동체의 안전을 침해하는 위협에 힘을 모아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조직과 개인의 이익을 추종하는 영양의 움직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분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군사주의가 모든 외교정책을 압도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국가 이성이 붕괴될 것이며, 안전보장의 합리성이 잠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의 안보가 더 나빠집니다. 이것이 바로 가짜 안보입니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