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집단화 되는 군대, 막가는 장병 정신교육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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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한 정신교육이 도를 넘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 2월 장병정신교육에 대한 정신교육 지침을 시달했다. 이후 2월 말부터 일선 군부대에는 ‘종북좌파 실체인식’을 주제로 한 정신교육 교관 경연대회가 진행 중이다. 최근 선거를 앞둔 4월에는 군단, 군사령부 단위에서 중대장급(대위) 경연대회를 완료하였고, 이어 대대장급(중령)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선 부대가 교육청과 협조하여 초중등 학교에 안보 교육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도 추진 중에 있다. 전방부대의 경우에는 학교가 많지 않아 업무에 큰 부담이 되지 않지만 후방의 향토사단의 경우에는 1분기 중에 70~100개의 학교에 안보교육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업무의 큰 부담이 된다. 장교들이 시간을 쪼개 학교로 교육지원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본업을 젖혀둘 정도다. 한편 정신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교관 집체교육과 정훈장교 소집교육이 국방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4월 초에 국방회관에서는 전군의 정훈장교 집체교육이 진행되었다. 

군 당국이 병영 내부를 넘어 외부에까지 안보교육을 서두르는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막상 안보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선거판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정신교육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의도는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이들이 말하는 종북좌파에 대한 비난의 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당장 북한의 남침 유혹을 불러 일으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둘째,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종북좌파들이 합법적으로 활개 치며 남한의 공산화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다. 셋째, 연방제 통일을 주장한다. 북한은 유일당인데 비해 남한은 다당제이기 때문에 연방제 하에서 선거를 하면 북한이 남한을 통치한다. 그러므로 종북주의자들의 목표는 공산화를 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소멸이다. 이를 신봉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공산화는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식이다.

그러면 종북주의자들이 누구를 의미하느냐는 의문에 답해야 한다. 군대 내의 정신교육에서는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전교조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모두 합법적 정당이거나 조직들이다. 더불어 4년 전의 촛불시위 배후세력, 최근 제주도 강정기지 반대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도 종북주의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논리를 확산시키기 위해 입대 전에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군인의 촛불시위 체험기라든가, 학창시절 전교조 교사의 해악을 체험한 사례 등도 적극 발굴하여 발표를 시킨다. 마치 교회에서 간증기도회를 하는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군이 “신흥 종교집단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더불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불신하도록 조장하는 과학자들과 정치권도 종북주의자들이다. 이런 내용으로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각종 포상을 비롯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장교들은 “70년대의 반공교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일선 학교에 대한 안보교육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이 구체적으로 누군지에 대한 부분은 빠진다. 군 당국 스스로 이런 정신교육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편 정신교육 외에 일과나 사석에서 지휘관들이 장병들에게 “부모나 친구에게 전화해서 종북 야당을 찍지 말라고 하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이 과정에서도 일반적인 장병들의 교육수준을 고려하여 “민주주의에서 사상의 자유는 있다”는 것을 반드시 전제하면서 “그러나 종북주의자는 안 된다”는 결론이 유도되도록 한다는 것이 최근 정신교육의 일관된 맥락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의 덕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대한민국을 색깔론으로 편 가르고, 공산화라는 공포를 주입하면서 굴절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 여기에 정신교육의 목표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장병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불온문서 지정, 군내 좌익장병 색출 등으로 사찰과 감시가 강화되었고, 선거 때마다 정신교육을 빙자한 사실상의 선거 개입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져 온 점을 고려한다면 최근 군의 행태는 민군관계에 있어 아주 나쁜 사례들로 꼽힌다. 특히 이런 정신교육의 이면에는 징집된 장병들이 입대 전부터 잘못된 가치관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교정되고, 처벌되고, 개선시켜야 할 수동적 객체라는 인식이 있다.  

2008년에 국회 국방위에 제출된 육군의 업무보고 8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다.

‘입대 장병의 오도된 가치관 교정’

교도소장 훈시문에 나올 법한 용어다. 그 밑에는 또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왜 여기서 싸워 이겨야하는가?」를 명확히 주입’

그러니까 이 말은 군 장병을 교정시킨 다음에 어떤 사상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사회라는 오염원으로부터 군인을 더 차단하고 격리시키고 검열함으로써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입대 장병은 언제나 통제되어야 하고 교정되어야 하며 개선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 국가는 마땅히 그럴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다.

2009년 육군의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도 이런 인식은 계속 연장되고 확산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병 정신교육 강화 : 입대 전 ‘오도된 가치관 전환’ 집중 교육’

‘주입’이라는 말이 ‘전환’으로 완화된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맨 밑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맺는다.

‘군 복무 시 「군인다운 군인」, 전역 후 「민주시민」 육성’

전역 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가치관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는 발상이다. 우리 청년들이 입대 전에 무엇이 그리 오염되었다는 것일까? 이 업무보고서들이 발간되던 2008~2009년의 상황을 보자. 국방부는 좌익 장병을 색출한다며 각종 사찰을 강화하였다. 금지되었던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도 재개되었다. 그러다가 간첩 같지도 않은 북한 출신 여성을 검거하면서 대군 공작을 했다는 황당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온문서라고 지정된 도서의 병영 내 반입을 금지하였다. 이 조치를 헌법소원한 군 법무관들은 파면되었다. 국정교과서가 편향되었다며 교과서 개정에 개입하였다. 병영에 설치된 PC방 사용도 금지되거나 축소 운용했다.   

당연히 장병의 기본권과 인권에 대한 시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정부에서 추진하던 ‘군 인권강령’ 제정을 무효화하였고, 국방부 인권기능과 조직을 해체하거나 축소시켰다. 군 인권 정책은 군 장성들의 반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권이라는 말은 아예 금기시 되었다. 이제 우리사회는 자유주의, 개인주의가 인정되는 가운데 다양한 개성과 사상이 허용되는 민주사회로 가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군의 사고방식만 과거로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향후 군과 사회가 동질화되지 못하고 이질적 존재로서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군은 국민주권이 통제하는 집단이고, 안보를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군이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월권을 자행할 때 그 결말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위험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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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