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정권 핵심부의 군 전력 소요에 대한 인식 국방개혁

 

D&D Focus 2009년 11월호


청와대, “개혁에 실패한 군, 예산으로 통제 한다”


현 정부의 국방예산과 군 전력소요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럽다. 겉으로는 안보를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국방예산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칼질을 서슴지 않는다. 방위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면서 방위산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비리 수사에 집착하는 모양새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 정권의 핵심부가 군 전력소요와 예산에 대해 품고 있는 속내는 무엇일까?


 


   

“MB는 군의 무기도입을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 8월 20일, 오후.

청와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이상희 국방장관이 개각에서 제외되어 장관직에 유임되었다는 사실을 국방부에 알려주었다. 이로써 이상희 장관 제2기 체제가 출범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어 보였다. 이 장관을 장관직에 유임시키려는 청와대의 의중이 구체화된 것은 그간 장관 후보로 거론되었던 예비역 장성들에게서 검증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며 이 장관의 유임이 확실시 되자 김 수석은 청와대 한 출입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8월 21일에 국방부 장관실은 이 장관의 지시를 받고 서신을 한통 작성하기 시작했다. 세간에 알려진 ‘국방예산에 대한 이상희 장관의 항명성 편지’다. 8월 21일 작성된 편지를 주말에 검토하는 과정에서 장관실은 표현이 너무 과격해서 보다 완곡한 표현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월요일인 24일에 편지가 수정되었다. 그런데 애초 초안에 없던 새로운 문장이 추가되었다. 차관이 장관에게 보고 없이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재부 장관과 국방예산 증가율을 5.5%로 낮출 수 있다고 보고한데 대한 장관의 견해를 담은 문장이다.

“저는 (차관의) 이러한 부적절한 처신과 행동, 지휘계통 문란행위의 처리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사실을 아는 일부 군인들은 이것을 하극상으로까지 인식하고 있습니다.”

‘막가파식’ 편지를 완곡하게 고친다고 하면서 초안에 없던 엄청난 폭발성을 가진 이 문장이 나중에 추가된 것은 미스터리다. 이 장관은 24일에 수정된 편지에 서명을 했고 25일 오전에 인편으로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대통령실장, 외교안보수석, 경제수석에게 각기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편지 내용과 전달 사실이 그 이튿날인 8월 26일에 언론에 보도되자 청와대와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국방장관과 차관을 모두 경질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차관의 하극상 행위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은 한나라당 군 출신 국방위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국방장관실 의도와는 달리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이 나서서 이 장관을 공격하고 차관을 비호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를 만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을 비롯한 실세 참모들은 실세 차관을 건드린 이 장관을 비토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그간 국방부의 국방개혁에 대한 보고와 예산편성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내는 다수의 사실들이 드러났다.



너절너절한 무기소요들, 태반이 중복


국방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을 7.9% 증액하겠다며 30조원이 넘는 2010년도 국방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한 것은 6월말에 2020년까지 총 599조원의 국방예산을 책정한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대통령 재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6월 26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상희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보고받고 “국방부에서 세운 계획들이 아주 적절하다”고 호평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편지 사건이 터지고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 실세들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재가할 당시 이 대통령은 “경제적인 군 운용을 위해 앞으로 좀 더 국방예산 규모에 대해서는 따져보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가져온 기본계획에 서명을 한 이유는 “장관이 자꾸 서명을 해 달라고 해준 것이지, 우리는 그런 계획을 인정한 바 없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빚쟁이처럼 정부에 “돈 내 놓으라”고 말하는 그것이 바로 항명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청와대 관계자들이 군의 소요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온 군 소요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있음이 발견된다. 작년에 청와대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조세연구원에 ‘군 무기소요 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전문가들을 불러 들여 군의 소요기획에 대해 연구하도록 했다. 이 회의에서 민간전문가들과 군 관계자들은 격론을 벌였다. 민간 전문가들은 “군의 소요는 일반 부처가 도입하여 시행하는 ‘예비타당성 검토’와 같은 절차가 없다”며 소요의 객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더 나아가 “군의 무기소요를 종합한 중기국방계획은 탑다운(Top-Down) 식으로 합참이 조정하고 통제한 소요기획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각 군이 반영시킨 버텀업(Bottom-up) 방식이기 때문에 범국방 차원에서 조정된 계획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합참은 “중기국방계획은 대통령 재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제3자가 이를 검증할 수 없다”며 버텼다. 중기국방계획이 국방예산의 바이블이라고 주장하는 국방부의 주장을 청와대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 말에 청와대는 국방부에 “군의 무기소요를 검증하는 절차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합참은 무기소요 검증을 위한 3가지 방안을 마련하여 청와대에 보고했다. 합참에 검증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과 외부에 설치하는 방안, 그리고 합참 내부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 설치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 후에 국방개혁을 청와대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 실세 비서관들은 국방부가 “재래식 지상전에 몰입하며 무기소요만 부풀리고 국방개혁은 등한시 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러한 청와대의 실세 비서관들의 개혁발언의 이면에는 군 무기소요에 대한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작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상희 장관을 제키고 독자행동에 나섰던 장수만 차관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방부에는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도입 예산은 20% 깍아도 된다”는 것이다. 리베이트란 뇌물을 의미한다. 과거 무기도입의 정책결정자들이 날강도라는 이 발언이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는데도 청와대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방위산업체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바로 대통령의 무기도입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 있다”


청와대가 과거 정권의 무기도입 비리를 수사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작년 촛불시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작년 7월말에 열린 청와대 ‘촛불 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김성호 국정원장과 임채진 검찰총장 등 사정 관계자들에게 “촛불의 배후를 밝히라”고 강력히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내가 5월에도 그렇게 알아듣게 말했는데 왜 아직도 배후를 밝히지 못하냐”며 반말로 가혹하게 질타했다. 이 자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촛불시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지난 정권의 무기도입 비리를 수사하겠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은 “똑바로 하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은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를 구속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청와대와 검찰의 시각은 이러했다. 지난 김대중 정부 당시 도입이 결정된 미국제 F-15K는 애초 그 사업비가 4조원이었는데 추진과정에서 5조원으로 20%이상 증액되었다. 이미 재고처리 직전의 도태될 전투기인 F-15K 도입비가 거의 초도 생산된 전투기 가격과 비슷하게 도입된 것은 분명히 바가지를 쓴 것이다. 증액된 1조원 이상의 사업비는 거액의 정치자금으로 김대중 정권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리베이트 20%”라는 표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이다.

뒤이어 10월 국정감사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F-15K 도입에 대한 비리 의혹 자료를 당 소속 국방위원들에게 배포했다. 국정감사에서 의혹을 규명하라는 얘기다. 이미 작년 여름부터 F-15K 제작사인 보잉사의 국내 에이전트 8개 업체에 검찰이 국세청 7국을 동원하여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이 회사들과 보잉사 거래내역이 담긴 장부를 압수해 간 터였다. 몇 개월에 걸친 내사 끝에 보잉사와 관련된 비리의 증거가 나오지 않자 조풍언 씨는 올해 초에 검찰에 풀려났고 에이전트 업체들도 거액의 세금만 무는 선에서 이 사태는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해 검찰은 대대적인 무기도입 수사에 재시동을 걸었다. 이와 관련하여 검찰 출입기자들은 “최근 몇 년간 큰 건의 군수비리가 없어 이 분야 수사에 대한 전문성이 갖춰지지 않은 검찰이 올해 재수사에 착수한 것은 청와대의 의중에 따른 것 같다”고 관측한다. 특히 대검찰청 등 관련기관의 수사 관계자들은 무기도입 절차와 에이전트들의 로비 방식에 대해 학습하느라고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에는 기무사령부가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된다. 보잉사 에이전트 업체들로부터 비리를 발견하지 못한 검찰은 평소 국방위 의정활동에서 보잉사에 편향된 발언을 자주했던 S의원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리베이트 20%”는 방산업계에 대한 저주의 주술처럼 사라지지 않고 검찰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검찰은 어떤 식으로든 이를 입증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던 중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압수수색 열풍이 방산업체와 안보관련 기관들에 불어 닥쳤다.

검찰과 기무사령부는 8월에 민간 안보연구소와 방산업체, 그리고 에이전트로 고용된 예비역 장성들을 대거 소환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하거나 검찰에 소환하고 있다. 지금까지 압수수색을 당했거나 검찰에 소환되는 대기업으로는 S사, D사, L사가 있고 A연구원은 군사기밀 누설로 수사를 받고 있다. A연구원에 한국형전투기사업(KFX) 기밀을 설명한 국방부 국방개혁실의 실무자도 이미 입건된 상황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 외에도 해군 무인정찰기 도입사업을 비롯한 몇몇 사업은 이미 관련자를 구속시켜 놓은 상황이다.

군수비리를 지속적으로 수사하는 청와대와 검찰의 의지가 정착되어 가는 현 상황을 보면서 업계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군수분야의 문제점을 모아서 보고하는 라인이 있는 것으로 믿는 분위기다.



군인도 못 알아듣는 “다기능 고효율 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재래식 무기 군축”을 북한에 제안했다. 비록 일회적 발언으로 끝난 사안이지만 생뚱맞은 이 발언이 나온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 한 출입기자는 이 대통령의 군축 발언은 “7월에 국방예산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검토하면서 갖게 된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남북한 군축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국방예산에 대한 불신이 이 발언의 더 큰 동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 축사에서 “우리 군이 다기능 고효율 군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작년부터 국방개혁을 검토하면서 군에 주문한 것은 여러 가지다. 작년 하반기에는 “경제를 살리는 군”을 강조했고, 올해 초에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군”을 강조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군에 “녹색성장을 위한 환경군” 구호가 나왔고 군에 자전거 타기 운동이 일어났다. 군의 임무도 과거의 전쟁억제 뿐만 아니라 ‘북한 급변사태 관리’라는 임무가 더욱더 강조되었는데, 이는 청와대의 지침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임무가 추가되다 보니 이제 와서 군 본연의 임무와는 동떨어진 군 운용의 방향이 다변화되어, 이런 것들을 다 쓸어 모아 ‘다기능 군’이라고 말해진다. 결국 군의 임무와 기능에 군 본연의 군사적인 내용보다 비군사적인 내용을 잔뜩 집어넣고 군을 경제의 하위개념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의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2롯데월드와 같은 사안에서도 드러났듯이 극단적 경제주의자의 시선으로 안보를 접근하는 청와대의 기류가 역력하다. 이상희 장관 편지 사건을 보면서 안보와 경제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언론기사도 눈에 띈다. 청와대에 보고 들어간 적 이 있는 국방부와 합참의 관계자들은 “청와대에 가서 엄청 깨졌다”다면서 “청와대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돈 없다’였다”고 말한다. 청와대는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호모 이코노미스트, 국방부는 ‘인간은 안전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호모 밀리테리쿠스처럼 아예 유전자가 다른 동물인 것처럼 행세한다. 다기능 군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청와대 미래기획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와대에 국방개혁을 총괄하는 참모는 없다고 보아도 된다. 그런데 국방부에 숙제만 내는 참모들은 여럿이다.”

국방개혁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 갈수록 모호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국방예산을 줄이기 위한 청와대의 방침은 굳어져 가고 있다. 군 개혁을 통해 효율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예산으로 국방부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발본색원함으로써 낭비의 요인을 줄이는 것에도 청와대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때마침 김태영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일류 국방경영”을 외치고 나왔다. 그러나 이것도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직은 안개 속이다.

국방의 장기적 비전이 결여된 채 정치논리로 추진된 군 개혁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 모두 불안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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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