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일본 기사 베끼기, 오염되는 북한 정보 자료실

 


가끔 한반도 안보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을 나가 평론을 하는 필자는 요즘 심각한 자괴감에 빠진다. 시사 프로그램의 PD와 작가들의 일본 언론의 북한 관련 기사에 대한 ‘맹목적인 베끼기’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 주요 언론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하는 북한 관련 기사들을 아무런 검증 없이 한국의 조․중․동이 베끼고 나면, 그 다음에 방송이 이를 받는 식이다. 일본발 북한 뉴스가 초래하는 정보 오염, 정보 공해의 폐단에 대한 아무런 경각심 없이 그저 ‘북한을 까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최근 보도 행태를 보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8월 중순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비서의 고모인 김경희 인민군 대장이 병에 걸려 중국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66세의 권력 실세인 김경희가 질환으로 물러날 경우 북한 권력 내부에서도 심각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덧붙여졌다. 이 기사를 한국 언론이 대부분 받아 적었다. 그런데 8월 24일에 제60돌 8․25 경축행사에 김경희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버젓이 나타나 공식 업무를 수행했다. 산케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었음이 판명된 것이다. 그런데 8월 26일에 필자가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시사 프로그램의 사전 질문지에는 ‘김경희 와병설과 북한 권력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례다. 북한의 리영호 총참모장이 지난달 경질된 사건과 관련, 최근 일본의 교토통신은 7월 8일에 김정일 위원장을 참배할 적에 리영호가 김정은과 같은 앞줄에 서서 ‘불경죄’로 숙청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리영호가 김정은과 같이 앞줄에 서는 장면을 보도한 7월 8일자 노동신문 사진까지 입수했다고 덧붙였다. 이걸 국내 언론이 다 받아 적었다. 그런데 실제로 7월 8일자, 9일자 참배 당시 사진을 게재한 노동신문에는 리영호가 앞줄에 서 있는 사진이 없다. 맨 앞쪽에 서 있는 사람은 김정은과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였다. 사실이 아닌 허위보도를 한 것이다. 이걸 확인만 하면 언제든 알 수 있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국내 신문이 받아 적으니까 이번에는 방송이 필자에게 보낸 질문서에 “단지 앞줄에 서있다고 숙청하면 가혹한 것 아니냐”고 적혀 있다. 북한을 까는데 이 허위보도를 활용하는 행태가 또 드러났다.

위 두 가지 말고도 일본 언론의 비슷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항상 필자가 방송을 대하면서 겪는 애로사항 중 하나는 앵커가 전하는 북한 소식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질문의 99%는 일본 언론이 1차로 보도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 국내 조․중․동이 받아 적은 것이다. 올해 일본 언론의 북한 관련 허위보도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4월의 ‘북한 핵실험 임박설’ 보도일 것이다. 사실 이 보도는 로이터 통신이 먼저 보도했는데, 일본 언론이 더욱더 부풀렸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오기 이전인 4월 7일에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특사에게 북한이 “핵실험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사실을 모른 일본은 “북한 2~3주 후 핵 실험이 확실시 된다”고 단정적인 보도를 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북한이 중국에도 핵 실험을 안 한다는 입장을 통보한 뒤였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김일성 출생 100주년(4월 15일)을 맞아 평양 열병식에 선보인 미사일이 종이로 만든 가짜라고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있자 국내 언론이 또 이것을 베끼는 일이 벌어졌다. 요미우리 보도의 출처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뒤에 라이트 박사는 "해당 미사일이 모조품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일본 언론이 자신의 주장을 왜곡했음을 지적하고 나왔다. 라이트 박사는 "서류상으로 존재하는(on paper) 미사일이라고 했는데 종이(paper) 미사일이라고 잘못 전달됐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일본 언론의 허위보도는 부지기수이지만, 국내 언론이라고 해서 북한 관련 사실에 대해 검증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마구 남발하는 추정 기사는 심각한 정보 공해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북한 깎아내리기에는 일부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 경악스럽다. 보수언론과 학자들의 북한에 대한 보도와 발언에는 일관된 특성이 있다.

첫째, 북한은 비정상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곧 붕괴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북한 내부 권력의 혼란, 권력 암투, 주요인사의 숙청 내지 와병설, 사망설에 대해서는 검증 없이, 검증 없이 보도하거나 과장하고 부풀린다. 여기에는 외신, 특히 일본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보도들이 든든한 동맹군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는 이 점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보도의 시점에 있어 선제성을 중시한다. 북한은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없는 '암상자(black box)'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이건, 거짓이건 먼저 말한 측이 여론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부정확하게 기사를 내보내더라도 당장 반론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이전에 자신을 편견이 담긴 추정 기사를 먼저 내보내야만 여론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 특권을 누린다. 이건 보수언론의 특권 중 핵심이다. 따라서 부정확한 외신 베끼기에 일말의 성찰이나 반성도 없다.

셋째, 실제로 북한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에 대한 전문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이데올로기, 편 가르기, 조롱하기, 반대편에 대한 윽박지르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하나의 체제로서의 북한, 합리적 행위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분석과 판단 능력은 매우 뒤떨어진다. 이런 식견은 한반도 위기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예컨대 북한이 군사적으로 우리를 위협했을 때, 그것은 우리의 특정한 행동에 대한 북한의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 측 요인을 생략하고 북한 측 요인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게 되니까 위기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불구 상태에 빠진다.

이런 세 가지 특성을 기반으로 나오는 북한 관련 뉴스는 거의 구호 수준이다. 북한의 억압적 통치도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겠지만 그와 닮은꼴의 전체주의적 보도 역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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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