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육군 패권주의와 해공군의 저항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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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12. 6. 12.

 

육군의 국방개혁 수정 주도

 

노무현 대통령 당시인 2005년에 작성된 ‘국방개혁 2020’은 2020년까지 총 271조원의 전력투자비를 투입하여 자주적 방위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 되면 2025년경에 출현하게 될 한국의 목표군은 첨단 지휘통제(C4I) 능력을 기반으로 자주적 전쟁지도능력을 발휘하고, 북한의 핵심목표에 대한 정밀억제타격력을 보유하며, 센서(ISR)로부터 타격력에 이르는 복합체계를 보유한 선진군대의 미래상이었다. 이를 통해 미군에 핵심 전쟁수행능력을 의존하지 않고도 자주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국방개혁 2020을 완결하려면 적어도 매년 8~9% 정도의 국방예산을 증액시켜야 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지난 정부의 국방개혁안에 비판이 쏟아졌다. 비현실적인 국방예산 증가라는 둥, 지상군 전력을 등한시하고 값비싼 무기를 사용하는 해․공군에 대한 지나친 배려라는 둥, 미국과의 연합방위를 소홀히 하는 좌파 정책이라는 둥 갖은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현 정권 초기에 다시금 국방정책의 전면에 등장한 육군 작전세력들은 지난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2008년 4월에 합참 작전본부가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그 첫 번째 사례다. 비밀보고의 핵심내용은 “북한군이 기존의 군 구조를 수정하여 경보병부대로 재편되고 있고, 그 결과 북한 특수전의 위협이 괄목할만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북한군 제2제대에 속해있던 특수부대가 제1제대로 통합됨으로써 경보병 위주의 특수부대로 재편되었다는 것을 그 골자다. 또한 북한이 전방군단에 경보병 사단을 추가로 창설하고 전방사단의 경보병대대를 연대급으로 증편하였다는 사실이 그 구체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재래식 지상전 위협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서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 한 건이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에 미친 영향은 심각했다. 섣불리 해․공군 전력을 증강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유별나게 대북 열세인 지상군 중심으로 국방정책을 전환해야 함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해 11월로 완결되기로 되어 있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의 대통령 재가를 앞두고 10월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비밀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다. “북한군의 지상전위협에 비해 한국은 열세”라며, “현 국방예산 구조 하에서는 2020년이 되어도 북한과 대등한 지상전 전력 확보가 어려우므로 재래식 전면전 위협에 대비하는 전력 보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향후 남북 간의 충돌은 대규모 지상전 교전의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므로 지상 전력을 보강하는데 국방재원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보고서에서는 밝히고 있다.

 

청와대 제출된 비밀보고서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국방부와 합참이 국방 선진화가 아니라 재래식 지상군 위주의 전통적 군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경악했다. 그해에 국방부의 국방개혁안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거부한 청와대는 북한의 재래식 지상전력 위협보다 핵과 미사일과 같은 비대칭위협, 북한 불안정사태에 대비하기를 원했다. 육군의 차기 핵심 주력인 2개 기동군단 창설로 전차, 자주포, 장갑차에 돈을 쓰려는 국방부와 의견 충돌을 빚은 청와대는 국방개혁안 재가를 미루다가 2009년 6월에 마지못해 국방부의 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묘한 단서를 달았다. “국방예산에 관한 사항은 좀 더 두고 보자”는 아리송한 말과 함께 마지못해 서명을 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는 국방개혁안이 대통령 재가를 받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혼란은 이후 핵심적인 국방목표와 정책을 정하지 못한 채 육․해․공군 간에 서로 자군의 무기를 도입하려는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초래했다. 특히 한미연합사가 수행하던 북한 특수부대 차단, 대화력전 임무가 한국군으로 이양되면서 서로 자신이 작전을 주도하려는 군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룡대의 각 군에 있어서는 무기도입의 최대 라이벌은 북한군이 아니라 같은 건물의 다른 층을 사용하는 유니폼이 다른 군이었다.

2005년의 국방개혁 2020 수립 이전에 육군 군단의 작전범위는 가로 30km, 세로 70km다. 국방개혁 2020에서는 이것이 100km×150km로 확장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현 정부의 국방개혁 2030에서는 더 확장된 150km×250km로 작전지역이 설정되어 있다. 이렇게 육군이 종심을 깊게 타격하려면 신형 자주포와 다련장 등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포탄의 고도는 2만 피트에 육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 우리 군의 공중 공역관리에서는 1만 피트 이상은 공군 영역, 1만 피트 이하는 육군 영역이다. 따라서 작전 영역에 대한 재조정하는 새로운 전장운영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전혀 준비하지 않고 육군의 화력을 증강하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이런 계획을 수립하면서 현 정부 초기에 합참은 “육군의 포병작전에 방해가 되니 공군은 비키라”며 계획을 변경했다.

 

아군과 경쟁하는 계룡대

 

이렇게 되면 전시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육군이 작전을 주도하게 되면 아군기가 격추될 위험 때문에 매우 긴요한 항공작전이 마비된다. 또한 한 방향으로만 날아가는 미사일과 포탄은 되돌아오는 법이 없기 때문에 산 후면에 은폐되어 있거나 이동 중인 표적을 타격할 수 없다. 항공력에 의해 정밀폭탄이나 미사일로 타격이 요구되는 작전을 수행할 수 없이 값비싼 미사일을 아무 곳에나 펑펑 터뜨리는 비효율적 작전으로 개전 초기에 작전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 물론 미사일 전력을 증강하려는 육군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 항공기는 연간 140일에 달하는 한반도의 악천후에서는 작전이 제한되지만 육군 화력은 비가 오고 벼락이 쳐도 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고려한다면 항공기도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다. 육군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비가 올 때 전쟁하면 된다. 그러나 수십억원짜리 미사일을, 그것도 성능이 의문시되는 불확실한 무기를 앞세우다가 항공작전의 기회를 잃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2010년 11월의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공군은 북한의 핵심목표를 은밀하게 타격하기 위해서는 5세대급 전투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군 역시 함정에서 북한 핵심 목표를 타격하는 함대지 타격전력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미연합사가 작전을 수행하던 당시에는 각 군 간에 이렇게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는데, 임무가 한국군으로 이양되는 순간 각 군이 제각기 무기소요를 제기하며 경쟁적으로 예산확보에 몰입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각 군의 이러한 중복된 노력을 합참이 나서서 조정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지 각 군이 개별적으로 청와대에 근사한 무기도입 계획을 제출하여 예산을 확보하는 로비가 일반화되면서 한국군 차원의 체계적인 전장운영 개념이 실종된 것이다. “누가 전장을 지배하는가”라는 물음에 한국군은 아무도 주인이 없는 전장, 오직 무기도입만 있는 전장으로 답하고 있다. 최근 육군이 대통령 승인을 받은 2조 5000억원 규모의 미사일 전력증강도 한미 간에 전력증강의 가이드라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전략동맹 2015’와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한미연합 작전과도 무관하다. 

이와 유사한 중복 현상은 육군과 공군의 무인항공기 도입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북한 특수부대를 누가 차단하느냐에 따라 육군과 해군 간에도 중복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육군의 대형공격헬기 도입과 해군의 함정 화력 보강이 바로 그것이다. 작전의 주도권과 무기도입을 둘러쌓고 육군 패권주의와 이에 저항하는 해․공군의 반발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우리 군 전반에서 각 군의 노력을 통합하기 위한 군의 합동성이 결여되는 대혼란이 현 정권 말기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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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