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 백용기 거붕학원 이사장의 ‘대륙 경영론’ 인터뷰
2011.02.21 14:50 geong2002 Edit
한국, 대만과 관계개선 안하면
중화경제권이 한국 외면할 것!
“사람이 나이 40이 넘으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하지 말고 기존 친구에게 더 잘해주어야 돼. 그래야 좋은 일이 생겨”
백용기 거붕학원 이사장의 말이다. 백 회장은 교육자로, 사업가로, 문화예술계 인사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한국과 대만간의 경제외교의 주축인 ‘서울 타이뻬이’ 부회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30년 넘게 대만을 넘나들면서 그는 화상자본의 엄청난 위력을 체험했다. 그 거대자본의 주축은 대만이다. 그들과 손잡지 않으면 절대 한국은 중국에 진출할 수 없다. 우리가 한 때 배신했던 옛 친구에게 이제라도 잘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서 앞으로 한반도 주변 경제의 트렌드와 대한민국 성공의 경로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0월 24일, 서초동의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뛰어난 달변가
인터뷰를 수없이 진행해 본 기자로서는 이번 인터뷰만큼 완벽하게 상대방에게 제압 당해본 적이 없다. 백 회장이 그만큼 뛰어난 달변가라는 얘기다.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핵심을 전달하되 적당한 유머와 비유를 양념으로 섞는다. 백 회장은 평소에 누구를 만나더라도 언제든 자기주도로 대화를 끌어나가는 비범함을 갖고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 국제 비즈니스에 능통한 사람으로서의 풍모다.
그에게 먼저 대만이 왜 중요한지 물었다.
- 대만이 오랜 형제국가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는데요,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때 장개석 총통이 많은 도움을 준 바 있습니다. 두 분은 호형호제하는 인간관계였어요. 조선이 독립이 되었다고 하니까 장 총통이 김구 선생에 보자기에 싸서 뭔 선물을 주었습니다. 돈이나 황금이 들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반포지교의 깊은 뜻을 담은 뿔이 들어 있었지요. 황금보다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항일 투쟁을 하면서, 그리고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한국과 대만은 언제나 형제였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대만에게 일방적으로 국교단절을 통보했었지요?
노태우 정부 때 적대관계였던 중공이 국제사회 힘을 갖고 등장하면서, 우리는 대만을 쫓아 보냈습니다. 통보하고 나서 일주일 만에 대사관을 쫓아 보냈습니다. 포악무도한 짓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대만 대사관의 대령 무관하고 인관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만나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한국인 입장에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같이 울었어요.
-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작년에 대만에 75억불 무역흑자를 보았습니다. 대만에서 한국에 연간 50만명이 방문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반 정도 갔습니다. 삼성전자만 대만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 모릅니다. 삼성반도체 개발 발표도 대만에서 했습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부에서 대만 담당자는 과장급 밖에 안 됩니다. 나라 이름도 차이나라고 하고 그 옆에 괄호를 치고 타이페이. 도대체 이게 말이 안 됩니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권력 지향적, 현실 지향적 속성이 문제였어요. 너무 장사치들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장기적 안목이 부족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에 대한 시각이 변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만 친구들만큼 인간적인 부분이 없었습니다. 거기가면 서로가 존중과 예의를 숭상하는 문화가 우리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습니다.
- 서울 타이페이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자 출신인 천수이벤은 천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타이페이 시장 선거에서 라이벌에게 졌습니다. 그 후 한국에 왔다가 김종필 씨등 유력 정치인을 만나고 한국과 상당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대만 총통이 갑자기 사망했어요. 그러니 시장을 하고 있는 라이벌이 총통 선거에 나올 수 없고, 그래서 천수이벤이 출마해 어려움 없이 당선될 수 있었지요. 전화위복이었습니다. 그의 총통 취임식 때 한국에 와서 만났던 손병두 서강대 총장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과 제가 갔습니다. 취임식 행사차 가서 대만 유력인사들과 함께 서울 타이페이 행사를 가졌습니다. 8년 전 일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한국정부가 대만을 소외시켰으나 민간이 창구가 되어 주자고 결의했습니다. 정기 항공노선을 복원하고 경제사절단, 무역사절단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인간경영에 눈떴다
- 당시 대만과 관계를 발전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유대인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세계경제에서 화교자본, 즉 화상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손입니다. 그런데 화상들의 핵심은 대만이 주축입니다. 주로 중국에 자금을 투자한 기업이 대만기업이기도 하고요. 제가 현장에서 깨달은 것은 언젠가 대한민국이 저 친구들 도움을 받지 않으면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아웃될 것이다, 라는 겁니다.
- 대만의 경제가 기초가 튼튼하다는 평인데, 한국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사 문화가 잘 정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왕영경 회장을 지칭하는 ‘제조업의 아버지’와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아주 많아요. 기업주가 존경을 받는 거죠.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부패지수는 우리와 비슷하나 우리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경제인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정치보복이 없어요.
사회적으로는 지진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임에도 자기 나라를 지켜나간다는 자긍심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국민성 자체가 이웃을 존중합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가 아파서 못 견디는 한국 문화는 갈등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면 폼이 나야 하는데 여기는 폼의 문화가 아닙니다. 아주 실용적이예요. 저는 천수이벤을 4번 만났는데,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을 휘황찬란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수이벤은 무역수치까지 다 기억하고 이를 대화중에 구체적으로 인용합니다.
제프리 쿠(쿠엔송)라고 세계 금융의 황제라는 대만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외신 여론조사에서 아시아 1위의 영향력이라더군요. 우리로 말하자면 전경련회장도 지냈고 소프트뱅크회장도 역임했는데 우연히 그와 형․동생하자는 말이 나왔는데 제가 나이차이도 나니까 아들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인간적인 의미 잘 만듭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접합니다. 어떤 한 개인의 타이틀, 국회의원, 검찰총장, 이런 것이 아니라 인간 백용기가 누구냐, 이런 걸 중시합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인간경영, 대국경영적 관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직함 따지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대접도 너무 소홀하더군요.
서울 타이페이클럽 수석부회장으로서 백 회장은 올해 4월 15일부터 4박5일간 대만경제특사자격으로 경제교류사절단 30여명을 이끌고 대만을 국빈 방문한 바 있다. 방문에서는 중화민국 제12대 소만장 부총통, 중국신탁금융공고공사 제푸리쿠 회장, 입법원 왕금평 의장, 경제부 경제무역국 황지붕 국장, 원웅그룹 조등웅 회장 등 대만 정․재계 유명인사들과 만남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과 대만과의 투자유치 및 경제협력 증진활동을 보였다.
또한 백 회장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11년 재정된 대만의 건국기념일인 10.10일(쌍십절)국경일 기념행사를 지난10일 오후6시 30분 주한대만대표부 주최로 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 홀에서 내외빈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LCD TV 세계시장 80%는 대만이 장악
- 대만과 우리가 협력해야 할 분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IT 산업은 대만과 협조 안하면 안 됩니다. LCD TV 전 세계 소비 80%는 대만이 잡고 있거든요. 또한 중국에 우리 기업이 단독으로 가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대만을 업고 가면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맹방과 우방이 있는데 이를 등한시한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지요.
우리의 현명한 기업들은 이점을 잘 간파했습니다. 크라운제과가 바로 대만하고 합작하면서 중국에 투자한 사례고요, LG 디스플레이 역시 멋지게 드라이브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자금과 기술을 갖고 중국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간 기업들은 전망이 밝습니다. 반면 우리 홀로 직접가면 중국의 법률, 사회적 관계를 잘 모르고, 조선족에게 당합니다. 대만의 영업력, 한국의 기술력, 중국의 마켙과 노동력이 결합하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 천수이벤 총통 시절에 양안관계가 긴장되어 이러한 경제의 이면은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양안관계 긴장이라는 일시적 현상입니다. 천수이벤 총통이 본토를 회복해야 한다며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천수이벤 총통 때 쌍십절 행사에서 군사퍼레이드 처음 하면서 내풍, 웅풍 미사일을 과시했습니다. 유사시 핵 탑재 가능한 무기이지요. 대만은 스스로 유사시 3~5개월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수이벤이 국내 정치 때문에 마지막 카드로 썼던 거예요.
마잉주 총통은 그런 정치적 논란을 역사 후에, 즉 후세로 미루어버렸습니다. 보십시오. 경제적으로는 대만과 중국 간에 직항이 안 떠서 그렇지 다 돌아서 투자하고 있고 중국 사람들이 와서 대만 물건 다 삽니다. 싹쓸이하고 있어요. 이걸 보지 못하고 무슨 양안관계 긴장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 착시현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양안은 형제국입니다. 양안을 왔가 갔다하는데 연간 8만명의 쿼터가 정해져 있습니다. 양안 간에 다리도 놓는다고 합니다. 대만 국민 중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은 3~5% 밖에 안돼요. 절대다수가 현상유지를 원합니다.
화교자본은 세계의 주류문화
- 대만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갖게 됩니까?
우리는 촛불문화, 노사문화, 노노문화,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옥토에서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들은 지진이 아는 나라에서 지키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하고 다릅니다. 유태인 이래 화상은 전 세계에 어디 가서도 주류가 되었어요. 라스베가스나 어디 가서 보아도 한인촌은 미아리에 있다면 그들은 종로, 을지로에 있는 겪입니다.
주룽지가 있을 때 전 세계 화상들을 남경에서 끌어 모아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우리가 이념을 떠나 경제적으로 뭉칠 때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 이렇게 연설하자 화상들이 열렬히 반응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식의 벽을 느낍니다. 더 정신 차려야 합니다.
백 회장의 말을 듣다보면 흔히 국제정치다, 안보논리다 하는 것들이 실질적인 경제의 흐름을 상당부분 반영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국제 비즈니스의 현장은 탁상의 이론가들보다 역동적이며 또한 정확하다. 한 때 정부가 잘못한 일을 민간이 나서서 바로잡겠다는 것도 대단한 용기와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동북아 정세가 이렇듯 급변하고 국제화되고 있는 시대에, 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내일의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여지는 인터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