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괴담의 진짜 원조는 누구일까? 기고

 김종대
북한 특수부대가 국방장관 암살을
도모하려고 국내에 잠입했다는
유력언론의 괴담은 점잖은 편

‘김정일 뇌사진 해킹…5년내 통치력 상실’ 등
청와대 정보보고가 이루어지고
고위인사끼리 만나 불완전한 추정을 퍼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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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 보수언론은 ‘좌파의 괴담’이라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3년여 전의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과 작년의 천안함 논쟁을 들춰내면서 종북좌파의 주장은 괴담이고 자신들의 주장은 ‘과학적 진실’이란다. 첫 희생자인 미네르바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한 언론인, 천안함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한 과학자와 언론인, 최근에는 ‘나꼼수’ 출연진에 이르기까지 전부 괴담이란다.

주로 미국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을 괴담으로 몰고 가는 동안 보수언론은 어떤 괴담을 퍼뜨렸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 특수부대가 김관진 국방장관 암살을 도모하려고 국내에 잠입했다는 유력언론의 괴담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김 장관은 국회에서 소신 있게 “그런 보도는 추정에 불과하다”며 이 보도가 괴담임을 밝혔다. ‘종북 조종사가 모는 여객기’라며 1억 연봉에 가족이 있는 조종사가 여객기를 북한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는 식의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게재한 것은 숫제 괴담을 넘어 폭력이다. 간첩들이 인천의 군부대를 폭파하려 계획했다는 설로부터 김정일 체제를 찬양하는 군 고위 장교가 있다는 괴담은 또 어떤가? 실제 그런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진 적이 있는가? 대학원에서 북한 문제를 연구하려는 병무청 직원도 그런 괴담 시리즈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런 식으로 보수언론에 의해 한번 거명되기만 해도 당사자와 그 가족은 치명적 피해를 입지만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다.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괴담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고, 정부와 보수언론이 이를 애용하기 때문에 민주적 질서가 파괴된다.

더 치명적인 괴담은 따로 있다. 정부가 만들어낸 괴담이다. 3년 전에 국가정보원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뇌 사진을 해킹으로 구했다며 “5년 내 통치력 상실”이라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냈다. 여기에다가 “쓰러진 김정일은 부축을 받아 양치질은 가능하다”는 그럴듯한 상황묘사도 곁들여졌다. 종합적인 분석이 아니라 단편적인 첩보만으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에 청와대도 반신반의하다가 곧 중독되었다. 그래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통일부 장관, 외교부 장관이 미국 쪽 고위인사를 만나 정보기관의 불완전한 추정을 퍼 나르며 북한 위기설을 조장했다.

이 괴담의 위력은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유감없이 드러났다. 포격사건이 벌어지기 사흘 전에 국정원은 또다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로 보냈다. 청와대는 김정일 위원장의 신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자 북한 권력층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해안포를 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이 때문에 서해가 아닌 휴전선 전반까지 살펴보느라고 위기관리의 핵심인 타이밍을 놓쳤다. 사건을 확대해석하면서 우왕좌왕한 청와대의 이상한 위기관리는 ‘북한 괴담’에 합리적 이성과 리더십이 마비된 결과다.

천안함 사건 당시 유력언론의 ‘인간 어뢰에 의한 천안함 피격’이라는 해괴한 분석은 괴담에 목마른 자들의 작품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북이 영종도에 화학무기를 쏠지 모른다”는 관변 학자들의 괴담에 피난 왔던 연평도 주민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청와대가 이를 남의 일인 양 방조했다.

이런 청와대는,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조씨가 왕이 된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의 괴담을 만들어낸 훈구파들에게 끌려간 중종을 떠올리게 한다. 철학이 없는 권력층은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괴담에 귀기울인다. 그런 권력층을 흔들어대는 보수언론은 중종 때 훈구파의 역할을 자임한다. 언론과 정보기관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조장하고 권력은 여기에 반응하는 기묘사화 전야의 풍경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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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