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민논평]군사적 아마추어리즘과 위기관리 기고

 다섯 개 군사계획이 있는 유일한 지역

 

외교나 통일정책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는 기제이다. 그러나 위협을 관리하는데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하는 정책이 바로 ‘안보정책’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안보정책은 여타 국가와 달리 매우 복잡한 특징이 있다. 한미연합 방위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안보정책, 특히 군사력 운용은 정부의 자율성이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된다. 군 작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와 작전, 무기체계의 태반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반도 위기상황을 통제하는데 상당한 장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리 정부 단독으로 서북해역, 즉 북방한계선(NLL)에서 위기관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우리는 동맹국인 미국에 의존함으로써 비로소 위기를 통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체제 속에서 국가이익이 다른 한미는 각기 북한에 대해 상이한 군사적 목적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당면한 대북 군사목표를 영토 방위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유사시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우선적으로 갖추고자 한다. 따라서 한국 군부는 전통적 전쟁관에 입각한 전면전 대비계획인 ‘작전계획 5027’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미국은 미 본토에 위협에 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위협에 주목하면서 비현실적인 재래식 전쟁을 벗어난 보다 현대적인 군사계획이라 할 수 있는 ‘작전계획 5026’, ‘5028’, ‘5030’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더불어 핵에 대한 ‘반확산’의 관점을 구현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북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고 하는 ‘작전계획 5029’에도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하나의 전구(戰區 theater)에 불과한 한반도에 무려 다섯 개의 군사계획이 존재한다는 얘긴데, 지구상에 이런 지역은 오직 한반도 밖에 없다. 이 계획들 중 무엇이 한반도 안보에 있어 가장 우선적인가를 두고 매년 8월의 한미군사연습(프리덤 가디언)에서는 한미 군부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양한 군사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의 안보문제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전시와 평시를 망라하는 다양한 계획들에 대한 요구가 각기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부가 아니다. 작년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한미 양국은 기존의 군사계획들로는 북한의 국지적 도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는 한미의 정보공조 체제도 가동하지 않았고 공동의 위기대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 4월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시험 발사할 당시에 한미 간에 공동 운영되었던 ‘공통작전상황도(COP : Common Operation Picture)도 준비되지 않았고, 한미는 다만 유선 전화로 7시간 동안 위기관리를 협의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은 한미는 작년 12월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 방문 시에 한미 공동의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다시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국지도발계획은 1997년부터 북한의 국지도발 예상시나리오에 따른 대비계획으로 운용되어 왔으나 예고 없는 국지적 충돌 시에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멀린 의장은 한민구 합참의장과의 회의에서 한국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전(2014년까지), 전환 시점(2015년), 전환 이후(2016년 이후)로 시기를 구분하여 국지도발계획이 수립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이를 우리 합참은 수락함으로써 적어도 3개 이상의 군사계획이 새로 수립될 전망이다. 북한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에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심리가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일 공동방위체제, 즉 새로운 집단방위를 구현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마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군사계획이 존재하는 것인지, 전문가들조차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 계획들 하나하나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완결 짓고자 하는 다양한 의도와 군사사상들이 녹아있다. 개인으로 말하자면 생명보험, 교육보험, 고용보험, 자동차보험 등등 여러 가지 보험을 늘려가는 것과 같다. 문제는 보험과 달리 군사계획은 무엇이 하나 추가될 때 기존 것을 없애지 못하고 남겨 놓음에 따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청일전쟁과 유사한 위기구조 출현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는데 군사계획의 지위와 역할이 높아짐에 따라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외교안보는 한미 군사동맹에만 우리의 생존을 맡길 수 없다는 인식과 자각으로 새로운 지평을 넓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대전략의 수립, 외교의 다변화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적극적인 북한 관리, 북방경제권으로의 경제영토의 확장 등 외교안보정책이 진화함으로써 국운융성의 기틀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안보정책의 진화 방향은 뚜렷하다. 한미동맹을 한 축으로 하면서 여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보자는 결의와 자각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시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와 균형의 외교’ 등이 모두 그런 인식의 산물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과 번영의 기틀을 다지면서 중심국가로 도약하자는 취지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이러한 20년 진보의 맥락은 단절되면서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국가의 자율성이 침해하고 장기 국가전략도 모호하게 하는 불안한 구조가 심화되었다.

여기에는 북한이라는 비정상국가의 ‘악명’과 ‘나쁜 버릇’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을 관리할 수 있는 준비된 능력과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인 2009년 11월에 우리 측의 과도한 대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청해전’이 발발하였고, 이를 통해 북한 군부의 보복의지가 고양되어 이미 서해는 위험한 바다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야 하지만 당시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또한 수시로 보도되는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이라든지, 북한 정권에 대한 조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악의적 기사들은 북한이라는 위협을 관리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한반도의 화약고라 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관리함에 있어 정부 내의 어떤 통제도 없이 국방부 단독으로 지난정부의 ‘위기관리 정책’을 함부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제껏 서해는 단순히 남북 교전이 발생했을 때 이기고 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위기관리’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1년이 지난 2009년 2월부터 서해에서의 군사적 지침은 ‘반드시 이긴다’는 야전군의 전승의지에 기초한 압도적 힘을 앞세운 군사계획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압도적 힘을 앞세우면 북한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것이라는 군부의 시각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남북관계를 낙관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국방부였다. 이명박 정부가 과연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관철시켰는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북한에 대한 안이함은 서해에서 연속적인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비록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교전이 발생하면 군사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확전을 방지하면서 북한에 적절한 응징을 함으로써 추가적인 도발을 예방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그러나 정보와 작전의 전문성이 결여된 군사 지도부와 청와대의 좌충우돌 식 위기관리가 조합되면서 우리 장병과 민간인들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위기관리가 이루어질 바라면 이명박 정부 초기의 국방부의 서해에서의 군사지침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인지, 군사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허장성세였는지, 의문이 가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발표한 정부의 대북 군사조치 중 가장 중요한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군사연습이나 심리전 대북방송은 5개월 이상 실행되지 않았다. 지키지도 않을 대책을 남발한 결과였다. 결국 우리 단독의 능력으로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미국 항공모함을 서해로 끌어들이고, 유엔 안보리에 북한을 제소했지만 이는 중국의 반발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정부의 자신감이 결여된 궁여지책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추가도발을, 주변국으로부터는 외교적 고립과 냉전적 대치구도를 초래해 우리 정부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심하게 말하면 청일전쟁 전야와 같이 불안한 위기구조가 심화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구조에서 우리 정부가 정세를 관리하고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창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지키지도 않을 대책을 남발하는 군사적 아마추어리즘을 혁신하여 보다 실효성 있는 위기관리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청와대에 위기관리수석을 신설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로 보여 진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를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는 비전과 철학,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안보정책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의 외교력, 경제력, 정보력을 융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북한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는 새로운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한반도는 국지도발의 위험이 상존하지만 남북 정권은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북한에 대해 안보정책 만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더불어 다양한 군사계획의 실효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여러 안보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지상군에 편중된 군사대비태세는 실효성 있게 가동되지 못하였다. 북한과의 대량 전면전에 고착된 경직된 군사계획은 국지적 충돌 시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힘을 앞세운 군사지침도 의표를 찌르는 북한의 도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대비태세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음이 자명해 진 상황에서 국방태세를 근원적으로 혁신하려는 과감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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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