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상하는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가기 기고

[디펜스21]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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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디펜스21+ 자문위원) 
 

세계 경제규모 2위 국가 중국은 이미 경제적 강국이다. 그리고 중국의 부상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중국의 부상이 특별히 주목 받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하락이 예상보다 더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지역의 금융위기도 오랜 시간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2012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우리에 보다 실감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중국의 부상이 고정치 (High Politics) 영역이 아닌 현실 그 자체가 된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의 생활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신촌, 이대 장악한 중국 관광객들

 

2012년 봄, 서울 서대문구 상권의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서울의 황금상권 중 하나였던 신촌/이대 상권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하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신촌의 2% 부족한 유흥가에 식상한 젊은이들은 홍대의 클럽으로 대이동을 하였고, 젊은 층의 소비패턴 역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의류를 구입하는 것이 보편화 되면서 이대앞 의류, 구두, 악세사리   소상권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홍대상권에서는 3.3㎡당 상가 권리금이 2009년 314만원에서 2011년 말 333만원까지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신촌/이대 상권의 상가 권리금은 291만원에서 251만으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신촌/이대 상권에 숨통을 틔운 것이 바로 대규모 중국 관광객들이다. 이대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 돌면서 대한민국 젊은 소비자가 떠난 이대 앞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화(梨花) 가 중국어로 돈이 들어온다는 뜻의 리파(利發)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대와 신촌으로 이어지는 상권에는 최근 하루 평균 대형 버스 30~40대가 이 지역을 오가며 중국 관광객 1,500여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이 지역 쇼핑을 전후로 연희동과 연남동의 중국식당에서 식사도 겸하고 있어, 서대문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2011년 중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외국관광지가 한국이라고 한다. 2007년 92만 명이었던 중국인 방문객은 2008년 110만 명, 2009년 121만 명, 2010년에 172만 명이었으며 2011년에는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들의 씀씀이도 커져, 중국 관광객들은 2011년 한국에서 약 3조원을 소비하였다. 이들이 서울의 명동과 동대문, 부산과 제주도에 기여하는 경제적 공헌도는 향후 더욱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같이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은 한국사회와 지역경제, 그리고 일반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중국 의존도 높아지는 한국 경제

중국의 위상은 우리의 핵심 외교 상대인 미국, 일본에 파견되는 외교관 수를 이미 제쳤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현재 중국에 설치된 우리 공관은 베이징 대사관을 포함해 모두 10개이다. 이는 이미 주일 공관수와 동일하며, 13개인 주미 공관 수에 바짝 따라 붙었다. 한중 수교 20년간 양국이 정치안보적 차원에서 협력과 갈등, 기대와 실망이라는 한계점도 노출했지만, 인적×물적 교류는 심화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중국에 영향을 받는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낮아질 경우, 한국 경제는 약 0.13% 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즉, 한국의 경제는 중국의 경제에 대한 민감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한국의 대중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528억 4,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이는 전년 대비 150억 달러 증가한 수치이다. 한국의 대외 수출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상반기 23.43%인 반면 미국이 10.14%, 일본이 6.9%에 불과하여 한국의 대미, 대일 수출 비중의 합은 우리 경제의 대중 수출비중에 비해 현저히 적다.
미국 경제의 위기는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을 급속히 하락하게 하였다. 한국의 대중 수출 증가는 지난 10년 동안 약 100%이상 증가한 반면, 미국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50%이상 하락하였다. 즉, 한국의 수출시장과 대외 비중 또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현실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 냉철하게 판단해야

 

이렇게 끊임없이 부상하고 있는 거대 이웃 중국 바로 옆에 살고 있는 한국은 참 복잡한 심정으로 중국의 부상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이미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의 강도는 굳건하다. 또한 문화/사회적으로도 그 유대의 강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중국 바로 옆에 살아야만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부상을 단순한 시각으로 바랄 볼 수만은 없다. 한국과 중국은 여러 가지 현안에서 서로 엮여 있으며 보다 복잡한 사고를 한국에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심정적으로 복잡할망정 전략적으로 보다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미국 시카고 대학교 국제정치교수인 존 미어샤이머(John J.Mearsheimer) 교수가 방한했다. 그는 중국 위협론을 강하게 제기해온 학자로 꼽힌다. 그는 한 학술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팽창적 민족주의로 전이 될 가능성이 높고, 군사전략의 중심이 동북아라는 점 때문에 한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중장기적 국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선택은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학자의 주장이 일개 미국교수의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부산하 단체의 초청을 받고 왔다는 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를 만나 ‘과외’를 하였다는 점,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을 안보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부상국 중국과 패권국 미국 사이에 우리는 한 국가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선택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또한 미어샤이머의 주장과 같이 미중 관계가 급작스러운 충돌의 소용돌이로 치닫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미중 관계는 대립적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것은 맞다. 양국 간의 군사적, 전략적 신뢰가 매우 낮은 것도 사실이다. 파이넨셜타임스(FT)가 2월 13일자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지역군비경쟁을 다룬 기사에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미국의 대응은 동북아시아를 ‘덜 태평한 태평양(a less pacific ocean)’이라며 비꼴 정도다. 이와 같이 중국의 부상은 세계정세는 물론 동북아 정세, 한반도의 안정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21세기 국제정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으로 양국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패권국 미국과 부상국 중국의 경제관계는 사실상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저렴한 중국산 공산품을 수입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간의 이러한 경제적 맞물림 현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 국채 발행액의 10%가 넘는 막대한 양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게 됐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중국은 전체 미국 국채 발행량(9조 2,268억달러)의 12.6%인 1조 1,601억 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 (11.1%)이나 개인 등 다른 어떤 보유 주체보다도 비중이 높다. 문제는 일본이나 유럽을 포함한 다른 경제 강국 역시 경제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무역 흑자가 생겨도 마땅히 투자할 곳이라곤 미국 국채밖에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미국 국채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중국의 자산가치도 영향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미 국채가치가 20% 정도 떨어지면 중국은 2,300억 달러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미국이 자생적 경제회생의 노력보다는 부채한도를 높여 파국적 위기를 피함으로써 중국과 미국의 채권-채무관계는 더더욱 복잡한 수렁 속에 빠지게 되었다. 중국의 외환보유가 증가하면 달러가치의 하락, 위안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이는 중국의 물가상승 및 수출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수출을 통해 9%대의 성장을 유지하려고 하는 중국정부에게도 악재일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은 나라밖으로 외화를 방출하기 위해 미국국채를 구입해야 하며, 미국은 국채를 팔아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재정 및 복지 사업을 벌여 저소득층의 소비력을 부양해 왔는데, 이것이 중국에게는 자국의 공산품을 계속 팔 수 있는 순환구조가 된 것이다. 즉, 미국이나 중국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바로 현재의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하락은 맞물려 있는 운명이며, 단순한 제로섬 사고로는 현재의 세력전이를 이해하는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하기에 상황은 매우 복잡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공동운명체가 되어가는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이 친미냐 친중이냐 라는 논쟁은 사실상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선택 보다는 오히려 부상국과 패권국 사이에서 한국의 국익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는가를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부상하는 중국 옆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중국은 매우 중요한 상대이며, 현재의 패권국인 미국 역시 소홀히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중 간의 관계가 당연히 분쟁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오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한중 관계
 
이러한 문제는 현재 한중간의 주요 외교현안인 탈북자 문제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중국의 탈북자 압송 정책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정부 역시 외교적으로 대중압박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중국의 강경일변도 정책과 한국정부를 향한 경직된 태도는 분명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탈북자 문제는 일각 인도주의적 해법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대중국 외교압박을 시도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정책목표는 탈북자의 한국 이송이다. 현재까지 한국에 돌아온 탈북자 수가 2만 4,000여명이다. 이중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탈북자는 20,000여명에 이른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실질적 협조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마냥 밀어붙일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탈북자 문제를 한국의 요구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중국 옆에 위치한 우리는 보편적 인권 문제라고 하는 탈북자문제, 지역의 상권회복, 무역비중, 전략관계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광범위하게 엮여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맹에만 의지 할 수도 없다. 2012년은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실 그동안 한중 관계는 경제와 사회영역에서 많은 신뢰를 쌓아 왔다. 이는 인적교류와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보면 자명하다. 그러나 군사와 정치 분야에 쌓은 신뢰는 사실상 부족하다. 이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고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반중적인 이웃을 두면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상국가 옆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고 전략적으로 공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은 늘 부상국가와 패권국가가 빚어내는 강대국의 정치 속에서 자생하고 번영하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설령 유럽 국가들과 미국 그리고 호주와 같은 서방국가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중국 옆에 살아봤냐?’라고 물을 수 있는 대담함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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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