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위한 평택과 강정, 국제분쟁의 도화선 국제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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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분쟁은 도서지역


현대의 분쟁은 해양과 연안의 위기에서 시작된다는 특성을 드러낸다. 월남전은 통킹 만에서 벌어진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중국-베트남 분쟁은 타이완의 작은 섬 진먼다오(金門島)에서 벌어졌다. 3차 대전까지 비화될 수 있었던 미-소의 쿠바미사일 위기도 연안에 전략미사일을 배치하는데서 시작된 위기였다. 지금의 한반도 위기도 서해의 5개 도서를 둘러쌓고 벌어지고 있다. 근대의 고전적인 전쟁이 주로 내륙에서 일어났다면 현대의 분쟁은 연안과 도서지역에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추세는 장차 해양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평양으로부터 불과 70km 거리인 백령도를 첨단 무기로 요새화한다면 이는 쿠바 미사일사태에 비견되는 새로운 분쟁으로 비화될 것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는 영원히 물 건너가게 된다.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도서와 연안이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부각됨에 따라 군사력의 운용 방향도 크게 달라졌다. 우선 미국은 전 세계 미군 기지를 건설하고 미군을 전진 배치함에 있어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 . 반드시 항만과 공항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에만 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과거 전후방 각지에 흩어져 있던 180여개의 너절너절한 지상군 기지를 공항과 항만을 끼고 있는 전략거점으로 통합한다. 그곳이 바로 ‘500년 기지’라고 할 수 있는 평택의 미군기지다.

2005년 8월에 미국의 뉴올리언즈에 대형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후 미 국방부는 B. B 벨 한미연합사령관에게 “500년 만에 있을 홍수에도 견딜 수 있는 기지를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장기 전략적인 안목에서 평택기지는 냉전시대의 붙박이형 지상군이라는 주한미군을 유사시 신속히 병력을 입․출입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의 전진기지가 된다. 이 기지는 냉전시대와 같이 주한미군이 피를 흘리며 한국방위를 위해 싸우는 기지라기보다는, 동아시아 분쟁에 미군이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다. 여기에 주한미군 장병이 가족과 장기간 주둔이 가능하도록 상가, 학교, 아파트까지 입주하게 되면 8만6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하나의 신도시가 출현한다. 전방의 위험한 기지를 떠나 후방의 거점에서 ‘거룩한 군대’로 주둔하겠다는 것이다. 기지의 수준도 초호화판이다. 건물 건립비용 역시 평당 800만원 수준으로 강남의 아파트도 3~4백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방의 안락한 기지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평택은 미군의 동아시아 전진 거점


평택은 동아시아에서 미군 전력을 '투사(projection)'할 수 있는 거대한 전진기지이고, 유사시 말라카 해협과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여기서 군사력이 발진될 수 있다. 이 기지는 한국군에게는 배타적인 순수한 미국의 기지다. 벨 사령관은 이 기지에 “한국군은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no korean soldier's footprint)"며 신성불가침한 미국의 재산임을 명확히 했다. 말로는 동맹이라고 하지만 이 기지에 대한 미국의 관점은 매우 배타적이고 독점적이다. 그러면서 기지 조성비용은 전부 한국정부가 부담한다는 점에서 일방적이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2005년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한국 서해안의 평택, 군산과 같은 기지에 중국을 견제하는 미사일과 레이더, 공군력이 배치되는데 우려를 표시하였다. 서해의 미군 기지들이 언젠가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중국 정부에도 있다는 뜻이다. 이에 노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후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에 강한 견제구를 날렸다. 주한미군의 한국 출입은 한국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한미군이 동아시아 분쟁에 투입되어 한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이 초래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수시로 표명되었다. 이 때문에 올해 초에 워싱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빅터 차 전 NSC 보좌관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한국 정부의 반대로 주한미군의 성격 변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이러한 견제의 끈을 다 풀렸다. 2009년 6월에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되었다. 정상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미국은 전작권 전환 연기의 조건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에 한국이 강력히 견인되도록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해 왔다. 한미일 군사일체화로 중국 견제,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새로운 개념계획 5029 부속문서 합의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여 동의를 받아냈다. 2010년에도 이러한 기류는 계속 이어져 결국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 적극 협력한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해양 패권 갈등이 초래할 위험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는 미군의 전략거점으로 건설되는 것인가에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장차 미국과 중국의 해양 주도권 갈등이 강화된다면 그 양상은 ‘누가 해양의 전략적 관문(Choke-point)을 많이 확보하느냐’의 경쟁으로 구체화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과 해군의 협력을 가장 우선시하되, 이들 국가의 항구를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군사협력을 추진하려 한다. 이것이 2010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과 구축함이 한국, 일본과 같은 전통적 동맹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항구에 자주 들어온 이유이자 배경이다. 미국은 해군력을 핵심으로 한 군사력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이동을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이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1월에 발표한 신국방전략으로, 그 핵심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미국 주도의 안보질서에 편입시켜 중국을 견제하는데 모아져 있다. 

중국도 이에 뒤질세라 작년에 파키스탄에 중국 해군의 기지를 만들겠다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북한의 나진․선봉으로도 해군력을 진출하려고 한다. 또한 중국 정부는 제주도에 한국 해군이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게 되면 중국은 이것이 장차 미국이 이를 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최근 보수언론과 우리 정부가 새삼 이어도 영유권 문제를 들먹이며 제주도 기지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미동맹을 견제하며 한국과도 신냉전적인 대치를 불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90년대부터 우리가 ‘서해안시대’를 외치며 북방경제와의 교류로 이만큼 번영한 맥락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위험스럽다. 다음세대의 평화와 번영을 장기적 안목으로 성찰하지 않는 가운데 건설되는 기지는 다음세대에게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정마을이 지금은 순수 한국군 기지로 건설되는 것은 맞지만, 남방 교통로 보호와 중국 견제를 그 목표로 표방되는 한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포섭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이제 와서 이명박 정부가 해양의 중요성을 외치며 해군기지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도 생뚱맞다. 그렇게 해양이 중요하다면 집권 초에 해양수산부는 왜 단칼에 없애버렸나? 남방의 교통로와 해양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긴요한 일은 해양수산부의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했어야 했다. 이 부처가 없어지고 난 후 한국의 해양 정책은 10년 후퇴했다. 새삼스레 강정 해군기지 건설의 이유를 확장하는 것은 해양을 중시한다는 정책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국내 정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총선을 앞둔 안보정국 조성의 필요성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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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