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의도적 안보정국 조성, 북풍 몰아친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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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 쓰다가 비상사태 주재한 국방장관

 

다음은 월간 <신동아> 2000년 6월호에 조성식 기자가 작성하여 게재된 「북풍조작은 있었다 - 96년 판문점 북풍사건 ‘청와대 보고서’」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다.

“1996년 4월5일 식목일 아침.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한 여인에게 연정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린다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당신을 사랑하는 L’로 끝맺고 있다. 그날 오후 2시20분 이장관은 국방부에서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사태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주관했다. 이 회의에서 그는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 격상조치를 지시했다. 이어 3시쯤엔 안보 관련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했다. 북한군의 무력시위는 3일간 이어졌지만 미군은 이를 대수롭잖게 여겼다. 총선을 3일 앞둔 4월8일 밤 합동참모본부 상황실. 청와대쪽에서 “여론이 15% 이상 좋아졌다”는 격려전화가 걸려온 후 한 장교가 들뜬 목소리로 “총선 승리합시다”라 고 외쳤고 일부 장교들이 박수를 쳤다.”

<신동아>가 전하는 당시 상황은 이러하다.

99년 10월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국중호 행정관은 96년 당시의 북풍 의혹을 조사하여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보고서는 “96년 4월4∼6일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총 3회에 걸친 북한군 무력시위가 있자,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 합참은 사건 내용과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북한이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과장·왜곡해 공포와 불안 및 긴장을 조성해 15대 총선에 이용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양호 국방장관이 집무실에서 한가롭게 연서를 쓰고 있던 4월 5일에 합참 상황회의는 합참 북한정보과가 ‘위기는 아니다’라는 보고를 묵살하고 심지어 사건 발생 일자까지 조작하여 위기로 몰고 갔다. 이후 연일 전쟁 위기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여당의 지지율이 15% 이상 반등시켜 특히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서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5대 총선에서 득표율 10% 내 표차로 국민회의 후보가 2위로 낙선한 선거구는 38개에 이른다(서울:24, 경기:10, 인천:4). 선거 여론조사에 비해서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는 30석 이상 잃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전쟁의 먹구름이 걷힌다.

국가안보 차원의 위기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군이 협조하는 것은 정치에 국방이 오염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군대는 대한민국 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불편한 짐’이다. 바로 이런 행태 때문에 정치군인이 득세하고 안보가 불신을 받는다.   



군사적 특이사항 없는 이상한 안보위기


2월 말부터 벌어진 한미 키리졸브 군사연습 기간 중인 2월 20일에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에서 대규모 해상사격훈련을 강행했다. 이후 남북 간에는 험악한 말들이 오가고 선거 전의 안보정국이 조성되었다. 훈련 하루 전날인 19일에 북한의 전선서부지구사령부는 “우리 영해에서 단 한 개의 수주(물기둥)라도 감시되면 무자비한 대응타격이 개시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 ‘물방울’이 아니라 ‘물기둥’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군은 이번에는 단거리 화기뿐만 아니라 K-9자주포까지 동원하여 5000발을 사격했다고 발표했지만 화기별로 구체적인 사격내용은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상당한 규모의 화기가 동원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에 대해 북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국내 언론에서는 북한이 “겁을 집어 먹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련의 국방부식 설명은 단 한 가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정당한 사격훈련을 강행하자 북은 겁먹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도 역시 같은 메시지다. 북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4일에 “(남측이) 사격구역을 옮기고 포 사격하는 흉내만 내 인민군대가 용케 참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군 당국이 “사격구역도 변경한 것이 아니고 포사격도 정상적으로 했다”고 해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남북 간의 공방은 “누가 먼저 겁을 먹었느냐”는 데 모아지는데 이걸 정치학자들은 ‘치킨 게임’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교전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상대방의 ‘소심함’에서 찾고자 한다. 이러한 북한 ‘약 올리기’에 북은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와 김정은의 미사일부대 방문, 군사훈련 장면 공개를 통해 남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러한 기 싸움이 정말로 안보 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가 위기라고 판단한 계기는 3월 6일에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였다. 여기서 “북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라 이제껏 북한의 강경한 목소리에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던 정책기조를 바꿔 적극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3월 7일에 김관진 국방장관이 연평부대를 방문하여 “북이 도발하면 보복 차원에서 응징하라”고 말하고 뒤이어 류우익 통일부장관이 “탈북자 문제는 북한 정권 탓”이라고 말하는 등 대북 강경 대응기조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북이 말로 하는 도발 위협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응한 것은 현 정부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에 북의 총참모부가 “전면대결태세”를 선언할 당시에도 현 정부는 이를 무시하였고, 단 한 반도 북의 말을 가지고 군사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는 정부다. 북미 간에 비핵화 합의가 이루어지고,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이 열리는 지금이 왜 위기인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전후방 북한의 군사동향에 어떤 특이사항이 있는지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군 자체의 정보 분석으로 청와대에 보고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정보기관의 보고를 활용하여 ‘하향식’으로 위기라고 말한 것이다.



남과 북의 정권안보, 손발이 척척 맞는다!

 

이런 정치논리에 끌려가는 우리 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다. 남의 약 올리기에 자극받은 북도 남의 총선에 개입하고자 하면서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의 일환으로 대남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것이라면 이 또한 비난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4월의 총선 전후의 정권안보에 몰입하는 남과 북의 정권은 손발이 척척 맞는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 보수언론 역시 김정은 추종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제히 이에 화답하는 합창을 한다. 어쨌든 야당 지도자에 대한 맹공 덕분에 야당의 지지율은 상당히 잠식되었다.

이런 덫을 의식했다면 정동영 의원은 제주도에서 언행을 자제해야 했다. 정치인이 군인과 직접 충돌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치 못했다. 굳이 해군 제독에게 의사를 표현하려면 “당신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현 정권과 싸우려는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집권하면 현장의 해군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장관까지 역임한 거물 정치인으로서의 언사로는 부적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강정마을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하던 현 정권이 굳이 3월 7일에 발파를 강행한 데는 매우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 취임 이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단 한 번도 직접 개입한 전례가 없이 해군에다가 이 문제를 일임해 왔다. 그런데 연평도 사격훈련 이틀 후인 2월 22일에 청와대는 이제껏 태도와 달리 매우 중요한 입장 전환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계속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에게는 ‘남의 일’이었던 해군기지 문제에 직접 개입할 조짐을 드러내다가 김관진 장관이 연평도에 간 바로 그날, 해군은 강정마을에서 발파를 강행한다. 마침 제주도 지사가 “발파를 연기해 달라”고 공식 요청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발파 그 자체가 아니라 연평도에서의 긴장고조 시점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정동영 의원이 “집권하면 책임 묻겠다”는 발언이 알려지자 군부는 즉시 반격을 개시했다. 2월 말부터 다수의 군부대가 정신교육에서는 야당을 지칭하여 ‘척결해야 할 종북좌파 세력’이라는 강연이 빈번해지던 터에 정동영 의원의 발언에 군 전현직 장교단이 일제히 성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보에 따르면 한 지휘관은 장병들을 모아놓고 “부모와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절대 종북 야당을 찍지 말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기자에게 제보된 바에 따르면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세력은 ‘연방제 통일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종북세력’이며, 이런 세력은 절대 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정신교육이 장병들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96년의 북풍 사례를 연상시키는 명백한 정치개입이다.  



북풍 종합전시장, MB의 4월 총선


그러나 가장 위선적이고 참혹한 사례는 바로 탈북자 논란이었다. 이 또한 2월 말부터 현재까지 다른 안보 현안과 마찬가지로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중국에서 공안에 검거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언론은 연일 중계방송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중국과의 공식적인 외교적 의제로 삼았다. MB가 직접 탈북자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바로 북한의 김정은에게 “북송되는 탈북자들을 죽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탈북자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다면 이에 자극 받은 김정은으로서는 자국으로 송환되는 탈북자를 과연 어떻게 대하겠는가? 해결을 하려면 조용히 해야지, 사람 목숨이 볼모로 잡혀있는데 시끄럽게 하니까 사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되는 상황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탈북 난민 문제를 정치화하면서 마치 미국과 한국이 탈북 난민을 엄청 잘 대우해 준 나라처럼 위선적인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중국과 마찰을 줄이면서도 많게는 1년에 5000명씩 들어오던 한국행 탈북자들이 이 정부 들어와서 반으로 줄었다. 데리고 와서 잘 대우해주면서 이런 말을 하면 이해가 가지만 데려오지도 못하면서 목청만 높이면 누가 피해를 볼까?

만약에 MB가 정말로 탈북자의 생명을 걱정했다면 중국에 밀사를 보내던지, 아니면 돈을 주고서라도 빼오는 식으로 일을 처리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북한 김정은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성에 감복해서 탈북자의 송환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하기를 기대했단 말인가? 이 위선적인 행태는 정권안보가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의 탈북자 정책은 더 황당하다. 2004년에 조지 부시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킬 당시에 법안의 핵심 내용은 북한 탈북 난민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8년 간 미국 정부는 탈북자의 미국 망명 신청을 거의 전부 승인하지 않아 8년 간 겨우 80여명, 1년에 10명 정도가 미국에 정착하였다. 미국에 필요한 사람만 데려간 것이고 탈북자 난민 대우는 말뿐이었다. 법을 만들고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지금 미 의회에서 또 탈북자 청문회가 열리는 것에 과연 어떤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것도 역시 북풍 패키지 중의 하나다.

일련의 북한 관련 논란은 매우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경로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최종 목적지는 4월 총선이다. 이로 인해 사회 갈등이 조성되면 남은 MB의 임기 중에 이것은 또 하나의 정치적 짐이 될 것이고,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안보비용은 마구 치솟을 것이다. 1996년의 북풍 공작이 군대에 남긴 상처를 상기한다면, 이제 이렇게 역사와 국민에게 파렴치한 죄를 짓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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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