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② 인터뷰

 

“중국을 패권이라고 볼 수 없다”


셋째, 정치적 의지 (political will) 면에서도 다분히 회의적입니다. 49년 중국 혁명 이후에 중국에 있어서의 진정한 정치지도자는 모택동과 등소평 두 사람 뿐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관료들이라는 겁니다. 장쩌민, 후진타오 모두 기술 관료 출신들이라는 것이죠. 기술 관료들은 사고치지 않고(不出事) 신상 관리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큰 비전을 가지고 중국을 패권국가로 부각 시킨다는 것이 중국 정치 현실에 비추어 보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대내적으로 민족주의, 분리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데 중국 지도부가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미국과 맞서 패권적 힘의 투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중국식 민주주의와 인권정책, 중국적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공자학원의 설립을 통해 중국의 국제 이미지를 고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먹히겠습니까. 세계 자원을 선점, 독식하려는 중국을 전 세계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패권국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통성이 있어야죠. 국제 사회 가 중국을 패권적 지도국으로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중국이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요원하다고 봅니다. 결국, 중국의 패권적 도전, 중국위협론은 현실이 아니라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적 단결을 도모하고 군사력 증강을 바라는 미국, 일본, 한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군산복합체들이 만들어내는 허구가 아닌가 합니다. 50, 100년 후라면 모를까? 당대에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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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일본 같은 나라는 중국위협론으로 온통 사회가 요란한 것일까요?


 중국이 직접 위협을 가한다기 보다는 상대적, 맥락적 인식의 문제 아닐까요. 표면적으로는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제체제이고 이런 국가가 핵무기에 탄도미사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위협 안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90년대 초 시작된 ‘헤세이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2011년 3월 동북지방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 경제 사회적으로 공황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상정함으로서 새로운 내적 단합을 모색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봅니다. 게다가 오늘날 중국의 성공은 사실 일본의 공적 원조에 힘입은바 큽니다. 그런데 중국이 고압적으로 나오니 반중 정서가 팽배해 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미국에 다시 편승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최근 민족주의 정서가 크게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일동맹으로 중국에 대항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자위대능력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 국가’로 가자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 친중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고질적 병폐도 있습니다. “외부의 위협을 끌어들여 그것으로 국내정치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일본 특유의 정치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위협론이 크게 부풀려졌고 오자와 이치로 (小沢一郎)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가 주장했던 중국 중시론,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탄력을 받지 못했던 것이죠. 센카쿠 열도 사건 이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원자바오를 만났고 조어도 문제나 동지나해 대륙붕문제도 중국과 논의했는데 협력의 가능성은 보이지만 아직도 어렵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 때문입니다. 그와는 달리 일본의 본심은 북한을 넘어 중국 위협론, 이걸 통해 활로를 찾으려고 하는데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대지진 이후 일본 재건도 힘든데 이런 대립구도는 옳은가? 일본이 더 전향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앞으로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에 동북아에서는 상당한 긴장이 고조되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일본이 기다렸다는 듯 중국을 봉쇄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대만해협이 사활적이지요.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한 지난 8년 간 양안관계는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간헐적으로 대만의 미국무기 구입이라는 쟁점은 있었지만 충분히 관리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선거에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이 집권하면 대만 독립을 거론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국 변수가 있습니다. 천수이벤 총통 시절에 대만 독립은 사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제동을 건 것입니다. 다시 양안관계가 무너지면 동북아 질서가 다 깨집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미국이 아시아에 올인 할 때, 즉 대중견제정책 할 때 민진당이 집권해서 독립을 주장하게 되면 미국은 어떻게 할 거냐? 미국의 대중견제 진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강하게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중국도 카드가 있지요. 1조3천억 불 이상의 미국 국채와 공채를 중국이 뺀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데 투자할 대상도 없지만 어쨌든 한다면 미국 경제는 휘청거립니다. 반면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 중국은 어디에 수출을 하죠. 핵 억지력에 의한 상호보장된 파괴(MAD)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중이 그런 식의 대결을 하게 되면 공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리고 대만의 대중 경제 의존과 투자 규모로 볼 때 민진당 정부가 들어서도 과격한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동아시아를 맴도는 중국위협 망령


- 동남아에서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서사군도와 남사군도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5개국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최근 중국이 이 지역을 ‘핵심 이익’지역으로 규정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지요. 베트남, 필리핀은 미국을 끌어 들여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고 반면에 중국은 이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최근에는 해로안전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이 지역에 대한 개입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견해는 둘로 나눠져 있다고 봅니다. 중국 외교부는 협상을 주장하고 PLA는 주권문제로 대응하자고 합니다. PLA는 과거 자신들의 해군력이 약해서 미국이 좌지우지했는데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어도나 남지나해 문제는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자칫 ‘주권 포기’라는 내부의 비판에 직면할 경우, 중국공산당의 권위가 크게 훼손될 우려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불길한 신호 중 하나는 베트남 정부가 미 해군의 캄란만 정박을 허용하는 등 양국 간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 한 것은 79년에 베트남 침공 때처럼  이 지역에 대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는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겠죠.


- 정작 문제는 한국의 외교안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을 공공연히 외치고 있고, 한일 군사협정 이야기도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한일 군사협정? 그건 이명박 정부 최고의 외교적 패착이 될 것입니다. 한일동맹을 국민정서가 허용 하겠습니까. 현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한미일 3각 동맹체제와 미사일방어체제(MD)의 공동 구축은 한국의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중국은 이를 마지노선을 넘는 것으로 인식 할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잠재적 또는 현존하는 위협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한국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심양 군구, 북경 군구, 산동 군구, 남경 군구의 주요 군사적 표적이 될 것입니다. 

굳이 한일협력을 한다면 이와는 다른 대안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이 공조하거나 경쟁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면 안 되니까 이에 대처하기 위한 한일 공조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동맹이 아니라 한일 협력을 통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미국과 일본에 편승해서 중국을 견제한다? 그렇게 되면 냉전이 다시 오는데 역사에 역행하는 정책을 왜 합니까? 이는 역사의 ABC를 모르는 것입니다.


- 내셔널리즘이나 국가주의를 경계하고 다자주의 강조하시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다자협력이 앞으로 동북아 평화공존의 기본적 패러다임, 또는 가치라고 보십니까?


국제안보에는 두 개의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집단방위체제 (collective defense system)' 패러다임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안전보장(collective security system)' 패러다임입니다. 전자에는 NATO나 한미동맹이 있고, 후자에는 유엔헌장 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Cooperation in Europe) 등이 있습니다. 집단안전보장체제는 열린 안보공동체를 특징으로 합니다. 어느 국가도 배제하지 않고 한 지역에 있는 모든 국가들을 그 구성원으로 참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단, 이 중 어느 국가가 다른 회원 국가를 침공했을 때 회원국 모두가 집단 응징을 가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가 대 침략국(all against one)’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죠. 한국전쟁 당시에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참전하여 침략국 북한에 대항해서 싸운 것이 집단안보체제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집단방위체제는 공동의 적과 위협을 상정하는 것에서 출범하는 ‘닫힌 안보 공동체’입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NATO가 여기에 속합니다. 때문에 집단방위체제는 불안전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과도기적이고 한시적 대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시도 한 것이 바로 과도기적으로는 집단방위체제, 즉 한미동맹에 의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을 통해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만들어 나가자고 했던 것이죠.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집단안전보장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한미동맹, 즉 집단방위체제에 올인 한 셈이지요. 이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 할 때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북 응징 말고 MB 외교가 있기는 한가?”


- 자연스럽게 현 정부의 외교안보에 대한 평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1년 정도 남은 현 정부의 외교안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대북 응징외교’와 ‘이벤트 외교' 두 가지 밖에 주력했던 것 같습니다.  응징외교란 2008년 7월 금강산에서의 고 박왕자 여인 피살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외교채널이 북한응징에 집중되었지요. 2009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을 응징하고 대북제재를 위해 유엔안보리, G20, APEC 등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적극 외교를 전개했습니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외교부가 남북관계의 인질로 잡힌 것입니다. 응징외교만 하다보니까 한국 외교는 창의력 상실하여 어떤 비전과 철학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벤트 외교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G20 정상회의, 세계개발원조총회, 핵안보정상회의 등 대규모 회의를 유치, 이를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향상시키는 외교를 했죠. G20 회의에서는 경제 특수가 30조, 40조 된다고도 했죠. 그리고 아젠다 세팅(의제 설정)한다고도 그랬죠. 정말 그랬을까요. 그리고 올해 3월에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를 봅시다. 원래 핵 안보, 핵 확산, 핵 안전 세 가지 다루는 정상회의가 되어야 할 터인데 확산과 안전은 안 다루고 핵 안보, 그 중에서도 핵물질 문제만 다루는 거거든요. 그런데도 핵문제 전체 다루는 것처럼 국민 호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 정부가 성공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동맹 강화, 미국, EU와 FTA는 그들의 시각대로라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시각에서는 이에 대한 공감이 적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인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국제사회 공감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최대 실패는 남북관계입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 떨게 하지 않았습니까? 비핵개방 3000한다고 했지만 북한이 2차 핵실험하고 농축우라늄까지 이어져 무장력 강화를 허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중단되었고, 북한 개혁개방에 필수적인 교류협력도 중단되었습니다. 북한에 투자한 현대아산과 안동대마는 망하기 일보직전 아닙니까. 이건 현명한 정부의 처사가 아닙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와 같은 10․4 공동선언의 일부만 이행되었어도 대청해전이 왜 생기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왜 생깁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문제는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데, 우리가 조금만 현명했더라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북한은 공세적이기 보다는 반사적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에 따라서 북한도 행동을 합니다. 우리가 서해에서 군사훈련하면 똑같이 하고, 우리의 무기 배치에 따라 그들도 따라 합니다. 때문에 북한 문제는 우리하기 나름입니다. 저는 류우익 장관이 잘한다고 봅니다. 금강산 풀고 교류협력 활성화하는 동시에 중국과 공조하여 6자회담 재개하면 북도 화답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안함, 연평도 사과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비핵화의 진정성 보이라고 하면 답변 안 할 것이고 더 어려워집니다. 며칠 전 류 장관도 정상회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을 때 저는 “그 분이 이제 현실을 깨닫는 구나”하는 느낌을 가졌어요. 내가 만난 북한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드군요. “정상회담 어떻게 가능하겠나? 남측이 비핵화 진정성 보이라고 할 거고, 천안함, 연평도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할 거 아니냐, 그런데 천안함은 우리가 안했고 연평도는 자위권 행사를 한 건데 어떻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하겠다고 답변 할 수 있는가?”라는 반응입니다.


- 아무래도 현 정부에서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남은 1년이라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관리할 필요가 있지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같이 북풍 분다던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 정부도 매듭을 잘 해야지요. 비현실적 원칙만 고집하다 정권 끝나면 좋은 평가 못 받을 겁니다. 그러한 원칙은 현 정부 관계자의 에고를 만족 시켜줄지 몰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우리 국민의 원하는 것을 풀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도 풀어주면서 인도적 지원을 해주면 북한은 화답을 할 것입니다. 6자회담 재개도 해야 합니다.


“과거정부 부정하다 기회를 날린 MB"


- 장기적 안목으로는 남북한과 동아시아는 다자안보와 평화공존, 협력의 길로 갈 것인데, 최근 몇 년은 일시적인 역류에 해당되는 것 아닙니까? 언젠가는 그런 길로 가지 않겠습니까?


현 정부의 실책은 과거정부의 정책을 고뇌하면서 검토한 적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은 정말 좋은 합의입니다. 북한의 비핵화 뿐만 아니라 한반도평화체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축에 대한 사항들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2차 대전 이후 이 지역에서 채택한 최고의 외교 문건으로 평가 합니다. 이걸 현 정부가 완전 무시했습니다. 10․4 정상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이런 성과는 왜 인정하지 않습니까? 과거 정부에 대한 부정, 무지와 오만, 그리고 북한 조기붕괴론에 기초한 대북정책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10·4 정상선언 4주년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했던 정상선언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지금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10·4 정상선언과 그 후속조치를 담은 제1차 남북 총리회담 합의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었을 경우 상전벽해의 다른 세상이 도래했을 수도 있다는 확신을 품게 됩니다.

먼저 서해평화협력지대 추진위원회가 가동되어 2008년 상반기 내에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이 확정됨으로써 남북 공동어로를 시작했을 것이고, ‘해주경제특구’에 대한 구체적 사업계획도 확정돼 해주와의 직항로도 열렸을 테고, 인천과 개성·개풍·해주를 연계하는 이른바 ‘황금삼각지대(골든 트라이앵글)’도 윤곽을 잡았을 것입니다.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진전이 가능했습니다. 개성과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와 개성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의 개보수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남북과 중국을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이 완료됐다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대륙공간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하자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2008년 상반기 중으로 단천지구 광산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분야의 지하자원 개발에도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지금처럼 중국 정부와 기업에 북한의 지하자원을 통째로 넘겨주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울과 백두산을 잇는 직항 비행로를 통해 백두산 관광이 가능해졌을 테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사업도 활성화되어 박왕자 여인 피살사건 같은 비극도 미연에 방지하거나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산가족 사이의 영상편지 교환사업도 원활히 이뤄졌다면 이들의 아픔을 크게 덜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류와 협력이 이 정도로 진전됐다면 군사적 신뢰 구축도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다시 열려 상례화됨으로써 군사적 적대관계를 끝내고 긴장 완화와 평화 보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의 모멘텀도 만들어졌을 것입니. 특히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직통전화 설치,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훈련 상호 통보 및 참관, 군 인사 교류와 정보 교환 같은 구체적인 사업들도 커다란 진전을 봤을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진전은 6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해 불능화는 물론이고 검증 가능한 핵 폐기에도 전향적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2009년 4월의 미사일 실험 발사나 2009년 5월의 제2차 지하 핵실험도 당연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얼마 전 한국 특전사와 미국 특전사가 모여 북한 급변 사태 시 4단계 안정화 작전에 대한 토론이 열려 초청받았습니다. 한국사람 발표자는 저와 같은 대학 동료 교수 둘이었습니다. 거기서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한 작전계획을 갖고 토의하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5029를 개념계획에서 작전계획으로 만드는 것을 제가 반대하여 무산 시킨 적이 있습니다만, 요즈음 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희망찬 비전보다는 급변사태가 어떻고 붕괴가 어떻고 하는 식의 종말론적이고 묵시록과 같은 자괴적 역사관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4년을 거치면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하고 이제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발 끈을 다시 조여야 합니다. 가장 깊은 어둠에서 가장 밝은 빛이 창조되듯이 작금의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한 정세는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는 기회의 창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기회의 창문을 열기 위해 우리는 앞서서 준비해야 합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동아시아 정세가 교수님께서 희망하시는 대로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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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