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종주길에서 만난 지리산의 봄빛! _ 5월 8~10일 지리산 태극종주 1탄 후기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나는 구례사람이다. 구례에 온 지 8년밖에 안 된 사람이 감히 구례사람이라 말하다니.. 뒤통수가 당긴다. 지역에서는 이사 온 지 30년이 되어도, 결정적 순간에 넌 외지인이잖아란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구례에 살고 있고, 구례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구례장에 나가 필요물품을 사고, 이왕이면 구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찾는다. 그러니 슬쩍 구례사람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만의 착각일까!

그건 그렇고, 내가 구례로 온 건 지리산 때문이었을까? 남편 말로는 어느 해인가 내가 30번쯤 지리산에 내려갔다고 하니 지리산은 구례행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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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야봉, 노고단, 천왕봉에 오르지 않아도 구례 냉천삼거리만 들어서도 따스함이 느껴진다. 함양 추성리를 걸어 두지터에 들어설 때면 세상과 잠시 작별해야 할 것 같다. 산청 중산리에서 법계사로 오르는 길, 바위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감동적이었다.

서울사람이었을 때 지리산 지도를 보고, 또 보고, 달력을 보고, 수첩을 보고, 지리산으로 향하는 마을은 간절하였으나 지리산은 쉽게 올 수 없는 곳이었다. 당연히 구례로 내려오면 때를 놓치지 않고, 매일은 아니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지리산에 갈 거라 생각되었다.

.. 그런데 구례로 들어온 첫 일 년, 지리산보다 섬진강에 빠져버렸다. 섬진강가를 걸으며 바라보는지리산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며 저기 지리산이 있으니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고 위안했다. 지리산 케이블카에 반대하며 매주 노고단에 오를 때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리산 능선부가 사람들의 발길에 점점 훼손되어 간다니 나라도 가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렇게 2008, 2009.... 2014, 2015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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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하동 사는 후배를 만났다. 하동군이 쌍계사에서 내원마을을 지나 불일폭포까지 등산로를 내려하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만복대 표지석이 바꿨던데 봤냐고 물었다. 가본지 오래됐다고 했다. 벽소령대피소 화장실이 수세식 같던데 확인했냐고 물었다. 수세식은 아니라며 공원사무소에서 확인했던 내용을 전하며 직접 가보진 못했다고 했다. 묘향대 지붕색이 꼴불견이라고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래야겠네.’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리가 띵했다. 가슴이 휑했다. 지리산국립공원을 사랑하니, 상근활동가로 살지 않아도 지리산 지키는 일은 내 일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했었는데, 정작 나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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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지리산에 자주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일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리산을 다시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리산자락의 마을을 다니고, 마을주민을 만나고, 옛길을 찾아보고, 옛길의 기억을 기록하고, 사계절 변화하는 지리산 능선에 서서, 지리산과 마주하기로 했다.

지리산 태극종주 1이란 거창한 이름의 산행은 지리산의 봄빛과 마주하는 시간으로 계획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태극종주는 한 번에 하기도 어렵고, 출입금지구역이 있으니 그대로 해서도 안 되는 길이었다. 가능한 범위에서 산행계획을 세웠다. ‘삼정에서 벽소령을 올라, 연하천, 화개재, 삼도봉, 임걸령, 노고단, 성삼재, 작은고리봉, 만복대, 정령치, 세걸산, 바래봉을 거쳐 운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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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이렇게 다니는가 보다. 이 길 중 중봉부터 하봉, 쑥밭재, 왕등재습지까지는 국립공원출입금지지역이다.

 

지리산 태극종주 19명이 함께 했다. 선두, 후미, 사진, 소리, 기록, 웃음, 최선, , 새참 등 각자는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출발했다. 9명은 쉬어야할 곳에서 쉬고, 먹어야할 시간에 먹고, 자야할 때가 되면 잤다. 노래 부르며 소통하고, 웃음과 미소로 생각을 나눴다. 잠시 갈등하고 내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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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걸음은 체력 안배와 속도 조절, 비로 인하여 완성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런 산행이었다. ‘지리산 태극종주 1을 시작하였으니, 2탄 걸음 벽소령-세석-장터목-치밭목-새재와 번개걸음 정령치-고리봉-세걸산-팔랑치-바래봉도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2탄 걸음과 번개걸음에서도 노래 부르고, 웃고, 갈등하고, 감사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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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리산의 봄빛이 사라지기 전, 다시한번 지리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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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참꽃마리, 철쭉, 얼레지, 동의나물, 금강애기나리 (시계방향)

 

 

_ 윤주옥 실행위원장 (국시모 국립공원50년준비위원회). 사진_ 오정행 교무 (원불교 중앙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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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