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고요함, 애틋함이 가득했던 두 번째 수학여행_ 2016년 6월 경주국립공원 답사 후기 걷기예찬

그리움과 고요함, 애틋함이 가득했던 두 번째 수학여행

 

_ 윤주옥 실행위원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6월 걷기예찬은 경주국립공원에 다녀왔다. 누군가는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라며 조금은 설렌다는 듯이 말했다. 또 누군가는 남산은 밤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은 가 본 경주이기에 나름의 기억들을 갖고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도 경주는 역시 애정과 그리움의 공간이었다.

2001년 가족과 함께한 경주 여행을 갔었다. 당시 7살이던 딸아이는 불국사를 거닐며 엄마, 천국에 온 것 같아요. 너무 평화로워요.’라고 말했다. 불국사를 보러 온 북적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평화를 느끼다니.. 그날 이후 내게 불국사는 평화의 공간이 되었다. 수선스런 세상을 피하고 싶을 때, 내면의 갈등과 힘겨루기를 할 때면 불국사가 생각났다. 회랑을 거닐 때면 누군가에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고, 관음전에서 내려다본 대웅전, 석가탑 등의 그윽한 선들은 마음의 칼날을 거두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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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에서 바라본 부처님

 

경주 남산을 남산이게 한 것은 월성이다. 금오봉, 고위봉은 왕이 있던 성, 월성의 남쪽에 있다 해서 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주 남산에 온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길은 어디일까? 삼릉에서 시작하여 상선암, 금오봉, 삼불사 코스이다. 경주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 후 경주국립공원 조사를 온 어느 해인가 나도 이 길을 걸어 남산에 들었었다.

남산은 우리에게 여러 모습의 부처님, 보살님을 만나게 해 준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서라벌을 寺寺星張 塔塔雁行(사사성장 탑탑안행)’이라 했다. ‘절이 별처럼 총총하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는 뜻이다. 절이 반이었고 집이 반이었다는 말도 있어, ‘절반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신라에 절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만하다. 경주 남산에서 부처님, 보살님을 만나는 내내 뻐꾸기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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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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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여래좌상 (여래는 어떤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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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관음보살입상 (붉은 입술을 가진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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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육존불 (선으로 조각한 여섯 분의 부처님)

 

선각육존불 앞에서 이영미 님(경주국립공원 해설사)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읊었다. 맑고 푸른 여름날에 경주 남산을 오르는 길에서, 그녀가 읊은 제망매가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다. 먼저 간 동생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여기에 있음에 두려워

나는 가노란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누나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이

한 가지에 나고서

가는 곳 모르누나

, 미타찰에서 만날 날을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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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 (성형수술을 많이 한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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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여래좌상 (좋은 일을 한 분에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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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와 소석불 (경주 남산에서 가장 작은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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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가여래좌상 (출입금지지역이라 상사바위에서 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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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사 석조여래삼존입상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와 역사문화, 경관을 대표한다고 한다. 국립공원에 최고의 숲, 아름다움의 극치, 야생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민족의 유산 등의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다. 경주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사적 국립공원이다. 그런데 불국사와 석굴암은 국립공원 안에 있지만 첨성대는 국립공원 밖에 있다. 그러니 경주 처처에 자리한 수다한 문화유산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는 국립공원과 지역사회가 잘 협력하여야 한다.

 

남산을 내려와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 조명 받은 첨성대, 어두워지는 계림과 월성, 물빛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 등을 돌아봤다. 불빛은 물과 만나 화려하게 빛났고, 무더위가 한층 누그러진 여름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한적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넘치는 활력도 싫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다웠다. 그 옛날 서라벌도 오늘처럼 화려하고 분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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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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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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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월지 (옛 안압지)

 

 

이른 새벽, 황룡사지와 분황사에 다녀왔다. 흔적만 있는 절,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절, 절터만 있어 더 그리운 황룡사, 다행히 황룡사지는 여전히 터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남호태 님(경주 문화해설사)에 의하면 신라는 궁을 월성에서 이곳으로 옮기려 땅을 고르다가 황룡을 발견하고 궁이 아니라 절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황룡사는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 등 4, 93년간의 공덕으로 지어진 절이다. 100년의 시간이 만든 황룡사, 눈앞에 없어도 바람에서 햇살에서 황룡사의 기운이 느껴진다.

자장율사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쌓기 위해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불렀고, 200명이 넘는 탑 기술자를 동원해 아비지를 돕게 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80m , 정성과 염원으로 만들어진 나무 탑, 황룡사 9층 목탑은 불에 타면서 세상에 널려있는 액운도 가져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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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에서 분황사로 가는 길에 경주의 농부들을 만났다. 농부들은 언제나 부지런하고,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따뜻하다. 말끔히 정리된 그들의 밭을 바라보며 내 텃밭의 풀들이 떠올랐다. 개망초, 망초, 강아지풀, 바랭이, 왕바랭이, 둑새풀, 닭이장풀, 명아주, 여뀌, 갈퀴덩굴, , 쇠뜨기, 토끼풀, 괭이밥, 매듭풀, 달맞이꽃, 쇠별꽃, 씀바귀... 이름을 아는 풀, 이름도 모르는 풀,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을 잡초라 부르며 뽑고, 베고,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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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는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분황사 앞마당에는 모전석탑과 비석 받침대가 있다. 고려 숙종은 원효를 기리기 위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받침대만 남아 있다.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추사 김정희가 찾아서 차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새겨놓았다 한다. 주위를 집중한다면 검은 빛 받침대에서 추사의 글씨를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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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모전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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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비석 받침대

 

 

토함산은 안개와 구름을 머금었다 토하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진숙 님(경주국립공원 자연해설사)은 불국사, 석굴암, 감은사지, 문무대왕릉 등을 안내하며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걸 토해냈다. 여름날은 그녀의 열정으로 더 뜨거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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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청운교, 백운교가 뒤에 보인다. 서 있는 오른쪽 두 번째가 서진숙 님

 

 

나는 1979년 처음으로 불국사에 왔었다. 그때도 청운교, 백운교를 뒤로 두고 사진을 찍었었다. 나는 그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이 없었다면 불국사에 다녀왔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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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학여행 때 불국사에서(1979). 맨 아래 열 오른쪽 두 번째가 나다.

 

불국사는 고요하던 황룡사지와 다르게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그래도 불국사는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청운교, 백운교 앞 소나무 숲은 그늘을 만들어 우리를 품어줬고, 돌계단과 축대는 자연스러운 치밀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완벽한 다름으로 시선을 끌었고, 대웅전 앞 회랑은 오늘도 위안으로 다가왔다. 관음전, 비로전, 극락전의 보살님, 부처님은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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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전각 배치도 (불국사 홈페이지)

 

석굴암 부처님은 안타까웠다. 계속되는 공사에 시달리고, 유리집과 전각에 갇혀 푸른 하늘도 볼 수 없고 총총한 별빛도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석굴암 부처님은 염원하고 계실 지도 모른다. 마징가Z처럼 답답함을 깨고 하늘 높이 솟구치는 꿈을!

 

감은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세운 절이다. 금당을 지으며 기단 아래에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이 된 아버지가 들어오도록 했다. 부자간의 애틋함 때문일까, 감은사지와 동해바다 문무대왕릉에는 애절함이 오간다.

 

경주는, 경주국립공원은 나이 들어 찾아와야할 곳 같다. 기운 솟는 젊은 날엔 조각이고, 건축이고, 탑이던 것들이 오십 줄에 가까워지면서는 그리움과 고요함, 애절함으로 다가오며 보고 또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을 만나고, 그 분들에 기댄 염원과 정성을 보았으니 이번 걷기예찬은 오랜 시간 맘에 남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황룡사지에서 바라본 텅 빈 공간이 그리워, 먼 거리 마다않고 달려와 쪼그리고 앉아있으리라. 세상과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고 느낄 때면 불국사 대웅전 앞 회랑을 거닐고 있으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박제화하고 행하지 않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며 경주 남산의 선각육존불을 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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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