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릴 줄 알았다_ 1월22일~23일 2017년 신년산행 후기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눈이 내릴 줄 알았다

 

_ 윤주옥 실행위원장

사진_ 허명구 님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은 국립공원이어서 사시사철 사람들의 방문을 허락한다. 친한 어떤 이는 1년에 두 번은 지리산을 올라야만 맘이 안정된다고 한다. ‘지리산 증후군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상이다.

나는?, 나도 비슷하다. 겨울이면 눈 쌓인 지리산에 묻히고 싶고, 봄날에는 엘레지 꽃 흩날리는 지리산에 오르고 싶고, 여름이면 장대비 맞으며 지리산 능선을 걷고 싶고, 가을이면 지리산의 붉은 물빛을 보고 싶다. 그 외에도 지치고 힘들었을 때, 말 못할 고민으로 밤을 지새울 때 지리산은 늘 평화의 인사를 내게 건넸다.

새해가 되었으니 지리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 중에 혼자서 겨울 산을 오를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 사람들은 산행을 계획하는 자리에서 눈이 오면 좋겠다, 눈이 올 것이다, 많이 올 것이다.’고 희망과 기대 섞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눈이 왔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답게 눈이 내린 이틀 뒤였다. 지리산에 눈이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인데, 세상에.. 지리산으로 가는 날에도 또 눈이 내렸다. 대박이다!

 

산행 시작은 화엄사로 입구로 정했다. 새해 들어 처음 만나는 지리산은 느리고 힘들어도 걸어서 올라가는 게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화엄사 입구에서 시작된 걸음은 화엄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연기암 입구에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절반은 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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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 입구를 출발하여 코재로 향하는 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아이젠과 스패츠 때문일까? 눈발은 굵어지고 흰빛의 산과 나무 사이로 가끔씩 파란 하늘이 보였다. 쉴 때마다 먹을거리가 나왔다. 곶감, 대추차, 깨강정, 초코바, 사탕, 먹걸리와 소주, .. 이런 날은 뭘 먹어도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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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재 오르막을 딛고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눈보라가 몰아쳤다. 몸이 휘청거리고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찬 기운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마스크 쓰고, 몸을 낮게 하고, 배낭끈을 조였다. 하늘도, 땅도, 나무도, 바람도, 온통 눈빛이다. 몸도, 마음도, 숨결까지도 눈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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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대피소가 보였다.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소리가 거세지고 있구나, 내일은 더 추워지려나, 아랫마을 사람들도 잘 있겠지,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던 생각의 끝자락에서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바람은 자자든 듯했다. 곧 파란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 반야봉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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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을 매고, 안전한 걸음을 약속하며 반야봉으로 향했다. 지리산 능선은 발목, 무릎, 어떤 곳은 허벅지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은 길을 내며 올라야했다. 러셀이라고 하는, ‘눈을 헤치면서 길을 만들어 전진하는 일을 지리산국립공원에서 해볼 줄이야,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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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앞 사람의 발자국이 찍힌 곳을 디디며 나아갔다. 다리 길이가 짧은 나로서는 중심 잡기가 몹시 어려웠다. 휘청하면 짚을 곳도 없고,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콧물로 마스크는 흥건해지고, 입에서 나온 김으로 머리카락에는 고드름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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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의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남부능선, 노고단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반야봉은 지리산의 중심답게 파란 하늘을 이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2017123일 낮 12, 1732m 반야봉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반야봉은 지리산에 드는 사람들 모두가 지혜롭게 살아가길 원하는 지리산신이 기운을 모으고 내보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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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에서 피아골로 내려오는 길은 반야봉의 따뜻한 기운으로 넘쳐났다. 노루목, 임걸령, 피아골삼거리, 피아골대피소, 삼홍소, 표고막터, 그리고 사람 사는 동네 직전까지 날아서 내려온 듯 했다. 경사 급한 돌길이 폭신한 눈 덕인지 다른 때보다 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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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내려와 동아식당에서 하산주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눈을 만난 기쁨과 반야봉에 대한 특별함부터 핫팩 덕분에 따뜻한 낮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대피소 바닥의 냉기 때문에 추웠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50년이 되는 해, 그래서 더 특별했던 2017년 지리산 신년 산행은 눈이 있어 더 맑고 투명해진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조화롭게 펼쳐진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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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