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친절한 중국씨!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⑥ 란카오~시안/5월12~20일

 

길 물으면 식사에 잠자리까지 챙겨 줘

토막말과 필담, 손짓·몸짓 대화로 환대

 

 

by.jpg


어느덧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지 20일이 흘렀다. 처음 중국 땅에서 페달을 밟을 때는 차도 옆에 널찍한 자전거도로가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고, 자전거도로에 오가는 자전거가 없는 걸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자전거 왕국이었던 중국에서 이제 그 자리는 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가 차지하고 있었다. 경제발전과 함께 편리한 이동수단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자전거를 빠르게 대체했다. 중국은 자전거가 가져다주었던 건강함을 잃은 듯 보였다. 매연과 황사로 하늘이 뿌옇게 보이는 날들이 많았다. 


“자전거로 세계일주”엔 시큰둥, “우루무치”엔 “쯔이”

 

세계일주의 첫 경유지로 중국을 횡단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늘 묻는 말이 있었다. 먼저 "어디서 왔습니까?"이고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이다.

 

처음에 나는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반응은 아주 시큰둥한 것이었다. 그래서 말을 바꿔 보았다. "우루무치로 가는 중입니다"라고 했더니, 물었던 사람의 눈이 커지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주위 사람에게 "이 친구가 우루무치에 자전거를 타고 간대"라고 전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쯔이(최고), 쯔이"라고 외쳤다.

 

중국 동부 지역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 그려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는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도시인 우루무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루무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 옛 자전거왕국의 쇠퇴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바다 건너 이웃 나라에서 온 조그만 녀석이 혼자 중국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것을 보고, 감탄과 함께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했으리라.

 

중국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관대했다. 자전거도로에서 차량 진행을 잠시 막고 있어도 나무라지 않으며, 오히려 자전거에 먼저 양보하거나 배려해 주는 느낌이었다. 한적한 외곽도로에서는 차량 운전자들이 추월할 때 미리 경적을 울린 뒤 자전거와 멀찍하게 떨어져서 추월해 나갔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달랐다. 자동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킨 채 먼저 가는 자가 우선이었고, 신호등도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Untitled-6 copy.jpg


손 잡아끌어 국수 한 냄비 끓여주고 꿀물 싸줘

 

5월14일 오전, 대도시인 정저우(정주)를 지나면서 310번 국도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매고 있을 때다. 대도시는 길이 복잡해, 물어물어 찾아간다 해도 길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갈래길이 무수히 나오는데다 도로표지판은 별로 없다 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

 

이 날도 길을 헤매다 한 조그만 시골 마을로 들어서게 됐다. 뜨거운 햇살 아래 길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어느 연탄가게(중국의 연탄집은 석탄을 팔거나 연탄을 만들어 팔기도 함) 앞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안에서 일하던 연탄집 주인이 나와 보더니 꿀물이라며 물병 한 병을 갖다 주었다. 너무 고마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잠시 뒤 그는 일손을 멈추더니 다시 나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인데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하자 그는 "들어와 점심을 먹고 가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중국의 시골집들은 새로 지은 집을 제외하고는 대개 누추하였다. 방바닥은 그대로 흙바닥이요, 벽은 회칠이 떨어져 흙과 붉은 벽돌들이 드러나 있고 신문지라도 제대로 붙어 있으면 양반이었다. 그가 안내한 방도 마찬가지였다. 가구라곤 낡은 침대 하나뿐이고 아궁이가 딸린 부엌에도 회칠한 듯 구석구석에 때가 끼어 있었다. 

 

Untitled-19 copy 2.jpg


연탄집 주인은 43살의 리바오구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수를 한 냄비 가득 끓여 상을 차렸다. 내가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손을 들 때까지 그는 국수를 자꾸자꾸 퍼주었다. 그리고 방안 구석에서 봉지들을 가져오더니 녹차잎, 콩깍지처럼 생긴 찻잎, 마늘, 풋고추를 꺼내 꿀물 2병과 함께 싸주었다. 가면서 먹으란다. 그의 친절에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나는 간단한 중국어밖에 할 줄 몰라서 종이에 한자를 써가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글자로 의사소통을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의 오래된 가족사진까지 보여주며 환대해 주었다. 우루무치로 간다고 하자 그는 '棒(빵:몽둥이, 강하다)', '一路平安(이루핑안)'이라는 글자를 썼고, 내가 '자전거 세계일주 중이며 첫 경유지가 중국'이라고 하자 나보고 '太人(따이렌)'이라면서 '중국에는 호인(好人)이 많으니 걱정 말고 여행하라'며 앞길이 순탄하기를 빌어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약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여서 잠시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는 '지금은 날씨가 더우니 푹 쉬었다 가라'며 베개에 수건을 깔아주고 침대 주위에 모기약까지 뿌려주었다.

 

아내까지 데려와 극진한 호의

 

시골 마을을 지날 때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유하는 주민들을 만난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의 옛 시골 인심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맛보는 느낌이다. 이들의 친절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씨를 보면서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중국인들의 품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5월18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산멘시아라는 지역을 지날 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더 이상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누군가와 이야기중이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이 근처에 삔관(여관)은 어디에 있나?"

 

그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따라 오라. 안내해주겠다"고 하면서 시내 쪽으로 향했다. 그는 호화로운 한 호텔로 데려가더니 나대신 호텔로 들어가 방도 알아보고 가격도 알아보는 수고를 하였다. 나는 자전거 여행자가 호텔에서 묵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필요 이상의 친절에도 거부감이 생겨서 그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아니다. 잠깐 기다려라. 내가 적당한 숙소를 찾아 보겠다"고 하면서 나를 만류했다. 그는 비를 맞아가며 돌아다닌 끝에 결국 깨끗한 삔관을 찾아 내게 안내해줬다. 

 

고마우면서도 그의 친절이 부담스러워 다소 찜찜한 마음으로 그 곳을 숙소로 정하게 되었다. 그는 삔관을 찾으면서 그의 아내에게 몇 번 전화를 하였는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내가 자전거 동호회 멤버였고, 그는 우연히 마주친 자전거 여행자를 아내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방 배정을 받고 문을 열 때 쯤, 그의 아내가 인사를 하러 삔관으로 찾아왔다.

 

그들 부부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피곤할텐데 먼저 쉬고 계시라. 6시에 오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런 과잉 친절에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이 발동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들의 환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이 올 때까지 땀에 젖은 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짐정리를 해놓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다. "내 이름은 양유에타오이고, 중국 공산은행에 다니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밖에 그의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Untitled-8 copy.jpg

 

자전거 동호회 멤버들 주루룩 모여 황허강 만찬

 

숙소 밖에는 헬멧을 쓴 그의 아내가 자전거 타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7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서 파김치가 된 상태지만 그들이 친절을 베푸는 이유가 궁금해 그들을 따라 황허강으로 향했다. 나무가 울창한 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10분쯤 달리는 동안 노을에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황허강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도착지엔 다른 몇 사람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산멘시아시의 자전거동호회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내가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만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내가 '자전거 여행자'라는 점이 그들의 호기심과 동질감을 자극한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기념사진을 찍고 양유에타오 부부가 안내한 식당으로 가 황허강에서 잡았다는 생선 요리와 맛있는 국수를 먹었다. 그들은 모두 자전거를 사랑하고 있었고, 내가 자전거로 세계일주에 나선 것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표시했다.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자니, 10분도 안돼 다시 양유에타오를 비롯한 몇 사람이 찾아왔다.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그들은 모두 자전거를 가져왔다. 나는 양유에타오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시내로 향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한 저녁 도심 광장을 구경하고 전통찻집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그때 또 몇 사람이 찾아와 합류했다. 모두들 핸드폰을 꺼내 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찻집 주인도 종업원도 나와 함께 사진을 찍겠다고 나섰다. 당황스러웠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마치 연예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진찍기 공세를 마친 그들은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몇 살이죠? 30대로 보이는데", "세계일주를 하다니 정말 멋진 분이네요", "여기에 더 머물다 갈 수 있죠?", "그동안 만난 중국 사람들은 친절했나요?" 

 

hwang.jpg


토막말과 한자 쓰기, 손짓·몸짓으로 대화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 자전거란 공통분모로 묶여 있었고, 자전거를 중심으로 한 화제로 웃고 떠들며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차 마시는 법도 배웠다. 처음에는 찻물만 묻힌 따뜻한 찻잔을 두 손바닥으로 돌리며 향을 맡은 다음 차를 마시게 된다. 찻잔은 엄지와 인지로 잡고 중지로 받치는 형태다. 찻집 사장이 내 옆에서 특별지도를 하는 동안 모두들 내 주위에 둘러앉았다.

 

출근도 안 하고 먹을 것 들고 찾아와 오랫동안 배웅

 

대화가 자주 막히자, 작조우라는 이름의 한 멤버가 나섰다. 그는 4년간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일부 대화를 통역해 주었다. 그는 "중국에는 160개 정도의 자전거회가 있으며, 내가 원하면 가는 도시마다 자전거 멤버들이 지원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나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나는 여행 자체를 즐기러 왔기 때문에, 매우 고마운 말이긴 하지만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행 중에 이렇게 우연히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즐겁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찻집에서 나오자 그는 자기 차로 배웅하겠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운전기사가 딸린 외제 승용차였다. 그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며 나의 자전거 여행의 안전을 걱정해 주었다.

 

member.jpg


다음날 아침, 출발 준비를 하는데 양유에타오가 출근을 안 하고 먹을 것을 들고 또 찾아왔다. 그는 처음 우리가 만난 그 자리까지 앞장서서 나를 안내했다. 양유에타오는 떠나는 나를,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오랫동안 지켜봐 주었다.

 

아, 친절한 중국인들. 중국인들의 마음 씀씀이는 참으로 섬세하고 정성스러웠다. 내가 자전거 여행자라서 얻은 행운인가? 아니면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중국인의 대륙적 인심인가? 나는 페달을 밟으며 거대한 대륙 깊숙이 한바퀴 한바퀴 들어가고 있었다.
  
글·사진 정종호 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