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산나물-꽃 1석3조 봄나들이 길따라 삶따라

   지리산 자락 산청
 음식마다 약초 넣고 산채정식엔 반찬 20여 가지
 조선 명의 유이태 발자취…식후 산청9경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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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동쪽 자락, 경남 산청은 산 푸르고 물 맑은 고장. 흔히 약초고을로도 불린다. 깊고 넓고 푸근한 지리산이 품은 오만가지 약초가 있어서다. 생초면·생비량면·차황면…, 마을 이름들에도 은은한 약초 향이 배어 있는 듯하다.
 1600여 농가가 해마다 재배하고 채취한 40여가지 약초 1500여t을 출하해, 연 150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는 고장이다. 일찍이 이 약초를 바탕으로 활약한 조선시대 명의 유의태·유이태, 형제 명의로 이름을 떨친 초삼·초객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새 잎을 내민 지리산 약초와 산나물들이 앞다퉈 푸르러지는 오월, 산청으로 약초·산나물 맛보고 봄 경치 즐기며 건강도 챙기는 1석3조 여행을 떠나볼 만하다.
 
 동의보감촌 산청 한의학 박물관, 직접 체험도
 
 오월 산청에선 한방약초축제(5월4~9일)가 열리고, 철쭉으로 이름난 황매산 자락에서 철쭉제(5월7~8일)도 펼쳐진다. 한방 테마파크 ‘동의보감촌’(금서면 특리)과 경호강변에서 열리는 한방약초축제장을 찾는다면, 한방무료진료 체험, 어린이 한방캠프, 약초음식 체험, 약초 경매, 약초 비누·차·향첩 만들기, 약초 치유 템플스테이(대원사) 등 여러 체험거리·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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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약초와 한의학에 관한 상식을 얻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동의보감촌의 ‘산청 한의학 박물관’이다. 동의보감촌은 허준의 <동의보감> 발간(1610년 완성 1613년 초간본 간행) 400돌과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2009년)를 기념해 2013년 열릴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주행사장이다.
 박물관 1·2층의 전통의학실과 약초전시실에서 전통 한의학과 갖가지 약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터치스크린·동영상을 통해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해구신·천산갑·호랑이뼈·사향·웅담 등 희귀약재와 각종 광물약재, 천남성·부자 등 맹독성 약재들도 눈길을 끈다. 1층 기획전시실엔 <동의보감>(1600년대 후반 상하이 판본)과 <향약집성방>(1633년 중간 목활자본) 등 각종 한의학 고서들이 전시돼 있다. 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거북바위, 인체의 장기 모양으로 설계된 한방테마공원도 흥미롭다.
 산청 여행길엔 쌉쌀한 맛과 향기가 은근히 식욕을 돋우는 약초음식들이 기다린다. 취향에 따라 약초음식 투어를 즐겨볼 만하다. 산청엔 지리산 약초를 이용해 음식을 차려내는 약초음식 전문식당들이 수두룩하다. 음식·반찬들이 내뿜는 강한 약초 향 때문에 꺼리는 이도 있으나, ‘약식동원’(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의 뜻을 되새기며 맛과 향을 즐기다보면 몸도 마음도 든든해지지 않을까 싶다. 직접 담근 약초술과 약초차를 함께 내는 식당들도 많다.
 
 오리백숙도에도 십전대보, 한약 냄새 거의 없어
 
 먼저 동의보감촌 안 ‘약초와 버섯골 식당’. 당귀·방풍·신선초·오가피 등 싱싱한 약초 잎과 각종 버섯을 곁들인 ‘약초버섯 한우고기 샤브샤브’(1만5000원)가 인기다. 육수도 10가지 이상의 각종 한약재를 달여 만든다. 방풍·참죽나무(가죽나무)잎·뽕잎 무침 등 제철 나물과 약초전·솔잎차도 맛볼 수 있다. 저온 증류추출기로 한약을 달여내는 ‘허준 탕제원’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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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왕릉 들머리의 왕산산장식당은 지리산 자생 약초와 제철 산나물, 직접 말려 저장하고 무쳐내는 묵나물·장아찌들을 두루 맛볼 수 있는 약초·나물 전문식당이다. 산채정식(7000원)에 오가피순·엄나무순·머위 등 나물무침과 민들레·방풍·산초·취·당귀·콩잎 등 장아찌류, 데친 두릅과 고추김치 등 20여가지 반찬이 따라 나온다.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주인은 칡·도라지·배즙 등 약 달이는 일을 하다 7년 전 식당을 차렸는데, 유명세를 타자 1년 전 식당 옆에 대형 조립식 건물을 지어 확장했다. 예약 손님만 받는다.
 산청읍 차탄리의 송림산장은 ‘십전대보 오리백숙’으로 이름난 집. 농장 직거래로 유황 먹인 청둥오리를 가져와 황기·당귀·천궁·창출·오가피·엄나무·제피나무 등 10여가지 약재를 넣고, 호두·잣·해바라기씨·호박씨·대추 등을 곁들여 끓여낸다. 흰쌀은 빼고 율무·현미·수수·흑미·검은깨를 쓴다. 차려진 오리백숙(1마리 4만원)은 겉보기에 빛깔이 거무스름한 것이 한약재 맛이 날 듯하다. 그러나 냄새가 거의 없고 고기도 아주 부드럽다. 다 먹으면 백숙과 함께 끓이다 떠내 따로 끓인 잡곡 죽이 나온다. 대통주도 흥미롭다. 10여가지 약재로 담근 커다란 술통에, 양쪽이 막힌 상태로 잘라낸 대나무통을 넣어둬 오랜 시간 술이 대나무통으로 스며들게 해 만든 대나무 술통이다.
 
 지리산 둘레길 9개 코스 중 5개 구간이 지나
 
 약초음식을 맛보기 전후로,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산청의 산길을 거닐어도 좋겠다. 지난해 말까지 개장한 지리산 둘레길 9개 코스 중 5개 구간이 산청에 있다. 새로 뚫린 지리산 둘레길 8코스(단성면 운리~시천면 사리 13.1㎞, 5시간)의 경우 마을길과 다양한 수종의 숲길, 폭포가 이어지는 백운계곡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아직은 숲이 우거지지 않아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5월 이후면 소나무숲·참나무숲·잡목숲이 푸르른 제빛을 내뿜게 될 전망이다. 지루함을 줄이려면, 운리에서 6.2㎞쯤 걷다 백운계곡을 만나 계곡을 따라 약 2㎞ 거리의 백운마을로 내려서는 것도 방법이다. 백운계곡은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한 지역 선비들의 자취가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로 남아 있다. 백운폭포의 자태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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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굵게 걸어올라 빼어난 전망과 정취를 즐기려면 신등면 대성산(둔철산) 자락 절벽의 암자 정취암(淨趣庵)에 올라볼 만하다. 큰길에 차를 대고 20분(800m) 가파른 산길·계단길을 걸어오르면 된다. 정취암은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암자다. 오래된 건물은 없으나, 암자 뒤 절벽 위 산신당의 산신탱화(1833년)와 원통보전 안의 목조관음보살좌상(조선 후기)이 남아 있다. 호랑이를 탄 신선을 두 동자가 보좌하는 모습의 산신탱화는 불교와 도교의 결합을 보여준다. 산신당 앞에 서면 봄기운 서린 산과 들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산청9경 중 제8경이 정취암 전망이다. 비가 온 뒤에 골마다 일어나는 운무도 그림 같다. 정취암은 차로 오를 수도 있으나 2.5㎞가량 우회해야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옛 정취를 간직한 아담한 절 율곡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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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왕릉은 옛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왕 구형의 능이라 전해져 오는, 돌로 쌓은 무덤이다. 높이 7m, 돌을 계단식으로 거칠게 쌓은 7단 형식인데 맨 위쪽은 타원형이다. 다섯번째 단에 가로세로 40㎝가량의 감실이 설치돼 있다. 왕릉으로 공식 확인은 되지 않은 무덤이다.
 산청 문화관광해설사 민향식(55)씨는 “어찌됐든지 내 어릴 때부터 돌무덤은 저 모양 저대로였다”며 “구형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들이 봄가을로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왕릉 들머리에 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덕양전이 있다.
 산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가는 길/중부지역에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대전~통영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내려가 산청나들목에서 나간다.   
 ⊙ 먹을 곳/약초·버섯·한우샤브샤브를 내는 약초와버섯골식당 (055)973-4479, 약초·산나물 산채정식을 차리는 왕산산장식당 (055)973-6395, 십전대보탕 형식의 오리백숙과 대통주를 내는 송림산장 (055)972-2988, 흑돼지고기를 다루는 흑돼지와누렁이 (055)973-8289.
 ⊙ 주변 볼거리/산청에서 둘러볼 만한 또다른 선인 발자취로 지리산 자락의 내원사와 대원사, 단속사 터, 남명 조식 기념관, 남명을 기리는 덕천서원, 전통 한옥마을인 남사예담촌 등이 있다.
 ⊙ 여행 문의/산청군청 문화관광과 (055)970-6422, 산청한의학박물관 (055)970-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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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