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바람·여자만 안다면 제주를 모른다 박물관 기행

<7>국립 제주박물관
섬 특유의 역사 밭이자, 문화유산 보물창고
18세기 초 삶 닮은 탐라순력도는 ‘꿈틀꿈틀’
 

 <국립제주박물관 정보>
 개관=2001년
 위치=제주도 제주시 삼사석로 11
 주요전시물=<탐라순력도>, 제주 선사시대 유물, 표류·표착 관련 기록물, 제주 고지도 등
 입장료=당분간 무료(무료관람이지만 입구에서 무료관람권을 받아 가지고 들어간다)
 휴관일=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연락처=(064)720-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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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국내에서 확실히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정취를 안겨주는 관광지다. 광활한 한라산 자락의 멋진 초지와 곶자왈 지대의 원시림, 무수한 오름들과 해안 바위경치들이 그렇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와 새로 개발하고 건설한, 다양한 편의시설들도 한몫한다. 제주도를 찾은 나그네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위락시설들을 즐기는 동안, 잠시 잊어버리는 게 있다. 제주도가 선인들 발자취 무수히 깔린 역사의 밭이요,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라는 사실. 구석기시대부터 탐라국~고려~조선시대에 걸쳐 옛 사람들의 삶의 자취가 방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섬 특유의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제주도 역사와 문화유산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주시 사라봉 자락 국립제주박물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한라산,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성산 일출봉 세계자연유산
 
Untitled-6copy 2.jpg박물관에 들어서면 먼저 중앙홀 정면에서 대형 제주목 관아와 읍성을 재현해 놓은 커다란 옛 제주시 모형이 맞아준다. 제주 신시가지나 서귀포 중문에 여장을 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며 경치를 즐긴 뒤 공항으로 직행하는 관광객들은 만날 수 없는 모습이다. 제주시에 현무암을 다듬어 쌓은 둘레 3㎞의 석성이 있었고, 관아와 관덕정이란 걸출한 정자(보물 322호)가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많다고 한다. 중앙홀 천장은 탐라 개국설화·한라산·삼다도(돌·바람·여자)를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전시관은 선사실·탐라실·고려실·탐라순력도실·조선실·기증실 여섯개로 이뤄졌다. 선사실은 먼저 제주도 섬의 탄생 과정부터 소개한다. 제주도는 이런 섬이다. 면적은 서울의 3배 크기다. 54개의 작은 섬을 거느렸고, 주민이 사는 섬은 8개다. 한라산 주변에는 368개에 이르는 오름(기생화산)들이 겹치고 뭉치고 엇갈리고 흩어져 있다.
 
제주도엔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자연유산이 3곳 있다. 한라산,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성산 일출봉이다. 이런 자연유산은 약 120만년전부터 다섯 단계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이뤄졌다. 한라산은 약 30만년 전, 주변 기생화산들은 약 2만5천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북반구 일대에 서식하는 갈색곰 뼈의 화석은 제주도가 과거엔 육지와 이어진 땅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1만년전 고산리에 살던 신석기인들의 토기와 토기 파편, 돌칼·화살촉 등 석기류에서부터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고산리 유적은 국내 신석기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알려진다. 빗살무늬 토기보다 앞선 토기가 나오는데, 일부러 마구 그은 듯한 선들이 얽혀 새겨진 모습이다. 이는 점성을 높이기 위해 흙에 잡초와 짐승의 털 등 유기물질을 섞어 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고 남은 흔적들이 무늬처럼 보인다.
 
옛 동남아 주요 나라들 잇는 해양문화 교류의 한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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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것은 삼화지구에서 출토된 랴오닝식 동검 조각이다. 2006년 이 청동기 조각이 발견되기 전까지 제주도엔 청동기시대가 누락돼 있었다고 한다. 이전엔 이 시기를 무문토기시대로 불렀다. 흙을 구워 만든 규모가 작은 독무덤(2차 장례용), 받침돌이 여러개(11개짜리도 있다) 고인돌, 전복 껍질을 갈아 만든 화살촉 등 독특한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철제 칼·화살촉·창과 동전, 옥으로 만든 장신구 등 유물들은 모두 제주도 사람들이 외부와 활발한 교류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박물관 안내해설사 팽선우(25)씨는 “제주도에선 철기도, 청동기도, 옥도 생산되지 않는다”며 “광물이 나지 않으므로 금속제 도구들이나 장신구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것들”이라고 말했다. 철제 칼의 손잡이 장식물인 고사리 모양으로 말린 철제품은 김해 양동리 유적에서 발굴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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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씨가 덧붙였다. “제주도는 섬나라 특유의 전통문화를 간직하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통로 구실도 했습니다. 중국·일본·오키나와·타이완 등 옛 동남아 주요 나라들을 잇는 해양문화 교류의 한 축이었습니다.” 제주도의 역사는 선사시대·원삼국시대(~서기 300년), 탐라시대(300~1105년), 고려시대(1105~1392년), 조선시대로 나뉜다. 탐라국이 존재했던 시기가 신라때부터 고려시대까지 겹치므로 1105년까지를 탐라시대로 부른다.
 
탐라시대의 토기를 포함해 대부분의 토기 등 생활용기들은 모두 조각난 흔적이 있고, 색깔은 붉은빛이 도는 게 많다. 1천200~1천300도의 고온에서 구울 수 있는 가마가 발달하지 않아, 노지에서 600~700도의 저온에서 구웠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육지에서 들어온 회색빛이 도는 단단해 보이는 도기와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 해저 유물도 있다. 신창리 앞바다에서 해녀가 물질하다 발견한 깨진 그릇 조각들이다. 남송시대의 중국 배가 제주도 서쪽 해안을 항해하다 침몰하면서 남겨진 유물들이다. 모두 깨진 자기들만 나온 것은 바다 밑의 거친 현무암 바위 때문이다. 고려 청자도 조선 백자도, 절터에서 나온 점판암 석탑재들도 모두 육지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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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순시 기록…지도 풍물 양로잔치 등 타임머신 탄 듯

 
이 박물관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 중 하나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2-6호)다. 조선 숙종 28년(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제주도에 부임해온 이형상(1653~1733)이 그해 관내 각 고을들을 돌며 진행한 행사들과 풍광들을 가로 35㎝, 세로 55㎝의 종이에 그린 총 41폭의 채색 화첩이다. 그림은 제주목의 김남길이라는 화공이 그렸다. 그림과 함께 당시 상황까지 상세히 기록한 매우 귀중한 사료다.
 
1702년 10월28일부터 11월19일까지 진행된 순시 내용을 기록했다. 제주도 지도와 관아와 읍성, 군사시설을 비롯해, 활쏘기나 잔치 등 풍물들을 담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전체 화첩 구성은 당시 제주도 전도 1쪽, 순시 장면 등 40쪽, 그림에 관한 기록 2쪽으로 이뤄졌다. 이형상은 평생을 검소하게 산 청백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주목사 임기(2년6월)를 채우지 못하고 유배인들 편에 섰다는 이유로 파직돼 제주도를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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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타원형으로 제주도를 형상화한 탐라순력도실엔 한가운데 진본 탐라순력도를 전시하고, 벽면에 복사본들과 그 내용을 설명,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화첩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지도 한라장촉은 독립된 제주도 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한양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린 것이어서 제주목이 아래에, 서귀포 지역은 위로 가게 뒤집어진 모습이다. 목사 일행은 조천성에 들어가 군사훈련과 말을 점검하고(조천조점), 김녕의 용암굴을 둘러본 뒤(김녕관굴), 정방폭포도 구경하고(정방탐승), 서귀진의 군사를 점검(서귀조점)한 뒤엔 천제연폭포에서 활쏘기대회(현폭사후·명월시사)도 연다. 또 귤나무 숲에 들어 풍악을 곁들인 잔치를 열고(고원방고), 산방산 산방굴 앞에서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산방배작). 그림에서 이형상 목사는 붉은 모자를 쓴 이로 표시돼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이 목사는 순행을 마치고 제주목으로 돌아와서는 각 고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양로잔치를 베푼다(제주양로). 제주양로 장면의 아래쪽에 적힌 기록엔, 100살 이상이 3명, 90살 이상이 23명, 80살 이상이 183명 참석했다고 적혀 있다.
 
표류인들과 유배자들의 기록과 유품도 별난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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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표착한 외국인이나 섬에서 육지로 오가다 표류한 섬 사람들의 기록도 볼거리다. 1770년(정조 46년) 향시에서 장원을 한 장한철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오키나와 등에 표착했던 사실을 일기체로 기록한 <표해록>, <하멜 표류기>의 복사본 등이 전시돼 있다. 충암 김정, 우암 송시열, 추사 김정희, 면암 최익현 등 제주도에 유배됐던 이들의 행적과 유품을 전시한 코너도 흥미롭다. 제주 해녀들의 옷과 도구, 제주의 무속신앙, 기증유물들을 둘러보고 나면 다시 제주읍성 모형이 전시된 중앙홀로 나오게 된다.
 
팽씨는 전시실을 둘러보기에 앞서 “중앙홀의 제주읍성 모형은 전시실을 다 둘러본 뒤 마지막에 보라”고 권했다. 그 말이 맞다. 제주도의 역사 문화를 살펴본 뒤에 접하는 제주목관아와 성곽 등 제주시의 옛 모습은 한결 깊이있게 다가오니 말이다.
 

- 박물관에 학예사 2명을 비롯한 자원봉사 해설사, 직원들이 상주한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 2회 정기해설이 진행된다.     
- 1층 기획전시실에선 수시로 특별전이 마련된다. 박물관 안팎에선 이와 별도로 음악·예술 공연, 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3월부터 10월까지는 토요 야간개장 및 토요박물관 산책 행사도 열린다.
- 1층 상설체험 코너에선 요일별로 기와편, 막새, 대동여지도 등 목판을 찍어 가져가는 탁본체험을 진행한다. 한지 2장 500원, 4장 1천원.
- 박물관 옆엔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탐라순력도> 주제의 제주 역사문화 체험공간 ‘어린이 올레’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토요일 공작교실도 진행한다.


 
제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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