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등 헬멧 쓰고 수백만 년 전 1.87㎞ 동굴로 시간여행 레저

평창 백룡동굴 탐방·칠족령 트레킹

국내에서 유일한 탐험 동굴
안내자 따라 이동하며 탐방
원시 모습 그대로의 별천지

백룡동굴 안에서 안내자가 크고 작은 종유석과 석순 등에 조명등을 비추고 있다.
백룡동굴 안에서 안내자가 크고 작은 종유석과 석순 등에 조명등을 비추고 있다.

어둠 속 시간여행이다. 물과 돌과 시간이, 수십만 년 동안 흐르고 뚫고 맺히고 쌓여서 이뤄낸 보석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해와 달이 쉼 없이 뜨고 지며 힘써 조각해온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굴 나라로 가보자.

동굴 여행은 사철 어느 때 가도 좋은 여행지다. 깊은 동굴 속은 기온 변화가 거의 없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하고, 봄가을엔 선선하다. 강원도 평창 동강 절벽에 있는 백룡동굴도 연평균 기온 섭씨 13도 안팎을 유지하는, 훈훈한 동굴이다.

백룡동굴이 더욱 매력적인 건 훼손이 덜 된 태고의 경관을, 거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탐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백룡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한 탐험 동굴이다. 동굴 안에는 조명 시설도 안내판도 설명판도 없다. 탐방을 위한 최소한의 통로가 있을 뿐 이동로 방향 표시도 머리 조심이나 낙석 주의 경고도 없다. 탐방 편의를 위해 통로를 개척해 지나치게 훼손하거나, 온갖 시설물과 조명으로 멋지게 장식한 동굴들과 다르다. 그래서 백룡동굴을 탐방하려면, 반드시 제공되는 탐방복에 장갑과 장화를 착용하고, 조명등 달린 헬멧을 써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안내자를 따라 이동하며 동굴을 둘러보게 돼 있다.

종유석과 석순들이 만나 석주를 이루기 시작한 모습.
종유석과 석순들이 만나 석주를 이루기 시작한 모습.

천연기념물 제280호인 백룡동굴은 4억5000만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층이 바닷속에 있다가, 1억 년 전쯤 솟아오른 뒤 오랜 세월 동안 물이 스며들고 흐르며 석회암층을 녹여 만들어진 동굴이다. 수백만 년 전 동굴이 형성됐고, 수십만 년 전부터 종유석·석순·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1년에 0.1㎜쯤 자란다는 온갖 생성물들이 동굴 가득 우거져 숲을 이루는 아름다운 동굴이다.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의 백룡동굴 탐방센터로 들어섰다. 탐방을 신청하려면 서약서를 써야 한다. 인솔자 안내에 따르지 않거나, 동굴 생성물 훼손 때 ‘퇴굴 조처’한다는 내용이다. 9살 미만이나 65살 이상은 탐방을 제한한다. 동굴을 아무나 쉽고 편하게 구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카메라나 휴대폰 등 개인 물품도 지참할 수 없다. 탐방복에 주머니도 없다. 1회 20명 이내로 하루 최대 240명까지 안내자를 따라 탐방한다. 탐방료는 성인 1인 1만5000원, 어린이·청소년은 1만원이다.

탐방 차림을 갖춘 뒤 안내자를 따라 나루터로 내려가 나룻배를 타고 동굴 입구로 이동한다. 2010년 개방 직후에는 절벽에 설치한 이동로를 따라 입구까지 걸어갔으나 낙석이 잦아 위험해 폐쇄했다. 500m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안내자는 백룡동굴의 기본 정보를 설명해준다.

달걀 프라이 석순.
달걀 프라이 석순.

옛날에는 주민들만 알고 가끔 드나들던, 그리 크지 않은 동굴이었다. 1976년 주민들(당시 고교생이던 정무룡씨 형제 등)이 동굴에 머물다 내부의 또 다른 공간을 찾아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주민들은 당시 동굴 한쪽 벽의 작은 구멍에서 바람이 불어나오고, 이 구멍으로 박쥐가 드나드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들은 구멍을 조금씩 넓혀 한 사람이 들어갈 만큼 파낸 뒤 안으로 들어갔고, 거대한 동굴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냈다. 본격적인 전문가들의 조사가 이뤄졌고, 1979년 천연기념물(260호)로 지정됐다. 동굴 이름 ‘백룡’도 백운산과 정무룡씨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 약 1.87㎞인 백룡동굴 입구는, 백운산 남쪽 자락을 감싸고 도는 동강 물길에서 15m 위 절벽에 있다. 동굴은 중심 굴인 A굴(785m)과 B굴(185m), C굴(605m), D굴(300m) 3개의 가지 굴로 나뉜다. 개방돼 탐방할 수 있는 곳은 A굴뿐이다. 나머지 가지 굴들은 지형이 매우 복잡한데다 위험한 구간이 많아 개방하지 않는다.

동굴 입구는 작은 편이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 내려가면 어둠이 시작되는데, 헬멧의 조명등을 켜야 한다. 지나온 동굴 입구가 빛이 드는 창문처럼 보이는 곳에 선인들 유적이 있다. 200여 년 전의 온돌과 아궁이 유적이다. 아궁이 안에 있던 숯을 연대 측정해보니 1800년 무렵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가지굴인 B굴 갈림길을 지나면서 천장과 벽면에 본격적인 동굴 생성물 경관이 펼쳐진다. 종유석과 석순들로 가득한 동굴의 공기는 갈수록 습해지고, 다랑논 형태의 휴석 무리와 웅덩이도 나타난다. 물웅덩이를 조명등으로 비추자 작은 새우들이 보인다. 안내자 김도현씨가 설명했다 “동강 물이 동굴로 흘러들면서 따라 들어와 갇힌 아시아동굴옆새우입니다. 이후 눈이 완전히 퇴화했어요.”

안내자가 주민들이 뚫은 이른바 ’개구멍’을 빠져나오고 있다.
안내자가 주민들이 뚫은 이른바 ’개구멍’을 빠져나오고 있다.

한동안 어둠 속에서 조명등을 비추며 전진하자 막다른 곳에 이른다. 입구로부터 210m 지점이다. 김씨는 “여기서부터가 진짜”라고 했다. 한쪽 벽 바닥에 작은 구멍이 보인다. 바로, 주민들이 뚫은 ‘개구멍’이다. 이곳까지는 기존에 알려진 공간이라 훼손됐지만, 이 구멍 안쪽은 원시 그대로의 별천지라 한다.

개구멍을 통과하려면 옷과 장갑·장화에 진흙을 묻혀야 한다. 개구멍을 빠져나가니 새로운 경관이 펼쳐졌다. 헬멧의 조명등을 비추는 곳마다 크고 작은 종유석·석순·석주·유석 들이 들어차 있다. 거대한 고드름들을 연상시키는 종유석 행렬, 수시로 길을 막아서는 석주와 석순 무리가 조명등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간다. 인적이 닿지 않은 미지의 동굴을 실제로 탐험하는 느낌이다. 가늘고 긴 종유관들 끝에 매달린 작은 물방울이 이 동굴 내부의 형성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등줄노래기.
등줄노래기.

안내하던 김씨가 조명등을 천장 한쪽에 비추며 길쭉한 종유석 하나를 가리켰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종유석이다. 길이 43㎝, 둘레 18㎝에 이르는 당당하고 우람하게 뻗은 남근석이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 중에는 유방을 닮은 것도 있고, 종을 닮은 것도 있다. 천장에서 자란 종유석과 바닥에서 솟은 석순이 만나기 직전인 것들도 있고, 완전히 한몸이 돼 굵직한 석주를 이룬 것들도 많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 위해 온몸에 물과 진흙을 묻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엎드리고 기어서 비좁은 틈을 통과하거나 허리를 굽혀 헬멧을 천장에 부딪쳐가며 지나는 구간이 여러 곳이다. 얕은 웅덩이를 저벅저벅 건너야 하는 곳도 있다.

동굴 탐방로 끝에는 꽤 널찍한 광장(약 1000㎥)이 나타난다. 탐방 가능한 동굴의 끝이자, 개방하지 않는 C굴과 D굴의 시작점인 곳이다. 이 공간은 헬멧 조명등만으로는 전모를 살펴보기 어렵다. 이곳에만 유일하게 조명을 설치한 이유다. 김씨가 바위 언덕에 올라 조명 스위치를 켜자 높은 천장과 거대한 벽면, 그리고 빼곡하게 늘어진 종유석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궁전의 거대한 벽화가 떠오르는 경관이다. 벽면마다 늘어지고 흘러내리고 솟은 생성물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관박쥐.
관박쥐.

“이제 헬멧 조명등을 꺼주세요. 모든 조명을 끄겠습니다.” 빛과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했다. 완벽한 어둠과 정적의 시간이다. 정말 어둠 외엔 아무것도 없는 칠흑의 세계가 엄습했다. 눈앞의 손도 안 보이고, 거리도 가늠할 수 없는, 시공간이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다. 이 암흑 속에서 수만 년, 수십만 년의 시간은 어떻게 어디로 흘러갔을까. 박쥐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김씨가 동굴 광장 구석의 흐릿한 조명등을 켜자 다시 벽화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김씨가 전등으로 동굴 한쪽 천장의 검은 부분을 비춘다. 박쥐들이 매달려 있던 자리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눈의 소중함, 눈부신 빛의 아름다움이 새삼 가슴을 두드렸다. 백룡동굴 탐방은 겨울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매일 4회(오전 2회, 오후 2회) 진행한다. 2인 이상 모일 때 출발하며, 출발 시각 전 10여 분 전에 도착해야 탐방할 수 있다.

칠족령 산책 코스
칠족령 산책 코스

백룡동굴 탐방에 빼놓을 수 없는 산책 코스가 있다.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이다. 평창 문희마을과 정선 제장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다. 백룡동굴 탐방센터로부터 1.6㎞ 거리인 칠족령 전망대까지의 겨울 산책을 즐겨볼 만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강 물줄기가 매우 아름답다. 겨울 경관은 굽이치는 푸른 물길이 돋보이는 여름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눈 덮인 동강 줄기의 설경은 또 다른 경지다.

제장마을을 거쳐 흘러온 물길이 하늘벽과 하방소를 거쳐, 가파른 절벽을 따라 휘어지며 바새마을을 에워싸고 흐르다, 연포마을을 지나 다시 휘어져 백룡동굴 앞쪽으로 돌아나간다. 멀리 연포마을 건너편은 영월 땅이다. 전망대 갈림길에서 500m쯤 거리에 ‘하늘벽 구름다리’ 전망대도 있으나, 겨울엔 길이 미끄러워 피하는 게 좋다.

전망대에서 머무는 시간까지 포함해 2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이 완만해 힘든 구간은 없다. 하지만 눈이 내리면 조심해야 하는, 좁고 미끄러운 비탈길이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 전경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 전경

백룡동굴 들머리는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동강을 따라 이어진다. 길이 닦이기 전까지 주민들은 하천 바닥을 따라 걸어다녔다고 한다. 중간 도로변에 ‘안돌’이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옛날엔 이곳까지 하천이었는데, 이 바위를 안고 돌아야 지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를 운반하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떼꾼 부부의 슬픈 사연이 깃든 바위다.


한국의 민물고기는 몇 종이나 될까. 마하리 본동마을에 있는 평창동강민물고기생태관에 가면 알 수 있다. 모두 212종이고, 이들 중 고유종은 56종이다. 동강에 사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황쏘가리, 그리고 쉬리·꺽지·미유기·배가사리 등 한국 고유 어종들이 노니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평창/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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