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대 이은 내공, ‘맛 없는 맛’ 고스란히 우리땅 이맛

구례 백화회관 산채한정식
자연 그대로 볼품은 꾀죄죄, 맛은 순하디 순해
직접 담그고 키우고 버무리고…, 돈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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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이란, 한 가지 일이나 기술에 매달려 남다른 경지에 이른 이들의 자세를 가리킨다. 음식 만들기에서도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다. 독특한 제조방식과 맛, 향을 자랑하는 술이나 장류 같은 전통음식들에 이런 남다른 솜씨와 노력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음식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정성과 손맛이다.
 
소문난 음식 맛에는 그만한 내력이 담겨 있게 마련인데,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련돼 온 ‘정신’이 손맛의 바탕을 이룬다. 음식 재료와 맛에 대한 주인의 확고한 자신감, 정성어린 태도에서 손맛도 나온다. 그것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며 그 평가가 다시 주인이 다루는 음식에 반영돼 상차림이 완성된다. 이런 자세는 엄격한 훈련과정을 거쳐 대물림되기도 한다. 대를 이어 밥집하는 분들의 내공이란 이런 것이다. 지리산 자락 화엄사 들머리의 산채한정식집 백화회관도 그런 내공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음식점이다.
 
돈 없어도 두 말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Untitled-3 copy.jpg백화회관은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60년대 화엄사 들머리 여관촌에서 여관과 식당을 함께 하던 곳으로, 이때 이미 나물맛 밥맛 좋은 곳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입소문을 낸 이들은 등산객들이었다. 60~70년대 화엄사 쪽으로 산행을 자주 하던 산행객치고 백화여관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백화여관은 지리산 산꾼들의 휴식처이자 에너지 보급소였다.
 
이 집 안주인 이은순(60)씨가 음식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아직도 배우는 사람처럼 겸손하고 조심스럽다.
 
“시어머니께선 돈 버는 일보다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씨는 옛날 지리산을 찾던 나이 드신 분들 중에 지금도 ‘백봉금실 여사’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고 전했다. 백봉금실 여사는 당시 여관을 운영하던 임판례(10여년 전 88세로 작고)씨를 가리킨다. 백봉금실은 당시 화엄사 주지가 지어준 호다.
 
임씨는 깔끔하면서도 자상한 성품으로 이름높았다. 맛깔스런 음식 맛으로 유명세를 타면서도, 배는 고픈데 돈이 없다는 사람이 오면 두말 않고 식사를 대접하고, 산행길 하산이 늦어 잠 잘 곳 없다고 찾아오면 또 그냥 재워줬다고 한다. 특히 돈 없는 학생이 오면 반드시 먹여 보냈고, 가출한 청소년이 오면 타일러서 집으로 보냈다. 일하던 종업원도 함부로 내보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성품은 특히 산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씨가 전하는 시어머니 임씨의 영업방침 또는 생활신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절대 돈이 먼저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돈만 알면 얼마 못 간다. 도와주고 베풀어라.”
 
Untitled-2 copy.jpg본디 광주시내에서 여관·식당을 하던 임씨는 60년대초 화엄사에 나들이 왔다가, 기왕 숙박업과 식당을 할 거면 경치 좋은 곳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화엄사 앞 여관촌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러다 사찰 땅이던 여관촌이 80년대 중반 철거되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기면서, 며느리 이은순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산채한정식을 내는 전문음식점을 차렸다. 이때부터 이은순씨는 시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고스란히 전수받게 된다.
 
하나하나 고통의 과정 겪고 태어난 밥상
 
이씨에 따르면 시어머니가 음식을 차려내는 방식은 거의 고통에 가까운 것이었다.
 
“간장·된장·고추장 다 직접 담그고, 방부제 하나 안 넣고 옛날 방식대로 했어요. 산나물은 모두 직접 집에서 말려서 무쳐 내고, 상추·깻잎·고추·도라지 등 야채와 매실도 다 마당에서 키운 것을 썼죠. 모든 음식은 직접 양념해 버무리고 맛보고 한 뒤 손님상에 냈습니다.”
조미료는 소·돼지고기 요리에만 조금 쓸 뿐 다른 음식엔 거의 쓰지 않았다. 다시마·새우·버섯가루 등을 활용한 천연조미료를 사용했다.
 
“음식 만드는 것 배울 땐 한복부터 차려 입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배웠어요. 함께 밥도 못 먹었고 방에서 나갈 때 뒷걸음질로 조심조심 물러나야 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남편은 부엌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엄하게 배운 게 지금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됐어요. 정성을 다해 꼼꼼하게 만드는 과정을 겪었으니 지금 이만큼이라도 하는 거지, 건성건성 배웠다면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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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나물만 고집하는 이 집의 음식들이 믿음이 가는 건, 밥상에 오른 것들이 모두 인공감미료, 인공색소를 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꾀죄죄한 모양과 맛을 내기 때문이다. 두릅을 보자. 상에 오른 두릅은 색깔이 누렇고 볼품이 없다.
 
“약품처리한 중국산 두릅은 삶아놓아도 파릇파릇한 빛깔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요. 모양도 아주 생생하고요. 여기 두릅은 염장한 뒤 삶아낼 때 처음엔 새파랗지만 나중엔 누렇게 변해요. 이게 진짜예요.”
 
손님 가운데는 이런 두릅을 보고는 맛없게 생겼다며 꺼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설명해 주면, 손님들이 더욱 신뢰를 갖고 찾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죽순나물, 매실장아찌, 토란볶음, 머윗대무침도 직접 채취해 저장하고 조리해 낸다.
 
이씨는 “목이버섯만은 상인이 갖다 주는 걸 쓴다”고 말했다. 지금은 구하기가 어렵지만, 옛날엔 석이버섯도 냈다. 당시 이씨는 산에 가서 돌에 붙은 버섯을 채취해와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불순물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든 다음, 동치미나 배추김치 등에 넣어 손님상에 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가르쳐 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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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차곡차곡 가죽나물 부각에 일본인들 탄성
 
이씨가 만드는 반찬 가운데 정성이 뻗치다 못해 부질없어 보일 정도로 정성을 들이는 것이 있다. 가죽나무 새순으로 만드는 가죽나물 부각이다.
 
4월말~5월초에 가죽나무에서 새 잎이 나오는데, 오래된 가죽나무에서 길이 10~20㎝쯤 되는 것을 채취해 바로 삶는다. 삶아낸 잎을 빨랫줄에 하나 하나 걸어 말린다. 이틀 정도 말리면 새순의 잎은 마르고 줄기는 그대로인데, 이를 거둬 다시 하루 정도 응달에서 건조시킨다. 그리고 찹쌀에 마늘·생강·참기름·간장 등을 넣고 찹쌀풀을 쑤어 이것을 잎에 골고루 몇번씩 발라준다. 설탕을 살짝 입혀 방바닥에 종이를 깔고 널어 말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부각이 백화회관 산나물한정식 상차림에 매번 기본찬으로 오른다.
 
차림표의 안주 항목 중에도 가죽부각이 있다. 술안주로 한 접시에 1만5천원씩 받고 낸다.
“솔직히 이런 음식 사서 드시려고 해도 살 수 없을 거예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반찬이죠. 일본 사람들은 이걸 맛보곤 환성을 지르며 도시락 통으로 몇개씩 사가곤 해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산채한정식 기본 상차림(1인분 9천원)엔 모과고추장무침·토하젓·도라지·고사리·깻잎·취나물·더덕구이·김부각·생선구이 등 20여가지 반찬이 오른다. 1만8천원짜리 상엔 참게장·갈비찜·조기구이·홍어 등이 추가되고 반찬 수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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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은 직접 하지 않고 마을 할머니들이 만드는 것을 받아쓴다. 취나물도 대량재배한 것을 받아쓴다. 받아쓰는 것들 중에 토종닭과 재첩이 있었는데, 중간상인들이 처음 약속과 달리 사료 먹인 닭을 가져오고, 눈속임으로 진공포장된 중국산 재첩을 가져오자 아예 거래를 끊고 식단에서도 없앴다고 한다.
 
상에 놓인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면 그 정성 그 맛이 저절로 느껴진다.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원재료의 맛이다. 상에 나왔던 반찬은 모두 음식쓰레기로 나가는 건 물론이다.
 
이씨는 “손님들 중엔 반찬들이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있다”며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원재료의 순한 맛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매일 아침 8시 이전부터 그날 음식 준비를 시작한다. 이 역시, 도와주는 아주머니들이 나오기 전에 직접 음식 장만을 해놓던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습관이다.
 
<백화회관> 산채한정식 1인 9천원, 특 산채한정식 1인 1만8천원.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397-1. (061)782-4033.
  
<주변 볼거리>
연곡사·천은사·화엄사 등 지리산 자락 고찰, 오산 절벽밑 암자 사성암, 수려한 조선 고가옥 운조루, 황토염색 체험장 황기모아, 섬진강변 농촌체험마을인 다무락마을, 봄철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상위마을, 지리산온천 등.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에서 나가 17번 국도 타고 내려가 남원에서 19번 국도로 바꿔타고 구례로 간다. 화엄사 들머리 길로 5분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백화회관 간판과 한옥 식당이 나타난다. 88고속도로에선 남원에서 나가 19번 국도 타고 구례로 간다.

구례/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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