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보니 내 방에 반나체 짐승들만 득시글

<2> 남미에서의 첫 식사 말도 못하고 겁나 사먹거나 요리하지도 못해 그렇게 별러 왔건만 막상 방구석에서 눈물만 여행 얼마동안 할거야? 몰라, 돈 떨어지는 대로. 돈 없으면 길거리에서 돈도 벌고 그러지 뭐. 허풍스럽게 말을 늘어놓고 떠난 여행. 60리터짜리 배낭에 이것저것 잔뜩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주위에선 ‘여자 혼자 대단하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곧 닥쳐올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도 못 이룰 지경이었다. 야속한 시간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잘만 가더라. 인스턴트 시식 코너 맴돌며 눈치껏 넙죽넙죽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도착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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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이여, 꿀이여? “아주 그냥 끝내주어유”

서해 천수만 ‘바다의 우유’, 구이·전·칼국수로 ‘무한 변신’ 고소하고도 얼얼한 특산 어리굴젓은 밥도둑 서해안에 초겨울 큰 눈이 내렸다. 기름으로 얼룩진 한 해를 닦아내고 맞는 새 겨울 서설이다. 통통배도 조각배도 닻을 내리고 눈세례를 받는다. 찬바람 불고 눈발 날려도 갯벌은 변함없이 기름지다. 얼고 녹고, 물 머금고 내뱉으며 굴·조개를 키우고 갯지렁이를 살찌운다. 추울수록 부드러운 속살 깊이 품었던 야문 갯것들을 어민들 손길에 내어주는 해산물의 자궁이다. 태안 앞바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참사 1년. 서해안, 특히 충남 바닷가 주민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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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금을 위해 일단 간다, 쥐뿔도 모르고

<1> 왜? 체 게바라·파타고니아·아마존이 유혹 한 표 차로 져서 ‘정치적 망명’ 핑계도   “왜?” 살면서 가장 많이 듣거나 또 많이 하는 질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일에 대한 원인이나 동기, 그리고 그 후의 결과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혹은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다지 남에게 호기심이 없는 나로서는 왜 그렇게 나에게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지 모르겠다. 아, 지금도 “왜”라고 묻고 있다. 밥은? 살려고. 돈은? 살려고. 여행은? 글쎄, 이것도? 한국 생활에서도 많이 듣던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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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산행 뒤 온천서 몸 녹이고 바닷바람 쏴~

울진 온천+트레킹 백암은 신라 때부터 치유로 유명한 유황온천 덕구는 국내 유일 자연용출, 원탕 2m 치솟아 울진은 멀다. 산 높고 골 깊은 경북 하고도 동해안이다. 고속도로도 타고 국도도 달려야 한다. 멀고 멀어서, 감동은 더 진하게 다가온다. 겨울에 더 빛나는 초록 숲과 뜨거운 온천수, 푸르고 깨끗한 바다가 기다린다. 수질 좋은 온천이 두 곳 있고, 각 온천은 깊은 산속으로 이어진 멋진 숲길을 거느렸다. 온천에 이르는 길은 바닷가로 이어진다. 자녀 동반 가족여행지로 좋고, 연인과 함께 떠나는 장거리 드라이브 코스로도 괜찮다. 가볍게 산행을 즐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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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렁이가 울면 비가 오고 여자는 금기

<파시14> 30년대~40년대 새우잡이 불빛 ‘덕적 팔경’ 덕적군도(德積群島)에서 근대적 의미의 어업이 시작된 것은 1900년, 소야도의 조덕기씨 등이 울도 근해에서 새우 어장을 발견한 직후다. 1930년 12월 5일, 덕적면 어업조합이 설립됐고 덕적도의 어선들은 평북 의주 앞바다에서 영광이나 제주도까지 조업을 나갔다. 1939~40년, 덕적도의 어선은 중선 140척, 소선 200척, 발동선 30여척 등 모두 370여 척이나 됐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도 중선이 68척, 소선 100척, 발동선 10여척 등 180여척이었다. 덕적군도의 어업이 번창하게 된 것도 중국의 청도, 대련, 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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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혹은 꼬불꼬불 끝 모를 녹색터널

경남 고성 갈모봉 편백나무 숲길 낙엽·흙 냄새 더불어 ‘향기 샤워’, 마음이 쏴~ 쉬엄쉬엄 정상 오르면 탁 틘 바다, 점점이 섬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상록수다. 피톤치드를 다량 방출하는 속성수의 하나로, 일본 특산종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삼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심어졌다. 1960~70년대엔 뜻있는 이들에 의해 곳곳에 대량 식재가 이뤄졌다. 국토를 푸르게 하면서 뒷날 목재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뜻이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사철 푸른 숲으로 우거져 빛을 발하고 있다. 전남·경남 지역의 크고 작은 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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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해를 담은 바다는 눈부시다

<파시13> 신선의 섬, 민어의 고장 덕적도 덕적도 서포1리 마을 민박집. 주인 노인이 만든 솔방울 베개를 베고 잔 때문이었을까. 밤새 솔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불고, 눈보라치고, 햇볕 따뜻한 봄이 오고, 비가 내리고, 밤과 낮이 수시로 교차했다. 소나무에 새순이 돋고, 송화 가루가 날리는가 싶더니 해변은 사람들 소리로 떠들썩했다. 물놀이 하는 사람들, 솔숲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들, 고기 굽는 냄새, 조개 잡는 아이들, 찬바람이 불고 다시 해변은 텅 비어버렸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꿈이었다. 꿈을 꾼 것은 나그네였을까. 베갯속 솔방울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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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