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처박히고, 저래도 처박히는 구나 레저
2010.06.24 15:23 너브내 Edit
<2>한강 윈드서핑 초보 도전기
이병학 기자가 도전한 한강 윈드서핑의 세계
“윈드서핑엔 최악의 날씨군.”
한강 뚝섬시민공원 한국해양소년단 서울연맹 앞 윈드서핑장. 강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온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습한 날씨. 오전 중 초보자 체험을 예약한 상태인데다, 곧이어 해양소년단 초등생들이 윈드서핑에 나설 예정이어서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초보잔데 날씨 궂으면 어떻고 바람 약하면 어떤가 하는 심정으로 반바지로 갈아입고 구명조끼를 껴입었다.
경력 7년째인 강사 김한경(29)씨가, “바다에서 하는 서핑과 요트의 장점을 결합한 레포츠”라는 유래와 함께 “장비가 간단해 조립시간이 짧고, 혼자 운반하기 쉬우며, 방향전환이 자유롭다”는 윈드서핑의 장점을 설명한 뒤, 단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바람이 없으면 못 탄다는 거죠.”
고정 방향키(스케그)가 보드를 직진하게 도와주는데, 바람이 돛을 밀면 보드는 횡직각(수직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진행 원리 설명을 듣는 동안에 바람은 더욱 잠잠해지고 더위가 한결 심해졌다. 돛(세일)과 돛대(마스트), 손잡이(붐), 연결줄 등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형 보드에 올라 본격적인 자세 훈련에 들어갔다.
강사가 말했다.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릴 테지만, 듣는 데까지 들으세요. 5단곕니다. 하나, 오른쪽 발을 45도 틀어서 마스트에 붙인다. 둘, 보드 뒤쪽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다. 셋, 보드 앞쪽 손으로 손잡이 앞쪽을 잡는다. 넷, 뒷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손잡이를 잡는다. 그러면 바람이 불면서 한쪽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다섯, 자, 바람이 빠져나가지요? 앞손을 밀고 뒷손은 천천히 당기세요. 그러면 보드가 출발하게 됩니다. 어때요. 좀 복잡하죠?”
돛의 줄을 잡고 연습하고 있을 때 강사가 반가운 소리를 했다. “이 복잡한 과정은 다 까먹어도 돼요. 이걸 압축하면 이렇게 되죠. 보드와 돛 사이를 문틈이라고 생각하세요. 자, 문 닫으세요 하면 닫고, 여세요 하면 여는 겁니다. 문을 닫으면 바람을 많이 받아 빨라지고, 열어주면 느려집니다. 쉽죠?”
진행 방향은 세 가지다. 직진이냐, 풍상이냐, 풍하냐다. 직진할 땐 손잡이를 수면과 수평으로 하고, 풍상(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려면 보드 뒤쪽으로 기울이며, 풍하(불어가는 쪽)로 가려면 앞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바람을 유효하게 받으려면 45도 각도까지만 기울여야 한다. 이걸 데드존(노고존)이라고 부른다.
초보자용 보드는 무겁고 안정적이지만, 전문가용은 가볍고 예민하다는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오늘 체험할 보드와 돛을 들고 강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열심히 듣고 연습한 내용은, 물에 띄워놓은 보드에서 균형잡기 연습을 하는 동안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물 위에 나무토막 하나 띄워놓고 두 발로 뛰어올라가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서기도 전에 물에 처박혔다. 강사가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건 다 까먹어도 됩니다. 균형잡기만 알면 돼요. 이게 제일로 중요합니다. 보드에 서서 두 발을 옮겨 한바퀴 돌 때까지 연습하세요.”
두번을 더 처박힌 뒤 어정쩡하게나마 대충 서 있게 되자, 마침내 강사가 현장 투입을 허가했다. “보드와 세일을 역T자 상태로 만들고 줄을 한손한손 천천히 잡아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돛을 들어올리는 데 집중하면 두 발이 균형을 잃었고, 균형잡기에 몰두하면 돛이 쓰러졌다. 이래도 처박히고 저래도 처박혔다. 그래도 한강물은 깊고 차고 시원했다. 날아간 모자를 집어들고 벗겨진 안경을 바로 쓴 뒤 보드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는데, 너무 힘을 줬는지 보드가 뒤집어져버렸다. 강사가 조언했다. “다 잊어버리고 천천히만 하세요. 천천히.”
몇번 물에 더 처박힌 뒤에야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서 돛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일단 서 있게 되고 나자 그런대로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강남의 아파트숲과 잠실종합운동장도 보이고, 나를 지켜보는 강사의 모습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뿐. 겨우 폼은 잡았는데, 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면은 고요하고 윈드서핑 돛들이 늘어선 강변은 평화로웠다.
돛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보드는 제자리다. 부채질하듯 돛을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보드 탄 사람들이 하나같이 돛을 두 손으로 잡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윈드서핑이 가진 ‘단 하나의 단점’이 이것이었다. 초당 2회가량의 속도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도, 한뼘도 나아가지 않았다. 물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사가 배에 시동을 걸어, 보드로 다가와서 말했다. “바람 없는 날엔 제아무리 베테랑도 말짱 헛일이지요.”
체험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하니 물에 처박힌 게 균형잡기에서 세번, 돛을 올릴 때 두번, 부채질할 때 한번, 배에 올라탈 때 한번, 도합 일곱번이었고, 보드가 뒤집어진 게 한번이었다. 첫 체험이 어땠냐는 강사의 물음에 “돛이 생각보다 안 무거워 어렵진 않았다”고 했더니, 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그거요. 초등학생용이에요. 초보자는 그걸 씁니다.”
돛은 크기에 따라 무게도 달라진다. 면적 1.6㎡짜리부터 12㎡까지 돛의 크기는 큰 차이를 보인다. 초등생이나 초보자들은 2㎡ 안팎의 돛을 사용하게 된다. 당연히 큰 돛일수록 바람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무거워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보드는 무겁고 큰 것이 초보자용(15㎏)이고 작고 가벼운 것이 숙련자용(5~10㎏)이다.
멋진 운동복을 입은 씩씩한 한국해양소년단 초등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그 고요하던 강변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류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었다. 이미 오후가 돼 있었다.
윈드서핑장을 나설 때 강사가 인사하며 말했다. “바람 부는 날 다시 한번 타러 오세요. 바람을 맞아야 해요. 바람 타고 달리면, 균형잡기도 쉽고 힘도 덜 들고 서핑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윈드서핑 처음 체험하실 분들은 되도록 바람 거센 평일 오후를 선택하시길.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바람부는 날엔 물불 안 가리고 한강으로"
<윈드서핑 경력 20여년 박상윤씨>
“수상스포츠라면 온갖 종목 다 해봤어도, 윈드서핑만큼 황홀한 만족감을 주는 종목은 없읍디다.”
한국해양소년단 윈드서핑 기술위원 박상윤(46)씨. 경력 20년이 넘는 윈드서핑 마니아이자 전문강사다. 박씨는 체대를 졸업한 뒤 체육 관련 사업을 해오면서 수상스키·스키·스노보드·골프 등의 운동에 한번씩은 푹 빠졌지만, 결국 윈드서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물론 각자 자기가 즐기는 운동이 최고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동력 없는 작은 배를, 자신이 선장이 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조종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쾌감은 다른 종목이 따라올 수 없지요.”
박씨는 윈드서핑에 입문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균형잡기라고 말했다. “초보자들로선 바람이 없는 날 물에서 균형잡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바람을 안고 달려야 안정감이 생기고 균형감각도 나아지지요.” 그가 강사로서 초보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도, 물결에 흔들리는 보드에 서서 몸의 균형감각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보드에서 펄쩍 뛰어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게 좋습니다.”
초보자도 제대로 바람을 맞으며 하루이틀 물에서 지내면 어느 정도 균형감각을 익히게 된다고 한다. 한철(3~11월)을 지속적으로 매달리면 나름대로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요령이 생긴다. 이때부터 윈드서핑의 재미에 푹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빠지면 개인 장비 욕심이 생긴다. 윈드서핑 보드·세일 세트는 200만~500만원 수준. 선수들이 타는 공인정은 700만원대를 웃돈다.
개인 장비를 장만한 이들은 1년에 약 30회 정도 열리는 윈드서핑 대회에 참가하는 등 마니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윈드서핑 마니아란 어떤 이들일까. “일하다가도 창밖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물로 달려오는 이들”을 말한다. 이쯤 되면 태풍이 부는 날에도 서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오른다고 한다.
“숙련자가 되면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보드가 물 위를 떠서 달리게 되지요. 시속 90㎞까지 가능합니다. 체감속도는 비행기 수준이에요.”
전국의 윈드서핑 동호인은 20만명 정도. 이 가운데 마니아급에 속하는 이는 3000~5000명이다. 마니아들은 주로 바람이 센 3~4월과 10~11월에 체온유지용 수트를 입고 한강 하류나 시화호·제주도 등을 찾아가 윈드서핑을 즐긴다. 겨울엔 동남아 원정을 떠난다.
한강의 경우 중상류에서도 윈드서핑이 가능하지만, 물길이 굽고 산이 막혀 있어 바람이 일직선으로 불지 않으므로 재미가 덜하다고 한다. 그러나 윈드서핑하기 좋은 장소는 당연히 강보다는 바다다. “부력이 좋고 파도를 타면서 훨씬 격렬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자들이 입문하기엔 물살이 잔잔한 강이 알맞다고 했다. “한강만한 수상레포츠 적지도 드뭅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 한복판에 이 정도 기반을 갖춘 수상레포츠 시설 거의 없어요.”
그는 수상레포츠가 좀더 대중화하기 위해선 체험 가격을 낮추고 가족단위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아직도 일부에 남아 있는, 고급 사치성 종목이라는 인식을 없애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이병학 기자가 도전한 한강 윈드서핑의 세계
“윈드서핑엔 최악의 날씨군.”
한강 뚝섬시민공원 한국해양소년단 서울연맹 앞 윈드서핑장. 강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온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습한 날씨. 오전 중 초보자 체험을 예약한 상태인데다, 곧이어 해양소년단 초등생들이 윈드서핑에 나설 예정이어서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초보잔데 날씨 궂으면 어떻고 바람 약하면 어떤가 하는 심정으로 반바지로 갈아입고 구명조끼를 껴입었다.
경력 7년째인 강사 김한경(29)씨가, “바다에서 하는 서핑과 요트의 장점을 결합한 레포츠”라는 유래와 함께 “장비가 간단해 조립시간이 짧고, 혼자 운반하기 쉬우며, 방향전환이 자유롭다”는 윈드서핑의 장점을 설명한 뒤, 단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바람이 없으면 못 탄다는 거죠.”
고정 방향키(스케그)가 보드를 직진하게 도와주는데, 바람이 돛을 밀면 보드는 횡직각(수직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진행 원리 설명을 듣는 동안에 바람은 더욱 잠잠해지고 더위가 한결 심해졌다. 돛(세일)과 돛대(마스트), 손잡이(붐), 연결줄 등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형 보드에 올라 본격적인 자세 훈련에 들어갔다.
강사가 말했다.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릴 테지만, 듣는 데까지 들으세요. 5단곕니다. 하나, 오른쪽 발을 45도 틀어서 마스트에 붙인다. 둘, 보드 뒤쪽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다. 셋, 보드 앞쪽 손으로 손잡이 앞쪽을 잡는다. 넷, 뒷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손잡이를 잡는다. 그러면 바람이 불면서 한쪽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다섯, 자, 바람이 빠져나가지요? 앞손을 밀고 뒷손은 천천히 당기세요. 그러면 보드가 출발하게 됩니다. 어때요. 좀 복잡하죠?”
돛의 줄을 잡고 연습하고 있을 때 강사가 반가운 소리를 했다. “이 복잡한 과정은 다 까먹어도 돼요. 이걸 압축하면 이렇게 되죠. 보드와 돛 사이를 문틈이라고 생각하세요. 자, 문 닫으세요 하면 닫고, 여세요 하면 여는 겁니다. 문을 닫으면 바람을 많이 받아 빨라지고, 열어주면 느려집니다. 쉽죠?”
진행 방향은 세 가지다. 직진이냐, 풍상이냐, 풍하냐다. 직진할 땐 손잡이를 수면과 수평으로 하고, 풍상(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려면 보드 뒤쪽으로 기울이며, 풍하(불어가는 쪽)로 가려면 앞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바람을 유효하게 받으려면 45도 각도까지만 기울여야 한다. 이걸 데드존(노고존)이라고 부른다.
초보자용 보드는 무겁고 안정적이지만, 전문가용은 가볍고 예민하다는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오늘 체험할 보드와 돛을 들고 강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열심히 듣고 연습한 내용은, 물에 띄워놓은 보드에서 균형잡기 연습을 하는 동안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물 위에 나무토막 하나 띄워놓고 두 발로 뛰어올라가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서기도 전에 물에 처박혔다. 강사가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건 다 까먹어도 됩니다. 균형잡기만 알면 돼요. 이게 제일로 중요합니다. 보드에 서서 두 발을 옮겨 한바퀴 돌 때까지 연습하세요.”
두번을 더 처박힌 뒤 어정쩡하게나마 대충 서 있게 되자, 마침내 강사가 현장 투입을 허가했다. “보드와 세일을 역T자 상태로 만들고 줄을 한손한손 천천히 잡아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돛을 들어올리는 데 집중하면 두 발이 균형을 잃었고, 균형잡기에 몰두하면 돛이 쓰러졌다. 이래도 처박히고 저래도 처박혔다. 그래도 한강물은 깊고 차고 시원했다. 날아간 모자를 집어들고 벗겨진 안경을 바로 쓴 뒤 보드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는데, 너무 힘을 줬는지 보드가 뒤집어져버렸다. 강사가 조언했다. “다 잊어버리고 천천히만 하세요. 천천히.”
몇번 물에 더 처박힌 뒤에야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서 돛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일단 서 있게 되고 나자 그런대로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강남의 아파트숲과 잠실종합운동장도 보이고, 나를 지켜보는 강사의 모습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뿐. 겨우 폼은 잡았는데, 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면은 고요하고 윈드서핑 돛들이 늘어선 강변은 평화로웠다.
돛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보드는 제자리다. 부채질하듯 돛을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보드 탄 사람들이 하나같이 돛을 두 손으로 잡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윈드서핑이 가진 ‘단 하나의 단점’이 이것이었다. 초당 2회가량의 속도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도, 한뼘도 나아가지 않았다. 물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사가 배에 시동을 걸어, 보드로 다가와서 말했다. “바람 없는 날엔 제아무리 베테랑도 말짱 헛일이지요.”
체험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하니 물에 처박힌 게 균형잡기에서 세번, 돛을 올릴 때 두번, 부채질할 때 한번, 배에 올라탈 때 한번, 도합 일곱번이었고, 보드가 뒤집어진 게 한번이었다. 첫 체험이 어땠냐는 강사의 물음에 “돛이 생각보다 안 무거워 어렵진 않았다”고 했더니, 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그거요. 초등학생용이에요. 초보자는 그걸 씁니다.”
멋진 운동복을 입은 씩씩한 한국해양소년단 초등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그 고요하던 강변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류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었다. 이미 오후가 돼 있었다.
윈드서핑장을 나설 때 강사가 인사하며 말했다. “바람 부는 날 다시 한번 타러 오세요. 바람을 맞아야 해요. 바람 타고 달리면, 균형잡기도 쉽고 힘도 덜 들고 서핑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윈드서핑 처음 체험하실 분들은 되도록 바람 거센 평일 오후를 선택하시길.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바람부는 날엔 물불 안 가리고 한강으로"
<윈드서핑 경력 20여년 박상윤씨>
“수상스포츠라면 온갖 종목 다 해봤어도, 윈드서핑만큼 황홀한 만족감을 주는 종목은 없읍디다.”
한국해양소년단 윈드서핑 기술위원 박상윤(46)씨. 경력 20년이 넘는 윈드서핑 마니아이자 전문강사다. 박씨는 체대를 졸업한 뒤 체육 관련 사업을 해오면서 수상스키·스키·스노보드·골프 등의 운동에 한번씩은 푹 빠졌지만, 결국 윈드서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물론 각자 자기가 즐기는 운동이 최고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동력 없는 작은 배를, 자신이 선장이 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조종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쾌감은 다른 종목이 따라올 수 없지요.”
박씨는 윈드서핑에 입문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균형잡기라고 말했다. “초보자들로선 바람이 없는 날 물에서 균형잡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바람을 안고 달려야 안정감이 생기고 균형감각도 나아지지요.” 그가 강사로서 초보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도, 물결에 흔들리는 보드에 서서 몸의 균형감각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보드에서 펄쩍 뛰어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게 좋습니다.”
초보자도 제대로 바람을 맞으며 하루이틀 물에서 지내면 어느 정도 균형감각을 익히게 된다고 한다. 한철(3~11월)을 지속적으로 매달리면 나름대로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요령이 생긴다. 이때부터 윈드서핑의 재미에 푹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빠지면 개인 장비 욕심이 생긴다. 윈드서핑 보드·세일 세트는 200만~500만원 수준. 선수들이 타는 공인정은 700만원대를 웃돈다.
개인 장비를 장만한 이들은 1년에 약 30회 정도 열리는 윈드서핑 대회에 참가하는 등 마니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윈드서핑 마니아란 어떤 이들일까. “일하다가도 창밖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물로 달려오는 이들”을 말한다. 이쯤 되면 태풍이 부는 날에도 서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오른다고 한다.
“숙련자가 되면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보드가 물 위를 떠서 달리게 되지요. 시속 90㎞까지 가능합니다. 체감속도는 비행기 수준이에요.”
전국의 윈드서핑 동호인은 20만명 정도. 이 가운데 마니아급에 속하는 이는 3000~5000명이다. 마니아들은 주로 바람이 센 3~4월과 10~11월에 체온유지용 수트를 입고 한강 하류나 시화호·제주도 등을 찾아가 윈드서핑을 즐긴다. 겨울엔 동남아 원정을 떠난다.
한강의 경우 중상류에서도 윈드서핑이 가능하지만, 물길이 굽고 산이 막혀 있어 바람이 일직선으로 불지 않으므로 재미가 덜하다고 한다. 그러나 윈드서핑하기 좋은 장소는 당연히 강보다는 바다다. “부력이 좋고 파도를 타면서 훨씬 격렬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자들이 입문하기엔 물살이 잔잔한 강이 알맞다고 했다. “한강만한 수상레포츠 적지도 드뭅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 한복판에 이 정도 기반을 갖춘 수상레포츠 시설 거의 없어요.”
그는 수상레포츠가 좀더 대중화하기 위해선 체험 가격을 낮추고 가족단위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아직도 일부에 남아 있는, 고급 사치성 종목이라는 인식을 없애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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