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짐·봇짐장수 공동체적 삶의 모습 생생 박물관 기행

예산 보부상유품전시관
예덕상무사는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유일한 곳
1888년부터 기록 꼼꼼…북적이던 옛 장터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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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보부상유품전시관 정보

위치 ㅣ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19
주요 전시물 ㅣ 예덕상무사의 19세기말~20세기 중반까지의 시장 관리기록과 보부상 물품, 역대 접장 명부 등
관람시간ㅣ 오전 9시~오후 6시
휴관일 ㅣ 연중 무휴
전화번호 ㅣ (041)339-8232
 
 
예산에 충의사가 있다. 예산시 덕산면 시량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왕 생일축하 행사에 도시락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고향. 윤 의사를 모신 사당이 충의사다. 이곳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또 예산엔 예덕상무사가 있다. 조선시대 예산 덕산 지역 봇짐·등짐 상인들의 조직이다. 전국에서 상무사의 전통이 전해내려오는 고장은 예산이 유일하다. 충의사 경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옆에 보부상 유품 전시관이 있다. 나란히 건립된 두 박물관(전시관)을 함께 둘러보며 우리 선인들의 삶과 정신 한 자락을 더듬어 본다.
 
이성계 건국 무렵 보부상 두령 도움 계기로 본격 조직
 
Untitled-1 copy.jpg보부상유품전시관은 독립 단층건물의 소규모 전시관이다. 30분이면 전시물을 다 살펴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규모지만, 전시된 내용물은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것들이다. 조선시대 물품 유통, 상거래의 핵이었던 등짐·봇짐장수들이 공동체적 삶의 모습과 그 생생한 기록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전시관이다.
 
옛 시장 형성 과정을 보자. 상인들이 물건을 팔려면 인구가 많은 지역을 찾아가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물건도 있고, 주민들에게서 수집한 물건도 있다. 이들이 이고 지고 온 상품을 펼쳐놓으면 소비자들이 모여들어 장이 형성된다. 모여드는 부상 보상들이 늘고, 물건을 사려는 이들도 불어나면서, 주막, 엿장수, 놀이패 등 시장 언저리에 빌붙어 한몫 버는 다양한 장사꾼들도 늘어나는데,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대규모 시장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되는 시장의 기본은 당연히 보상과 부상, 그리고 소비자였다.
 
등짐장수(부상)는 비교적 양은 많고 값은 덜 나가는 물건을 등에 지거나 지게로 져 운반해와 거래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봇짐장수(보상)는 주로 부피가 작으면서도 비교적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며 팔고 사는 이들을 말한다. 이런 부보상(보부상)들은 수가 늘어나고, 다루는 물품이 다양해지면서 지역별로 자체 조직을 갖고 활동하게 되는데, 먹고사는 문제이자 돈을 다루는 경제행위로 이뤄진 모임이니만큼, 그 조직이 매우 견고했다고 한다.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 아래 일하고 서로 도우며 상거래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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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조직의 유래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할 무렵 백달원이라는 보부상 두령이 도움을 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대가로 보부상을 관리하는 임방을 두는 등 국가 보호 아래 보부상이 육성되고 본격적인 조직을 형성하며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이성계가 불한당에게 구타를 당할 위기에 몰렸는데, 보부상 두령 백달원이 나서서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거래가 활발해지며 보부상이 크게 번성한 조선 말엔 보부청을 설치(1866년)해 관리했다.
 
자체 행동강령과 ‘4계명’이라는 엄격한 자체 규율
 
전국 팔도를 떠돌며 우리 농촌사회 유통경제의 핵심 구실을 해온 이들이 부보상( 또는 보부상)들이었다. 가난한 상인도 있었고 큰 부를 거머쥔 상인도 있었다. 대부분의 보부상들은 비록 가난하고 핍박받으며 어렵게 살아도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의지하고 동료애를 발휘하며 일을 했다. 예산군 덕산면 지역에서 활동해온 보부상들의 조직인 예덕상무사는 지금까지도 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예덕상무사는 1851년 초대 접장(보부상들의 우두머리) 김상열 시대부터 기록해온 상거래 조직과 규율 등의 자료와 물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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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사 조직은 자체 행동강령과 ‘4계명’이라는 엄격한 자체 규율을 지니고 있었다. 네 가지의 규율은 이런 것이다. 첫째, 망언하지 말 것. 둘째, 행패 부리지 말 것. 셋째, 도둑질하지 말 것. 네째, 간음하지 말 것. 이를 어기면 철저히 매로 다스렸다고 한다. 반면, 불우한 처지에 놓이거나, 병이 들거나, 부모 상을 당한 동료에겐 십시일반으로 돕고 봉사하면 굳은 동료애를 과시했다고 한다. 이런 상무사 정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사자성어들이 전해 온다. 병든 자는 치료해 주고, 죽은 자는 장사 지낸다(병구사장). 어려움에 처하면 십시일반으로 서로 돕는다(환난상구). 아침저녁으로 동서로 뛰며 부지런히 일한다(조동모서).
 
Untitled-6 copy 2.jpg이들은 해마다 3월말일이면 한데 모여 서로 오랜만의 재회의 기쁨을 맛보며, 선인들에 예를 갖추고, 정보를 교환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화합잔치를 열었다. 전시관에서 만난 예덕상무사원 신중균(75) 어르신이 말했다. “3월이면 날씨두 풀리구 31일은 장이 읍는 날 아뉴? 그래설랑 그날 모임을 하는겨어. 위패에 제사 지내구 영감두 바꾸는 날이유. 모이는 상무사원들이 들뚝날뚝하긴 해두 여백께 읍슈우, 대를 이어 상무사를 유지하는 디가아.”
 
영감이란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접장(장무원장)을 말한다. 상무사의 업무를 총괄하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이를 접장 또는 두령영감이라고 부른다. 임기가 1년(요즘엔 2년에 한번 선출)으로 연로하고 능력있는 조직원들 중에서 돌아가며 선출한다. 상무사 조직은 1년에 한번씩 모여 공문제(총회이자 의결기구)를 열어 접장 선출이나 다른 안건을 다뤘다. 이 자리에선 역대 영감 등의 위패에 제사를 올리는 한편, 뒤풀이로 여흥을 즐기며 한바탕 잔치를 벌여 화합과 단결을 과시했다고 한다. 무당의 재수굿판도 벌어졌는데, 국태민안과 보부상들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굿판을 벌였다고 한다. 현재 예덕상무사의 두령은 보부상유품전시관 관장이자 윤봉길 의사가 시작한 월진회의 회장 윤규상(86) 어르신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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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덤이 아니라 필수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본은 조선을 무력통치하면서 전국 보부상들의 활동을 눈여겨 보면서, 이들이 지니거나 보관하고 있던 문서들을 찾아내고 거두어 소각했다고 한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부보상들은 각지역에 관한 온갖 정보들을 지닌 소식통들이었기 때문이다. 보부상들은 자연스럽게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항일세력들의 정보를 모으고 전하는 일을 해왔다. 덕산 출신인 윤봉길 의사도 장터와 주막을 오가는 보부상들을 통해 전국 곳곳의 독립운동 관련 소식을 접하고 책자와 신문 등 최신 정보와 자료들을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보부상유품전시관에선 예덕상무사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록과 유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된 예덕상무사 서류는 선생안, 완문, 절목으로 나뉜다. 선생안이란 상무사의 우두머리가 1년 동안 시장을 관리하며 다루고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책자를 말한다. 이곳엔 1888년부터 최근인 1990년까지 예덕상무사 접장의 기록 58권이 전시돼 있다. 완문은 의정부 등 나라로부터의 협조 명령을 담은 책자로 일종의 공문이다. 상무사는 조직이 커지고 번성했던 조선 중기 이후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보호 아래 충실하게 협조명령을 이행했다고 한다. 나라가 어려워질 때 지역의 물품을 운반하거나, 지역 정찰 등이 그 임무였다고 한다. 절목은 정부로부터 내려진 공문 대로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준비과정과 행동을 기록한 책자다. 10권의 절목이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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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덕상무사의 접장이나 사속의 임명과 발령 등에 사용했던 관인·인장들과 인장궤, 청사초롱, 보자기 등 보부상들이 썼던 물품, 그리고 역대 예덕상무사 접장 명단, 마지막 보부상 유진룡 이야기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관 중앙엔 북적이던 옛 장터 모습이 재현돼 있다. 전시관 관람 전에 전시관 밖 공원 한쪽에 마련된 보부상에 관한 설명과 그림들을 미리 둘러보면 관람에 도움이 된다. 정밀하게 묘사된 옛 장터 그림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정겹고 흥미롭다. 
 
보부상유품전시관을 둘러보기 전후로 바로 옆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꼭 들러보길 권한다. 윤 의사의 일대기와 함께 의사의 유품들, 책자와 편지, 각종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다. 윤봉길 의사 사진들, 한시·편지 등 친필 기록, 등잔·벼루 등 유품, 회중시계·지갑·화폐 등 거사 당시 지녔던 소지품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들머리에서부터 벽면을 따라 전시된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평민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하다 순국한 선인들의 사진들이 가슴을 거세게 두드린다.
 
예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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