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꼬리 끝, 100여 년 희망의 불빛 오롯 박물관 기행

포항 호미곶 국립등대박물관
희망? 외로움·그리움? 시?…, 사람마다 제각각
전망 좋고 공기 좋고, 무엇보다 무료로 눈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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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국립 등대박물관 정보
* 위치 ㅣ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옛 대보면) 대보2리 221
* 개관연도ㅣ 등대관 2002년, 해양관 1985년, 기획전시관 2003년
* 주요 전시물ㅣ홍도등대 회전등명기·아세틸렌 가스등명기·전기사이렌, 야외전시장의 각종 등대 관련 시설물

* 관람시간ㅣ 오전 9시~오후 6시
* 관람료ㅣ 무료
* 휴관일ㅣ 매주 월요일, 설날과 한가위 당일
* 연락처ㅣ (054)284-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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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등대지기? 희망? 밤바다·외로움·그리움? 시?…,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나타난 한줄기 빛? 아니면(농담 삼아) 등 대! 업어줄래? 수많은 시인들이 읊조리고 뇌까린 소재 등대. 캄캄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한 점 희망이 되기 위해 외롭고도 괴로운, 졸음 쏟아지는 긴긴 밤을 새우며 빛을 밝히는 등대지기.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둔 세상을 향해 빛을 내뿜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과학의 발달로 옛날식 의미의 등대는 사라져가는 추세이고, 요즘은 거의 다 자동화시스템으로 조정해 불을 밝히고 번쩍이게 한다.
 
사라져가는 등대와 등대지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으로 간다. 만주와 아시아대륙을 향해 포효하며 도약하는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호랑이 꼬리 끝의 포항시 남국 호미곶면(본디 대보면이었으나, 2010년 1월부터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호미곶에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다. 
 
세계 최초는 기원전 280~250년께의 지중해 파로스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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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밝히는 대’가 등대(燈臺)다. 운항중인 배가 정확한 항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 즉 항로표지의 일종이다(항공기 항로에도 항로표지가 있다). 항로표지엔 빛을 이용한 광파표지, 소리를 이용한 음파표지, 그리고 전파표지, 형태와 색으로 위치를 나타내는 형상표지 따위가 있다. 육지나 섬에 세우는 등대와, 내해의 암초 등에 설치하는 등표, 물에 띄우는 등부표들은 광파표지에 속한다. 따라서 등대박물관은 정확히 말하면 항로표지박물관이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등대는 무엇일까. 기원전 280~250년께 세워진, 지중해 알렉산드리아항 들머리에 있던 파로스등대다.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소스트라투스라는 건축가가 세운 높이 135m의 초대형 등대였다고 한다. 야자수를 태워 불을 피웠고, 유리 반사경을 사용해 40㎞ 거리(광달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로스 등대는 서기 1100년과 1307년 두 번의 지진으로 파괴돼 사라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는 1903년 처음 불을 밝히기 시작한, 높이 7.9m, 광달거리 10㎞의 인천 팔미도 등대다. 근대식 등대라고 한 것은, 이전에 우리나라에선 횃불이나 봉홧불, 꽹과리 등을 동원해 항로를 알리는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서구 열강들의 동아시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1894년 대한제국 동무아문 등춘국에서 항로표지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1902년 인천항 팔미도·소월미도 등대와, 백암·북장자서 등표 건설을 시작해 1903년 6월1일 팔미도에서 처음 불을 밝히게 된다. 이 등대는 100년 세월 불을 밝히다가, 지난 2003년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보존하고, 새 등대를 세웠다.
 
제 구실 다 하기 전까지 전국 유인등대 모두 40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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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등대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자. 무료다. 호미곶 바닷가 옆이어서 전망 좋고 공기 좋고 먹을거리도 많다. 등대박물관 시설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등대 등 항로표지 관련 유물과 기록들을 전시한 본관인 등대관과 해양문화를 다룬 해양관, 그때그때 특별전시를 하는 기획전시관, 그리고 야외전시장이다.
 
등대관 안으로 들어서면, 횃불·봉화·꽹과리 등 우리나라 옛날식 항로 안내 방식을 설명한 자료를 거쳐, 안내탁자 주변에서 수은조식 회전등명기와 안전수역 표지용 등부표 모형을 만난다. 여기가 전시관 2층이다. 먼저 왼쪽 문으로 들어가 영일만 지역의 역사문화를 소개한 자료를 본 뒤 계단을 내려가 본격적인 등대 관련 전시물 관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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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등대원(등대지기)의 숙소와 사무실 모형과 3교대 근무방식 설명, 각 지역 등대와 관련한 옛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각국 최초의 등대 사진들과 항로표지공무원들의 양성과정 기록(1946년), 수료증서(1951년), 인사발령 통지서(1949년)를 비롯해 등대원 임명장, 봉급명세서까지 살펴볼 수 있다. 1908년에 발행한 호미곶 등대 신설과 위치, 구조 등을 알리는 관보, 장기곶등대에서 호미곶등대로 이름을 변경한 사실을 알리는 2002년 관보 등도 볼거리다. 등대과학관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나라엔 유인등대가 40곳이 있고, 무인광파표지는 3천398개, 형상표지는 255개, 음파표지는 97개가 있으며, 포항의 유인등대는 7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 누보사키 등대, 미국 보스턴 등대, 프랑스의 꼬르두앙 등대 등 세계 각국의 유명 등대와 항로를 표시한 지도, 독도 관련 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화면과 터치버튼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는 공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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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과학관은 광파·음파·전파 등 각종 항로표지 구현 방식을 화면과 터치버튼을 이용해 체험하는 공간이다. 음파체험의 경우 가장 음달거리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압축공기를 이용한 공기사이렌의 소리 발생 과정, 전기를 이용한 소리발생 과정, 직접 종을 치는 타종 방식 등을 알아보게 된다.
 
대형 포구 모형을 통해 배가 들어가며 각종 항로표지의 쓰임새를 체험하는 곳도 있다. 예컨대 바다에 뜬 흰불빛의 부표는 암초가 있다는 표지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빨간색 등부표는 오른쪽으로 항해하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또 여러개의 노란색 등부표가 깜박거리는 곳은 바다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다. 각종 등명기와 등롱(등명기를 보호하는 틀), 등부표 들을 전시한 광파표지 유물관을 거쳐 나선형 계단을 다시 오르면 전파·음파표지 유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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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계단 옆에 세워진 수은조식 회전등명기는 1953년 일본에서 제작돼 53년부터 79년까지 홍도 등대에서 사용하던 소형 회전식 등명기다. 2층엔 음파탐지기, 각종 송수신기, 위성항법 수신기, 레이더, 무종(직접 때려 소리내는 종)과 망치, 전기사이렌 나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기사이렌의 경우 안개 등으로 시계가 나쁠 때, 전기모터를 이용해 특수금속판을 울려 진동식 소리를 내는 장비다. 1953년부터 75년까지 인천 선미도 등대에서 쓰던 사이렌이다. 소리 도달거리는 3.2㎞ 정도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해 1908년 세워
 
Untitled-8 copy.jpg코앞에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야외전시관에선 1930년대 공기사이렌 나팔, 공기 압축기, 등부표, 그리고 각 등대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발동발전기 등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실물 호미곶 등대다. 1907년 호미곶 앞바다에서 일본 배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해 1908년 세운 높이 26.4m의 팔각형 서구양식의 등대다. 밑에서 중간까지 이어지는 곡선과 세 개의 창문의 어울림, 그리고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고 늘씬하게 솟은 몸체가 눈부신 자태를 뽐낸다. 호미곶 등대 옆 테마공원엔 인천 팔미도 등대, 제주 우도 등대,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화암추등대 등 각 지역 등대 모형과 이 전시돼 있다.
 
해양수산관에선 해양개척과 연구 자료, 해양경찰의 활동, 어류 표본, 각종 배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를 겸한 2층엔 기압계·콤파스·나침판·풍속계·고도측량기 등 배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기들이 전시돼 있다. 기획전시관에선 2010년 2월21일까지 ‘머나먼 뱃길 전파가 인도한다’는 주제 아래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항법의 원리와 발전과정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인공위성의 원리와 미국이 개발한 위성항법시스템(GPS),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에 대해 상세히 공부할 수 있다. 학예사 2명이 번갈아 근무한다.
 
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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