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바다 짠내 넘어 풍겨오는 ‘초록의 향기’  길따라 삶따라

삼척 도심 걷기여행 
해수욕만 하면 ‘심심’ 대나무 숲·동굴로 ‘피서’
6㎞ 남짓 역사와 문화, 여름과 더불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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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경북 동해안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선호되는 휴가철 피서지다. 차고 맑은 바닷물을 품은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깔렸다. 바다를 즐기되, 아침 저녁으로 도심 골목을 거닐며 역사·문화의 향기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는 죽서루의 고장 삼척이다. 도심과 오십천변을 산책한 뒤 횟집 즐비한 정라진 포구까지 걷는다. 6㎞ 남짓.
 
환선굴 대금굴 등 국내 최대 동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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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널찍한 오십천변 동굴엑스포타운이 출발점이다. 삼척은 세계적인 동굴 도시다. 환선굴·대금굴 등 국내 최대·최고의 석회동굴을 거느렸다. 수억년 시간을 물방울들이 매달리고 떨어져 부서지며 키워온 형형색색의 돌기둥이 빼곡하게 들어찬 동굴들이다. 엑스포타운은 2002년 삼척동굴박람회 행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곳엔 동굴의 형성과정과 종류, 특징 등 동굴의 모든 것을 실감나게 전시한 동굴신비관(입장료 3천원), 알타미라·라스코·쇼베 동굴 등 세계 7대 동굴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전시한 동굴탐험관(2천원)이 있다. 동굴신비관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상영(평일 3회, 토·일·휴일 5회)하는 15분짜리 영상도 볼 만하다. 돔형 스크린을 통해 미공개 동굴인 관음굴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삼척시립박물관도 있다. 보유한 5천여점의 유물 중 350여점을 상설전시한다. 무료. 마침 특별기획전으로 열고 있는 ‘한국의 민화’전이 눈길을 끈다. 8월말까지. 박물관 옆엔 600살 난 모과나무가 있다. 노쇠한 하체를 보완재 땜질로 지탱하고 있지만, 주렁주렁 매단 초록빛 모과들은 물오른 청춘이다.
 
오십천 물 건너 벼랑 위에 서 있는 죽서루(보물 213호)가 아름답다. 죽서교를 건너며 바라보니 죽서루 경관을 키워주는 게 있다. 푸른 물빛과 흰 물새들, 물가의 낚시꾼들이다. 90년대 초까지 죽서루까지 곧바로 건널 수 있는 출렁다리가 있었다. 새 다리가 놓이며 철거됐다.
 
자연에 ‘자연스레’ 올라앉은 죽서루, 계단없이 2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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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돼 조선 태종때 재건된 2층 누각이다.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쓰였고, 묵객들이 찾아들어 읊고 마시던 곳이기도 했다. 2층 누각이면서도 기둥들의 길이를 조절해, 굴곡이 심한 자연 암반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앉은 모습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없다. 바위 위에서 바로 2층 루로 들어서게 된다.
 
누 안엔 숙종·정조 어제시를 비롯해 이율곡·이승휴 등의 시를 새긴 현판들이 즐비하다. 17세기 현종때 삼척부사를 지낸 미수 허목의 ‘죽서루기’에 “옛날 죽서루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오래된 절이 있어 죽서루란 이름을 갖게 됐다”는 기록이 있다. 경내엔 지금도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숲 그늘이 서늘하다. 정면 2층에 걸린 죽서루(竹西樓),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숙종때(1710) 삼척부사를 지낸 이성조의 글씨다.
 
죽서루 왼쪽 바위무리에 용문이라 불리는 작은 바위문이 있다. 소원을 빌며 통과하면 이뤄진다는 바위문 옆에 마모가 심한 ‘용문’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고, 바위 위쪽엔 선사시대 풍요·다산 신앙의 흔적인 지름 3~4㎝ 크기의 ‘성혈’ 10개가 있다. 경내의 삼척문화원 건물은 1970년대까지 삼척군청 청사로 썼던 곳이다. 이 건물 부근에 조선 초기부터 관청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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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를 나와 350년 된 회화나무를 보고 돌담을 따라 왼쪽 언덕길로 오른다. 옛 죽장사에 뿌리를 둔 절 삼장사를 지나 성북삼거리로 나선다. 길 건너 잠시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왼쪽에 실직군왕릉 계단길이 나타난다. 실직군왕릉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이자 삼척 김씨의 시조인 김위옹의 묘다. 고려 태조가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이며 실직군왕이란 칭호를 내렸다. 능 주변의 석물은 1937년 삼척 김씨 종중에서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서 삼척시내의 봉황산과 오십천 물줄기 일부가 내려다보인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내동성당으로 간다. 아리랑고개 옆이다. 옛날 도계·미로·신기 주민들이 아리랑고개를 걸어넘어 삼척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장식이 별로 없는 성당 건물은, 단조로우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풍긴다. 진 야고보 신부 순교비를 지나 오른쪽 텃밭으로 내려서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이어진다. 죽서루로 이어지는 고가다리 앞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면 최근 생긴 절 삼산사 지나 시내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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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도 골동품, 우리도 골동품” 

 
이 골목에서 녹슬고 빛바랜 옛 간판이 그대로 걸린 옛날식 구멍가게를 만났다. 평상에 앉아 캔커피를 사 마시며 잠시 쉰다. 40년째 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서울상회’다.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옛날 이 앞에 ‘서울한약방’이 있었어요. 마주보고 있으니, 우리도 그 집처럼 ‘서울상회’라고 간판을 해달았죠.”
 
서울상회는 간판도 문짝도 벽지도 벽에 걸린 온도계도 모두 낡고 닳은 것들이다. 찢어진 벽지 한쪽엔 영화배우 문희의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고, 문에는 작은 종이 녹슨 채 매달려 있다. 돈을 담는 통도 반질반질해진 오래된 나무상자다. 간판 한쪽에 붙은 60년대식 소주 상표와 ‘주류 도매’ 글씨가 한때는 제법 ‘규모 있는’ 가게였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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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두 분이 가게로 놀러오셨다. 이름 밝히시길 꺼린 주인 김씨(71) 할머니와 이웃의 서씨(73)·이씨(74) 세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주고받는 말씀을 들으며 커피 한 캔을 더 마셨다.
 
“이 가게 참 오래된 골동품이라. 우리도 골동품이지만.”
“이 골목에 일본식 집들이 참 많애요. 거죽은 저래도 속은 일본식 그대로야. 그것도 골동품이지.”
“여기로 시집 온 지도 한 오십년 됐납다.”
“이 고갯길이 예전엔 아주 큰 대로라. 삼척장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요지라요, 여기가. 요 자리가.”
“그땐 가게도 괜찮았다. 술 도매도 하고 앞에 과일도 쌓아놓고 팔고.”
“매상은 무슨 매상. 지금은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 담배패도 있고 하니. 여긴 인제 늙은이들 놀이터라.”
“여가 달래 놀이턴가. 우리가 와 앉아 노니 놀이터지.”
 
우체국 앞 사거리엔 전신주 대신 개잎갈나무
 
Untitled-14 copy.jpg기념사진을 찍어드리고 일어나 골목길을 내려간다. 삼척여인숙 지나니 풍경이 확 달라진다. 갑자기 긴 머리에 짧은 치마·바지 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북적인다. 호프집부터 전문식당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먹자골목이자 패션골목인 ‘대학로’다. 삼척시 쪽은 본디 대학로 주변을 차 없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려 했으나 매상 감소를 우려한 상인들 반대에 부닥쳐 차량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우체국앞 사거리로 나서니 깨끗한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깃줄을 땅에 묻고 전신주를 없앴기 때문이다.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가로수길을 걸어 중앙시장으로 들어선다. 상설시장인 중앙시장은 삼척장날(2·7일)이면 중앙로 주변 골목들을 메운 좌판들과 이어져 대규모 거리장터를 형성한다. 중앙시장 건물 2층에 즐비한 ‘사주팔자 점집’들이 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듯하다.
 
중앙로에서 강 쪽으로 걸어 오십천교를 건넌다. 강바람은 시원한데, 강물은 깨끗한 편이 아니다. 상류 쪽을 보면 죽서루 앞에서 굽이쳐 온 물길이 산줄기를 관통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본디 물길은 산줄기(남산) 너머에서 시내쪽으로 한굽이 돌아 흘렀다고 한다. 수해가 잦자 1962부터 8년간 산을 절단해 물줄기를 곧게 돌리는 공사를 벌여 1970년 완공했다. 오십천교 건너 황산 숲길 들머리에 이를 알리는 ‘오십천 수로변경 통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Untitled-13 copy.jpg기념비 옆으로 들어가 황산 계단길을 오른다. 황산엔 육이오 때 희생된 1346명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과 40년 전 삼척 유생들이 건립한 정자 봉황정이 있다. 계단길 중간에 오른쪽으로 뚫린 울창한 숲길을 걸어볼 만하다. 봉황정 지나  산을 내려가 오십천 강변길을 걷는다.
 
철길 밑을 지나면 벚나무 늘어선 산책로가 이어진다. 오른쪽 경사면엔 벌써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강 건너 봉황산은 멀어 보여도 산골짝을 울리는 뻐꾸기 소리는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들려온다. 강변길을 나와 길 건너 사직동 성당 뒤의 실직군왕비릉으로 간다. 실직군왕 김위옹 부인의 묘로, 1838년 실직군왕릉과 함께 발굴·확인작업을 거쳐 1937년 함께 정비했다.
 
삼척역은 58㎞ 동해 바다열차의 종착역
 
동양시멘트 지나면 삼척역이다. 최근 인기를 끄는 바다열차(삼척~동해~강릉)의 시·종착역이다. 바닷가 철길 58㎞를 하루 3회 왕복운행한다. 편도 1만(일반실)~1만5천(특실)원. 삼척역 건너편엔 새벽 4시에 열려 오전 9시면 파장하는 번개시장이 있다. 40여년 역사를 지닌, 수산물 중심의 반짝시장이다. 애초 삼척역 오른쪽에 있었으나, 30년전 이곳으로 확장 이전했다.
 
다시 오십천을 건너(삼척교) 정라항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라항 옆에 올라볼 만한 작은 언덕 육향산이 있다. 정라삼거리 지나 주민센터 안으로 들어가면 짙은 숲그늘을 드리운 산 밑에 이른다. 조선시대 영동 9개 지역 수군을 관장하던 진영의 남쪽 끝부분(삼척포진성)이 이곳이다. 성곽은 일제때 항만축조 공사로 헐렸다고 한다. 산길을 오르면 조선시대 선정비·불망비 무리와 삼척포진성터 표지석, 삼척부사였던 미수 허목의 이야기가 전하는 척주동해비, 평수토찬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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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때 삼척 부사를 지낸 미수 허목이 세운 척주동해비에 전하는 이야기. 당시 삼척은 바닷물이 밀려들고 오십천 물이 범람해 물난리를 자주 겪었다고 한다. 삼척부사 허목이 특유의 전서체로 쓴 척주동해비를 정라항 앞바다 만리도에 세운 뒤 수해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비석은 한때 훼손됐으나 숙종 때 글씨를 모사해 육향산에 다시 세웠다.
 
선정비·불망비 무리의 비석 머릿돌을 눈여겨볼 만하다. 몸체의 글씨는 반듯하고 단정하나, 머리에 선각으로 새겨진 무늬는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이다.
 
내려와 정라항 활어회센터로 드니 상큼하고 비릿한 바닷내음이 식욕을 자극한다. 22집의 횟집들이 줄을 이어 각종 횟감을 팔고 있다. 회를 산 뒤 뒤쪽의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 먹는 방식이다.  6㎞를 넘게 걸어, 허기가 몰려온다. 요즘 들어 다시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주문하자 1만원에 싱싱한 오징어 7마리를 썰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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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여행쪽지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대관령 넘어 강릉 지나 동해에서 나가 7번 국도를 이용해 삼척으로 간다. 3시간~3시간30분. 영동고속도로 원주 방향이 정체를 빚을 경우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충주 쪽으로 가다 감곡나들목에서 나가 38번 국도 따라 제천~영월~태백 거쳐 삼척으로 가도 된다. 삼척시내 택시 기본요금은 2200원, 정라항에서 동굴엑스포타운까지 3300원.
 
남양동 대학로의 정라횟집(033-573-3670)은 사철 도루묵 전문점. 찜·구이를 낸다. 정라항의 향토식당(033-573-5784)에선 가자미회에 칼국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정라항 일대엔 숙취해소 해장국으로 이름난 곰치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바닷가로는 삼척·맹방·증산·연봉·덕산·궁촌·용화·장호·호산·임원해수욕장 등 깨끗한 해수욕장들이 이어진다. 차량을 이용해 들러볼 만한 곳으로 환선굴·대금굴, 남근 숭배 민속마을인 해신당공원, 민물고기전시관, 새천년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 등이 있다. 삼척시청 관광정책과 (033)570-3846.
삼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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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