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즐기고 눈·귀 맛 보다보면 정이 괸다 마을을 찾아서

서천 농촌체험마을
“뭐 특별헐 게 있간. 그저 함께 정성껏 하다보면…”
제철 맞은 꼴뚜기-갑오징어 ‘꼴갑축제’에 ‘꼴~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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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그냥 구경꾼이 아니다. 여행길 재미는 겪고 부딪치는 데서 더 진하게 다가온다. 손발로 느끼고 체험하는 동안 여행지의 추억도 한결 두툼하게 쌓인다. 체험거리 푸짐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리는 충남 서천의 농촌체험마을로 간다. 인심 좋은 농촌마을에서 소박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체험행사들이 진행되고, 짭짤한 볼거리들이 마을마다 기다린다.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행복마을). 평소 조용한 이 산골마을은 주말이면 방문객들로 소란해진다. 통박골(도화동)·우령(이화동) 두 골짜기 마을의 72가구 어르신 120여명이 방문객을 대상으로 갖가지 체험행사를 펼친다. 120여명 중 60대 미만 ‘청년’은 단 1명뿐인 초노령화 마을이다.
 
두부랑 막걸리 찰떡 궁합 “아이그, 한잔 잡숴봐아”
 
Untitled-3 copy.jpg마을운영위원회 총무 채두병(63)씨가 겸손하면서도 자신있게 말했다.
 
“뭐 특별헐 게 있간. 그저 함께 정성껏 두부 만들고, 경운기 타고 마을 돌면서 덩굴강낭콩 따고, 감자 캐고, 물놀이·가재잡기도 하고, 그러고 요기 인근 바다에 가설랑 갯벌체험두 하면 좋아들 합디다 그랴.”
 
체험행사엔 60~80대 어르신 전원이 조를 짜 돌아가며 두부 만들기, 경운기로 마을 돌기 등 행사에 참여한다. “온갖 곡식이란 곡식은 다 재배하는 마을”인데, 요즘 준비하고 있는 주요 체험행사는 덩굴강낭콩·감자 수확이다. 방문객들에게 강낭콩을 수확하게 하고 판매도 하는 행사다. 마을 별칭이 덩굴강낭콩 마을이다. 비닐집이 12동 있고, 노지에서 기르는 콩도 지천이다.
 
주민들은 6월 중순부터 덩굴강낭콩 수확에 들어간다. 이때 마을에 강낭콩 수확체험 신청을 하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강낭콩을 딴 뒤 이를 구입해 가져갈 수 있다. 4㎏ 한상자 1만원. 콩은 본디 농약을 치지 않는 작물이다. “강낭콩 무농약 재배 인증 신청을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드라구.” 콩밭 가까이 농약을 쓰는 다른 밭이나 논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곧 벼농사 방식을 농약을 쓰지 않는 우렁이농법으로 바꾼 뒤 강낭콩 무농약 인증 신청을 다시 할 계획이다. 비인농협에 저온저장고도 마련해 강낭콩도 저장하고 두부콩도 저장해 체험행사에 사용한다.
 
경로회관에 들어서자 대낮인데도 술 냄새가 진동한다. 어르신들이 대낮부터 한잔 하신 게 아니다. 짙은 누룩내는 한옆에 놓인 세 개의 커다란 술통에서 스며나온 냄새다. 한산모시축제에 내다 팔 막걸리 익어가는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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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 한잔 잡숴봐아. 아주 잘 익었다니께에.” 마을 부녀회에서 한 가마니 쌀에 칡·솔잎·국화를 곁들여 담근 술이다. 어르신들은 이 술을 모시축제장으로 싣고 가 현장에서 직접 만든 두부와 함께 팔 예정이다.
 
회관에 있던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막걸리 맛을 보면서 두부 판매 방식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일단 두부랑 막걸리 맛이 좋아야혀. 맛으루다가 승부를 혀얀다니께.”
“막걸리만 판다고 대들어 먹간디? 두부랑 같이 내놓는 게 정석이여.”
“암, 두부만 맨들어놔두 잘 안 먹어. 막걸리랑 합차 놔주면 좋다구들 먹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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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살 은행나무 그늘, “옛날에…하이튼…얼럴럴?…” 얘기꽃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특산품 중 하나가 토종꿀이다. 집마다 앞뒤뜰에는 물론, 길에까지 나무기둥을 세우고 벌통을 놓았다. 길 옆에서 새 벌통에 여왕벌을 넣어 분봉시키던 구영수(67) 할머니는 “1년에 한 번 가을에 꿀을 뜨는데, 설탕 전혀 안 쓴 순수한 잡화꿀이어서 아주 맛이 진하다”고 자랑했다.
 
Untitled-8 copy.jpg모처럼 한가한 통박골의 평일 오후. 넓고도 짙은 500살 은행나무 그늘에 들어 땀을 식히고 있으려니, 마을 어르신들이 앉고 서서 피워올리는 이야기꽃이 눈부시다.
 
“저 앞길이 바로 옛날 선비들 과거길이여. 내 젊을 때만 해도 새벽에 들으면 쇠방울소리가 쩔렁쩔렁하는데, 바루 너더리(너다리·판교) 장에 소 팔러 가는 사람들이여.”
“하이튼 옛날엔 장꾼이고 벼슬아치고 거의가 다 이 길로 다녔으니께.”
“옛 연못가에 정자나무 아홉 그루가 있었는데, 아까운 건 마지막까지 남았던 엄청나게 큰 정자나무야. 40년 전 애들 불장난으로 타버렸어.”
“40년? 무신 소릴. 그렇게 오래 안 됐지이.”
“얼럴럴? 불 싸지른 갸가 지금 40이 훨씬 넘었다닉께에.”
 
중국에까지 필명을 떨친 조선 전기의 여성 시인 ‘임벽당 의성 김씨’는 이 마을의 자랑이다. 중국 청나라 전겸익이 당대 2000여명의 시편들을 모아 펴낸 <열조시집>에 목은·포은의 시와 함께 김씨의 시 세 편이 올라 있다. 임벽당은 선취정·구괴정과 함께 당시 마을에 있던 정자로, 김씨의 부군 유여주 진사가 세운 것이다.
 
마을에는 기계 유씨 집안 5인을 모신 사당 청절사(도 유형문화재·2009년 6월 현재 보수공사중)가 있다. 청절사의 돌기둥 둘은 임벽당에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방마다 헛간마다 옛 물건 고스란히 ‘생활사 박물관’
 
Untitled-4 copy.jpg서천군 기산면 화산리에도 이색 체험마을이 기다린다. 마을 별칭이 ‘이색체험’ 마을인데, 이름값을 한다. 엄나무를 이용한 찐빵·칼국수 만들어먹기를 비롯해 야생화 심기, 분재 만들기, 새총 만들기 등 흥미로운 이색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이 마을의 이색 볼거리는 각양각색의 전통 옹기 용품들이다. 초등교 교장 출신 김재완(70)씨가 50년간 문헌을 뒤지고 전국을 훑어 모아들인 옹기류 1000여점이 분재정원인 서천식물예술원에 촘촘히 전시돼 있다. 옹기라 해서 항아리류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 대형 발효·저장용 옹기는 기본이고, 사육·건축용, 어구, 악기, 굴뚝, 의료기기, 문방사우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써왔던 다양한 옹기 용품들이 쌓여 있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마을엔 연꽃 연못, 미로정원, 연꽃사진전시관, 전통놀이인 고누 체험장이 있고 엄나무 체험장, 농기구·생활용품 전시장 등도 마련돼 있다.
 
이웃마을 신산리에도 매력적인 볼거리가 있다. 180년 된 초가 이하복 가옥이다. 보기 드물게 잘 보전된 초가다. 목은 이색의 후손이 180년 전에 지은, 검소한 선비 정신이 서린 집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의 초가지붕이 된서리를 맞을 당시 이하복 선생이 “결코 집을 훼손할 수 없다”고 버텨 살아남았다.
 
이 집이 빛을 발하는 건 고색창연한 집 구조와 초가지붕만이 아니다. 방마다 헛간마다 구석구석 집안에서 써온 옛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채·아래채·사랑채·위채에 서적들과 그릇, 제기류, 농기구류 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일종의 생활사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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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곳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이곳에선 6월12~15일 제20회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린다. 모시째기·모시삼기 등 전통 모시 제작 체험, 베틀 체험, 명품 모시옷들을 입어볼 수 있는 모시 스튜디오 등이 마련된다. 서천의 명주 한산소곡주 빚기 체험도 진행된다. 푸른 바람소리 가득한 금강변 신성리 갈대밭도 인근에 있다. 시들어가는 가을의 갈대가 아니다. 자랄 대로 자란 푸른 갈대들이 몸을 비비며 맑은 바람을 일으켜, 갈대숲길을 거니는 탐방객들 마음을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금강 하구 장항항 물량장에선 6월14일까지 ‘꼴갑 축제’가 벌어진다. 제철을 맞은 꼴뚜기와 갑오징어를 주제로 여는 해산물축제다. 꼴뚜기와 갑오징어의 회·무침·물회·탕 등을 내는 먹거리촌이 들어서고, 수변 카페촌도 마련된다. 장암리의 유채꽃단지, 송림해변 모래찜질장도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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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쪽지
 
○ 가는길 l 서해안고속도로 서천나들목에서 나가거나, 천안~논산고속도로 공주에서 2009년 5월 말 개통된 공주~서천 고속도로를 타고 동서천이나 서천나들목에서 나간다. 서천 비인면 남당리(행복마을)는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나들목에서 나가 21번 국도에서 좌회전해 곧 남당리 이정표를 만나 좁은 포장길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남당리 농촌체험장이다.

Untitled-7 copy.jpg○ 체험마을 l 남당리 12가구에서 민박을 한다. 숙박비 1가족 3만원, 한끼 5000원. 두부 만들기 체험은 콩 한 말에 5만원. 한가족이라도 직접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남당리 위쪽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저수지도 있다. 마을에서 낚싯대도 빌려준다. 채두병 총무 011-9004-4493. 기산면 이색체험마을도 12가구가 민박(화장실·샤워실)을 한다. 1가족 3만원. 식사 5000원. 체험료 한 가지에 5000원. 이색마을추진위원장 011-9823-6116.

○ 소곡주 빚기체험 l 한산면 동자북 문화마을에선 상설 소곡주 빚기 체험장을 짓고 있다. 체험장·저온저장고 등을 갖추고 2009년 8월부터 일반인 대상으로 체험행사를 벌인다. 소곡주를 직접 빚어 보관했다가, 100일 숙성 뒤 가져가게 할 예정이다. 소곡주는 본디 가을에 담가 겨울에 마셔온 술이다.

○ 장항읍 식당 할인행사 l 장항읍 꼴갑축제장과 주변 식당들은, 서천~공주 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해,  8월 말까지 동서천나들목 영수증을 제시하는 고객에게 음식값을 10% 깎아준다(일부 식당은 5% 할인).

○ 서천 여행 연락처 l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26. 한산모시관 (041)950-4431. 한산소곡주 (041)951-0290. 서천 문화유산해설사 정경임씨 018-600-6039.

  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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