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 나오니 풍경도 필요없구나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섬 전체가 문화재인 홍도 가는 여객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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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다로 나오자 쾌속의 여객선이 가뭇없이 흔들린다. 새벽잠을 설치고 승선한 여객들. 여객들 대다수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하지만 어떤 여객들은 멀미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몇몇은 항해 내내 비닐 봉투와 쓰레기통을 붙든 채 넋을 놓고 앉았다. 장시간 항해를 앞두고는 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기분에 들떠 전날 목포에서 과음을 한 이들은 오늘 아침에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여름철 홍도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부두는 마치 서울역 대합실을 옮겨 놓은 것처럼 발 디딜 틈 없다. 전형적인 단체관광지, 낙도지만 1970년대 이후 홍도는 주민 대다수가 관광업에 기대고 산다. 천연기념물 170호. 홍도는 섬 전체가 문화재다. 홍도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야만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홍도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도 유람선 선장은 안전을 당부한다. “잘 보씨오. 가족 관광 왔으께 갈 때까지 조심, 조심, 조심이요. 그리고들 절대 바다에 쓰레기 버리지 마씨요잉.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고 우리 후손들 것을 빌려 쓰는 것잉께.”
 
유람선이 주전자바위 부근에 이르자 늙은 관광안내원이 사진 찍을 준비를 하라고 알려준다. 홍도의 바위들은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홍도 33경이 모두 신화의 무대이고 전설의 고향이다. 주전자바위는 주전자 모양이 확실하지만 손잡이가 없다. 안내원의 해석이 기발하다. “왜 손잡이가 없냐. 있으면 육지 사람들이 들고 갈까봐 우리가 짤러 부렀소.” 부처님바위 앞에서 늙은 안내원은 또 한마디 툭 던진다. “쩌그 바위는 스님이면서 마리아요. 알아서들 자기 신앙으로 보씨오.” 안내원의 말씀은 종교의 본질을 파악한 선지식의 법어다. 같은 바위도 불자가 보면 부처님이고 가톨릭 신자가 보면 성모상이다! 홍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대풍금 부근 해상. 어디선가 작은 어선 한척이 유람선 곁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밧줄을 던진다. 두 배는 하나로 엮이고 순간 어선은 선상 횟집으로 돌변한다. 유람선 선장은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띄워 판매를 돕는다. 목포에서 네 시간, 긴 항해의 여독에 지쳐 잠에 취해 있던 사람들까지 눈을 번쩍 뜨고 회도시락을 사러 몰려든다. 도시락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어선은 멀어져 간다. 이제 유람선 승객들은 풍경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행들끼리 모여 회를 안주로 술을 마시느라 즐겁다. 더 이상 졸거나 잠을 자는 사람도 없다. 늙은 안내원의 설명에도 무심하다.
 
마침내 유람의 끝자락. 잔잔하던 바다에 물결이 일렁이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홍도는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었다. 태풍이 다가오는 바다에서 나는 문득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내가 살았던 것이 과연 삶이었을까. 나는 늘 지난 삶이 실제 같지 않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가 꿈이고 전생인 듯 아득하다. 이 순간도 꿈일까. 오늘 망망대해의 유람선은 태풍 앞에서 한 가닥 가랑잎에 불과하다. 가랑잎에 의지한 목숨들. 어째서 삶은 이토록 위태로운 난바다인가. 험난한 생애의 바다에서 생사는 한순간이다. 하지만 순간인 줄을 알면서도 영원처럼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삶이니, 삶이여! 한 조각 꿈처럼 덧없다 한들 어찌 더없이 소중하지 않으리.
 
글.사진 시인·<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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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