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처럼 사라진 귀신고래 못 봤수? 길따라 삶따라

미국 학자 1912년 울산에 와 연구, ‘한국계’ 명명
1천만원 현상금…유람선 등 테마관광 급물살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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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스필버그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 1912년 그가 동해안 포경업의 전진기지 울산 장생포항에 도착한다. 1년간 울산에 머물며 당시 ‘악마고래’라고도 불리던 귀신고래를 연구하고 돌아간다. 1914년 발표한 논문 ‘태평양 고래’에서 그는 동해안 귀신고래를 ‘한국계 귀신고래’(영어명 Korean Gray Whale)라 명명한다.
 
#장면 2. 지난달 25일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 3층 귀신고래관. 귀신고래 소리 체험관에 들어서자 소 울음소리를 닮은 귀신고래 소리가 신음처럼 울려나온다. 좌우 화면으론 따개비들을 잔뜩 붙인 귀신고래가 물속을 유영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1964년 5마리 포획 이후 한국 바다에서 사라진 한국계 귀신고래. 전시관에 영상과 소리, 사진, 모형, 그리고 낡은 앤드루스의 논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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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금 붙은 귀신고래
1962년 정부는 동해바다 강원·경북·경남 연안 귀신고래 회유해면을 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1974년 국제해양포유류학회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멸종했음을 알린다. 남획의 결과다.
 
1981년 월간지 <마당>은 귀신고래를 찾는 데 현상금 100만원을 걸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4년 울산 고래연구소를 설립한 뒤 한반도 연안 귀신고래 발견에 500만원을 내걸었고, 지난해엔 최고 1천만원까지 올렸다. 현상금은 아직 주인을 못 찾았다.
 
학계에선 곧 현상금 주인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사라졌던 한국계 귀신고래는 1993년 사할린 해역에 귀신처럼 다시 나타났다. 그뒤 연간 3%의 증가율로 늘어나 최근 130여마리가 사할린 해역에서 확인됐다. 귀신고래는 오호츠크해에서 동해안을 따라 회유하는 한국계 귀신고래(서북태평양계)와 북미 연안을 회유하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동부태평양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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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관광자원으로
개체수가 2만마리 이상인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친환경 관광자원이 된 지 오래다. 한반도 연안에 귀신고래는 돌아오지 않고 있으나 다른 고래들의 개체수는 부쩍 늘고 있다. 동·남해안에서 수십 수백 마리씩 떼지어 헤엄치는 돌고래류와 밍크고래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한국~일본을 오가는 배들이 고래와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포경 금지 이후 개체수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래 목격 사례가 급증하면서 울산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들의 고래 테마 관광산업 추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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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대곡천 반구대암각화를 살펴보는 관광객들. 박미향 기자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4월부터 고래 관광선 뜬다
다양한 고래 그림이 새겨진 선사시대 암각화와, 동해안 포경업의 전진기지였던 장생포항 등을 갖춘 울산은 고래 테마 관광산업 추진의 최적지로 꼽힌다. 95년부터 해마다 고래축제를 열어 온 울산시는 올해부터 2018년까지 3천여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시를 고래 테마 관광도시로 만들 계획이다. 고래문화마을·고래생태학습장·고래체험장·고래생태연구센터를 건설한다.
 
당장 4월부터는 관경선(고래 관람 유람선)을 띄운다. 10톤급 어선 3척을 투입해 8월까지 주 2회씩 관경선을 운항하게 된다.
 
고래 만날 확률은?
배를 타고 나가도 고래를 만날 확률은 낮은 편이다. 10마일 이상 바다로 나가 지그재그 운항을 하며 고래를 찾아야 한다. 지난 2월25일 장생포항에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나가 고래와의 조우를 기대했으나, 기상악화로 그냥 돌아와야 했다. 울산시에 따르면 2007년 3월~2008년 12월, 51일간의 탐사에서 고래를 만난 날은 19일(37%)뿐이었다. 그러나 4~8월만 보면 13일간의 탐사에서 9일(69%)이나 고래를 만났다. 울산시는 봄~여름이 고래 관찰의 적기라고 보고 운항 기간을 정했다.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은 “각국 고래 관광지의 경우 관찰 확률은 높지 않아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곁들인 관경선을 운항하고 있다”며 “정자·감포 앞바다는 고래를 만날 확률이 매우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바다밑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울산 앞바다는 심해에서 올라오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곳이라고한다. 울산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래 문화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평가한 그는 “고래 테마 관광도시가 되려면 관경선 운항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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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 두장은 제주도큰돌고래, 낫돌고래(아래 왼쪽), 참돌고래.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제공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고래를 만날까?
오랜 기간 남획이 진행된 탓에 국내 연안에서 참고래(6~23m)와 같은 대형 고래를 만날 확률은 매우 적다. 최근 개체수가 급증한 것은 소형인 참돌고래·낫돌고래·상괭이 등 돌고래류(1~4m)와 중형인 밍크고래(2~8m)들이다. 운 좋으면 수백 마리씩 떼지어 수면으로 솟구치며 유영하는 돌고래 무리를 관찰할 수 있다.
 
송창식이 고래 잡으러 떠나자고 외칠 때나, 본격 관경선 출항을 앞에 둔 지금이나, 동해바다 고래는 우리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조용히 수직으로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고 주변을 관찰하는 귀신고래, 숨구멍으로 거친 숨을 내뿜는 참고래 관찰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울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선사시대 암각화에 아홉 종 모습 생생하게 묘사
‘12가지 맛’ 전문식당 80여 곳…고래박물관 볼만
 
◈고래 고장 울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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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고래의 고장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를 해 온 생생한 흔적들, 동해안 포경업의 전진기지였던 장생포항, 거리에 즐비한 고래고기 식당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표적인 공해 도시였다가 태화강을 되살려내며 친환경 도시로 인정받은 울산이 이제 ‘고래테마 관광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장생포항·고래박물관·반구대암각화·천전리각석 등을 둘러보고, 4월부터 운항할 고래 관광선까지 탄다면 더할나위 없는 고래 구경 여행 일정이 될 듯하다. 
 
동해바다를 우리 선조들은 ‘경해’(鯨海)라고 불렀다. ‘고래 바다’다. 19세기 들어 유럽 포경선들이 몰려와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아갔다. 본격적인 고래잡이를 하지 않던 우리나라로선 열강들의 ‘고래싸움’으로 황폐화하는 경해를 지켜봐야만 했다.
 
노르웨이식 근대 포경 방식(포살식)이 러시아와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장생포는 동해안 포경산업의 전진기지가 됐다. 일제때 일본 포경선들은 고래 회유 시기에 맞춰 7~8척이 장생포항으로 들어와 동해 연안을 거슬러 오르며 참고래·혹등고래·대왕고래들을 잡았다고 한다.
 
광복 뒤엔 장생포 주민들이 포경선을 마련해 직접 고래잡이에 나서, 1986년까지 최대 21척의 포경선이 고래를 잡았다. 60년대까지는 대부분 길이 20여m에 이르는 참고래를 잡다가 개체수가 줄면서, 포획 대상은 밍크고래로 바뀌었다. 하루 평균 5~6마리 정도의 고래가 장생포항에 들어와 해체됐다고 한다. 한때 네 곳이었던 고래 해체장은 다 사라지고 현재 용잠동 한진중공업 안에 한 곳의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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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고래와 장생포 포경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울산시 남구 매암동 고래박물관이다. 포경역사관·귀신고래전문관을 비롯해 복원해 놓은 고래해체장, 고래기름 착유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귀신고래 실물 모형과 브라이드고래 뼈대, 장생포항 포경선도 전시돼 있다. 바로 옆엔 한반도 연해 고래류의 조사·보전·관리 연구를 수행하는 고래연구소가 있다.
 
동해안 고래 포획의 기록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변 바위벽에 신석기~청동기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있다. 1971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국보)다. 가로 10m, 높이 3m가량의 바위에 다양한 인물상과 고래·상어·호랑이·사슴 등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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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각화 천전리 각석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선새김·면새김으로 그려진 그림은 모두 296점에 이르는데, 이 중 고래 그림이 무려 58점이나 된다. 고래 그림들은 너무도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연구자들을 놀라게 한다. 새끼를 업은 고래, 창에 찔린 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 배에 탄 사람들이 고래를 인양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은 “바위엔 긴수염고래·귀신고래·범고래·돌고래류 등 아홉 종의 특징들이 현대 분류학의 분류대로 묘사돼 있다”며 “투창·그물·견인·해체 모습까지 옛 포경 방식의 전모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놀라운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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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에서 2.3㎞ 떨어진 상류 물가엔 또다른 암각화 천전리 각석(국보)이 있다.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들과 신라 법흥왕 때의 명문들이 뒤섞여 있다. 천전리 각석 건너편 암반엔 공룡발자국 화석이 즐비하다.
 
미식가들에게 울산은 ‘12가지 맛’이 난다는 고래고기 맛 기행지이기도 하다. 장생포항 주변 20여곳을 비롯해 울산시 전체에 80여곳에 이르는 고래고기 식당들이 있다.
 
Untitled-10 copy.jpg고래고기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환경단체 등에선 고래 관광과 고래고기 식당은 양립하기 어렵다며 식당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지역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먹을거리에 대해 업종전환 요구는 어불성설’이라는 반발도 만만찮다. 그물에 걸리거나 좌초해 바닷가로 밀려온 고래를 가져다 쓴다지만, 진위 논란도 있다.
 
울산지역엔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이들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꺼리기도 한다. 한 고래고기 식당 주인은 “곱식이(돌고래의 별칭)는 자주 나오지만 냄새도 나고 질도 떨어지는 반면, 밍크고래는 냄새가 적고 고기 질이 좋다”며 “전문식당들에선 대부분 고기그물에 걸려든 밍크를 사들여 쓴다”고 말했다. 돌고래의 일종인 상괭이는 질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시장에서 파는 고래고기는 돌고래류가 많다.
 
울산/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내려가 언양분기점에서 울산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울산 시내로 들어간다. 5시간 소요. 서울~울산 고속버스 20분 간격 운행, 서울역~울산역 새마을 하루 3회, 무궁화 2회(1회는 청량리역) 운행, 항공편 김포~울산공항 하루 13회 운항.
 
⊙ 가볼 만한 곳
Untitled-4 copy.jpg동구 일산해수욕장 옆의 대왕암공원(울기등대공원)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소나무숲이 있다. 공원 들머리부터 대왕암에 이르는 600여m의 숲길엔 100년 이상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바위절벽 앞의 거대한 바위섬 대왕암(감포 앞바다의 문무대왕릉 대왕암과 같은 이름으로 불림)엔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됐다는 전설이 전한다. 시내 태화강변엔 울창한 대나무숲(십리 대숲)이 조성돼 있다. 최근 신정동~태화동 사이에 보행자 전용 다리(십리 대밭교)를 놓아 강 남북을 오가며 대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엔 10여 집이 가마로 전통옹기를 굽는 외고산 옹기마을이 있다. 5월14~17일 고래박물관 주변과 태화강 둔치에서 제14회 고래축제가 열린다. 울산시 관광과 (052)229-3851.
 
⊙ 먹을 만한 곳
4대째 비빔밥·메밀묵채를 하는 신정동의 함양집(052-275-6947), 언양 불고기로 이름난 언양의 기와집불고기(052-262-4884), 3대째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내는 장생포 원조할매집(052-261-7313).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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