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팔지 않는 노대도의 진실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술집·술가게 추방됐지만 주민들이 술을 진탕 마시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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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팔지 않는 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섬이 통영의 노대도다. 어떻게 술 없이 살 수 있을까. 종교 때문도 아니고 자발적 결의로 주민 모두가 술을 팔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니. 애주가인 나그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 아닌가. 나그네는 서둘러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노대도는 상·하 노대도 두 섬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상노대도 탄항마을에서 하선한 나그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앞바다에 돛단배가 떠 있다. 아직도 저런 범선이 남아 있다니. 최삼열(78) 노인은 지금껏 범선으로 어로를 한다. 전시관이나 박물관 혹은 관광용으로 띄우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실제 물고기를 잡는 범선이 지금껏 이 나라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노인은 본디 기계배로 고기잡이를 했는데 몇년 전 매미 태풍 때 어선이 파손되자 범선을 마련했다. 나이가 들면서 큰 배를 몰고 먼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것이 힘에 부치던 참이었다. 가까운 바다에서만 어로를 한다면 굳이 기관배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건너 섬 욕지도에서 범선을 지어 왔다. 노를 두 개 단 쌍노의 목선. 바람이 없을 때는 노를 저어 가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려 바다로 나간다. 최 노인은 범선을 타는 이 시대 마지막 어부다. 어업의 역사에서 퇴장한 범선. 노인과 범선은 살아 있는 어업 박물관이다.
 
일제 때부터 노대도는 부근의 욕지도와 함께 어업 전진기지였다. 그래서 술집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해부턴가 섬에서는 술을 팔 수 없는 규칙이 생겼다. 1970년대, 어선들이 들어오는 날이면 남자들은 ‘주구장창’ 술을 먹고 난투극을 벌이기 일쑤였다. 견디다 못한 부녀회원들이 섬에서 술을 추방하기로 결의했다. 마을 유지들도 뜻을 모았다. 유지들이 가게의 외상값을 대신 갚아주고 남아 있는 술들은 마을 기금으로 구매해서 모두 바다에 버렸다.
 
상리마을 초입, 어떤 집 마당에서 불을 피워 볼락을 굽는다. 마당을 기웃거리는데 주인장이 어서 와서 볼락을 먹으란다. 생선을 굽는데 술이 보이지 않는다. 여태껏 이 섬 사람들은 술을 먹지 않는 것일까. “아직도 노대도에서는 술을 팔지 않나 보죠?” “구판장에서는 술을 안 팔아요.” “그럼 주민들이 다들 술을 안 드시나요?” “아뇨, 술을 안 파니까 더 많이 마셔요.” 섬에서 술을 안 팔게 된 뒤부터 사람들은 통영이나 욕지도에 나가 술을 짝으로 사다 놓고 마신다. “술이 술을 먹는다고, 아예 바닥을 봐버려요.” 가게에서 팔 때는 몇 병씩 사다 먹었지만 이제는 다들 끝장을 본단다. “섬에서 사는 게 바다에서 사는 거라. 옛말에 도깨비도 뱃사람 흉내는 못 낸다 했잖아요. 일이 수시로 변하니까 도깨비도 흉내를 못 내는 거죠. 그렇게 험하게 사니 술 없이 살 수가 없어요. 파도랑 싸우다 술 한잔 마시면 힘이 나고, 언 몸도 녹고.”
 
섬에는 별다른 위락시설이 없고 문화 활동도 할 수 없다. “아침에 바닷물에 손 담갔다가 저녁에 손을 빼면 그담에는 텔레비전 보는 거 말고는 할 것이 없어요.” 그러니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술밖에 없다. 나그네뿐이랴. 사람들이 술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꿈일런가.


시인·<올레, 사랑을 만나다>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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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