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가 흰 색이어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 우리땅 이맛

화순 달맞이흑두부·색동두부집
색깔도 모양도 파괴…맛은 기본, 눈도 즐겁게
스테이크-탕수육-샐러드-경단 등 ‘무한 변신’ 

 
 
전남 화순엔 두부 음식점이 유난히 많다. 그냥 두부가 아니라 ‘색깔 있는 두부’들이다. 두부에 깊은 관심을 쏟아온 이들이, 색다른 발상을 가지고 남다른 노력을 한 끝에 개발한 것이다. 화순엔 제조 과정, 모양과 맛이 색다르고 남다른 두부·두부요리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음식점이 두 곳 있다. 흑두부와 색동두부 음식점이다. 색다른 두부 요리를 즐기러 화순으로 간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별칭을 가진, 영양가 많고 맛도 좋은 두부가 있고, 천불천탑으로 이름난 운주사와 쌍봉사 등 고찰,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무리, 화순온천, 도곡온천 등 볼거리·즐길거리도 많은 고장이다.
 
<달맞이흑두부>
 
소포제 대신 찬물 샤워로 거품 ‘샤샤샥~’
월급쟁이에서 10년만에 귀농 성공신화 
 
 
Untitled-1 copy.jpg

“우린 소포제를 쓰지 않고도 거품을 없앱니다. 물을 뿌려주는 겁니다.” 화순군 동면 천덕리 달맞이흑두부 본점 주인 양덕승(50)씨가 가마솥 옆에 앉아 주걱으로 콩물을 저으며 말했다.
 
콩을 갈아 가마솥에 넣어 끓이면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면서 단백질 거품이 발생한다. 그대로 두면 끓어 넘치는데,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대형 두부공장들에선 거품을 없애주는 소포제를 쓴다. 옛날엔 참기름 등을 넣어 거품을 없애 왔다. 소포제는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있다 해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다.
 
Untitled-3 copy 3.jpg끊임없이 저어주는데도 거품이 점점 끓어오르자, 양씨가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를 들고 물을 틀었다. “보세요. 찬물을 세게 분사해 주면 거품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달맞이흑두부는 1998년 문을 연 이래, 10년 만에 남도 음식 명가로 떠오른 검은콩 두부 전문음식점이다. 두부를 노란콩만 이용해 만든다는 상식을 깬 것이 손님을 끌어들인 비결이다.
 
“문을 열 당시는 한창 건강과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죠.”
 
대기업에 근무하던 양씨는 월급쟁이 생활 10년째 되던 해 귀농할 것을 결심했다. 화순 동면 천덕리 고향에서 농산물 가공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업종 선택을 놓고 고민하다, 친구 어머니가 직접 만든 두부를 상에 올리는 것을 보고 두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다른 두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몸에 좋은 검은콩’을 써 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가 전국 최초의 검은콩 두부 ‘흑두부’다.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 빛깔은 밝은 회색이지만, 흰 두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흑두부란 이름을 붙이고 특허출원도 했다. 흑두부 앞에 ‘달맞이’가 붙게 된 건 “처음 음식점 건물을 지으면서 고생할 때 고개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위안을 얻은 데서 착안한 것”이다.
 
이 집 장점 중 하나는 매일 그날 쓸 두부를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콩을 가는 일은 기계로 하지만,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물을 끓이고, 천에 싸서 맷돌로 눌러 짜고, 간수를 넣어 저어 두부를 굳히는 일은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매일 두부 만드는 과정을 손님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공장을 공개한다.
 
“만드는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손님들에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누구나 두부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하죠.” ‘먹고 보고 체험하며 즐기는 문화공간’이 양씨가 지향하는 흑두부 전문 음식점이다. 콩물을 짜낸 콩비지는 두부공장 앞 옹기그릇에 담아 놓고 무료로 가져가도록 한다. 그때그때 메주나 호박 등을 준비해 손님들이 한 덩이씩 들고 가게 하기도 한다.
 
Untitled-3 copy 2.jpg

이런 식으로 달맞이흑두부 본점에선 하루 평균 25㎏ 정도의 검은콩을 써서 150모 정도의 두부를 만들어낸다. 약 300인 분이다. 여름 휴가철엔 제조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하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고 한다.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과정 구경까지
 
콩은, 처음엔 신안에서 계약재배해서 쓰다 물량이 모자라 요즘엔 농협에서 수매한 것을 받아다 쓴다. 1년 소비량이 15~20t에 이른다. 두부를 굳히는 데 쓰는 간수는 신안 염전에서, 한동안 햇빛을 쪼인 바닷물을 받아다가 사용한다고 한다.
 
“식품용 화학 간수를 쓰면 입자가 곱고 매끄러운 두부가 나옵니다. 그러나 천연간수를 쓰면 입자는 다소 거칠어도 제대로 고소한 콩맛을 내는 두부가 나오죠.”
 
천으로 짜낸 콩물에 간수를 섞을 때는 “아주 서서히 모양을 봐가며” 저어줘야 한다. 되도록 간수를 적게 넣으면서, 입자가 흩어지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저어주는 것이 제대로 된 두부가 만들어지는 관건이다. 이때 응고된 두부를 물과 함께 떠낸 것이 순두부다. 이걸 천에 싸 틀에 담고 눌러 물기를 빼 굳히면 판두부가 된다.
 
이 집의 또다른 매력은 검은콩 두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업 초기엔 검은콩으로 단순히 모두부 순두부만 만들어 팔았죠. 두부도 활용하면 다양한 음식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체 음식을 개발했습니다.”
 
Untitled-8 copy 2.jpg

순두부·청국장·콩국수에서부터 흑두부 버섯전골·생태탕·삼계탕·보쌈·한방삼합 등까지 흑두부가 곁들여지는 갖가지 요리를 낸다. 흑두부를 넣어 끓인 전골, 탕은 영양을 보강해줄 뿐 아니라, 다른 재료와 어울려 한결 부드러운 맛을 낸다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흑두부 스테이크·탕수육 등은 두부만을 이용해 고기맛을 낸 건강식이다.
 
양념장을 넣어 약간 붉게 끓여 내는 순두부는 얼큰하다. 입안에 가득 차는 순두부 덩어리의 질감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 순두부를 내는 경기·강원 등 중부지역과 달리 호남지역에선 조리할 때 양념장을 넣어 끓인다.
 
달맞이흑두부는 개업 10년 만에 본점과 직영점 2곳(광주점·도곡온천점), 체인점 7곳을 둔 대형 음식점으로 성장했다. 전남도 지정 남도음식 명가로 지정되며 흑두부는 남도 대표 음식의 하나로 떠올랐다. 체인점 하겠다는 사람들 밀려들지만, 콩 수급 문제, 두부 품질 유지 문제 등으로 지점 증설은 되도록 사양하고 있다.
 
“밥장사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귀농자로 성공한 거죠.” 양씨는 자신이 음식점 주인이기에 앞서 ‘귀농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광주 5대 구에 한 곳씩 ‘느끼고 체험하며 먹고 즐기는 음식점’을 차려 전통음식 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 달맞이흑두부
한방흑두부삼합 3만~4만원, 흑두부보쌈 2만5천~3만5천원, 가마솥흑두부 5천원, 흑두부탕수육 1만5천원, 흑두부스테이크 1만2천원, 검은콩 청국장 6천원, 순두부찌개 6천원. 흑두부정식(코스요리) 4인기준 4만8천~7만원, 콩물국수(여름) 6천원.(061)372-8465.
 
Untitled-9 copy.jpg

 
<색동두부집>
 
노란콩-흰색-육면체 탈피, 색 입히고 모양 내
실내악단·국악인·재즈 가수 등 초청 음악회도
 
 
두부도 진화한다. 재료를 달리하고 방식을 달리해 만들어진 새로운 두부들이 각광받고 있다.
 
두부는 콩을 물에 불린 뒤 갈아 솥에 넣고 끓여 콩물을 짠 다음 굳혀 만든 음식이다. 중국 한나라 때 처음 만들어진 음식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엔, 고려 때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의 <목은집>에 두부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기나 그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Untitled-2 copy.jpg

이런 전통적 의미의 두부는 두부용 콩인 노란콩을 이용해 틀에 넣어 굳힌 흰 색의 두부다. 일반적으로 두부 한 모는 200g 가량의 네모난 모두부를 가리킨다. 이런 상식을 깨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두부를 선보인 곳이 화순 도곡면 원화리, 도곡온천 부근의 색동두부집이다.
 
오랜 기간 변함없이 이어져 온 단순·담백한 덩어리 두부의 전통에, 색동두부집 주인 이은옥(46)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두부의 컬러시대를 선언하고, 네모난 틀에 넣어 같은 크기의 육면체로 찍어내는 두부 형식을 깨뜨렸다. 삼색 두부, 쌈 싸먹는 포두부가 그것이다.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지던 때, 장기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전통 건강음식이 바로 두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국의 이름난 두부집을 탐방하며 맛을 보고 제조방식을 섭렵한 끝에 내린 결론은 평범한 두부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가장 큰 자극을 준 것이 달맞이흑두부의 성공이다. 몸에 좋다는 검은콩을 이용해 만드는 흑두부는 확실히 발상의 전환이었다.
 
Untitled-7 copy.jpg

이씨는 “흑두부의 대성공은, 새 모형을 개발해 차별화된 두부를 만들겠다는 걸심을 더욱 분발시켰다”고 말했다.
 
이씨는 검은콩뿐 아니라, 푸른콩(청태)과 기존의 노란콩을 각각 갈아 만든 콩물을 차례로 덧씌워 삼색의 물결무늬를 자연스럽게 살린 컬러 두부를 만들어 냈다. 흑두부에서 한걸음 나아간 형식이다. 세가지 두부의 층이 서로 섞이지 않고 켜켜이 쌓이며 고유한 색과 모양을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다고 한다. “아침에 문 열고 두부를 만들기 시작해서, 손님맞이는 제쳐놓고 문 닫을 때까지 두부 만들기만 한 날도 있어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삼색 두부는 비록 빛깔이 선명한 건 아니지만, 두부 단면에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게 우러나는 색상이 밥상 앞의 눈들을 즐겁게 한다. 검정콩 두부는 회색, 노란콩 두부는 노란색, 푸른콩 두부는 초록색으로 각각 옅은 빛깔을 내지만, 먹어보면 두부 입자의 질감과 구수한 두부향은 아주 진하게 다가온다.
 
Untitled-5 copy.jpg

치즈처럼 얇은 포두부·두부샐러드 넘쳐나는 두부요리
 
포두부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만들어졌다. 간수를 넣어 저은 콩물을 두부판에 얇게 깔고 천을 덮은 뒤 다시 콩물을 얇게 깔기를 10여켜 이상 거듭하는, 시간·공력이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점성이 모자라 찢어지는 일이 잦았고, 점성에 신경 쓰다 보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간수의 양을 조절해 가며 일정한 점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 마침내 찢어지지도 않으면서 고소한 맛을 내는 두께 3㎜의 포두부를 만들어냈다.
 
슬라이스 치즈를 떠올리게 하는 포두부는, 포두부보쌈 요리의 쌈 재료로 쓴다. 포두부와 함께 상추·깻잎 등 각종 야채에 버섯·새우젓·마늘 등을 곁들여 돼지고기 목살을 싸먹는 보쌈이다. 두부에 싸먹는 돼지고기 목살은 독특한 맛을 낸다. 이 집에선 생목살을 그날그날 구입해 녹차·보이차 잎을 넣어 재 뒀다가 쓰는데, 찻잎의 성분이 고기를 향기롭고 부드럽게 하면서 기름기를 줄여주는 구실도 한다.
 
Untitled-6 copy.jpg

포두부와 함께 삼색 색동두부는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번 왔던 고객들은 색다른 두부의 형식과 맛에 확실한 기억을 갖고 있다가 다시 들르곤 한다고 이씨는 말했다. 6년 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식당에 우연히 들렀을 때 당시 상호 이름은 두부래향이었다. 색동두부가 뜨면서 간판을 아예 색동두부집으로 바꿔 달았다.
 
두부를 싫어하는 이들과 어린이를 위한 두부요리 ‘특선 유선식’과 두부샐러드도 개발했다. 유선식은 두부를 으깬 데다 감자·양파·당근·브로컬리 등 야채들을 썰어 넣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의 경단으로 만들어 튀겨낸 영양식이다. 간장에 레몬·월계수잎을 섞은 소스를 찍어 먹도록 했다.
 
“요즘은 젊은층 손님이 부쩍 늘었어요. 생일파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모임도 갖죠. 두부가 중년층이 좋아하는 건강식이라는 건 옛날 얘깁니다.”
 
색동두부집에선 분기별로 한번씩 실내악단·국악인·재즈 가수·통기타 가수 등 다양한 부류의 음악인들을 초청해 ‘작은 음악회’를 연다. 개업 초기엔 월 1회씩 했으나, 잦은 행사가 부담스러워 분기 1회로 바꿨다.
 
이씨는 색동두부집을, 음악회말고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는 품격있는 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두부 전문식당 하면, 할머니 손맛과 촌스럽고 허름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깔끔하고 서비스도 좋은, 격조 높은 두부요리 전문점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씨 생각이다. 품질 유지 문제로 지금까지 사양해 왔던, 지점 개설도 조심스럽게 검토중이다.
 
△ 색동두부집
포두부보쌈 1만~2만5천원, 색동두부전골 1만8천~3만원, 특선색동유선식 1만2천원, 색동탕수두부 8천원, 색동두부 5천원, 선비부침개 6천원, 두부샐러드 5천원, 순두부찌개·청국장·토란탕 6천원, 콩물국수(여름) 6천원. (061)375-5066.
 
Untitled-4 copy.jpg

화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