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이야, 한약방이야? '장금이'가 울고갈라 우리땅 이맛

[우리땅 이맛] 광주 ‘초미을’ 약초음식

 

제철 식재료에 약초 활용해 300가지 음식
사람 살리고 병 고치는 밥상 차리는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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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 포인트
  
초미을은 약초를 활용해 독특한 맛과 향기와 빛깔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한정식 집이다. 장류에서부터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주인이 직접 담그고 만들어 쓴다. 모든 음식에 약초 우린 물이 들어가고, 죽염으로 간을 맞춘다. 음식들의 모양새나 맛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상차림/약초정식 1인분 2만원(2인 이상), 초미을나물밥(점심) 1만원, 약초국수 1만원, 조릿대콩국수 1만원, 약초닭백숙 5만원, 약초오리백숙 6만원.

 

△위치/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11. 주소지는 광주에 속하지만, 위치는 담양 소쇄원 앞쪽이다.

 

△전화번호/(062)266-8286.

 

△주변 볼거리/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정원) 소쇄원이 가까운 곳에 있다. 식영정·환벽당·송강정·면앙정·명옥헌 등 담양의 이름난 정자들을 순례해 볼 만하다. 가사문학관도 있다. 담양 읍내의 메타세쿼이아 길, 관방제림 등 가로수길도 아름답다. 

  


'약식동원(藥食同原)이란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는 뜻이다.

 

음식으로 병을 다스린다거나 밥이 보약이란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제철에 나는 음식, 오염되지 않은 자연식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약식동원'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밥과 반찬 등 일상적인 음식들과 실제 약초와의 어울림은 어떨까.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약초를 곁들여 만든 음식들을 내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담양 소쇄원 앞의 '초미을'은 밑반찬에서부터 밥과 국, 각종 요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에 약초를 활용하는 한정식집이다.
  
밥도 봄 여름 가을 따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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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자랑거리가 많은데, 실로 '장금이'가 왔다가 울고 갈만한 수준이다.

 

첫째, 제철 식재료를 써서 철마다 다른 음식을 선보인다는 점. 둘째, 모든 음식을 약초를 활용해 만든다는 점. 셋째, 모든 밑반찬을 직접 만든다는 점. 넷째, 일반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직접 만든 약초조미료를 쓴다는 점. 다섯째, 죽염이나 상염(뽕나무잎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는 점.

 

약초음식 개발 경력 8년, 약초를 활용한 음식 300가지를 직접 만들어 낸다는 초미을 주인 이난영(44)씨가 말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집니다. 제철 자연식을 위주로 사람 살리는 음식, 병을 치유하는 음식을 밥상에서 구현해 내는 게 꿈입니다."


먼저 밥을 보자. 밥솥째 상에 오르는데, 솥뚜껑을 여니 뜨거운 김과 구수한 내음 속에 드러나는 감자밥이 노란색이다. 치자를 우려낸 물로 밥을 지었기 때문이다.

 

"치자는 심장의 열을 내리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자는 소화를 돕지요."  

 

치자·감자밥은 여름용 밥이다. 가을엔 위장을 다스리는 마와 고구마·버섯을 넣어 밥을 짓고, 봄엔 칡순·홑잎 등 새순을 곁들인 나물밥을 지어 낸다고 한다.

 

삼겹살 약초 달인 물에 삶고 쌈장과 토하젓에도 갖은 약재

 

여름철 상에 오르는 요리들로는 사물삼겹수육, 부추잡채와 삼색전, 버섯묵·도토리묵, 마 두부찜, 울금 고등어구이, 복령 전병 등이 있다. 주요 요리는 망초꽃잎 등을 곁들여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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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삼겹수육은 삼겹살을 천궁·당귀·작약·숙지황을 달인 물에 삶아낸 수육이다. 약초물에 1시간30분 삶은 뒤 냄비 밑에 솔잎을 깔고 고기를 얹어 다시 한 번 익혀 손님상에 낸다.

 

고기가 부드럽고 약초향이 은은하다. 수육을 찍어 먹는 쌈장과 토하젓에도 갖은 약재가 들어간다. 쌈장에는 심장에 좋다는 연자육(연씨)과 해바라기씨·호박씨·잣 등 견과류를 갈아 넣고, 토하젓에도 감초·대추와 견과류를 첨가한다. 잡채엔 식중독을 예방하는 부추를 곁들이고 기름은 쓰지 않는다. 역시 약초물로 만든 육수를 사용해 잡채를 만든다.


삼색전이란 빨강·노랑·초록색을 띤 밀가루전이다. 각각 백년초·치자·쑥을 써서 색깔을 낸다. 전에는 버섯·호두·해바라기씨 등을 빻아 넣는다. 붉고 노란 빛깔의 버섯묵에도 백년초와 치자를 쓴다. 두부는 위장에 좋고 항암효과가 있는 마와 버섯을 첨가해 직접 만든 두부를 쓴다. 울금고등어구이는 울금에 노란색을 입혀 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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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은 한약재인 복령가루를 섞고 쑥·치자로 색깔을 낸 피를 만들어, 여기에 마·인삼·버섯·샐러리·우엉 등을 싸서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전병을 찍어 먹는 소스도 주목할 만하다. 아까시(아카시아)꽃으로 만든 즙, 오디 즙, 산딸기 즙에 각각 갖은 양념을 한 세 가지 소스가 나온다. 놀랍게도 각각의 소스에선 아카시아 꽃향기와 오디향, 산딸기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아까시꽃은 천연 항생제이자 진통제입니다. 치통에도 효과가 있지요."

 

“약초라 해도 마구 넣는 게 아니라 음양오행 궁합 맞춰”
  
밑반찬은 어떨까. 봄에 채취해 저장해 둔 찔레순 김치, 민들레 김치, 연근, 마·우엉·감자조림 등 주변에서 흔히 나는 제철 재료들을 밑반찬으로 만들어 낸다. 이씨는 "요리의 기본을 이루는 기초식품이 매우 중요하다"며 "음식의 모양은 누구나 얼마든지 멋지게 꾸며낼 수 있지만 기본 재료만큼은 꾸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를 직접 채취하거나 재배해 쓰지만 불가피하게 구입해서 써야 할 재료가 생길 경우엔 식초·소금물·청주 등에 담가두었다가 쓴다. 이렇게 하면  농약 성분의 코팅된 막을 벗겨낼 수 있어 체내 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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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더욱 중요시하는 것은 음식의 궁합이다.

 

"좋은 약초라 해서 아무 음식에나 마구 넣는 게 아닙니다. 음양오행에 따라 음식과 약초가 서로 기운을 돋워주고 살려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빛깔이나 맛도 살아나지요."

 

약초국수도 낸다. 여름엔 조릿대콩국수를, 가을엔 약초칼국수를 낸다. 콩국수는 대나무의 일종인 조릿대를 달인 물로 콩을 불리고 갈아, 다시 조릿대물을 섞은 콩물에 소면을 말아 낸다. 수박·오이·달걀·배를 채 썰어 올리고 백일홍 꽃잎을 띄운다. 조릿대 성분은 항암효과가 있고 백일홍 꽃잎은 여성 질환에 좋다고 한다.

 

닭백숙·오리백숙에도 천문동·연자육 등 다양한 약재가 들어간다. 가을엔 약초추어탕도 낼 예정이다.

 

한의학 본격 연구하며 8년 째 매달려
  
lee.jpg이씨의 이런 식견과 경험과 솜씨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 온 "사람 살리는 일"에서 비롯했다. 식품가공학과 출신인 그가 지속적으로 공부해 온 분야가 전통의학이었다. 특히 경락을 배우면서 발 건강법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난치병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면서 관심 분야는 마사지를 통한 건강과 미용, 침술, 수기치료, 약초 건강으로 확장됐고 결국 자연 건강식 쪽에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여러 경험을 해보니 결국 사람 살리는 일의 기본은 음식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는 현재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기공학을 본격 연구하면서, 약초음식 연구 개발에 8년째 매달리고 있다. 음식점에 내놓는 밑반찬과 요리들은 그가 개설한 약초음식연구소인 곡성의 '약선연구원 휘선제'에서 개발된 것들이다. 그는 이곳에서 3년째, 직접 기르고 채취한 약초와 야채, 직접 담근 장류들로 갖가지 약초음식들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올해 초 차린 음식점이 초미을이다.

 

"개발한 약초음식들이 대중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싶어서 음식점을 냈죠. 의욕만 앞서서 그런지 제대로 해내기가 무척 힘드네요. 그래도 섭생을 중시하는 분들이 찾아와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면 힘이 생깁니다."

 

이씨는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약초건강을 강의하고, 복지관 등에선 약초음식과 발 건강법 등을 가르치며 동생 부부와 함께 초미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초미을(艸味乙)'은 '약초의 맛과 향이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광주/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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