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술가 ‘흥타령’에 꽃피는 ‘천안 명동’ 마을을 찾아서

천안역~명동~중앙시장 원도심 걷기여행
쇠락한 골목마다 ‘문화 재생’ 열기 후끈
비어 있던 건물 청년상인·예술가 몰려 북적

“올 들어서 손님이 확실히 늘었어요. 새로 문 여는 예쁜 가게도 많아졌고.”

충남 천안시, 천안역전시장 한 식당 주인의 말이다. 천안역 앞 대흥동·문화동 일대는 20년 전까지 ‘천안의 명동’으로 불리던 번화가였다. 새도심 개발로 상권이 옮겨가며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빈 건물투성이이던 천안의 옛도심(원도심) 골목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청년들이 돌아와 카페·식당·공방을 연달아 여는가 하면, 낡은 건물들은 도심 속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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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중앙동의 ‘미나릿길 벽화골목’의 전통놀이 벽화.

옛 ‘명동’과 중앙시장, 조선시대 사직단이 있던 남산, 그리고 ‘미나릿길 벽화골목’을 거쳐 다시 ‘명동’으로 돌아오는 천안 원도심 산책에 나섰다. 새살이 돋고 있는 낡은 거리와, 거리에 남은 선인들 발자취를 구경하고 즐기고 맛보며 걷는 시간여행이다. 천안역 동부광장에서 출발한다.

천안역 동쪽 광장이 동부광장이다. 유명했던 책방 동방서림이 사라지고, 양지문고도 문 닫고, 역마차다방·나포리다방·돌다방도 사라졌지만, 호두과자집들은 남아 변함없이 성업 중이다. 이름난 곳이 1934년 문 연 ‘학화 호두과자’와 1957년 개업한 ‘태극당’이다. ‘학화’는 호두과자만 만들고, 태극당은 다양한 빵을 함께 만든다. 두 집의 호두과자 맛은 비슷하다. 고소한 것도, 굵직한 호두 조각이 들어간 것도 매한가지다. 20개 5000원.

천안역 앞 태극당의 호두과자.
천안역 앞 태극당의 호두과자.

학화·태극당 앞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큰길(대흥로) 주변은 옛날 ‘온양나들’(온양나들이)로 불렸다. ‘온양온천’으로 향하던 길목인데,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는 ‘상여’ 제작 거리로, 이후 1980년대까지는 탈곡기 생산 거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길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면, 낡은 건물들과 가게들이 이어진다. 번화했던 옛 명동 거리 초입이다. ‘흥흥발전소’ 간판을 단 건물(지하 1층, 지상 4층)이 화사하게 다가온다. ‘흥하고 흥겨운 청년몰 발전소’란 뜻을 담았다. 20~30대 청년 상인들이 입주해 열정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명동’의 부흥을 꿈꾸는 공간이다. 10년 남짓 비어 있던 옛 팬시점 건물에, 지난 10월 의류·패션소품·원목공방·카페·식당 등 13개 점포가 둥지를 틀었다. 건물 전체가 활기 넘치는 쇼핑·문화·놀이 복합 시설로 바뀌었다.

천안 원도심의 비어 있던 4층짜리 쇼핑점 건물에 자리잡은 ‘흥흥발전소’. 명동 거리의 부활을 꿈꾸며 20여 팀의 청년 상인들이 둥지를 튼 곳이다.
천안 원도심의 비어 있던 4층짜리 쇼핑점 건물에 자리잡은 ‘흥흥발전소’. 명동 거리의 부활을 꿈꾸며 20여 팀의 청년 상인들이 둥지를 튼 곳이다.

옆 건물에는 ‘공유 캠퍼스’로 불리는 쉼터가 있다. 의자와 탁자, 컴퓨터, 짐 보관소 등을 갖춘 곳이다. 주민이건 여행자이건,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 쉬거나 짐을 보관해둘 수 있다. 역 앞 큰길로 나서, 카페 ‘빼꼼’을 들여다본다. 탁자 2개뿐인 카페 입구엔 ‘청년상인 2호점’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최근 2~3년 사이 이처럼 청년들이 야심차게 문 연 가게는 대흥동·문화동 일대 골목에 30여 곳이나 된다. 젊은 상인들의 잇단 입주로 골목이 서서히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3년 전 천안시와 충남문화산업진흥원이 지역 청년활동가, 주민들을 연계시키고 지원해 골목 살리기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지자체와 함께 펼치는 ‘문화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이다. 충남문화산업진흥원 문화도시사무국 이미영 연구원은 “처음엔 지역 상인들과 갈등도 많았지만, 유입되는 청년들이 크게 늘면서 ‘함께 해보자’는 화합과 상생의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천안 원도심 ‘명동 거리’의 조명 조형물. 12월30일까지 크리스마스 축제가 진행된다.
천안 원도심 ‘명동 거리’의 조명 조형물. 12월30일까지 크리스마스 축제가 진행된다.

천안 원도심 재생 사업의 거점이자 주민 쉼터인 ‘아트큐브136’.
천안 원도심 재생 사업의 거점이자 주민 쉼터인 ‘아트큐브136’.

주민들이 재능을 나누고 보태며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공유 스쿨’도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기획하고 운영하며 굴러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안 생리대 만들기’ ‘떡케이크 만들기’ ‘바느질 배우기’ 등 주민들 스스로 강사로 나선 11개의 강좌가 진행 중이다. 수강료는 돈이 아닌 물품이나 재능으로 낸다고 한다.

상권·문화권 재생으로 골목 변화를 주도하는 거점이 옛 안과병원 건물에 들어선 ‘아트큐브136’이다. 주민들이 모여 차 마시고 정보를 나누며 골목 발전 토론도 벌이는 열린 찻집이자 복합 문화 공간이다. ‘천안 두드림센터’도 있다. 12년간 비어 있던 옛 언론사 건물을,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전시장·공연장, 그리고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 문화콘텐츠 분야 스타트업 업체들의 사무실로 꾸몄다.

아직 비어 있는 낡은 쇼핑센터 제일프라자를 지나 오룡동 쪽으로 걷는다. 1980~90년대까지 아카데미극장·씨네마타운·한일극장 등이 늘어서 극장거리를 형성했던 곳이다. 골목 안쪽엔 젊은이들이 많이 찾던 음악다방 ‘브람스’도 있었다.

천안의 독립출판물 책방 ‘허송세월’에서 대학생들이 도시 재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천안의 독립출판물 책방 ‘허송세월’에서 대학생들이 도시 재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룡지하차도 위를 지나 오룡동 구제품 거리로 들어선다. 중앙초등학교를 돌아 중앙시장으로 이어진 ‘큰재빼기 고개’ 골목을 따라 ‘명품 구제’ 간판을 내건 저렴한 의류 가게들이 이어진다. 중앙시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자그마한 책방 ‘허송세월’을 들여다본다. 천안에서 유일하다는 독립출판물 서점이다. 주로 대학생 등 젊은층이 찾아와 책도 읽고 토론 장소로도 쓰며 ‘알찬 세월’을 보내는 책방이다.

중앙초교 자리는 조선시대 관아 터다. 1930년 일제는 이곳에 일본인 자녀를 가르치는 심상소학교를 세웠고, 이것이 초등학교로 이어졌다. 관아엔 조선 임금들이 온양온천 행차 때 오가며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화축관’도 있었다. 화축관은 사라졌지만 출입 문루인 영남루가 천안삼거리공원 호숫가로 옮겨져 남아 있다.

중앙시장은 천안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출출하다면 시장 들머리 골목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 볼 만하다. 상점들 사이에, 화장실 문 같기도 하고 창고 문 같기도 한 허름한 나무 문짝 하나가 보인다. 1965년 개업한 ‘쪽문만두’집 입구다. “먼젓번 주인이 33년간 하고, 인수받아 20년째 하고 있다”는 탁자 세 개뿐인 만두집인데, 무를 듬뿍 갈아 넣은 야채만두로 인기를 끈다.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찐만두·군만두 2가지가 있다. 8개 4000원. 시장의 인기 간식으로 호떡과 어묵꼬치(오뎅)도 있다. 대개 두 가지를 함께 판다. 남산 쪽 시장 입구의 옛날명품호떡과 원조할머니호떡 판매대가 인기다.

중앙시장 ‘쪽문만두’ 입구.
중앙시장 ‘쪽문만두’ 입구.

시장을 나서 길 건너 남산 계단길을 오른다. 평지에 솟은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사직단이 있던 중요한 장소다. 일제는 사직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사를 지었지만, 광복 뒤 신사는 철거되고 시에서 ‘용주정’이란 누각을 세웠다. ‘용주’는 ‘용의 구슬’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천안에는 ‘용(龍)’ 자가 들어간 지명이 유난히 많다.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을 지낸 이정우(60)씨가 말했다. “동남구에 용곡동이 있어요. 그 동쪽에 청룡동이 있고, 서쪽엔 쌍용동이 있죠. 북쪽에는 오룡동, 남쪽에는 구룡동이 있고. 그러니 천안이 ‘용의 고장’으로 불리는 겁니다.”

용의 전설은 고려 태조 왕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건을 돕던 ‘술사’가 말하기를 “‘오룡쟁주’의 땅(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곳)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훈련하면 통일을 이룰 것”이라 했다. 그 땅이 천안 동쪽에 솟은 산(태조산)인데, 그의 말대로 한 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의 태조가 됐다고 한다. 지형상, 다섯 용이 다투던 구슬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 위에 용주정을 세운 이유다.

중앙동 미나릿길 벽화골목의 황룡·청룡 벽화.
중앙동 미나릿길 벽화골목의 황룡·청룡 벽화.

남산에서 내려와 네거리 건너 왼쪽 ‘미나릿길 벽화골목’으로 든다. 낡고 쇠락해가던 골목을 청룡·황룡, 민속놀이, 인물, 트릭아트 등 다양한 벽화로 장식해 탐방객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 일대는 ‘하수도골목’으로 불리던, 실개천을 복개한 곳이다. 하천을 따라 미나리가 많이 자라나 ‘미나릿길’이란 이름이 나왔다. 옛날 하천을 따라 나무전·싸전·쇠전(나무시장·쌀시장·우시장)이 이어졌다고 한다.

복개천 주변은 점집 골목이기도 하다. ‘새로 신내린 집’, ‘영험한 집’을 내세운 보살집·선녀집·장군집·도령집 들이 줄을 잇는다. 복개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 중앙초교 정문을 거쳐 공사 중인 ‘동남구청’ 옆길로 오르면 다시 옛 ‘명동 거리’로 들어서게 된다. 구경하고 먹고 쉬며 4시간 정도 걸렸다.


천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천안역 오락야시장 가보셨나요?

이색 먹거리 수레 30곳 선보여

천안역전시장 입구.
천안역전시장 입구.

천안 원도심 여행자들이 싼값에 다양하게, 맛있고 재미있게 저녁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천안역 동부광장 건너편 골목의 천안역전시장이다.

해 지면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아 어둡고 한산해졌던 시장 골목이, 얼마 전부터 자정 무렵까지 행인들로 북적이는 먹자골목으로 바뀌었다. 지난 10월 말 ‘오락(oh! 樂)야시장’이 개장했기 때문이다. 매주 수·목·금·토요일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개성 있는 즉석조리 먹거리들을 선보이는 야시장이다. 천안시 지원을 받아, 역전시장 상인들과 청년 창업자들이 협력해 문을 열었다.

지난 7일 저녁 6시.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바퀴 달린 매대(수레) 18대가 쏟아져 나와 시장골목을 메웠다. 판매대를 끌고 미는 이들은 대개 20~30대 청년 창업자들이다. 판매대가 제자리를 잡고, 준비한 재료를 굽고 삶고 지지고 볶기 시작하자, 시장 골목은 순식간에 식욕을 돋우는 새우버터구이·철판꼬치구이·컵족발·숯불구이닭발 냄새로 가득 찼다. 손님들도 긴 행렬을 이루며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나섰다.

오락야시장의 계란빵 매대 ‘The 괜찮아’.
오락야시장의 계란빵 매대 ‘The 괜찮아’.

‘The 괜찮아’를 상호로 내걸고 ‘에그머니’ ‘치즈머니’로 이름 붙인 계란빵을 구워 내던 스물한살 동갑내기인 유은경·오정은씨는 중학교 동창 사이다. 유씨는 “외식업체에서 일하다, 야시장 청년 창업자 모집을 보고 신청했다”며 “여러 계란빵을 먹어보고 연습한 끝에, 우리 나름의 ‘최상의 맛’을 완성했다고 자부한다”고 자랑했다.

새우구이를 파는 ‘안녕하새우’의 아주머니는 “싱싱하고 맛있는 새우꼬치”를 외치며 고객을 불러 모았고, ‘궁뎅이 큐브스테이크’와 ‘떡닭S’의 30대 청년들은 고기를 구우며 선보이는 불꽃 쇼로 손님을 끌었다.

오락야시장의 ‘궁뎅이 큐브스테이크’ 매대.
오락야시장의 ‘궁뎅이 큐브스테이크’ 매대.

쇠고기 스테이크를 사 먹던 30대 여성은 “음식 맛도 좋지만, 매대 주인들이 입 가리개를 한 것과 여기저기 탁자를 마련해 음식을 내려놓고 먹을 수 있게 한 게 보기 좋다”고 말했다.

야시장 방문객이 늘자, 기존 상인들이 호떡·전통차·떡볶이 등을 내놓고 파는 곳도 생겼다. 한 의류가게 주인은 “파는 옷에 음식 냄새가 밸까 걱정도 되지만, 시장이 활력을 찾으려면 서로 협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락야시장은 12월 안에 새로운 음식 매대 12개를 더 배치해, 모두 30개의 매대로 규모 있는 야시장을 펼치게 된다.

천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천안 여행 팁>

△천안크리스마스축제: 천안역 앞 원도심 ‘명동거리’ 일대에서 12월30일까지 ‘제2회 천안세계크리스마스축제’가 열린다. 지역 청년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사진 전시, 공연, 캐럴 경연대회 등이 진행된다. 조명 조형물이 설치된 골목에서는 매일 밤 다트·제기차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먹을 곳: 천안역전시장 주변에 ‘석산장’ 등 돼지갈비 숯불구이를 내는 집들이 많다. 역전시장 골목 ‘장모님 삼계반탕’의 반계탕, 문성파출소 앞 ‘육교식당’의 백반, ‘개성식당’의 생선구이 등. 명동거리에는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닭발요리 주점 ‘닭발장수 김철수’, 다양한 꽃차를 내는 찻집 ‘꽃처럼’도 있다. 중앙시장 ‘쪽문만두’는 오전 10시30분~오후 6시까지 영업.

△여행 문의: 천안시청 1577-3900, 천안역관광안내소 (041)521-2038, 아트큐브136 (041)621-9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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