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담배공장이 문화예술 보물창고로 마을을 찾아서

청주시, 쇠락한 원도심에 문화예술 거점 마련
옛 연초제조창 ‘문화적 도시재생’ 본보기로
담뱃잎 보관창고에선 연일 공연·전시 행사
요리·목공·가죽공예 등 체험시설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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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옛 연초제조창 안 동부창고 34동의 앞모습. 내부는 시민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체험 공간으로 새단장됐다.

요즘 전국적으로 새롭게 조명받는 문화유산 중에 각 분야의 근현대 건축물들이 있다. 도시 확장과 재개발로 하나둘 사라져가던 근대 유산들이 그 가치와 역사성을 인정받으며 온전히 보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건축물들을 도심 속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며 ‘문화도시 재생’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늘고 있다. 거대한 옛 담배공장과 창고 건물을 문화예술의 향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도시 충북 청주를 찾았다.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내덕칠거리 옆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빛바래가는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우암산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다. 1946년 문을 연 담배공장, 옛 청주연초제조창이다. 2004년 가동을 멈추기까지, 2000여명의 인력이 연간 100억개비의 담배를 생산했던 곳이다. 13만㎡ 터에 연초제조창 본관 건물과 담배 원료 창고, 7개 동의 담뱃잎 보관 창고(동부창고) 등이 남아 있다.

동부창고는 11개 동이 있었으나, 현재 7개 동만 남아 있다.
동부창고는 11개 동이 있었으나, 현재 7개 동만 남아 있다.

담뱃잎 보관창고로 쓰였던 동부창고의 내부.
담뱃잎 보관창고로 쓰였던 동부창고의 내부.

공장 폐쇄 뒤 삭막한 모습으로 방치돼 있던 이곳이 최근 전국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문화예술 향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토부, 지자체,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문화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이다. 한때 일부 창고를 헐고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예술인·주민들의 반대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청주시는 이 터를 매입해, 도심 속의 거대한 ‘보물창고’를 확보하게 됐다. 문화예술인의 활동 거점이자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예술 작품을 만나고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 발전소’를 마련한 셈이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 위상이 드러난다.

청주첨단산업단지(옛 담배원료창고) 1층의 북 카페.
청주첨단산업단지(옛 담배원료창고) 1층의 북 카페.

바닥 면적이 축구장 2~3개 크기의 5층짜리 건물인 옛 연초제조창 본관은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굵직한 국내·국제 예술 행사가 개최되는 청주 문화예술의 핵심 공간으로 떠올랐다. 연간 60일 정도 개방돼, 해마다 굵직한 국내외 공연·전시·축제들이 벌어진다. 세계 50개국의 문화예술기획자 500여명이 참가한 세계문화대회도 이곳에서 열렸고, 청주의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2015년)을 기념해 해마다 펼치는 ‘한·중·일 젓가락페스티벌’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옛 담배원료창고) 안 가죽공예 동아리 작업실.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옛 담배원료창고) 안 가죽공예 동아리 작업실.

옛 담배원료창고(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에는 70여개에 이르는 문화 관련 기업들이 둥지를 틀었고, 시민이 참여하는 20여개 분야의 동아리들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공연·전시 시설과 카페 등이 들어선 동부창고에서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예술단체들이 벌이는 행사와 시민들 스스로 만들고 참여해 펼치는 동아리 활동이 벌어진다. 예술인들의 창작·전시·공연 공간이면서 시민들의 문화 놀이터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1월30일 동부창고 3개 동(34·35·36동)에서는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고3 끝에 낙이 온다!’ 축제 첫날 행사가 벌어졌다.

수능 수험생 대상 행사 ‘고3 끝에 낙이 온다’ 행사가 열린 동부창고 34동 다목적홀.
수능 수험생 대상 행사 ‘고3 끝에 낙이 온다’ 행사가 열린 동부창고 34동 다목적홀.

강의실·전시실 등이 배치돼 시민 문화교류 거점 구실을 하는 34동의 다목적홀에서 천연 비누·립밤을 만들어보는 ‘나의 스무살 레시피’가 열렸다. 생활문화센터가 들어선 36동 빛내림홀에서는 노래와 힙합·댄스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예술 연습 공간인 35동의 대연습실에선 청주예술오페라단의 오페라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담배공장에서 예술공장으로, 근대화 시기 청주의 산업 중심지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는 현장이다. 동부창고의 요리·공예·목공 등 체험시설의 장비들은 일반인·학생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2~3시간 이용에 5000~1만원이다.

동부창고 34동에서 수능 수험생을 대상으로 열린 ‘나의 스무살 레시피’.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립밤, 양초 등을 만들고 있다.
동부창고 34동에서 수능 수험생을 대상으로 열린 ‘나의 스무살 레시피’.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립밤, 양초 등을 만들고 있다.

재단 문화재생팀 박종명 연구원은 “현재 운영 중인 동부창고 3개 동의 각 공간과 시설은 매달 80% 이상이 예약될 정도로 이용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나머지 4개 동의 창고는 영화·드라마 촬영장, 국제 바이크쇼 공연장 등으로 이용된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쓰이는 소품들을 보관한 38동의 한쪽 공간이 흥미롭다.

유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한 널찍한 공간에 보이는 건 오직 비둘기들과 날리는 깃털, 이들이 대를 이어 싸놓은 똥이다. 연초제조창 가동 중단 이후 방치된 기간 동안, 공장과 창고의 주인은 비둘기 떼를 비롯한 새들이었다고 한다. 새들의 보금자리를 보존해 ‘사람과 새의 공존’을 상징하는 ‘전시장’으로 꾸민 것이다.

12월9일부터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8시, 동부창고 일대에서는 ‘동부창고 스타일 마켓’이 열린다.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의 물건(9일), 그래픽디자이너들이 만든 다양한 상품(16일), 성탄절 분위기를 돋워주는 소품(23일) 등을 만나는 시장이다. 간식을 파는 푸드트럭들과 마카롱·쿠키 등을 파는 디저트 마켓도 선보인다.

동부창고 7개 동 가운데 4개 동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동부창고 7개 동 가운데 4개 동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김호일 사무총장은 “담배공장과 창고들은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이 탐내고 부러워하는 청주의 ‘보물창고’이면서 우리나라의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이라며 “조만간 명실공히 국내 최대,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기지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옛 연초제조창 터 곳곳에선 공원·주차장·야외전시장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9년 개관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수장고) 건립 공사도 벌어지고 있다. 모든 시설이 문을 여는 2019년 말이면 청주는 말 그대로,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향유하는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청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청주 여행 팁

옛 도심 볼거리/청주의 옛 도심(원도심)은 무심천 동쪽 성안동·중앙동 일대다. 중앙공원 안팎에 망선루(유형문화재),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등 조선시대 이전 유적들이 모여 있고, 충북도청 뒤 상당공원 주변에는 근대 유적들이 많다. 충북도청 본관(1937년), 충북산업장려관(1936년), 청주문화관으로 단장해 개방한 충북도지사 옛 관사(1939년) 등 등록문화재들을 걸어서 이동하며 둘러볼 수 있다.

청주문화관으로 꾸며 개방한 옛 충북도지사 관사.
청주문화관으로 꾸며 개방한 옛 충북도지사 관사.

청주 성공회 성당.
청주 성공회 성당.

1935년 지어진 한식·양식 혼합 건축물 성공회 성당(유형문화재)도 가까이 있다. 삼일공원 쪽으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벽화마을로 이름난 수암골로 갈 수 있다.

먹을 곳/옛 연초제조창 앞 ‘청천순대’와 ‘순정순대’의 야채순대·곱창전골, 안덕벌로 49번길의 한식당 ‘꽃이 피는…’의 보쌈정식·순두부정식·짜글이, 무심동로 390번길 ‘서문해장국’의 해장국, 수암골 ‘영광이네’의 우동 등.

묵을 곳/베니키아 청주나무호텔, 갤러리관광호텔, 리호관광호텔, 와이관광호텔, 뉴베라관광호텔 등 관광호텔이 여러 곳 있다.

여행 문의/청주시 관광과 (043)201-2094, 충북종합관광안내소 (043)233-8430, 옛 연초제조창 안 동부창고 (043)715-6861.

청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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