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벗 삼아 황태 수백만 마리 ‘일광욕’ 길따라 삶따라

평창 대관령 눈마을 횡계리
서너 달 얼고 녹기 되풀이, 포슬포슬 노릇노릇
쫙쫙 찢어지고 약효 뛰어난 ‘더덕북어’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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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해낼 꿈 2018 평창동계올림픽!’
‘2011년 7월, 우리는 승리합니다.’
‘세계가 예스 할 때까지, 우리의 꿈은 계속됩니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옛 도암면) 용평·알펜시아리조트 들머리 횡계리. 거리마다 2018년 겨울올림픽을 향한 주민들 염원을 담은 펼침막들이 눈보라 속에 펄럭인다. 폭설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생활이 불편해져도 주민들은 오히려 흐뭇한 표정들이다.
“아이오시(IOC) 실사단 방한(2.14~20)에 딱 맞춰 폭설이 내려주니 좋지요. 겨울올림픽 분위기도 살고, 눈 고장답잖아요.”(대관령눈꽃축제위원회 백용근 본부장)
 

 
바닷가 평지에서 말리면 북어, 산골 덕장에서 말리면 황태
 
겨울올림픽 유치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60~70㎝의 적설량을 기록한 횡계리에선 ‘눈 마을’다운 풍경들이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목초지와 낙엽송 숲이 그려내는 설경과 들판마다 깔린 황태덕장들이다. 눈보라는 거리에 깔린 수많은 펼침막들을 펄럭이게 하고 대관령 일대의 산과 들판, 수백만 마리 명태들이 내걸린 덕장을 덮고 또 덮었다. 폭설을 뚫고 달려와 눈 구경을 하는 관광객도, 설경을 찍기 위해 기다려온 사진가들도, 여기저기 사진기를 들이대며 이리 찍고 저리 박고 난리들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눈 마을’ 횡계리. 인제군 용대리와 함께 이름난 ‘황태 마을’이기도 하다. 술꾼들의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 재료, 황태가 만들어지는 마을이다. 명태를 바닷가 평지에서 빨리 말리면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북어가 되지만, 한겨울 산골 덕장에서 눈보라 속에 3~4개월 얼고 녹기를 되풀이하면, 포슬포슬하고 노릇노릇한 황태로 거듭나게 된다. 잘 익은 황태는 더덕처럼 부드럽게 찢어지고 약효도 뛰어나다 하여 ‘더덕북어’로도 일컬어진다.

황태가 만들어지려면 일교차 큰 날씨 속에, 도열한 명태들을 번갈아 어루만져주는 매서운 바람과 강한 햇빛이 필요하다.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폭신한 육질의 황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관령 자락 횡계리는 해발 800m의 산간마을로, 일교차가 크고 눈이 많아 황태 생산의 적지로 꼽힌다. 황태의 고향은 본디 함경도 동해안. 50여년 전 피난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들에 의해 황태덕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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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으로 들여오는 러시아산 명태가 대부분
 
해마다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통나무로 엮어 세운 덕장에 명태를 내거는 ‘상덕’ 작업이 벌어진다. 횡계리에선, 여름철 주문진에서 할복(명태 배를 갈라 내장·알 등을 분리하는 일)·세척 작업을 거쳐 냉동시켜 뒀던 명태를 가져와 덕장에 건다(인제 용대리는 고성·속초 등에서 작업을 해온다). 덕장에 거는 명태는 100% 수입산이다. 냉동으로 들여오는 러시아산 명태가 대부분이다. 동해안(남한) 명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덕장은 보통 2층으로 만들어지는데, 한 줄(덕장 하나)이 20~30칸으로 이뤄지고, 한 칸엔 10개의 ‘고랑대’(명태를 걸기 위해 가로지른 나무)가 걸린다. 이 ‘고랑대’에 두 마리씩 꿴 명태를 건다.
 
 
황태덕장 일을 18년째 해왔다는 횡계3리 황태덕장 관리인 박영숙(70)씨는 “명태 담아오는 상자마다 마릿수가 달라 덕장에 몇마리 걸렸는지는 정확히 셀 방법이 없다”며 “한 상자에 보통 40~50마리가 들어가는데, 덕장 1·2층 한 칸(20고랑대)에 40상자 안팎이 걸린다”고 말했다. 대충 따져보니, 모두 1000여칸이라는 이 덕장에 걸린 명태만 최소 160만마리를 헤아린다. 횡계리 주변엔 규모 큰 덕장만 7~8곳 깔려 있다. 한겨울 눈 덮인 덕장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이색 볼거리로 다가온다.

 
눈 바다에 깔린 황태덕장 주변의 눈더미를 치우며 박씨가 말했다. “밤낮으로 도둑놈 지키는 것도 일이지만, 노상 눈 치우는 게 일이래요. 이래 눈이 오면요, 고랑대를 이래이래 흔들어 털어줘야 돼요. 눈이 녹아 아가리로 들어가 놓면 명태가 더디 말래요.”
 
 
명태는 덕장에서 “4월 중순까지 한 늑달 이빠이 말라야” 제대로 된 황태가 된다. 다 마른 명태는 싸리나무(싸리나무도 요즘은 중국에서 수입해서 쓴다!)로 10~20마리씩 머리를 꿰는 ‘관태’ 작업을 거쳐 통황태가 되거나, 둘로 갈라 기계로 두드려 포장하는 황태포, 또는 잘게 찢어 포장하는 황태채가 된다. 덕장은 5월 철거돼, 감자·상추·양배추 등을 재배하는 밭으로 바뀌었다가, 11월 다시 덕장이 들어서게 된다. 황태마을답게 횡계리 일대의 모든 식당들에서 황태요리를 낸다. 황태전문 식당 말고도, 불고기집도 횟집도 순대집도 보쌈집도,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는 기본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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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 이용해 즐길 수 있는 모든 행사 ‘눈꽃축제’
 
한겨울 횡계리 일대가 눈의 고장임을 실감할 수 있는 행사로, 벌써 19회째를 맞고 있는 눈꽃축제(2월20일까지)가 있다. 올해는 축제 이름이 좀 길다. ‘평창의 꿈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2011 대관령눈꽃축제’다. 횡계리 차항천과 송천 일대 행사장에서 눈과 얼음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모든 행사가 펼쳐진다.
 
 
쌓인 눈을 이용해 초대형 눈조각작품을 만들고, 관람객 대상 눈썰매·얼음썰매·설피·봅슬레이 타기, 이글루 체험 행사를 벌인다. 겨울올림픽 유치 염원을 담은 2018개 눈사람 만들기와 전통 민속놀이인 황병산 사냥놀이, 국제 알몸 마라톤대회, 대관령 눈꽃산행도 진행된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눈과 얼음에서 속도를 즐기는 겨울 레포츠 체험이다. 차항천에서 스노래프팅, 스노오토바이, 눈꽃열차 체험이 벌어지고, 송천에선 스노카트 체험과 눈길 자동차 경주대회, 눈길 세렉스 화물차 경주대회가 열린다.

설경 속에서 하루를  즐길 만한 행사는 또 있다. 주변 산골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갖가지 민속놀이를 체험하며 한겨울 산골마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행사를 벌인다. 차항2리 ‘대관령눈꽃마을’에선 소코뚜레 만들기, 말타기, 활쏘기, 눈썰매 타기, 스노카트 타기 등과 다양한 전통민속놀이를, 횡계2리 ‘의야지 바람마을’에선 튜브 봅슬레이 타기, 눈썰매 타기, 양 먹이 주기 등을 할 수 있다.
 
 
차항2리 눈꽃마을 대표 전두하씨는 “요즘 구제역으로 방문객은 대폭 줄어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지금 찾아오시면 눈은 많이 쌓여 있고  방문객은 적어 한적한 가운데 겨울 산골 정취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눈꽃 트레킹으로 이름난 대관령 선자령, 설경이 아름다운 양떼목장이 가까운 곳에 있고, 오대산 자락 월정사, 상원사 등도 횡계리에서 멀지 않다.
  
평창/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횡계나들목에서 나가 우회전하면 용평스키장 들머리 횡계리다. 횡계나들목 나가자마자 좌우에서 대규모 황태덕장을 볼 수 있고, 횡계리 도심 지나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쪽(양떼목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황태덕장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차항2리는 횡계나들목에서 나가 좌회전한 뒤 다시 우회전해 들어간다. 눈꽃축제 행사장은 횡계리 주변이다.

⊙ 먹을 곳| 횡계리 거리에 황태회관(033-335-5795)·황태덕장(033-335-5942) 등 황태요리 전문식당이 여러 곳 있다. 황태해장국·황태정식·황태구이·황태찜·황태불고기 등을 낸다. 오징어에 삼겹살을 곁들인 오삼불고기를 내는 집도 즐비하다. 막국수 등 메밀요리 전문점도 있다. 대관령 메밀뜰(033-335-5121).

⊙ 묵을 곳| 용평리조트 외에 횡계리에 모텔급인 대관령호텔(4만~5만원)과 여관 2곳이 있다.

대관령눈꽃축제위원회 (033)336-6112, 차항2리 눈꽃마을 (033)333-3301, 횡계2리 의야지 바람마을 (033)336-9812.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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