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m 낮으나 높은 산, 한강 끝 최고 일몰 걷고 싶은 숲길

파주시 교하 심학산
광활한 들판에 홀로 볼록, 철마다 눈부신 풍경
한눈에 강줄기부터 강화도·개성까지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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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항에 해당되는 분들, 심학산에 올라볼 만하다. 산꼭대기에 오르고는 싶은데 늘 시간에 쫓기시는 분, 평소 숨이 차고 기력이 달려 높은 산을 기피하시는 분, 산꼭대기는 좋아하지만 등산이라면 진저리를 치시는 분, 손쉽게 힘 안 들이고 요령껏 광활한 세상을 한번 굽어보고 싶으신 분, 한자리에서 한눈에 한강 줄기를 250도 가량 휘둘러보고 싶으신 분, 정자에 앉아 한강부터 강화도·개성 땅까지 빤히 바라보고 싶으신 분, 저무는 한해를 가까운 산에서 마무리하고 싶으신 분….
 

느릿느릿 20~30분 오르면 바로 산꼭대기


산이 높다고 해서 다 전망이 좋은 건 아니다. 산이 어디에 솟았나에 따라 달라진다. 산 같지도 않은 산인데, 빼어난 전망대 구실을 하는 산이 있다. 파주시 교하읍의 심학산이 그렇다. 해발 194m. 파주출판단지 뒷산이다. 파주·일산 주민들이 아끼는 공원이자 운동·산책 공간이다. 이 낮고 작은 산이 놀라울 만큼 멋진 전망을 선사한다. 한강 하류 최고·최적의 전망대로 꼽을 만하다. 교하읍 일대의 광활한 들판 끄트머리에 홀로, 볼록 솟아 있기 때문이다. 20~30분만 걸어 오르면 산꼭대기다.

 
한강이 서울을 벗어나 서북쪽으로 흐르다 정북 방향으로 몸을 트는 곳, 북에서 흘러온 임진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에 심학산이 솟아 있다. 심학산은 심악산으로 불렸는데, 영조 때 궁궐에서 기르다 날아간 학을 이 산에서 찾으면서 심학산(尋鶴山)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본디 홍수 때 한강이 범람해 들어오는 물을 막아준다 해서 ‘수막’으로 불린 점으로 미뤄 ‘수막’이 ‘심악’을 거쳐 ‘심학’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심학산 줄기는 교하읍 동패리에서 출판단지 쪽으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정상은 한강 쪽(서쪽) 끝부분이다. 등산로 입구는 동패리 교하배수지, 서패리 꽃마을, 약천사, 배밭 등 대여섯 곳이 있는데, 동서로 능선을 따라 오르는 동패리 배수지 쪽 말고는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이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800m 안팎 거리다. 배수지 쪽에서 정상까지는 2.9㎞로, 완만하고 널찍한 산책로가 나 있어 주민들이 애용하는 코스다. 어느 코스든 마지막 200m가량만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타고 오르면 운동시설과 팔각정 등이 자리잡은 정상에 이른다. 교하배수지, 약천사, 서패리 꽃마을 쪽 등산로 입구엔 주차장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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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둘레길 곳곳 쉼터와 체육시설, 정자
 
산행로가 짧고 다소 싱거운데, 지난해 파주시에서 길쭉한 산줄기 둘레를 따라 산자락을 도는 6.8㎞ 길이의 둘레길을 만들었다. 2시간  가량이면 한바퀴 돌 수 있다. 둘레길에는 곳곳에 쉼터와 체육시설·정자 등이 마련돼 있다. 봄엔 심학산 돌곶이마을 꽃축제가 열리고 여름·가을이면 활엽수 숲이 울창하며 겨울엔 설경이 눈부셔, 사철 주민들이 찾아와 둘레길도 걷고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전망도 즐긴다. 겨울 심학산은 다소 썰렁한 분위기지만, 오르내리면서 주변 전망을 감상하기엔 더 좋다.

 
정상 팔각정에 오르면 유장하게 흘러가는 한강 하류 물줄기 풍경에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득한 서울 쪽 상류에서부터 일산대교와 김포 들판,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거쳐 임진강 하류와 만나는 합수지점까지 고개를 한참 돌려야 한다. 쾌청하지 않은 날에도 물길 너머 북한 개성 땅의 건물들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엔 강화도 쪽 산들과 영종대교, 그리고 개성 쪽 송악산까지 선명히 눈에 잡힌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눈을 뒤로 돌리면 일산과 교하 새도시 일대의 거대한 아파트 숲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그 너머로 흰 눈에 덮인 북한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솟아 있다.

 
2층 팔각정의 여덟 기둥은 전후좌우로 펼쳐진 풍경을 여섯 화면으로 나눠준다. 가운데 서서 한바퀴 맴을 돌면 거칠 것 없이 전개되는 각 화면들의 풍경화가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그 각각의 화면 위쪽에 그 화면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사진과 풍경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사진에 산·지명 등을 적어 놓아 지역과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정자 바닥에 설치한 동판엔 심학산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파주 지도를 그리고, 심학산에서 주변 주요 도시들까지의 거리를 적어 놓았다. 개성이 35㎞, 인천은 42㎞, 의정부는 2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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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가 되쏘는 황홀한 빛화살, 처연한 아름다움
 
팔각정에서 만난 토박이 주민 김지영(65·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씨가 말했다. “배껴도 아주 완전히 배꼈지. 내 요기 송포국민학교 다닐 때 노상 이 산으로 소풍을 왔었는데, 허허벌판에 그냥 다 논이구 밭이지 아파트가 어딨어.” 둘러보니 아파트 숲 사이사이로 아직은 밭과 들이 남아 있는데, 새로 대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빈 들판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될 전망이다. 회색 아파트 숲이 깔리면 깔릴수록 심학산 푸른 숲은 도드라지게 빛나게 될 터다.

 
회색 아파트 숲을 조금씩 지우며 하나하나 불야성으로 바꿔나가는 땅거미가 찾아오면 한강물 한 자락도 점차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간다. 일주일에 한번씩 심학산에 오른다는 교하 주민 현의순(49)씨는 “우린 연말에 해 넘어가는 거 보겠다고 딴 데 갈 일이 없다”고 말했다. “어지간히 흐린 날씨라도 한강 건너편 김포 쪽 산줄기로 지는 멋있는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자랑이다.

 
해가 강물을 가로질러 산 너머로 지므로 꽤 괜찮은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산 위에 걸리기 직전이 가장 화려한 풍경화를 보여준다. 해를 담은 잔잔한 한강 물줄기가 오렌지빛에서 진홍색으로 변하며 정자 위까지 황홀한 빛화살을 쏘아대기 때문이다.

 
5월 꽃축제가 열리는 서패리 돌곶이마을 산자락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다. 옛날 심학산에 살던 장사가 이웃 고봉산(고양시 일산 쪽)에 있던 돌들을 날라다 쌓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약천사 쪽 등산로 입구엔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 1930년대 세워진 약천사라는 절 이름도 이 샘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절에서 볼만한 것이 높이가 13m나 되는 거대한 청동 좌불상이다. 2008년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만들었다는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려주려는 듯, 길이 1m는 돼 보이는 두툼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오가는 이들을 내려다본다.

 
심학산이 비록 낮은 산이긴 하나 들판 한가운데 솟은 까닭에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매섭다. 두꺼운 외투와 모자 차림이 좋다. 눈이 내리면, 가파른 계단길이 매우 위험해진다. 아이젠 착용이 필수다. 배밭 쪽이나 약천사 쪽 하산길이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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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 가는 길|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파주 쪽으로 간다. 일산새도시 지나 장월나들목(파주출판단지)에서 나가 출판단지 통해 심학산 등산로 입구로 간다. 서패리 돌곶이꽃마을, 약천사, 동패리 교하배수지 입구의 주차장을 이용한다. 배밭 쪽 등산로 입구엔 공용주차장이 없어 식당 주차장 등을 이용해야 한다. 어느 정도 걸으며 산행을 하려면 동패리 교하배수지 쪽 입구로 가는 게 좋다. 둘레길은 어느 코스를 택하든 중간에 만나게 된다. 둘레길은 오르내림이 적은 완만한 흙길이다.

⊙ 먹을 곳| 동패리 약천사 입구 심학초등학교 옆 산뜨락곤드레(031-947-5225)의 곤드레나물밥과 흑임자·서리태칼국수, 서패리 배밭 등산로 입구 오솔길(031-945-1555)의 산채보리밥과 콩비지백반, 동패리 약천사 앞 심학골옻닭(031-943-2011)의 토종닭백숙, 퓨전 한정식집 숲속의정원(031-942-8686).

⊙ 주변 볼거리| 파주출판단지의 각 출판사들이 마련한 매장 겸 도서관들에 들러볼 만하다. 싼값에 자사 책들을 팔며 어린이 대상 체험행사를 벌이는 곳도 많다. 문의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주말 휴무) (031)955-0050. 출판단지 안 응칠교 다리 옆엔 단지내의 유일한 한옥이 있다. 정읍 산외면 오공리에서 옮겨와 복원한 조선 후기 한옥의 사랑채다. 교하읍 다율리 다율방과후학교(옛 교하중학교) 뒷산(다율리·당하리)에서 선사 유적인 고인돌 20여기를 볼 수 있다. 남방식(바둑판식·덮개식)·북방식(탁자식)이 섞여 있는데 원형이 훼손된 것이 많다. 고인돌과 옛 무덤, 군사시설이 뒤섞여 흩어져 있다. 고인돌산림욕장 안이다. 오두산통일전망대, 헤이리문화예술마을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 여행 문의| 파주시청 문화체육과 관광팀 (031)940-4361, 공원과 (031)940-4611.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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