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도 낙화암이 있고 춘향이가 있다 길따라 삶따라

1200살 은행나무엔 영험한 전설 주렁주렁
탄광노동자 애환 서린 요리골목엔 예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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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유배지 영월. 물길로 가로막힌 청령포, 영월관아 관풍헌과 자규루, 능인 장릉 등 곳곳에 단종의 넋이 서려 있다. ‘삼족멸문지화(三族滅門之禍)’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거둬 몰래 장례를 지낸 엄흥도로 대표되는 영월 엄씨의 고장이기도 하다.

 
단종 임금의 고장, 청정 동강의 고장, 옛 탄광산업도시 등으로 알려진 강원 영월의 읍내 거리를 걸으며 숨은 볼거리들을 뒤적여 본다. 영월군청 앞 사진박물관에서 시작해 동강변 길을 걸어 금강정·낙화암을 만나고, 옛 영월관아 거쳐 아침시장까지 걷는다. 장릉·청령포 등 읍내에서 다소 먼 거리인 단종 관련 유적들은 따로 둘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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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형상화한 부드러운 대리석 조각들 볼만
 
동강사진박물관(2005년 개관)은 카메라와 사진의 역사,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사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사진박물관이다. 1950~80년대 우리 서민들 삶의 표정들을 볼 수 있는 ‘한국을 바라본 시선’(2층 기획전시실)이 인상적이다. 매년 여름 ‘동강국제사진제’도 연다. 입장료 1000원. 사진박물관 뒤쪽 나무계단을 내려가 인공폭포 거쳐 군청사거리로 나선다. 폭포 물줄기 뒤에 전구들을 설치해, 밤이면 여러 별자리 모습을 보여준다지만 겨울철엔 가동하지 않는다.

 
길 건너 소공원에 열녀각·효자각 4채가 모여 있다. 본디 인공폭포 쪽 길옆에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옮겨 세웠다. 네거리 주변은 조각 작품들이 빼곡한 소공원이다. 여성을 형상화한 부드러운 대리석 조각들이 볼만하다. 이 중에 가장 크고 뜨악한 돌덩어리가 길 옆에 서 있으니, 바로 ‘바르게 살자’ 빗돌이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열차 카페를 지나 천연기념물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를 만나러 간다. 주민들이 동양 최대·최고(最古)의 은행나무라고 자랑하는 나무다. 군청 문화해설사 김은영씨는 “중국(당나라)에서 들어와 정착한 영월 엄씨 시조 엄임의가 심은 1200년 된 나무”라며 “영월 읍내는 지금도 한집 건너 엄씨 집”이라고 말했다.

둘레 14m가 넘는 밑동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들이 1000년 세상사를 겪느라 갈라지고 부러진 데가 많다.
“은행이 아주 말도 못하게 열려. 다들 눈깔이만 벌어지면(아침에 눈만 떠지면) 일어나 나와 싹 주워가 버려요. 몇 십 리 밖에서두 이걸 주우러 온다니까.”(나무 옆에서 만난 할머니·80)
토박이 주민 정승태(61)씨는 이 은행나무가 “아주 영험한 나무”라고 주장했다. “저 높은 가지에서 은행 털다 떨어진 사람이 수두룩한데, 죽은 사람도 없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어요.” 일제의 강제합병과 한국전쟁 등을 앞두고 큰 가지가 부러져, 변고를 미리 알렸다고도 한다. 해마다 10월 주민들은 이 나무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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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문화 곳곳에 단종의 흔적
 
은행나무 옆엔 몇년 전까지 ‘대장개샘’이란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겨울겐 따뜻해 빨래해도 손이 안 시리고, 여름엔 손을 못 담글 정도로 차가운” 샘이었다. “동지섣달에도 물에 빨랫감을 넣으면 (물이 따뜻해서) 치대지 않아도 빨아질 정도”였던 이 우물은, 최근 ‘스포츠 파크’ 건설 공사가 벌어지면서 메워지고 말았다. 대장개샘은 동강변에 있던 또다른 샘, 한울샘(하늘샘)과 함께 영월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다. 한울샘도 20년전 강폭을 넓혀 제방을 쌓으면서 메워졌다.

 
영월선관위 앞길을 걸어 동강변 길로 올라선다. 주요 행사들이 열리는 널찍한 둔치 운동장 너머로, 최근 새로 놓은 사장교 동강대교가 바라다보인다. 하류 쪽 철교 너머는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다. 영월로 유배돼 비운의 삶을 마감한 단종의 시신을, 당시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들인 장소라고 한다.

단종 임금의 존재는 영월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에 깊숙이 스며 있다. 동강대교 한가운데 우뚝 선 ‘Y자’ 기둥은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의 600년 된 소나무 관음송의 가지를 상징하고, 기둥에 가로지른 여섯 개의 파이프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을 뜻한다. 기둥을 지탱하는 12줄의 쇠밧줄은 사육신·생육신을 나타낸다. 영월군민의 날(11월2일)도 숙종 때 신규가 ‘단종 복위 상소’를 올린 날로 정했다.

족대(반두)로 물고기 잡는 아이 등 조각상들을 보고, 동강대교 앞에서 굴다리 밑을 지나 7년째 옥수수·쌀 등을 튀겨온 영월강냉이집을 거쳐 영월자활센터로 간다. 옛 목욕탕 건물을 개조해 들어선 자활센터는 어려운 이웃들이 모여 친환경농산물도 팔고, 커피·전통차도 파는 ‘따뜻한 공간’이다. 야외 탁자에 앉아 뜨거운 차 한잔 하며 쉬어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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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출근했다가 오후 3시면 퇴근하는 구렁이
 
 길 건너 영월성당 길로 올라 한굽이 돌면 푸르디푸른 동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강변 산책로가 나타난다. 영월군수·부사의 선정비·영세불망비 무리와 정사종(단종 유배 때 군위현감 직을 버리고 영월로 들어온 충신) 충의비, 항일의병장 정대억 순국비, 김삿갓 시비 등이 차례로 금강정 옆까지 이어진다. ‘구렁이 출몰 장소’라는 이색 안내판도 만난다.

“삼년 전엔가 한 두어 달 동안, 크다란 구레이가 아침 아홉시에 나타나 나무에 올라가 있다가 오후 서너시면 사라지는 거예요. 인제 여기선 안 나오고, 밤에 낚시하다 보면 이레 강을 건네다니는 게 보여요.”(주민 이덕춘씨·72)

 
금강정은 세종 때 처음 지은 뒤 여러 차례 중수한, 전망이 빼어난 정자다. 정자 앞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깊고도 푸른 동강 물줄기가 참 아름답다. 단종이 승하한 뒤, 따르던 시종과 시녀들이 주변 절벽에서 강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금강정 뒤에 시녀·시종들의 넋을 모신 사당 민충사가 있다. 좀 더 가면 이들을 기리는 충절비와 몸을 던진 절벽을 가리키는 낙화암 빗돌을 볼 수 있다.

 
강쪽 절벽엔 ‘낙화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 글씨를 보려면 금강정 쪽에서 이어지는 나무난간이 끝나는 지점 옆에서, 물가 쪽으로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가야 한다. 미끄럽고 위험한 절벽길이어서 내려가지 않는 게 좋다. 이 좁은 비탈길은 식수가 모자라던 시절, 주민들이 동강 물을 길어 나를 때 이용하던 길이라고 한다. 

 
충절비·낙화암비 가기 전에 또다른 빗돌 하나가 서 있다. 다른 이유로 이 절벽에서 몸을 던진 이를 기려 세운, ‘월기 경춘 순절지처’ 빗돌이다. 18세기 영월부사 이만회의 아들 이수학과 사귀던 16살 난 고경춘이란 기생이, 뒤에 부임한 부사 신광수의 수청을 거절해 핍박을 받자, 낙화암 절벽에 몸을 던져 절개를 지켰다는 실제 이야기다. 경춘에게 수청들기를 강요했던 영월부사 신광수는 경춘이 투신하고 두달 뒤  “지난날 저지른 속되고 모진 잘못”을 이유로 파면된다(<승정원일기> 1773년 12월). 비극으로 끝나는 영월판 춘향전인데, 실제 일어났던 일이어서 빗돌 앞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진하다. 빗돌은 투신 20년 뒤 평창 부사가 글을 짓고 영월 부사가 글씨를 써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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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이름은 매죽루였으난 자규루가 된 까닭
 
강변길을 돌아나와 한국방송 영월중계소 정문에 붙은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 팻말과 한국전쟁 전몰군경 충혼탑, 구한말 김상태 의병장 충절비를 보고 영월 향교로 간다. 문이 잠겼지만 옆쪽 관리인 집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성전 옆 은행나무의 은행 냄새가 향교 안팎에 진동한다.

 
관리인 집 아주머니가 은행나무를 가리켰다. “하이구, 저것 줌 봐유. 은행이 을마나 마이 달렸는지, 골이 아파, 골이.” 은행나무 가지가 온통 노란색이다. 은행잎이 아니다. 은행잎은 이미 다 지고, 샛노란 은행알들만 나무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절도로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나무 밑은 더 가관이다. 은행알들이 쌓이다시피 깔려 빈틈없이 노란색이다.

향교골 입구, 줄기가 잘린 옛 성황목(느릅나무)을 보며 가고파수퍼 앞에서 오른쪽 골목길을 올라 영월 엄씨 시조묘 쪽으로 걷는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맞은편에 시조묘 출입문이 있으나 잠겨 있다. 묘소 너머 언덕 밑엔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었다. “낮 열두시 사이렌이 울리면 주민들은 일제히 이곳을 향해 머리를 숙여야 했다. 당시 신사로 오르던 돌계단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향토사학자 엄흥용씨)

쇠퇴한 중앙시장(옛 낮시장) 입구 지나, 객사 관풍헌과 자규루가 남아 있는 옛 영월관아의 중심지로 간다. 관풍헌은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됐다가 홍수로 두 달 만에 옮겨와 머물던 객사 건물이다. 세 건물이 잇닿은 객사 한가운데엔 소유주가 절(보덕사)임을 알리는, ‘약사전’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오른쪽 관풍헌 현판이 걸린 곳이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한 장소다. 경내 오른쪽엔 2층 누각 자규루가 있다. 본디 이름이 매죽루였으나, 단종이 이 누에 올라 자신의 처지를 소쩍새(자규)에 비유한 자규시와 자규사를 읊은 뒤 자규루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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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 아파트 벽에 안성기 박중훈 얼굴이
 
청록다방(라디오스타 촬영지) 쪽으로 길 건너, 일제강점기부터 광산업이 절정을 이루던 70년대까지 음식점·술집들이 장사진을 쳤다는 ‘요리골목’으로 들어선다. 탄광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골목이다. 이들이 먹고 마시면서, “요릿집·색싯집들이 돈을 끌어모으던” 골목이었다. 봉래관(현 강산회관 자리)과 서울관이 이름 높았다고 한다. 요리골목은 최근 ‘지붕없는 미술관’ 공공미술 사업 덕에, 벽화·조각으로 장식된 예술골목으로 거듭났다. 주민들이 직접 그린 접시그림을 내걸고, 식당 앞엔 평범한 식당 주인의 동상을 만들어 세웠다.

요리골목의 영월초등학교 쪽 거리는 비석거리로 불렸다. 금강정 쪽에 모아놓은 선정비들 중 일부가 이 골목에 있었다. 영월초등학교 앞 건너편 주상복합아파트 벽엔 영월에서 촬영된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 안성기·박중훈 얼굴이 그려져 있다. 서부시장 옆 이 아파트 자리엔 조선시대 조곡창고인 읍창이 있었다고 한다. 시장 들머리 떡볶이집엔 초등생들이 바글거리고, 닭강정 집엔 어르신들이 줄을 서 있다. 땅콩가루를 입힌 닭강정 튀김으로 유명한 일미강정집은 주민들이 “지역 행사나 계모임 때, 가족 나들이 때면 어김없이 맞춰 간다”는 집이다.

 
서부시장은 위치상 이름이고, 주민들은 아침시장으로 부르길 좋아한다. 탄광노동자들이 몰리던 시절 형성된, 읍내의 대표적인 상설시장이자 먹자골목이다. 메밀전병·메밀부침·올챙이묵(올챙이국수) 세가지 간식거리를 즉석에서 만드는 ‘메밀 부치기 집’(부침 집)들이 10여집 몰려 있다. 올챙이묵은 “아침시장에서 25년째 나무틀로 올채이묵을 눌러 온” 정선집의 고옥화(66)씨가 ‘부치기 집’들에 공급한다. 메밀전병·부침 1장 1000원, 올챙이묵 3000원. 닭발·족발·순대집도 즐비하다.

서부시장을 나서면 영월버스터미널. 큰길로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5분 거리에 출발했던 영월군청이 있다. 여기까지 5㎞를 걸었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영월 참맛은 곤드레·다슬기·보리밥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에서 나간다. 38번 국도 이용해 직진, 영월 청령포나들목에서 나간 뒤 팻말 보고 영월읍내로 간다. 시청이나 사진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부시장 앞 영월버스터미널이나 강 건너 덕포 영월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코스를 밟아도 좋다.

 
img_06.jpg⊙ 먹을거리| 읍내의 청산회관(곤드레밥·033-374-3030)과 청령포의 리버가든(곤드레국밥·033-375-8804)은 영월읍내  곤드레밥 전문식당의 쌍두마차. 영월역 앞엔 다슬기탕·다슬기비빔밥 등 다슬기 요리 전문식당들이 있다. 장릉 옆 장릉보리밥집(033-374-3986)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일부 영월 주민들은 창절서원 부근의 허름한 사랑방식당(033-374-4655·일요일 휴무)의 보리밥을 좋아한다. 점심에만 보리밥을 하고 저녁엔 오징어불고기만 판다. 읍내 상동식당(033-374-4059)은 막국수를 잘하는 집.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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