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강, 계곡까지 한걸음에 즐겨봐 길따라 삶따라

충북 괴산 산막이길과 갈은구곡·둔율 올갱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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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숲길 걸어 막다른 산속 마을을 찾아간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괴산호 물가의 마을이다. 남한강 줄기인 달천강 괴산댐 상류 지역이다. 여름휴가 때 이 지역에 들른다면, 한 지역에서 짤막한 숲길 걷기와 나룻배 타기, 달천강의 다슬기잡이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멀지 않은 곳에 괴산댐 상류의 유서 깊은 골짜기 갈은계곡 경치가 기다린다. 먼 거리 이동 없이 숲길과 강, 계곡을 두루 즐기는 1석3조 여행길이다.
 
산막이(산맥이)길부터 걸어 보자. 마을 이름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산이 가로막은 막다른 곳, 그리고 오래전 도자기를 굽던 움막이 있던 곳이란 뜻이다. 둘러보면 두 가지 뜻이 모두 맞는다. 달천강 물길과 첩첩 산줄기에 가로막힌 두메마을인데다, 산맥이마을 주변에서 자기 파편들이 무수히 발견됐기 때문이다. 7~8년 전 비포장길이 생기기 전까지 10여가구 주민들은 괴산호변 비좁은 비탈길을 따라 걸어다녀야 했다. 나무하러 갈 때도, 괴산읍내로 장 보러 갈 때도, 물가의 산길을 걸어다녔다. 지금은 3가구(굴바위 쪽에도 외지인 집 2가구가 있다)만 사는 한적한 마을이다.
 
비좁고 위험하던 이 산길을 2009년 가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숲길로 만들었다. 비탈진 오솔길 위로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쉼터도 만들고, 샘터도 마련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고 편하게 숲길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울창한 숲과 빼어난 호수 전망을 자랑하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다듬었다는 점은 아쉽다. 숲길 이름은 ‘산막이 옛길’이라 했으나, 사오랑(사오랭이)마을의 차돌백이부터 산막이마을 노수신 적소인 수월정까지 3.5㎞의 산길 중 2.3㎞가 나무판자를 깔아 만든 인공길이다. 왕복 2시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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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끝엔 세 가구만 사는 산막이마을
 
숲길 들머리, 커다란 바위 무리가 놓인 ‘고인돌 공원’(실제 고인돌은 아니다)에서 먼저 두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중간에서 이어진 참나무 ‘연리지’를 만난다. 전국의 다른 연리지·연리목들처럼 ‘사랑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하트형 나무패를 준비해 두고 방문객들이 각자의 소원을 적어 걸 수 있게 했다. 언덕 위엔 울창한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괴산호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의 숲그늘 아래, 쉴 수 있는 의자들과 그네, 엽서를 띄울 수 있는 우체통이 마련돼 있다. 소나무숲에 밧줄과 나무판자를 이어 만든 출렁다리도 있다.
 
자그마한 옛 논터에 만들었다는 연못 지나, 박쥐굴(길 오른쪽의 작은 굴)에서부터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다. 박쥐굴 주변 오른쪽 산비탈 위엔 커다란 바위절벽이 있다. 절벽 위에 매를 닮은 매바위가 있었으나, 20여년 전 벼락이 떨어져 무너지면서 물속으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숲길을 걷는 동안, 왼쪽으로 펼쳐지는 호수와 참나무류 울창한 숲이 계속된다. 두세 곳의 전망대와, 호수 쪽 허공으로 내민 ‘스릴 데크’, 쉬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샘터(앉은뱅이 샘터)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왼쪽 물가에 괴산댐이 보이고 좌에서 우로 비학산·군자산·옥녀봉·아가봉이 첩첩이 펼쳐진다.
 
주변의 학동리·외사리·사오랑마을(산막이마을 포함)·갈은(갈론)마을을 묶어, 청정 농촌체험마을 ‘비학봉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중인 강병혁 사무장은 “이곳은 살쾡이·담비·수리부엉이·구렁이·수달 등 희귀동물 서식지”라며 “가끔 나무를 건너뛰며 날아다니는 하늘다람쥐도 구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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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이 멋지긴 해도 몇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다. 산자락에 시멘트 기둥을 박아 만든 나무데크도, 연못도, 샘터도, 길에 얽힌 이야기들도 작위적인 데가 많다. 일부 시설은 살아 있는 나무가 지탱하도록 설치했고, 샘물도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어 물이 나오게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무데크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중간에 만나는 등잔봉(450m) 산행코스를 탈 수 있다. 산막이마을까지 2시간 코스다.
 
나무데크길과 숲길이 끝나고 언덕을 한 바퀴 돌아 넘으면 산막이마을에 이른다. 마을엔 세 가구가 있다. 마을 토박이인 변계식(80)·이강숙(〃) 어르신 부부와 변씨 동생 부부, 산막이휴게소를 하는 40대의 정대수씨, 세 집만 남았다. 최근 변씨 동생 부부가 병원에 다니느라 도회지에 나가 있어, 실제론 두 집뿐이다.
 
갓 스물에 횡성에서 시집왔다는 이강숙 할머니가 마을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시집오니 한 열댓집 삽디다. 물에 잠기기 전에 저 아래 물가 연하동에두 둬 집 살았구. 저 정자두 거기 있었지유. 엄청 큰 배낭구랑 대추낭구두 워낙에 많았어유. 뒷산 요 너매 피난골엔 호랑이굴이 있는데, 나두 젊을 적에 쟁반만한 시퍼런 불이 돌아댕기는 걸 봤어유.”
 
마을 주변 물길엔 본디 연하구곡이라 이름붙은, 아홉 곳의 절경이 이어져 있었다. 물길이 굽이돌며 이른바 ‘궁궁을을’(弓弓乙乙) 형세의 물돌이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1957년 괴산댐이 생기며 물에 잠기고, 탑바위·병풍바위·갓바위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산막이마을의 수월정은 조선 중기 명종 때의 문신 노수신(1515~1590)이 을사사화에 연루돼 유배와서 머물던 곳(물가에 있던 것을 옮겨 지었다)이다. 선조 때 복권돼 영의정까지 지낸 분이다.
 
마을엔 묵밭과 집터가 널렸다. 널린 빈터엔 개망초 무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잔바람에도 가녀린 몸을 뒤흔들며 방문객을 맞는다. 가장 고요하기는 나루터 소나무 그늘의 평상이다. 잠시 앉아 호수를 바라다보면, 강마을을 거쳐 끊임없이 불어오고 불어가는 세월의 잔주름이 수면에 가득하다.
 
산막이마을에서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온 길을 다시 걸어가거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것이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배 ‘비학봉호’를 타고 사오랑마을 차돌백이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하루 10회 안팎 운항. 편도 5천원.
 
산막이마을 들머리인 외사리 버스정류소에서 수전교 다리 건너 우회전해 차를 달리면 갈론(갈은)마을에 이른다. 물길을 따라 괴산댐 지나 약 5㎞ 거리다. 유서 깊은 청정 골짜기 갈은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갈론(葛論)으로 불리지만 본디 이름은 갈은(葛隱)이다. 속리산국립공원을 향해 뻗은 갈은계곡(갈은구곡)은 수량은 다소 적으나, 선인들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깨끗한 골짜기다. 골짜기에 1곡 갈은동문에서부터 9곡 선국암까지, 아홉 곳의 경치를 노래한 시가 바위벽에 다양한 서체로 새겨져 있다. 1곡 아래쪽 널찍한 마당바위가 피서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초가집 민박하고 '올갱이축제' 즐겨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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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론마을의 민박집 중엔 2년마다 한번씩 이엉을 얹는 오래된 초가집이 있어 눈길을 끈다. 좁아터진 방 세칸짜리 낡고 허름하고 불편한 흙벽집인데도, 작은 마당과 널찍한 평상까지 통째로 빌려 묵어가는 이들이 많다. 손자까지 6대째 마을에 산다는 주인 이은득(72)씨가 말했다. “60년 된 초간디, 안 없애구 버텼드니 고향집 생각난다며 찾는 사람들이 많습디다.”
 
달천강(괴곡천) 하류쪽 율원리 둔율마을은 해마다 다슬기(올갱이) 관련 축제를 여는 ‘올갱이 마을’이다. 본디 밤나무가 많았던 마을인데, 요즘은 다슬기로 성가를 올리고 있다. 오는 7월30일~8월1일 제3회 둔율 올갱이축제를 연다. 축제에 맞춰 ‘올갱이 양식체험장’도 개장한다. 올갱이 종패 방류, 올갱이 잡기, 돌무지 헐어 고기잡기, 올갱이 까먹기 대회 등을 진행한다. 축제 때가 아니더라도 다슬기 잡기와 옥수수 따기, 나룻배 타기 등을 할 수 있다.
 
괴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괴산 여행쪽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나들목. 19번 국도 타고 감물 지나 괴산읍내 쪽으로 가다, 괴강삼거리에서 34번 국도 만나 좌회전해 간다. 얼마 안 가 오른쪽 에스케이 달성주유소 직전에 우회전해 잠수교 건너면 왼쪽이 둔율마을 들머리, 직진하면 산막이길 가는 길이다. 외사리 정류소 삼거리에서 우회전, 괴산수력발전소 앞에서 우회전해 올라가면 산막이길 들머리다. 버스 주차장, 승용차 주차장이 차례로 나온다.
⊙ 먹을 곳| 산막이길 주차장 언덕 위에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 겸 주막(043-832-5279)이 있다. 괴강삼거리 괴강교 건너 왼쪽에 ‘할머니 괴강매운탕’(043-832-2974) 등 민물매운탕집이 많다. 괴산읍내의 올갱이해장국 식당들로는 버스터미널 주변의 서울식당(043-832-2135), 주차장식당(043-832-2673)이 알려져 있으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 여행 문의|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223, 비학봉마을 사무장 강병혁씨 011-662-5277, 둔율마을 위원장 최종하씨 011-9417-5244, 갈론마을 초가집 민박 (043)832-5626.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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