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디 수줍은 눈웃음, 고와서 서럽다 길따라 삶따라

야생화 트레킹  (1)지속가능한 즐기기
쥐오줌풀·별꽃·홀아비바람꽃·애기괭이눈…
이름조차 ‘날것’ 그대로, 태도 향도 아슴아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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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록이 우거져, 거닐고 누릴 만한 숲을 이뤘다. 우거진 숲을 한결 아름답게 하는 밑바탕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깔려 있다. 노루귀·쥐오줌풀·미나리아재비·별꽃·벌깨덩굴·꿩의바람꽃·홀아비바람꽃·족도리풀·광대수염·애기괭이눈…. 이름 속에 보석 같은 우리 자연의 빛깔과 향기와 거기 깃들어 살아온 선인들의 마음이 다 들어 있다.
 
요즘 이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보고 또 눈 맞추기 위해 산으로 들로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야생화 탐방 여행은 나름대로 바람직하게 진화해온 산행 방식이다. 산에 올라 ‘야호’ 외친 뒤 ‘둘러앉아 고기 구워먹고 내려오기’나 ‘정상 정복’을 위해 기를 쓰고 오르는 등산 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숲길 걸으며 건강 챙기고 동식물 생태를 관찰하는, 등산 아닌 ‘숲 탐방’이 요즘 뜨고 있는 산행 흐름이다. 자연 그대로의 ‘날것’과 토종에 대한 관심이자, 인공재배·대량재배·수입종에 대한 식상함·거부감의 발로이기도 하겠다.
 
우리나라 산과 들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무수한 ‘자연산’ 야생화들이 피고 진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면 잘 보이지도 않는 산꽃·들꽃이 지천이다. 지천인 야생화를 만나는 데에도 방법 아닌 방법이 있다. 야생화 전문가와 생태숲 해설가들의 도움말로 ‘지속가능한 야생화 즐기기’ 탐구생활로 들어간다.
 
 
무리지어 피는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대표적 야생화 군락지는?=야생화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태백 금대봉·대덕산, 인제 곰배령, 오대산, 덕유산, 지리산 등이 꼽힌다. 이런 곳들엔 야생화 종이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철마다 한꺼번에 무리지어 피고 지는 대표종들이 있어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5월 말 현재 봄야생화들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여름야생화가 피기 시작하는 6월 중순 무렵까지 무리지어 피는 꽃들은 잠시 소강상태를 이룰 전망이다. 금대봉과 이웃 우암산 일대의 경우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보라색 얼레지와 푸른 현호색,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장관을 이뤘고, 덕유산에선 같은 시기 노란 피나물(노랑매미꽃)이 무리지어 피어났었다.
 
태백시 생태숲 해설가 임상춘(용연동굴 담당)씨는 “6월 중순부터 금대봉·대덕산 일대에선 범꼬리·전호·둥근이질풀 무리가 차례로 숲을 수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곰배령에선 6월말부터 8월까지 분홍빛 둥근이질풀과 연분홍 노루오줌, 노란색 마타리들이 정상 일대에서 장관을 이루고, 7월부터 지리산 노고단에선 노란 원추리 무리가, 적상산 자락에선 주황색 하늘나리, 발그레한 벌깨덩굴이 무리지어 피어나게 된다.
 
그러나 야생화 감상을 위해 꼭 이름난 군락지로 떠날 필요는 없다. 산 많고 골 많은 우리 땅 구석구석 야생화 피지 않는 곳이 없다. 집 뒷산, 동네 앞산, 주변 들판으로 나가 한나절 거닐며 눈을 낮추면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며 반짝이는 꽃들이 당신을 반겨줄 터이다. “무리지어 피는 꽃들만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어쩌면 외롭게 핀 단 한송이의 야생화를 발견하는 기쁨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생태숲 해설가 김부래씨) 이번 주말 동네 뒷산 숲길로, 소박하고도 깨끗한 ‘자연의 얼굴’ 몇송이 만나는 산책을 나가 보시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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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벗어놓고 내 몸을 숲처럼, 그냥 그대로

 
숲길로 들기 전에=전문가들이 거듭 권하는 야생화 탐방 자세는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떼지어(단체관광) 몰려가지 않기, 가족 단위 이하 소규모로 탐방하기, 욕심 버리기 등이다. 욕심이란 좀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마음, 무엇을 얻어가겠다는 마음들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는 것이다. 숲에 드는 순간 몸이 숲을 이루는 구성원이 됐다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면 된다.
 
준비물은 가벼운 산행차림에 사진기·필기도구 정도. 촬영을 위한 삼각대는 자연 훼손 우려가 있어 반입을 막는 곳이 많다. 꽃이든 나물이든 허가받지 않은 식물채취는 처벌 대상이다. 간혹 인터넷을 통한 단체 야생화 탐방객 모집 문구에 준비물로 채취 비닐주머니와 목장갑 따위를 적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산림청이나 시·군의 허가 없는 채취는 7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국립공원지역이나 생태경관보전림 등의 관리사무소에는 숲생태 해설가들이 대기한다. 이들의 안내를 받으면 꽃과 나무 생태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두리번거리고 쪼그려앉고, 느릿느릿 눈맞춤
 
천천히 걷고 눈을 낮춰라=숲길을 빨리 걸어 지나치면 숲과 나무 외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야생화를 만나려면 느리게 걷고 자주 두리번거리며 수시로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키 큰 나무들 밑, 키 작은 풀들 사이에 별님 같고 달님 같은 꽃들이 피어 있다. 괭이눈이나 개별꽃처럼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꽃들이 많다. 꽃이 피지 않은 풀들도, 제철을 만나면 일제히 꽃송이를 피워올릴 꽃풀들이다.
 
태백시 생태숲 해설가 김부래씨는 “꽃 이름이나 생태를 한꺼번에 외고 이해하겠다는 욕심은 버리는 게 좋다”고 권했다. 자주 찾고 만나서 꽃과 눈을 맞추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름과 생태를 파악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봄·여름·가을로 2년쯤 같은 지역의 숲을 탐방하고 나야 비로소 꽃 이름이 머리에 남게 될 것”이라며 “야생화 사랑에 빠지면서 거의 주말마다 야생화 탐방에 나서게 된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같은 숲이라도 일주일이 다르게 새로운 종들이 피어난다. 같은 숲길을 지속적으로 탐방하면 그 숲의 식생과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표본 채집 빌미로우르르…도채꾼은 마구잡이
 
야생화는 야생에 남아 있어야 야생화=국립공원이나 생태경관보전지역을 탐방하려면 미리 해당 시·군청 환경보호과나 산림청 산림보호과에 신청해야 한다. 몰려든 인파로 인한 생태계 훼손을 예방하고, 희귀식물 등을 뿌리째 떠가는 일부 도채꾼들의 행태를 막기 위해서다.

무주의 오지산행 전문가 최상석씨는 “최근 야생화 훼손의 선두주자는 일부 사진애호가들”이라며 “특별한 꽃 사진 한장 얻기 위해 주변 꽃들을 마구 짓밟는 건 예사고 심지어 꽃을 파내 양지쪽으로 옮겨 사진 찍은 뒤 던져버리는 경우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식물을 파내 원예업자 등에게 팔아먹는 전문적인 도채꾼들의 행태다. 조직적으로, 대량으로, 희귀식물 위주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표본 채집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을 떼로 몰고 와 파헤치고 가는 일부 교사·교수들도 한몫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훼손돼 가는 자연생태 보전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은?
1. 불법 채취 범칙금을 대폭 올린다.
2. 이름난 야생화 자생지의 하루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격년 휴식제를 실시한다.
3. 단체 탐방 참가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4. 생태를 살리기 위해 산과 골짜기에 축대·보를 쌓고 야생화를 한데 모아 심는 ‘4대 산 살리기 사업’을 조속히 실시한다.
정답: 답이 안 나오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야생화 관련 주요 사이트>
 
 ⊙ 김태정의 한국의 야생화(www.wildflower.co.kr)
 ⊙ 이명호의 야생화(www.skyspace.pe.kr)
 ⊙ 함백산 야생화(www.gogohan.go.kr) 
 ⊙ 한국자생식물원(www.kbotanic.co.kr) 
 ⊙ 한택식물원(www.hantaek.co.kr)
 ⊙ 아침고요수목원(www.morningcalm.co.kr)  
 ⊙ 야생화개발연구회(www.wildflower114)
 ⊙ 한국의 들꽃(www.wildflower.pe.kr)
 ⊙ 국립수목원(www.kn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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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