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근대 기웃 기웃, 도시가 ‘역사박물관’ 길따라 삶따라

안동 도심 걷기
독립운동 자금줄 된 99칸 양반댁 ‘기구한 운명’
벽돌 한장 한장 쌓아올린 전탑 ‘경주에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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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근대 유적이 억수로 많이 깔렸으니께네 경주보다 볼 게 많다카는 말도 안 나오니껴.” 안동대 박물관 조규복 학예연구사는 안동이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가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경주가 신라 유적 위주라면, 안동엔 구석기 유적부터 불교·유교·민속문화 유적이 고루 널렸다. 서울 땅 두배 반 넓이의 안동 곳곳에 흩어져 있다. 옛 도심 주변에도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안동역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구시장 골목을 거쳐 낙동강변 기찻길 옆 임청각·7층전탑까지 간다.
 
서울 땅 크기 두배 반…불교·유교·민속문화 유적도 골고루
 
Untitled-11 copy.jpg안동역 옆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챙겨 들고 역 안으로 들어간다. 안쪽에 증기기관차 시절 근대 유적이 하나 있다. 철길 몇 개 건너면 전망대를 닮은 우중충한 12각 시멘트 구조물이 기다린다. 일제강점기 때(1940) 세운 급수탑(등록문화재)이다. 물을 끌어올려 저장해 뒀다가 수압을 이용해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다. 전국 역에 20여개가 남아 있으나 대개 흉물로 방치돼 있다고 한다.
 
역을 나와 옆 주차장으로 간다. 벽돌을 구워 쌓은 우아한 전탑(보물)과 당간지주가 서 있다. ‘동부동 전탑’은 본디 7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만 남았다. 통일신라시대 절 법림사 터다. 전탑은 중국에서 유행한 탑이다. 한국은 석탑, 일본은 목탑이 주류다. 당간지주 윗부분엔 한국전쟁 때 상흔이 남아 있다. 안동시 문화해설사 안현주(49)씨는 “칠층전탑 맨 위 금동상륜부를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 군사가 떼어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철당간지주 윗부분엔 한국전쟁 포화의 흔적이 뚜렷하다. 지주석 사이 바닥엔 철당간을 받쳤던 받침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역 앞 건널목 건너 안동 옛 도심으로 들어선다. 안동 주요 도심은 안동성이 있던 옛 도심(구시장)과 천리천 둑방 너머 신시장 거리, 그리고 최근 새 번화가로 떠오른 옥동 지역이다. 구시장 골목으로 가는 길에 음식의 거리를 지난다. 간고등어집·찜닭집도 있으나 한우 숯불갈비 집들이 특히 많이 보인다. 그렇다. 안동은 또 한우 사육 마릿수가 도내에서 경주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안동이 경주보다 더 많이 가진 건 뭘까. 전탑이다. 안동은 전탑의 도시다. 국내 5개의 전탑 중 3개가 안동에 있고, 전탑 터나 모전탑(전탑을 모방한 석탑)도 수두룩하다. 경주엔 전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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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안동포 한필이면 자전거가 여러대 사

 
문화의 거리로 들어선다. 차없는 거리에 패션점·카페가 즐비하다. 옛 도심은 옥동 새시가지 형성으로 위세가 약해졌지만, 패션 1번지 명성만큼은 여전하다. 주말 저녁 문화의 거리 광장에선 음악회도 열리고 각종 공연도 벌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도 이 광장에 마련됐었다.
 
남문동 거리 지나 구시장 쪽으로 걷는다. 남문동은 옛 안동성(안동도호부) 남문이 있던 곳이다. 남문 누각엔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진 아름다운 종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종은 조선 세조 때 왕실의 절이 된 오대산 상원사로 옮겨졌다. 이 종이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이다. 안동성은, 성곽·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네 이름과 표지석으로만 남았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떡볶이·순대·튀김 골목과 찜닭 골목이 이어진다. 유모차를 미는 부부도,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도, 엄마 손 꼭 잡은 아이도 입맛을 다시며 머뭇거린다. 안동찜닭 1마리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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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나와 큰길 건너 사장둑으로 간다. 10여년 전 복개한 천리천 둑길을 사이로 구시장 쪽과 신시장 쪽이 나뉜다. 구한말 궁술(활쏘기)을 연마하던 자리에 쌓은 둑이다.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였다는 설도 있다. 사장둑 아래쪽 골목길이 베전골목이다. 유명한 안동포가 거래되는 곳이다. 일제때부터 베전·장례업소들이 들어서며 형성된 시장이다. 몇 해 전까지도 장날(2, 7장) 새벽이면 집에서 베틀로 짠 베를 머리에 이고 나온 할머니들과 상인들이 붐볐다는 곳이다. 지금 골목에 남은 베전은 다섯 집. 모친에 이어 30년째 가게를 하고 있다는 안동포상회 이만희(59)씨는 “수요가 줄면서 안동포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면서 “가게가 줄면서 값은 뛰었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은 중국산 짝퉁이 판을 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도 직접 짠 베를 들고 오는 할머니들이 꽤 있다고 한다. “옛날엔 자전거 한대 사려면 베 여러 필을 모아야 했는데, 요즘은 베 한필이면 자전거 몇 대를 살 수 있게 됐다”는 말에서도 귀해진 안동포의 값어치를 엿볼 수 있다. 안동포 1필 60만원 대, 중국산은 10만~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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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님 따라 ‘활인삼방’ 하낫 둘!

 
다시 천리천 복개로 따라 북문 터 지나 시청쪽으로 간다. 시청 자리엔 이전에 안동대가 있었다. 그 전엔 육이오때 불탄 향교가 있었고, 향교 이전엔 절(통일신라시대)이 있었다. 여기서 발굴된 탑과 사자상, 석불 등이 지금 안동대 박물관 앞 뜰에 전시돼 있다.
 
시청 부근 북문삼거리에서 북문터 표지석을 보고 태사묘로 향한다. 안동(옛 이름 영가·길주·복주) 역사의 중심엔 세 성씨가 자리하고 있다. 안동 김씨·안동 권씨·안동 장씨다. 후삼국시대에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물리친 세 공신, 즉 세 성씨의 시조가 되는 김선평·권행·장정필 세 태사의 위패를 모신 곳이 태사묘다. 경내 보물각엔 금장식 허리띠 등 공민왕 하사품들과 세 성씨 집안에 전해내려오던 유물 22점(보물)이 보관돼 있다. 해설사가 상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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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묘를 나와 잠시 걸어 웅부공원 뒷문으로 들어선다. 옛 관아가 있던 곳인데 공원으로 꾸몄다. 공원엔 800여년 풍상을 겪어온, 부신목(府神木)으로 불리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옛날 안동부사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이 나무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공원 안엔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안동문화원도 함께 있다.
 
콘텐츠박물관은 유물 없는 박물관이다. 안동 전체 문화재를 영상에 담아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체험케 하는 영상박물관이다. 안동문화원 앞마당에선 월~금요일 저녁, 이퇴계 선생의 운동법으로 알려진 ‘활인심방’ 무료 강습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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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잘린 400살 회나무-‘위태위태’  신세동 7층 전탑

 
안동성 동문 터와 볼링센터 앞을 지나 임청각으로 간다. 법흥교로 이어지는 고가도로 밑 왼쪽이다. 오른쪽에 기찻길 두고 걸으면 고래등 같은 한옥 건물들이 다가온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과 또다른 고성이씨 종택인 탑동종택, 그리고 국보 16호 ‘신세동 7층전탑’이 모여 있다.
 
임청각은 이른바 99칸짜리 양반 살림집이었으나 지금은 70칸 정도가 남아 있다. 안채·사랑채·행랑채와 크고 작은 마당의 배치가 이채롭다. 임청각 현판 글씨는 퇴계 선생의 것이다.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 안엔 이현보·이항복 등의 시 편액이 걸려 있다. 이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국가원수)을 지낸 석주 이상룡 등 아홉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고 한다. 사당 건물이 있는데 위패를 모시진 않는다. 관리인 이상동(50)씨는 “이상룡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날 때 마지막 제사를 올리고 신위를 땅에 묻어버렸다”고 말했다.
 “아, 그 분은 독립운동자금에 쓰려고 이 집을 세번이나 팔았어요. 논·밭도 다 팔고. 그러면 얼마 뒤 문중에서 다시 사들이기를 반복했죠.”
 
Untitled-10 copy.jpg현재의 임청각 문은 대문이 아닌 중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철길이 마당을 관통하고 지나면서 수십칸 건물과 솟을대문이 사라졌다. 철길 너머 찻길 한가운데엔 몸통 잘린 굵직한 회나무가 보호철망에 갇혀 있다. 이씨는 “회나무 자리가 집 안마당이었고 강쪽으로 솟을대문이 있었다”며 “400살 난 보호수였는데 2년 전 누군가 잘라버렸다”고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인 ‘신세동 7층전탑’은 당장 위태위태하다. 탑 옆으로 차단벽을 친 철길 둑이 바짝 붙어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전탑도, 임청각도 예전처럼 탁 트인 낙동강 물길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4대강 사업보다는 문화재 살리기가 훨씬 다급해 보인다. 여기까지 5킬로미터를 걸었다.
 

 
▣ 안동 걷기여행 쪽지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가다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서안동나들목에서 나가 시내로 간다. 안동역 옆에 주차장이 있다. 1시간 1000원. 서울~안동 3시간 소요. 청량리역~안동역 4시간~4시간30분. 안동역 (054)856-7788. 안동시외버스터미널(054-857-8298)도 안동역 옆에 있다. 동서울~안동 3시간 소요.
 
걷기 도착점인 신세동7층전탑에서 철길 굴다리를 나가 안동댐 쪽으로 1㎞ 남짓 가면 월영교 건너서 석빙고·민속촌·안동민속박물관·드라마세트장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9월 말 현재 인도·자전거도로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 걷기엔 적당치 않다.
 
월영교 건너기 전 도로가에 헛제삿밥·간고등어 등을 내는 전문식당들이 몰려 있다. 법흥사거리 부근 청반점은 40여년간 수타면만을 내온 중국음식점. 팔도불고기회관(불고기·냉면) (054)857-6741, 옛마을(콩나물해장국) (054)859-2691. 임청각에서 고택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행랑채 등 1박 5만~10만원, 군자정(방 3개+마루) 1박 20만원. 임청각 (054)853-3455. 안동군청 관광산업과 (054)840-6391.

안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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